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꿈꿔보았을 법한 직업이 있다. 바로 게임 기획자다. 얼핏 매력적인 단어다. 게임을 기획한다는 것. 상상력 넘치는 게이머들이라면 머릿속에서 화수분처럼 샘솟는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옮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음직 하다.

반면 이런 말도 있다. '취미를 일로 하게 되면 더 이상 취미가 될 수 없다.'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 개발의 꿈을 꾸어가며 기획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임 기획자의 삶이 무던히 즐거운 일만의 반복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음 속에서야 머릿 속에서 떠오르는 무한한 상상을 게임으로 옮기고, 역시 대단한 아이디어 뱅크라고 말해주는 다른 이들의 칭찬을 꿈꾸지만, 어디 이상과 현실이 같은 적이 있던가.

그렇다면 진짜 게임 기획자의 삶은 어떠할까?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굴러가고,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는 것일까? NDC2014 1994홀에서 진행된 첫 강연은 그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갓 2년이 된 넥슨 마비노기영웅전 기획자 중 한명인 이라 사원. 그녀가 말하는 게임 기획자의 일상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 발표를 맡은 넥슨 마영전실의 전략유닛 이라 사원




◈ 어떻게 그녀는 게임 기획자가 되었나?


그녀의 학창시절은 평범했다. 다만 조금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 여러 공모전에 참석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는 점 정도가 특이 사항일까? 사실 그 조차도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활이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전공은 국제사무학. 그녀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게임과는 약 2억년은 떨어져 있는 전공이다.

그러던 중 모두에게 찾아오는 위기가 그녀에게 찾아왔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 아마 많은 젊은이들이 고민하고 있고, 기성세대들 역시 고민했으며, 나아가 어린 학생들이 앞으로 고민할 인생의 최대 숙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해메고 있던 그녀는 선배의 말 한마디에 길을 정하게 되었다. 그 선배가 해 준 말은 이것이었다. "밤을 새서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라."

"생각해보니 밤을 새서 할 수 있는 것은 게임밖에 없더라구요."

그렇게 그녀는 넥슨에 지원하게 되었고, 신입 기획자로 입사하게 되었다.

▲ 이라 사원의 프로필




◈ 흔한 게임 기획자의 일상.


넥슨의 게임 기획자로 입사하게 된 그녀는 9주간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소양부터, 보드 게임에서 배우는 기획의 틀, 그리고 몬스터와 퀘스트 등 게임 내 각종 요소의 조립과 실무에 가까운 해외 패치 방법까지. 3개월, 9주간의 커리큘럼을 진행한 후 그녀는 마영전실의 신입 기획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진짜 게임 기획자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게임 기획자의 주 업무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라이브 서비스가 그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바로 피쳐 개발이다.

라이브 서비스는 게임의 특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온라인 게임이라면 필수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요소다. 라이브 서비스는 문자 그대로 지속적인 서비스를 뜻한다.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고, 게임 내에서 바꿔야 할 점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추가해 적용하는 과정.이 바로 라이브 서비스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이미 날아가고 있는 게임이라는 항공기에 연료를 채워주는 공중 급유와 같은 개념이다.

▲ '라이브 서비스'는 많은 이들이 함께 해 나가는 과정


하나의 게임이 계속해서 순항하려면, 라이브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업데이트라는 연료를 채워 넣어줘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게임 기획자는 유저의 동향을 파악하고, 새로운 요소를 생각해내기 위해 밤낮없이 달려야 한다. 게임 기획자는 그저 아이디어 뱅크가 아니다.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대로 내고, 실무는 실무대로 뛰는 그런 직업이 바로 게임 기획자다.

▲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라이브 서비스


라이브 서비스가 온라인 게임을 지속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피쳐 개발은 게임 기획자가 그 첫 발을 내딛게 되는 작업이다. '피쳐'는 게임 속 여러 요소들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새로운 공격 방식을 갖춘 몬스터가 될 수도 있고, 혹은 플레이어가 직접 조종하게 될 캐릭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게임 속의 다양한 미니 게임 요소들도 피쳐 중 하나다.

피쳐 개발의 첫 단계는 상상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지, 혹은 더욱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줄 수 있을 지 등 끊임없는 상상이 피쳐 개발의 열쇠가 된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피쳐가 생각나게 되면, 이후 이를 개발로 옮기에 된다.

하지만 피쳐 개발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령 늑대를 닮은 몬스터를 기획했다 치면 기획자의 상상을 디테일한 아트워크로 표현해 줄 아티스트가 있어야 하며, 이를 3D로 구현해 생명을 불어넣어 줄 애니메이터도 필요하다. 또한 게임 내에 이를 실제로 적용시킬 프로그래머까지, 실로 많은 이들이 하나의 피쳐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피쳐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들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언제나 서로의 업무 진행 상황을 알 수 있어야 하고, 프로그래머나 애니메이터들이 기획자가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게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물론 이에 앞서 선행되는 것은 기획자가 실무자들에게 정확하게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다. 실제로 이라 사원의 경우 머리에 뿔을 달고 몬스터의 움직임을 흉내내 보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피쳐 개발 과정 한눈에 보기




◈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세션이 시작되기 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발표는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제 게임 기획자가 어떤 일들을 하는지 알리기 위한 발표입니다."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은 많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며, 이를 현실로 옮기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는 개인만의 판타지니까.

그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게임 기획자에게 필요한 소양을 이야기해 주었다. 표현은 달랐다.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자신이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런 일들을 해보고 싶다.'라며 이야기한 요소는 네 가지였다.

▲ 기획자가 되려 한다면 이정도 경험은 해 보는 것이 좋다


가장 첫번째는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프로그래밍이 무엇인지 알고, 간단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안다는 것은 게임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굉장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실무를 전반적으로 맡게 되는 프로그래머와의 소통도 한층 쉬워진다.

두 번째는 '자신만의 스토리를 구상해볼 것'이다. 게임 기획자는 많은 스토리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한다. '둠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존 카멕이 "게임에서의 스토리는 큰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던 시절은 이미 먼 옛날이다. 게임의 배경 스토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고, 실제로 스토리 텔링에 중점을 둔 게임들 역시 많다.

세 번째는 '최대한 많은 게임을 해볼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게임을 해 볼 수록 게임을 보는 스펙트럼은 넓어진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잘 만든 게임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고, 흥행에 실패한 게임이 어떤 요소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과정 또한 중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부족하더라도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볼 것'을 말했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나?" 하지만 간편한 게임 제작은 널리고 널린 제작 툴 갖고도 충분히 제작이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대학에 게임 제작 동아리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그녀의 짧은 발표는 끝을 맺었다. 게임 기획자의 삶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고, 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바쁘고 활동적인 편에 속했다.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내용의 발표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편했던 것은 그녀의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 완벽한 기획자는 상상 속에나 있다.


밤을 새워 해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게임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이라 사원. 게임 기획자를 꿈꾸는 이들은 많고, 어쩌면 그 강연장에, 미래의 대 기획자가 발표를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NDC2014의 키워드는 '#CHECKPOINT' 다. 기획자라면 항상 배우는 자세와 도전의식을 갖추고 덤벼야 한다는 이라 사원. 그녀의 마지막 멘트는, 지금의 발표가 미래의 기획자들에게 체크 포인트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