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지스타 개최지가 이 정도로 쟁점이 된 적이 있었나 싶다. 과거 지스타 개최지가 킨텍스에서 부산 벡스코로 옮겨질 때, 후보지로 대구가 거론될 때도 여러 말들이 있긴 했지만, 정치권, 참가업체의 힘과 자본 논리에 대한 담론이 오고 갔을 뿐 지금처럼 전국 게이머들이 이목을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했던 적은 없었다.

복잡하게 분석할 것 없이 여러 게시판과 기사 반응만 둘러봐도 원인은 크게 하나로 압축된다.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의 과거 행적 때문이다.

2013년 1월 8일,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은 일명 ‘손인춘법’으로 알려진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1903262)’과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190342)을 발의한다.

법률안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와 원인 파악도 없이 게임을 술, 도박에 버금가는 중독매체로 취급한 것도 모자라, 여성가족부 장관이 게입업체에 연간 매출액의 1% 이하 범위의 중독치유부담금을 징수하도록 한 조항에서는 비단 게임업체뿐 아니라 전 게이머의 분노가 폭발했다.

2012년 게임업계 전체 매출이 약 8조 원이 넘는 규모인 걸 고려하면 1년간 거의 800억 원이 넘는 현찰을 게임업체로부터 강제징수하겠다는 노골적인 조항이었다. 순이익이 아닌 매출 기준이기 때문에 회사는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강제 징수당해야 한다. 술, 도박의 징수세율, ‘0.05%’, ‘0.03%’과 비교해보면 법률안 자체가 ‘게임업계는 그냥 죽으라’는 의미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이 핵폭탄 같은 손인춘법의 중심에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이 있었다. 그 당시 서병수 당선인은 지스타 개최의 경제 특수 효과를 고스란히 누렸던 ‘부산시 해운대구 기장군갑’의 국회의원이었기에 게임업계는 손인춘법 그 자체에 대한 분노와는 별도로 서병수 당선인에게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그 당시 위메이드의 남궁훈 대표는 ‘지스타와 게임업계가 해운대와 부산시에 매년 얼마나 많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는데 해운대 지역 국회의원이 게임업계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며 법안 통과 여부와 상관 없이 2013년 지스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남궁훈 전 대표는 게임업계의 동참을 촉구했고, 업계 전체에 지스타 불참 여론이 크게 확산됐는데 이것이 이른바 ‘지스타 보이콧’ 사태다.

결국 많은 반발에 부딪힌 손인춘 의원이 ‘업계의견을 더 듣겠다’며 한발 물러섰고, 부산시 또한 한국게임산업협회에 주무관을 급파하며 게임산업과 지스타 개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서를 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리고 몇개월 뒤 2013년 지스타는 우여곡절 끝에 반쪽짜리 행사로 부산에서 개최됐다. 그러나 ‘지스타 보이콧’ 사태는 게임업계 종사자와 게이머들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손인춘법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채로 국회에 남아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도 ‘지스타 보이콧’ 사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던 서병수 당선인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시간이 흘러 올해 6월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당시, 상대편 오거돈 후보가 ‘지스타 보이콧 사태를 해명하라’며 직격탄을 날렸을 때도 서병수 당선인은 역시나 별 반응이 없었다.

직접적인 대답 대신에 ‘오거돈 후보의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 외면을 규탄한다’는 부산지역 모 학부모모임의 성명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게임 반대 성향’를 은근히 드러냈다. 참고로 이 게시물(링크)은 선거가 끝난 지금 이 순간에도 서병수 당선인의 블로그에 여전히 걸려있다.

이토록 게임업계와 게이머를 대하는 태도가 일관적이던 서병수 당선인에게 최근 심경이 변화가 생긴 듯 보였다. 부산시장에 당선된 후, 지난 6월 19일 판교를 방문해 게임업체 대표들과 미팅을 가진 것이다. “지스타 참여 독려 차원의 만남’이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가자마자 게임업계인과 게이머들은 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차기 지스타 개최지를 두고 탈(脫) 부산 여론이 번지자 이제 와서 모든 기억이 희미해진 듯 지스타 참여를 독려한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사진출처: 서병수 페이스북)]



서병수 당선인의 판교 방문 다음날인 20일, 성남시는 발 빠르게 움직여 지스타 유치에 적극 나설 것을 밝혔고, 차기 지스타 후보지를 묻는 인벤의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총 설문조사 참가자의 38.3% (3,560명 중 1,364명)가 성남시(1위)를 지지했다. 서병수 당선인의 부산시는 17.6%로 3위에 그쳤다.

이런 결과에는 판교 게임밸리 구축을 통해 대표적인 ‘게임도시’로 급부상한 성남시 자체에 대한 호감도 있었겠지만, 서병수 당선인에 대한 게임계의 반감이 여전히 크게 남아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바로 그제(25일), 서병수 당선인이 게임업계에 두 번째 러브콜을 날렸다. 부산 지역 게임업체를 만나 게임산업 집중 육성과 지스타 확대, 부산 게임산업 지원 확대 정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보도자료를 장식한 화려한 수식어를 다 날리고 보면 서병수 당선인의 이 한 마디가 남는다. “한국 게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

그러나 국가 광역단체장 당선인의 애틋한 고백에도 여론은 마찬가지로 냉담했다. 대작 게임을 다룬 기사에 버금가는 조회수와 댓글을 기록했지만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관련기사] 서병수 부산시장 당선인 "한국 게임산업 발전 위해 최선 다할 것"


나는 서병수 당선인을 믿고 싶다. 해서, 앞으로도 서병수 당선인이 '차기 지스타 개최지가 결정될 때까지는’ 게임업계에 대한 러브콜을 계속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이 바로 앞에 놓여 있는데 아무리 에둘러서 애정표현을 해봤자 전혀 소용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인터넷 게임중독 2차 토론회를 오는 7월 1일로 잡아 놨고, 국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손인춘법이 언제 다시 게임업계의 목을 조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병수 당선인이 어떤 액션을 취한다 한들 과거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게임업계인들에게 얼마나 신뢰감을 줄 수 있을까?

‘서병수 당선인’과 ‘게임업계’ 사이, ‘믿음’과 ‘불신’ 사이에 빈자리가 있다면 채울 수 있는 것은 '진심'뿐이다. 그리고 그 진심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은 정면돌파, 즉 손인춘법 공동발의와 지스타 보이콧 사태에 대한 적절한 해명과 사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