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돈을 얼마나 가져갔던가


까까머리 중학교 1학년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의 형이 이상한 카드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친구가 보여준다던 살색 가득한 영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 이상한 카드에 그려져 있는 일러스트와 설명이 신기했고 무언가 게임 같은걸 하는 것이 신기했다. MTG와의 첫 만남이었다.

98년 당시 한 달 용돈이 3만 원 이었던 기자는 스스로를 펑크키드라 부르며 직수입 음반을 한 달에 한 개씩 구입하던 낙에 사는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MTG를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중학생 주제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했고 게임샵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했다.

15년이 흐른 지금은 대회를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가끔 생각날 때마다 플레이를 하곤 한다. M.T.G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내가 가진 덱을 이용해 상대의 수를 하나하나 간파해가며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의 쾌감이 가장 크다고 대답할 것이다. 더불어 영어 읽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출시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MTG는 이제 테이블에서 벗어나 PC와 콘솔 그리고 아이패드로도 즐길 수 있다. 쏟아져나온 수많은 카드 배틀 RPG 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정통 TCG '매직 2015'가 과연 MTG만의 재미를 오롯이 손으로 옮겼을지 고민도 하기 전에 내 손은 다운로드를 눌렀다.






20년의 MTG의 역사를 당신에 머리 속에 넣어주마

일단 '매직 2015'를 알아보기 전에 MTG에 대해 조금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흔히 MTG라 부르는 이 카드게임의 이름은 'Magic: the gathering'이며 세계 최초의 TCG다. 미국의 수학자 리처드 가필드가 종이에 인쇄된 카드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디자인한 결과 세상에 나왔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정기적으로 새로운 세트가 출시되며 현금거래와 트레이드가 활성화 돼 있다.

한국에는 1996년 울트라라이트를 통해 발매되었다. 같은 해 한글판 카드가 발매되고 토너먼트에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등 초기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당시, 학교 앞 문방구에서도 팔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으며 게임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IMF 이후 환율 문제로 카드의 가격이 급상승했고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를 필두로 한 PC방에 밀려 경제적으로 많은 투자가 요구되던 MTG는 거의 형체를 감추게 된다. 그렇게 암흑기를 걷던 MTG는 2011년 10월 매직 2012를 시작으로 한국에 다시 정식 발매되었다. 2012년 NDC에서 넥슨 백승엽 차장이 매직 더 개더링의 게임 디자인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 세라만 봐도 지나온 세월이...



이왕이면 다홍치마, 기왕이며 수려한 그래픽

과거 PC로 발매된 몇몇 MTG는 MTG의 게임성을 농락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줬기 때문에 살짝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만난 '매직 2015'의 첫인상은 놀라움이었다. 잘 정제된 인트로 무비와 튜토리얼 내내 나오는 차분한 해설 음성은 만족스러웠다.

특히 '매직 2015'의 UI는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수려함을 자랑한다. MTG의 특성상 화려한 그래픽과 연출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카드의 정보와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가독성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매직 2015'는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글 번역도 크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오랜 시간을 영문판 혹은 예전 한글판으로 즐겼던 사람들에겐 소서리, 인스턴트로 번역하던 것을 집중마법, 순간마법으로 바꿔서 기존 유저들이 혼동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 수려한 UI

▲ 연출 효과라고 해도 이런게 전부인 것이 매력이라면 매력

▲ 자세한 툴팁을 제공한다



여자친구가 바뀌어도 모른척 해드립니다. 매직 2015의 변경점

가장 큰 변경점은 이전 작에서는 제한적으로 가능했던 커스텀 덱 만들기가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흔히 컨스라고 부르는 컨스트럭티드 방식에 익숙한 테이블 게이머들에게는 약간 이해하기 힘든 룰일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매직 2015는 인트로팩을 튜토리얼을 클리어하면 지급한다. 이후 부스터를 까서 원하는 덱을 구성해 나간다.

전투 시 AI가 대응하는 시간이 좀 더 늘어났다. 이전 버전까지는 좀 바보같이 덤비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더 똑똑해진 느낌이다. 더불어 기존 2014를 즐겼던 유저라면 익숙한 쌍두거인모드(라이프 총합계 30점을 같은편과 공유하는 2:2 모드)가 삭제된 것도 눈에 띤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 나 만들거야 구울덱



테이블을 손으로 옮겼다

MTG를 처음 접하는 유저라면 블리자드의 '하스스톤'을 떠올리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다만 하스스톤에서는 턴마다 마나가 하나씩 추가되는 것에 비해 '매직 2015'에서는 대지라 불리는 카드가 마나를 대신한다. 마법과 인첸트, 아티팩트, 크리쳐 등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이 대지를 이용한다.

전투는 공격 측의 공격 선언과 방어 측의 방어 선언, 그리고 방어 지정으로 이루어진다. 보통의 카드게임처럼 '이 카드로 저 카드를 공격하겠어!'가 아니라 공격 측은 카드를 탭하며 공격 선언만 한다. 그러면 방어 측은 언탭된 카드로 방어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고 어떤 카드로 혹은 어떤 인스턴트로 방어를 할 것인지 정한다.

전투 페이즈가 완료되면 전투에 사용된 크리쳐들은 모두 본인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 요즘 모바일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카드 RPG들과의 차이점이다.


▲ 마나로 생각하면 쉬운 대지

▲ 게임의 흐름



느려도 너무 느려...

기본적으로 MTG이기 때문에 게임성에 관해서는 언급할 부분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하고 많이 팔린 TCG이거니와 개인적으로도 오랜 시간 즐기며 MTG의 오묘함에 빠졌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은 과금 시스템에 관한 의견이 대부분인데 애초에 TCG는 돈을 지불하고 카드를 뽑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여기서 논의하지 않기로 하겠다. 오죽하면 '매직 더 개더링'을 '매직 더 거덜링'이라고 부르겠나.

사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언커먼이 문제가 아니라 MTG의 오묘한 매력을 반감시키는 시스템이 문제다. 커먼 카드 위주라도 덱 구성이 알차면 플레이하는 재미라도 느낄 수 있는데 게임 내 설명에 적힌 컨셉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평이하게 구성돼있다. 어떤 덱을 하든 크리쳐만 쭉 늘어놓고 치고받는 게 끝일 정도로 말이다.

리미티드 룰(경기 당일 참가자들에게 부스터를 나눠주고 덱을 짜게 하는 방법)때문에 실덱(Sealed Deck)에 어느 정도 익숙한 기자에게도 현재와 같은 덱 구성 시스템은 게임의 흥미를 반감시킨다. 차라리 파우퍼(Pauper, 극빈자라는 뜻으로 커먼들만 사용하는 포멧)모드를 만들었다면 환영했을지도 모르겠다.


▲ 지나치게 상세한 튜토리얼


기자가 가장 불만인 부분은 속도 면에 관한 것이다. 애초에 플레이 자체가 너무 느리다. 일단 게임 자체의 흐름이 너무나 느리다. 카드의 움직임이며 본 단계부터 종료단계까지의 호흡이 너무 길다. '느림의 미학' 수준이 아니다. 너무도 느린 흐림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답답함을 유발한다. 튜토리얼만 해도 진이 빠질 정도다.

또한, 튜토리얼을 종료하고 기쁜 마음에 부스터를 까면 특정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때까지 확인하지 못하게 돼 있다. 멀티플레이도 마찬가지. 이렇게 늘어지는 게임을 몇 번이나 다시 해야 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게임을 멀리하게 된다. 부스터를 까서 좋은 카드라도 나오면 그 기분에 플레이하지…. 심지어 기자는 부스터 팩을 구입하고 확인도 안 해봤다. 아니 못해봤다.

분명 MTG를 수려한 그래픽과 분위기 있는 UI로 아이패드에 잘 구현했다. 하지만 너무나 느린 게임 속도는 게임을 플레이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요인 중의 하나다. 원작의 오랜 팬인 기자조차 짜증이 날 정도로….

MTG자체에 관해서는 불만이 없다. 전 세계의 많은 팬이 인정하듯 한번 맛 들이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매력에 빠져들고 만다. 하지만 MTG를 PC나 모바일로 옮겼을 때 원작의 게임성과 재미를 전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시기인듯하다.


▲ 그래 부스터를 까는게 제맛이지

▲ 뭐 임마?!

▲ 스팀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10불짜리 데모란 이야기도 있지만...

▲ 여러 옵션을 설정할 수 있다

▲ 직관적인 화면

▲ 고블린이랑 페가수스 토큰을 살 돈이 없던 시절... 그래서 고블린 덱을 못만들었다는 슬픈전설이...

▲ 이 화면을 보기 위해 얼마나 오랜 답답함을 감수했는가

▲ 넌 이미 죽어있다. 가라! 돌진군단!

▲ 3시간 하고 질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