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일주일, 루시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결과였다. 유저들은 물론, 라이엇 게임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이번 패치를 통해, 루시안에게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부여하고자 했다. 지금까지의 루시안은 게임 초반은 물론, 후반에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순간 공격력과 기동력 모두 뛰어난 챔피언이었다. 즉, 상대가 어떤 챔피언을 선택하더라도, 자신 있게 들고 나올 수 있는 카드였다.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라이엇 게임즈는 기동성이라는 강점을 더욱 강화하는 대신에, 원거리 딜러 챔피언의 핵심 능력치라 할 수 있는 사거리를 대폭 감소시켰다.


▲ 4.12 패치의 루시안 파트 서문 일부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4.12 패치가 적용된 당일부터 유저들 사이에서는 루시안은 강력한 원거리 딜러를 넘어, OP 챔피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랭크 게임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루시안의 승률은 57%에 육박할 정도 증가했다. 특히, 챔피언의 OP성을 말해주는 밴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결국, 4.12 버전으로 진행된 첫 공식 경기인 NLB 12강전에서 루시안은 모든 게임에서 밴을 당한다.

‘OP로 다시 태어난 루시안’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 4.12 패치 이후, 루시안의 밴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출저 : fow.kr)

▲ 4.12 패치로 진행된 NLB 12강전 모든 경기에서 루시안은 밴을 당했다.



■ 사건의 중심에는 사기 스킬이 되어버린 '끈질긴 추격'이 있었다!

이 의도치 않은 결과에 많은 유저들은 놀랐다. 사거리 감소는 원거리 딜러 챔피언에게 치명적인 하향이다. 진영의 후방, 혹은 가장 안전한 위치에서 주력 딜을 담당해야 하는 원거리 딜러 챔피언에게는 재앙인 것이다. 또한, 500이라는 사거리는 원거리 딜러 챔피언 중 매우 짧은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루시안은 강함을 넘어 OP가 되었는가?


▲ 4.12 패치로 인해 루시안의 사거리는 기존의 550에서 500으로 감소

▲ 4.12 패치로 인해 루시안은 짧은 사거리를 가진 원거리 챔피언이 되었다.


핵심은 루시안의 기동성을 책임지는 스킬인 끈질긴 추격(E)에 있다. 그동안 루시안이 강력한 원거리 딜러였던 것은 스킬 기반 딜링이 강력해서이기도 하지만, 끈질긴 추격을 이용한 손쉬운 탈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반, 원거리 딜러가 직면하는 최고의 과제는 상대 근거리 챔피언의 견제를 피해 좋은 위치를 잡는 것. 루시안은 ‘모든 둔화 효과 제거’라는 엄청난 옵션을 가진 끈질긴 추격을 통해 이를 이뤄낸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패치를 통해, 끈질긴 추격은 새로운 메커니즘을 얻었다. '빛의 심판(R) 시전 중에 킬을 올리면 끈질긴 추격 재사용 대기시간이 초기화'되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빛의 사수(패시브)가 발동된 상황에서 공격을 적중하면 끈질긴 추격의 쿨 타임이 일정부분 감소'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빛의 사수는 '스킬을 사용 후 6초 안에 기본 공격을 하면 총을 두 번 연속 발사'하게 해주는 루시안의 패시브 스킬이다. 즉, 다른 스킬을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하며 중간중간 평타를 섞어 준다면, 거의 무한으로 끈질긴 추격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4.12 루시안 패치의 핵심인 '끈질긴 추격' 변경점


이와 더불어, 끈질긴 추격의 마나 소모도 삭제되었다. 모든 방해 효과를 제거하는 탈출기를 마나 소모없이 무한으로 사용하게 된 것! 이것은 사거리 감소가 무색해질 정도의 상향이다. 현재 최고의 원거리 딜러 챔피언으로 손꼽히는 코그모가 500이라는 짧은 사거리를 생체마법 폭격(W) 스킬로 극복한 것처럼, 루시안은 끈질긴 추격을 중심으로 한 콤보를 통해 사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 4.12 패치 루시안의 끈질긴 추격 실험 결과

1. 스킬 1레벨 기준 : E-평-Q-평-W-평-E 콤보를 이용하면 한 사이클에 2번 사용 가능

2. 스킬 최종 레벨 기준 : E-평-Q-평-E-평-W-평-E-평-Q-평-E 콤보를 통해 한 사이클에 4번까지 사용 가능

3. 특히 마나 소모가 없어졌기 때문에, 마나 압박없이 콤보를 사용할 수 있음

▲ SKT T1 K 페이커 선수의 루시안 플레이(By Seind님)



■ 상향과 하향만으로 밸런스 조절은 불가능! 루시안 패치가 던진 메시지

문제를 좀 더 파고 들어가 보자. 라이엇 게임즈는 이번 패치 노트를 통해 강점과 약점을 가진 '균형잡힌 루시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균형이 아닌 OP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밸런스 조절 실패로 보일 수도 있다. 균형이라는 틀 안에 약점과 강점을 함께 섞는 과정에서, 강점을 지나치게 부각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 패치 적용 직후 올라온 해외 동영상


4.12 패치가 적용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수많은 루시안 동영상이 리그오브레전드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유명 프로선수들의 플레이 영상은 물론, 일반 유저의 영상들도 함께 올라왔다. 유저들은 이 영상들을 보았고, '루시안은 너프가 아니다', '미드 라인으로 가능성 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영상에 나온 플레이를 직접 랭크 게임에서 시도했고, 승리를 거뒀다. 이는 루시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졌고, 밴창에 루시안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 패치 적용 직후 급격히 상승하는 루시안의 승률(출처 : fow.kr)


이를 통해, 리그오브레전드 유저들의 챔피언 이해 수준과 평균 실력이 상당히 상향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이번 루시안 패치의 쟁점인 끈질긴 추격의 메커니즘은 실제 플레이로 옮기기가 그리 쉬운 편이 아니다. 콤보 자체의 난이도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짧아진 사거리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진 한타 상황에서 깔끔한 콤보 완성은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유저들은 보란 듯이 이것을 하루 만에 해냈고, 브론즈에서부터 다이아까지 전 티어에서 루시안의 승률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만약, 이 루시안 패치가 2시즌에 이뤄졌으면,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상향 평준화된 유저들의 실력과 눈높이! 이것이 리그오브레전드의 오늘이다.

▲ 상향과 하향만으로 구분되는 밸런싱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루시안의 4.12 패치 일주일이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바로 이것이다. 기계적인 상향과 하향만으로 밸런스를 조절하기에는 이미 리그오브레전드 유저들의 눈높이와 실력은 상당히 상승했다. '인기 게임일수록 패치와 밸런싱의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말이 현재 리그오브레전드에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루시안의 밸런싱 실패는 좀 더 세밀한 이후 패치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거리 감소 → 하향 → 약점’, ‘기동성 향상 → 상향 → 강점’과 같은 단순한 접근법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챔피언의 기술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물론, 유저들의 챔피언의 사용 패턴과 숙련도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라이엇 게임즈에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