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게임을 사랑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감상할 때, 그리고 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을 읽을 때와 동일한 경험을 주기 때문이죠. 다만 그것들과 게임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수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인 참여자로써 다양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배우이자 작가 겸 프로듀서인 '윌 휘튼(Wil Wheaton)'은 영화의 첫머리를 자신의 소감으로 장식한다. 실제로 게임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더불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은 여흥 문화로 빠질 수 없는 비디오게임은 3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보였다. 짧은 시간 동안 게임이라는 장르는 빠른 속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비디오 게임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 당시 전기를 활용한 다양한 기계들이 개발되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필요성과 호기심을 기반으로 다양한 혁신적인 요소가 결합돼 탄생된 것이 '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은 단순히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아티스트와 디자이너, 사업가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탄생됐다.


어떠한 과정을 통해 게임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최초의 게임은 무엇일까? 비디오게임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주는 영화 한 편이 최근 출시됐다. 바로 '비디오게임:더 무비(Videogame: The Movie)'다. 장르는 다큐멘터리로 약 1시간 40분 동안 비디오게임의 역사와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앞으로의 비디오게임의 미래에 대해 논한다.

영화는 비디오게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놀란 부쉬넬'부터 '클리프 블레진스키', '코지마 히데오' 등 게임업계의 거장들이 등장해 차례차례 게임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인터뷰 뿐만이 아니라 게임 영상과 예전 비디오게임 기기의 TV 광고 등이 삽입돼 시청의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갤러그와 스페이스인베이더, 팩맨, 동킹콩, 슈퍼마리오를 넘어 GTA, 기어스오브워, 어쌔신크리드, 와치독까지 오면서 그래픽 뿐만 아니라 시스템, 스토리, 캐릭터 디자인 등 여러 방면에서 빠르게 발전한 '비디오게임'의 발자취를 영화를 통해 따라가보자.



■ 왜 게임인가?: 게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게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나아가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콘텐츠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겠지만, 하나의 문화로써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보더랜드'를 제작한 개발사 기어박스(Gearbox)의 공동설립자인 '랜디 피치포드(Randy Pitchford)'는 "비디오게임은 앞으로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역할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은 그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며 게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영화 '크로니클'의 각본을 쓴 '맥스 랜디스(Max Landis)'는 "게임은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 앞으로 게임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할 정도로 콘텐츠의 깊이가 상당해질 것이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생활 속에 녹아드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입장을 전했다.

메탈기어 시리즈의 '코지마 히데오' 감독은 "모든 미디어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레코드나 카세트 테이프는 현재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음악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게임 역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앞으로도 형식은 변할 수 있지만 수 백년 후에도 비디오게임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라며 게임의 영속성에 대해 설명했다.

본격적인 비디오게임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다루기에 앞서, 현대사회에서 게임이 이용자들에게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는 미국의 게임산업협회인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가 조사한 통계 자료를 활용, 비디오게임의 이용실태 및 소비행태에 대해 설명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013년 기준으로 미국 가정 전체의 49%가 콘솔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가정의 약 절반 정도가 콘솔 기기를 가지고 비디오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49%에 해당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평균 2대의 비디오게임 기기를 가지고 있었다.

평균 플레이어의 연령은 30살이었으며, 그 중 47% 가량이 여성 유저다. 적극적으로 게임에 돈을 소비하는 평균 나이대는 35세였으며, 15%가 온라인 게임, 33%가 스마트폰 게임, 25% 가량이 휴대용 게임에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42%는 PC게임과 콘솔 게임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 DVD나 음악, 영화를 보러 나가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나아가 그들은 게임 외에 영화나 TV쇼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는데에도 콘솔 기기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청소년 이용자들의 현황은 어떠할까? 약 82%의 아이들이 비디오게임을 구매하거나 대여할 때 사전에 부모의 허가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85%가 넘는 학부모들이 게임 등급분류인 'ESRB(Entertainment Software Rating Board)'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73% 이상의 학부모들이 부모통제 기능(Parental controls)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답했다.

올바른 비디오게임 문화가 정착되면서 영화 만큼이나 다양한 게임 장르가 탄생했다. 액션과 어드벤쳐, RPG, 캐주얼, 전략, 스포츠 등 수 많은 장르로 다분화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맛는 게임들이 개발되면서 게임 산업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10년 전에는 약 60억 달러(한화 기준 약 6조 1500억 원)의 규모였으나, 현재 비디오게임 시장은 240억 달러(한화 기준 약 24조 6천억 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 최초의 비디오게임: PDP-1으로 개발된 '스페이스워'



비디오게임의 시초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게임이 최초의 비디오게임이며 누구를 '비디오게임의 아버지'라 지칭해야 할 지를 두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저마다 인상깊게 즐겼던 게임이 다르며, 어느 수준까지를 비디오게임으로 보아야 할 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많은 개발자들이 비디오게임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있는 사람은 '놀란 부쉬넬(Nolan Bushnell)'이다. 그는 최초의 비디오게임 기기인 '아타리'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개발자 '알 알콘(Al Alcorn)'을 영입하면서 '퐁(Pong)'을 제작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퐁'은 대중적인 비디오게임의 시초로 일컬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인 게임이 아닌 최초의 시도를 논하자면 '퐁'보다 더 앞선 시점에 개발된 '스페이스워(Spacewar)'를 꼽을 수 있다. 1962년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의 조그만 연구소에서 '스티브 러셀'은 키보드와 모니터를 갖춘 최초의 컴퓨터 PDP-1을 통해 그래픽을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것이 최초의 비디오게임이라 불리는 '스페이스워'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놀란 부쉬넬'은 '스페이스워'를 플레이하면서 '이 게임을 아케이드 기기로 이식할 수 있다면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후 아타리를 설립했다. '퐁'의 메인 개발자인 '알 알콘' 역시 "스티브 러셀의 스페이스워는 정말 흥미로웠다. 그 게임은 모든 PDP-1 타이틀에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1947년도 냉전 시대에 사용되었던 기술이 최초의 비디오게임이라 주장하고 있다. 어떤 기준과 잣대를 내세워서 보느냐에 따라 '최초'의 게임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특정 타이틀이 최초의 비디오게임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진실은 최초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게임들 그 사이 즈음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 아타리2600부터 플레이스테이션4까지: 그래픽의 향상, 깊이 있는 게임의 탄생



가장 먼저 대중적으로 보급된 비디오게임 기기는 '아타리2600'이었다. 1977년에 등장한 '아타리2600'은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후 닌텐도64,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솔 기기와 타이틀이 순차적으로 발매됐다.

아타리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처음으로 개발된 보급형 비디오게임 기기였기에, 신선한 만큼 파급력 역시 엄청났다. 많은 게임업계 관계자들이나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관련 종사자들이 아타리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어린 시절 친구집에서 '스페이스인베이더'를 플레이하면서 아타리를 접했으며, 처음 접해보는 비디오게임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화 감독이자 배우인 '잭 브라프(Zach Braff)' 역시 아타리2600으로 비디오게임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동킹콩'과 더불어 '버거타임', '베이스볼' 등을 즐기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자신의 형에게 "와! 이 엄청난 그래픽 좀 봐!"하면서 감탄사를 날렸다고 한다. 지금보면 별 볼일 없는 굵은 정사각형 픽셀들이지만, 당시에는 혁신적인 수준의 그래픽이었던 것.

탄탄대로를 걷던 아타리는 1983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영화 'E.T'가 크게 흥행하면서 개발사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발매하기 위해 단기간 동안 게임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게임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게 되었고, 게임 'E.T.'는 참패하기에 이른다. 'E.T.'의 흥행실패는 비디오게임 산업 도산사태, 즉 아타리쇼크를 야기시켰다.


2년 후, 희망이 보이지 않던 게임산업에 또 다시 불을 지피는 개발사가 등장한다. 제 2의 게임산업의 부흥기를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닌텐도(Nintendo)'다. 1985년 닌텐도가 게임 시장에 모습을 보이면서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하 NES)'을 출시했고, 이는 엄청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는 이름 없는 우주선이나 사물에 대입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식이었다면, 닌텐도 게임에서는 개성있는 캐릭터에 자신을 대입해서 게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플레이어가 마리오와 젤다가 되어 모험을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닌텐도는 단순히 콘솔 기기와 게임 타이틀만 판매한 건 아니다. 일반적인 게임 시스템을 넘어서는 새로운 게임경험을 위해 ROB(Robotic Operating Buddy)과 재퍼건(Zapper Gun) 등을 개발했다. 시도 자체는 좋았으나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출시했고,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블리자드 전(前) 핵심멤버였던 '랍 팔도(Rob Pardo)'는 "닌텐도가 비디오게임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게임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다. 1983년 아타리쇼크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닌텐도는 단순히 비디오게임 시장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에서 나아가 제 2의 부흥기를 일으켰다"며 닌텐도의 영향력에 대해 표현하기도 했다.


'발더스게이트'와 '폴아웃' 등을 개발한 '브라이언 파고(Brian Fargo)' 역시 닌텐도 초창기 타이틀에 강한 매력을 느꼈고, 많은 시간을 닌텐도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할애했다고 첨언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마리오를 플레이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블럭을 쳐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비밀요소'에 크게 감탄했다고 전했다.

1991년도 '슈퍼닌텐도' 출시 이후 '세가 제네시스'를 거쳐 1995년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하 PS1)'이 발매됐다. 하나의 디스크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PS1은 기존 비디오게임에서 한 층 업그레이드 된 기기였다고 호평받았다.

그리고 1996년 '닌텐도64'가 등장했다. 마리오의 아버지이자 젤다 시리즈를 개발한 닌텐도의 '미야모토 시게루'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움직임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닌텐도64'로 플레이하는 '마리오64'는 마리오 시리즈 중 최초로 3D로 제작됐으며, 단순히 앞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원형으로 필드를 달릴 수도 스크린 밖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언차티드'를 개발한 '저스틴 리치몬드(Justin Richmond)'는 "닌텐도64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게임세상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평면 2D로밖에 구현되지 않았던 게임 세계가 3D로 접어들면서 액션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2D에 적응되어 있던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어려움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플레이스테이션2, 플레이스테이션3, Wii, Xbox360을 거쳐 현재 차세대 콘솔이라 불리우는 플레이스테이션4와 Xbox One이 비디오게임 시장의 양대산맥으로 우뚝 솟았다. 콘솔 게임이 발전하면서 그래픽의 향상은 물론 게임 시스템이 30페이지의 매뉴얼을 요구할 정도로 복잡해졌으며, 총 플레이타임이 80시간 가까이 되는 등 콘텐츠의 볼륨이 방대해졌다.


8픽셀 게임 시절, '갤러그'를 플레이하면서 우리는 하늘에 떠 다니는 픽셀화 된 몬스터를 쏴서 죽였다. 하지만 그들이 왜 하늘에 떠다니고 있는지, 왜 우리가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었고, 정해진대로 버튼을 누르며 미사일을 맞춰서 몬스터를 처치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괴물들이 왜 지구를 침공했는지 스토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부모님의 이름은 무엇인지, 미래의 아기가 어떠한 이름으로 태어날 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주인공들 간에 감정 라인이 형성되면서 게임 스토리 역시 영화나 소설처럼 정교해졌다.

초창기 비디오게임 개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형태의 게임들이 차례차례 출시되었고, 대작이라 불리우는 타이틀이 등장했다. '둠(Doom)'과 '커맨드앤컨커', '울티마온라인', '디아블로', '미스트(Myst)', '워크래프트' 그리고 '에버퀘스트'까지 완성도 높은 게임이 출시되면서 비디오게임 산업의 계보를 이어갔다.




■ 다방면으로 뻗어가는 게임: 경쟁에서 이스포츠로, 오락에서 치료제로



1972년 어느 날,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모여 PDP-10으로 '스페이스워'를 플레이하면서 대회를 펼쳤다. 그리고 그 당시의 경쟁은 최초의 비디오게임 토너먼트로 불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경쟁을 하면서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이후 비디오게임의 문화로 정착하게 된다.

유명 개발자 및 현업자들 대다수가 어린 시절 친구 혹은 가족들과 함께 비디오게임을 즐긴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기어스오브워'를 개발한 에픽게임즈의 리드 레벨 디자이너인 '짐 브라운(Jim Brown)'은 "랜선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경쟁을 펼쳤다. 장르는 슈팅부터 RTS까지 가리지 않고 마구했다"고 경험담을 풀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 혹은 협력한다는 게임 시스템은 이후 온라인 게임의 발전을 촉진하게 된다. 온라인 속 가상공간에서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유저들과 손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채팅을 통해 간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팀을 구성해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 것.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전세계적인 규모의 커뮤니티 문화가 형성됐다.

라이엇게임즈의 '마크 메릴(Marc Merrill)' 회장은 이에 대해 "유저들은 지역적인 사회를 넘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열정을 나누고 있다. 나 역시 이전에 에버퀘스트를 자주했는데, 그 당시 다른 유저들과 강한 결속력과 우정을 다졌다. 이러한 관계는 현실세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은 기술 부문과 예술 부문에서 끝없는 변화를 이루며 문화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다. 게임의 퀄리티는 점점 향상되었고, 콘텐츠의 스케일은 점점 커져갔다. 이에 따라 비디오게임 산업에 대중들의 인식이 모이게 되었고, 다른 문화 장르만큼이나 게임에 대한 논의가 발생했다.

'던전키퍼'와 '페이블' 등으로 유명한 게임개발자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는 ""예술의 큰 문제점은 작품의 평가가 주관된 관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있어 예술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나 서적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게임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게임의 문화성에 대해 거론했다.

게임 디자이너인 '필 피쉬(Phil Fish)'는 "게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예술의 모든 형식과 표현이 모여 이루어진 정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 역시 동일한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음악 작곡가와 작가, 아티스트, 테크니컬 담당자, 레벨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야 한다"며 개발자들을 어벤져스 군단에 비유했다.


그렇다면 게임이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점에서 유익할까?

우선 예술과 기술이 만나 하나의 문화 장르로 탄생한 게임은 사람들을 능동적인 소비자로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웨스트우드 공동설립자 '루이스 캐슬(Louis Castle)'은 "정말 좋은 예술은 관객을 예술 속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예술의 참여자로 관여하게 되며, 게임을 통해 훌륭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을 통해 역경을 극복한 이도 있다. 기어박스의 '미키 노이만(Mikey Neumann)'은 계단에서 추락했던 때의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전했다. 그는 계단을 헛디뎌 추락하면서 뇌졸중에 걸렸고, 오른쪽 눈이 흐리게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그는 공포에 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닌텐도DS를 가져다 주었고 그는 '젤다의 전설'을 플레이했다. 이후에는 친구가 노트북을 가져다 주었고, '팀포트리스2', '레프트4데드', '보더랜드' 등을 하면서 두려움을 잊고 치료에 전념해 완치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비디오게임은 내 삶을 구한 장본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게임은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해볼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위험한 일에 대해서는 꺼려한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을 활용한다면, 우리는 안전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도전적인 활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몇 번이고 실패를 해도 괜찮다. 이에 대해 기어박스의 '랜디 피치포드'는 "게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다. 현실 속에서 실현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게임 속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 때는 게임을 좋아하면 '괴짜(Geek)'나 '멍청이(Nerd)' 소리를 듣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프로 게이머가 되는 것이 하나의 유행인 시대가 도래했다. 수 천만명이 사람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 수백 달러를 지불하면서 수 천 마일을 날아와 경기장을 찾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된 것이다.




■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란: 폭력적인 영화는 되고 폭력적인 게임은 안된다?



하지만 비디오게임이 항상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게임 기술이 발전하면서 실제 현실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고퀄리티 그래픽이 구현되기 시작했고, 게임의 리얼리티가 급격히 상승되면서 '게임의 폭력성'이 화두로 제기된 것.

언론과 더불어 많은 정치인들이 게임의 폭력성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했고, 그들에 의해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증대된다"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게 됐다. 게임에 폭력성을 넣고도 이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제기되었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게임업계로 날아왔다.

하지만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이와는 다소 다르다. 랍 팔도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그것은 일부 타이틀에 불과하며 일부 게임 때문에 게임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피터 몰리뉴는 영화 '쏘우'를 예시로 들면서 "쏘우를 보면 역겹고 잔인한 장면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산업 전체를 두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일부 영화가 잔인한 장면을 담고 있을 뿐이며, 그 영화가 영화산업 전체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 역시 일부 타이틀이 그러한 성격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에 범죄율이 올라간다. 그리고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상승한다.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이 범죄를 야기시키는 걸까?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를 지금 사람들은 게임과 폭력성에 대입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게임 작곡가인 '토미 탈라리코(Tommy Tallarico)'는 "확인해봤는데 징기스칸은 엑박 계정을 갖고 있지 않았다. 히틀러가 '크래쉬 밴디쿳(Crash Bandicoot)' 게임을 플레이한 적도 없다"며, 게임과 폭력성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견해를 제시했다.

영화에는 액션, 멜로, 공포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그 속에는 물론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사람들의 폭력성을 키우는 매체이며, 영화 시청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가 만들어진 콘텐츠이며, 창조된 허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게임 역시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


■ 스토리, 창조적 세계로의 초대: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나간다.



"일상생활이 늘 즐겁지 만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를 마치면서 PC나 태블릿을 켜고 다른 세상 속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꿈을 꿀 수 있는 경로가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본다"

'클리프 블레진스키'는 사람들이 게임을 통해 창조된 가상현실 속에서 즐거움과 휴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공부와 업무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판타지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집 안에서 빠르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기에, 게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그만큼 산업의 규모도 커졌다.

초창기 게임 개발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창조요소는 사람들에게 멋지고 열정적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재미'였다.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는 게임들이 등장했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개발이 정점에 이르자 개발자들은 '현실감'으로 눈을 돌렸다. 캐릭터의 동작부터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쓰고자 한 것. 현실과 흡사한 그래픽과 게임 구성, 이야기 등을 통해 리얼리티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부각됐고, 내러티브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게임의 스토리 제작에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영화나 책 못지 않은 깊이감과 몰입감이 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다른 매체와 게임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화나 소설의 경우 글이나 영상을 통해 제 3자의 입장에서 이야기 전개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가 되어 게임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게임의 결말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이 수동적인 시청자에서 적극적인 행위자로 성격이 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이야기를 감상하던 때와는 달리, 유저들이 선택하고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게임의 스토리는 다른 문화 콘텐츠와는 별개의 성격을 띄고 있다.

너티독 내러티브 디자이너인 '테일러 쿠로사키(Taylor Kurosaki)'는 "게임제작자로써 우리는 규칙을 정해야 하며, 논리적으로 말이 될 법한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게임 속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라고 설명했다.

게임에서 사용할 아이템을 고르고, 생사를 건 중대한 결정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는 선택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게임 속 캐릭터에 쉽게 동화될 수 있다. 유저가 능동적으로 이야기를 창조해가는 것이다.



■ 게임, 문화를 넘어서다: 미래에는 일상적인 생활요소가 될 것



게임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최근 몇 년동안 그래픽과 게임 시스템, 스토리 등 모든 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 하나의 게임을 제작하는데 수 백명의 인력이 동원되는 등 그 규모가 영화만큼이나 커지고 있다. 게임 본래의 콘텐츠와 더불어 새로운 게임경험을 선사할 다양한 부속 기기도 개발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비디오게임들은 스크린을 통해 게임 화면을 보면서 콘트롤러로 조작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기존 플레이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과의 경계를 허무는 조작법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가상 현실 기기 '오큘러스 리프트 DK2'이다. 해당 기기를 통해 플레이어는 게임 내 세계 속에 있는 것 같은 가상현실 경험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보다 현실감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나아가 VR헤드셋에 최적화된 기기들 역시 개발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게이밍 시스템 구축을 위한 주변기기 '옴니(Omni)'가 최근 그 모습을 공개한 것. 옴니는 3D 게임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계로, 360도 전방위 회전 및 점프, 그리고 앉기까지 구현되어 극강의 게임 체험을 실현시킨다. 앉아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현실 속에서 직접 달리고 몸을 숨기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초창기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이 미래에는 인터랙티브 영화로써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초창기에 게임을 개발해 온 선구자들이 고안했던 아이디어, 이것들이 현재 게임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여전히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비디오게임 초창기 시절 '놀란 부쉬넬'은 "게임산업은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게임을 함께 개발했던 '알 알콘'도 당시에는 그의 의견에 의구심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워너 브라더스를 다녀온 '놀란 부쉬넬'이 2000만 달러의 돈을 보여 주었을 때 '알 알콘'은 그의 말을 믿게 되었으며, 그가 예측했던 바는 지금 현실이 되었다.

영화를 마치며 놀란 부쉬넬은 "사람들은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게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게임 산업에 참여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우리가 배운 점을 기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라며 게임산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호기심과 발명의 정신으로부터 게임산업의 창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여전히 게임산업의 추진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일 픽셀로부터 시작했던 게임이 이제는 그래픽인지 실제 영상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앞으로도 게임은 계속해서 성장해갈 것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평소 생활에서 게임을 사용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판타지의 충족, 인터렉티브 세상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모험과 경험, 즐거움의 만끽 등 게임을 통해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점은 무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