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서비스되는 MMORPG 중에서, 불법 프로그램 문제로 홍역을 겪지 않은 게임은 드물다. 아이템과 인게임 머니가 가치를 가지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수많은 오토 프로그램을 돌려 재화를 얻고 그 판매 수익으로 돈을 버는 불법 '작업장'도 날이 갈수록 체계화되고 있다. '지하경제'라고 말하면 어느 정도 비유가 맞을까.

그리고 R2는, 솔직히 말하겠다. 핵과 오토 논란이 눈에 띄게 많이 생기는 게임이었다. 인벤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었다 보니 기자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게시판과 쪽지로 전해지는 여러 제보 속에서는 각종 오토 캐릭터가 땅 속과 하늘까지 지배하면서 성행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일일히 쳐내는 것에 한계를 느낀 개발진이 결국 뿌리를 차단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28일 오픈하는 새 서버 '넵튠'은 '2채널 전화 인증'이라는 본인인증 방식을 통해 오토와 작업장을 원천적으로 막겠다고 밝혔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판교 웹젠 사옥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재현 운영총괄팀장과 양진규 사업PM이었다. 처음 만난 한재현 팀장은 'R2' 서비스를 총괄하면서, 최근 '한팀장이 간다' 이벤트를 통해 전국 각지의 PC방을 직접 돌아다니며 유저들과 대화를 나눈 인물이기도 했다.

▲ 웹젠 'R2' 한재현 운영총괄팀장(왼쪽), 양진규 사업PM(오른쪽)


'한팀장이 간다'를 진행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을 것 같다. 인상 깊은 만남도 있을 것 같고.

한재현 팀장 : 강원도 삼척시 PC방에서 만난 커플 분들이 특히 기억난다.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 항상 PC방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추후 결혼하면 컴퓨터 두 대를 집에 놓고 PC방처럼 차려놓을 생각이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직접 들은 건의사항도 많았겠다. 주로 어떤 요청들이 있었나?

한재현 팀장 : 역시 오토 문제가 제일 많았다. 내부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팀원 중 반수 이상은 오토단속에 전념하고 있다. 그렇게 단속하더라도 작업장들의 물량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지만, 유저들은 주변에서 오토를 목격하곤 했다.

▲ 매일 'R2'로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과의 만남


대규모 업데이트가 실시된 지 한 달 가량 지났다. 내부에서는 성과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양진규 PM : 유저 반응이 나쁘진 않았다고 판단한다. SSS등급 주화 시스템이 발표되고 논란이 있었는데, 이전 사용하던 아이템에 새로 받은 SSS전리품에 덮어쓰기 강화 등이 가능해지면서 큰 불만은 줄어들었다. 나름 잘 된 업데이트가 아닐까 싶다.


지난 3월에 청정 서버라는 이름으로 '엔젤리스'가 나왔다. 지금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나왔고, 또 얻은 게 있었는지.

양진규 PM : 전문 담당인력이 따로 가동되었고, 24시간 풀타임 단속에 나섰다. '엔젤리스' 서버 하나에서 주 단위로 4천 개 계정 이상 단속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수동적인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왜 군대에서 눈을 쓸다가 뒤돌아보면 내가 지나간 자리에 원래대로 쌓여 있지 않나. 정확하게 그런 느낌이었다. 아무리 블록하고 단속해도 새로 들어오는 오토 계정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자동 방지를 택한 것 같은데, 새로운 서버 '넵튠'에 적용되는 '2채널 전화 인증' 방식부터 설명을 부탁해야겠다.

양진규 PM : 넵튠 서버에 접속할 때는 유저와 동일한 명의의 휴대폰에 전화가 온다. 집전화나 070(인터넷전화)은 개인 명의가 모호한 점도 있고, 작업장에서 파고들 여지가 많아 제외해야 했다. 자동응답시스템에서 들리는 인증번호를 입력해야 접속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음성통화 방식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마트폰으로 가능한 인증법은 굉장히 많은데.

양진규 PM : 여러 방법을 놓고 고민했다. 우선 SMS 인증문자는 복제폰이나 수신을 끌어오는 어뷰징에 약했다. 조사한 끝에 ARS는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편법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아날로그적인 접근을 하기로 했다. 물론 유저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하지만 작업장도 그만큼 더 어려울 것이다. 불편이 생긴 부분은 서비스 품질로 보답하겠다.


다른 인증 방법은 어떤 것들이 논의되었나?

양진규 PM : SMS, 그리고 공인인증서 도입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보안이 위험해지는 등 단점이 많고 국가에서도 없애는 추세라 탈락했다. 그 외 의견으로는 홍채 인식과 지문인식까지 나왔다(웃음). 물론 아직 구현하기는 무리다. 1차목표는 작업장의 철저한 처단이기 때문에 언제나 손에 들고 있는 폰으로 인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 홈페이지에 올라온 넵튠 서버의 간단 설명


폰 인증과 같은 방식으로 오토를 줄여달라는 제안이 꽤 예전부터 있었다. 지금 실시하게 된 이유라도?

양진규 PM : 유저 선택으로 인증하는 방식은 보안 문제 말고는 활용도가 없었고,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저에게 벽을 주는 일이라 판단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선 넵튠 서버에서 실시하고, 실제 오토 접근율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전체 서버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다.


R2 사상 최대 지급품이라고 알고 있다. 넵튠 서버 이용자들에게 '+9검 5방어구 셋'을 지급하는 취지는?

양진규 PM : 넵튠은 다른 서버와 달리 시간제한이 있다. 피씨방을 포함해 최대 60시간이다. 아무래도 실버 생산량 등이 기존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을 해결하고 유저들이 쾌적할 방법도 생각해서 '9검 5셋'을 지급하기로 했다.


일주일 최대 60시간 접속이라는 제한을 건 이유는?

양진규 PM : 오토 아닌 일반유저 중 상당수를 직장인으로 봤을 때 하루에 4~5시간 정도 접속을 보인다. 직장인 유저를 위한 서버로 구성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직장인이나 라이트유저는 중저렙 존에서 오토와 같이 성장하다 보니 그 불만을 먼저 해결해주고 싶었다.


넵튠 서버의 또 한 가지 제한은 최대 레벨 70이다. 이건 언제까지 유지되나?

양진규 PM :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서버 이슈에 따라 시기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접속시간 제한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


2채널 전화 인증 방식을 모든 서버에 적용할 수도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 될까?

양진규 PM : 뚜껑을 열어봐야 가늠될 것 같다. 지금은 강제접속이 넵튠에 한정되지만 모든 서버 유저들이 다 자유롭게 가입해 전화 인증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청을 받고 있다. 다른 서버에서는 일단 보안 면에서도 훌륭할 것이다. 그렇게 실제 2채널 가입률을 고려해서 결정하겠다.

한재현 팀장 : 참고로 전화 인증 비용은 전부 회사에서 낸다. 고객 부담은 단 1원도 없다.


청정 콘셉트의 서버가 연이어 열리면서 기존 서버 유저들이 인원 부족을 걱정하기도 하는데, 따로 대책이 있는지?

양진규 PM : 지속 모니터링하고 있고 운영팀에서도 의견이 자주 온다. 기존 서버의 케어 방법은 현재 고민 중이고, 정확한 일정을 말하긴 어렵지만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겠다.



지금까지 오토를 방지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이었나?

한재현 팀장 : 단속을 더 많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토를 돌리는 캐릭터는 특정 패턴이 있고, 그것을 연구하는 중이다. 대규모 단속이 진행됐을 때 일시적으로 동접 하락이 발생하는 걸 보면서 큰 성과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그런 상태가 오래 가지 않는다. 오토를 수동으로 잡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는데 작업장 쪽에서는 별 힘들이지 않고 물량공세를 펼치곤 한다.


수익을 위해 작업장끼리 서로 경쟁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재현 팀장 :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대신 싸워주는 전투요원들도 존재한다. 장비 충분히 갖춘 캐릭터를 동원해 자기들끼리 영역싸움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작업장이 작업장을 우리에게 신고하기도 한다.


예전부터 작업장의 대부분은 중화권 등 해외를 기반으로 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그런지?

한재현 팀장 : 아이피들은 국내로 되어 있지만, 해외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아이피가 아주 많았고, 대부분 차단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후 VPN 등 아이피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면서 다시 급속도로 몰려왔다.


땅에 숨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오토 제보도 봤다. 이런 건 버그 악용인가, 아니면 단순 프로그램인가?

한재현 팀장 : 모두 불법 프로그램 사용이다. 내부에서는 작업장에서 돌리는 오토 프로그램을 똑같이 테스트하면서 QA도 실시한다. 오토가 어떤 패턴으로 움직이는지 등을 단속하고 제재한다.


이번 2채널 전화 인증으로 백 퍼센트 오토 방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지, 혹은 내부에서 목표로 하는 오토 방지율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다.

작업장만을 생각하면 실질 목표는 백 퍼센트인데, 일반 유저 중에서도 오토를 돌리는 경우가 꽤 있다. 이 경우 작업장과 개인 유저를 구분하기는 힘들다. 그것을 생각하면 넵튠 서버 인원 중 오토를 2~3할 이하로 떨어뜨리려고 한다.


그동안 오토를 겪었던 유저들에게 따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재현 팀장 : 많은 신고를 부탁드린다. 오토로 추정되더라도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해서 곧바로 단속하기는 쉽지 않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신고가 많을수록 오토를 돌리는 캐릭터의 특징적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오토 단속 비율은 높아진다.

개인적인 욕심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오토 단속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팀에 있으면서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오토게임'이라는 수식어를 누가 좋아하겠느냐마는, 그 호칭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수식어를 떼낼 기회를 꼭 만들려 한다. 바로 당장 해소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업무에 임한다는 사실만이라도 알아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실제 넵튠 캐릭터의 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