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

사방으로 흩날리는 투명한 물방울

물안개에 비치는 아름다운 무지개

10년 만에 그녀와 다시 만났을 때

그저,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밖에는

이 순간을 있게 해준......

이 세상 그 자체에 말이다.





그동안 다양한 비주얼 노벨 게임을 선보여왔던 '테일즈샵'에서 제법 묵직한 작품을 들고 나왔다. 현대의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국의 고유설화인 '인어를 구한 명씨 설화'를 재구성한 작품 '방구석에 인어아가씨'가 그것이다. 지난 7월에 출시해 지금까지 인기 유료 모바일 순위에서 상위권을 맴돌고 있다고 하니, 그 인기 비결이 내심 궁금해진다.

10년의 세월을 뛰어 넘은 소꿉친구와의 재회. 그런데 그 소꿉친구에게 지느러미가 달려있다면?

난데없이 쏘가리 공주가 되어버린 소꿉친구의 하반신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인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주인공. 여기에 폭력 무당소녀와 인어 꼬맹이 납작이까지 가세한 신선한 비주얼 노벨이 시작된다.



■ 방구석에 나타난 '고퀄리티' 인어 공주


▲ '비주얼' 부분에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방구석에 인어아가씨는 '비주얼 노벨'이다. 비주얼 노벨은 게임의 한 장르로 다른 장르와는 달리 책을 읽듯 '텍스트'만으로 진행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전자책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으나, 상황극에 맞는 CG와 음성 등을 첨가해, 플레이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도와준다는 차별점이 있다.

제작사 테일즈샵이 인어 아가씨를 통해 내세운 것은 다름 아닌 '고퀄리티'.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품질에 특별히 신경 써서 제작했다는 그들의 말마따나 '비주얼' 부분에서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소꿉친구가 인어가 됐다는 몽환적인 설정이 잘 녹아들어 있는 스토리라던지, 성우들의 풀보이스 더빙, 아름다운 CG, 번외 스토리 등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풍부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잔잔한 여운이 남는 친환경(?) 노벨


▲ 거긴 왜 들어가 있어 ㅠㅠ

첫 화면부터 계곡과 물고기가 등장해 잠시 친환경 농촌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지만, 환상의 인어가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미 '정상적인 진행과는 거리가 멀다'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남자 주인공과 인어는 곧 서로의 신분을 확인한 후,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은 소꿉친구와의 재회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회 플레이는 게임상 시간으로 일주일간 진행되며, 소꿉친구가 돌연 '인어'로 변하게 된 것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고, 다시 도심으로 복귀하기까지 진행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과학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주인공이 인어라는 환상의 존재인 소꿉친구의 진실과 그 사랑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과정을 시종일관 코믹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잘 그려내고 있다.




■ 개성이 지나치지만 잘 어우러지는 여주인공들


▲ 선택지다! 선택을 잘 해야 원하는 엔딩을 볼 수 있다.

여주인공은 총 3명이며, 각기 개성 넘치는 성격을 풀보이스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주얼 노벨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멀티엔딩'이다. 플레이어의 행동 방식에 따라 다양한 진행방향과 선택지로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지는데,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역시 이러한 멀티엔딩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총 7가지 엔딩이 존재하며, 스토리 진행 중간마다 등장하는 선택지에서 플레이어가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분기점이 발생한다.

보통 다수의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의 경우 분기별 스토리의 연결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동떨어진 엔딩 구성을 포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갑작스레 어색해지거나 하는 에피소드 하나 없이, 각 엔딩 간의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나갔다.




■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한국적 요소


▲ 뭔가 범상치 않은 인어 아가씨의 등장이다.

하반신에 물고기 꼬리가 달린 인간은 세계적으로 있던 전설이지만, 그 대상이 한국의 전원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고 나타난다면 다가오는 느낌 자체가 달라진다. 또한, 인어는 성격이 조신하고 말수가 적어 마치 열녀의 느낌이 나는 '한국형 인어공주'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스토리 중간중간마다 한국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장면들이 존재해 더욱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 게임 몰입을 방해하는 과학덕후의 독백


▲ 과학 덕후 + 망상증 환자의 주인공

이 게임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주인공들 못지 않게 독특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라는 캐릭터의 1인칭 시점은 비주얼 장르에서 게임 스토리를 풀어가는데 흔히 사용되는 장치다. 그리고 이러한 시점 방식은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심리와 독백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망상증에, 과학덕후(과학+오타쿠, 과학 신봉자)라는 콘셉트를 가진 주인공과 정신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플레이어는 초반부부터 주인공의 정신없는 독백에 휘둘려 상당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특히 엉뚱한 곳에서 뜬금포로 터지는 "나는 과학덕후다!", "나는 논리와 가설을 세워 항상 추론한다." 등의 다소 억지스러운 개그 욕심과 집착에 가까운 콘셉트 설정이 감정 이입을 방해하고 있다.




■ 엔딩 후에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EXTRA 스토리


▲ 엔딩을 봤다고?! 이제 시작이다.

게임을 클리어 하고 나면 숨겨진 번외 콘텐츠 'EXTRA 모드'가 해제된다. 'EXTRA 모드'에서는 플레이하면서 얻었던 씬들을 다시 감상할 수 있으며, 이외에도 특별판 CG 감상하기, 엑스트라 스토리 등 본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콘텐츠도 즐길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수집욕을 불러일으켜, 달성률 100%를 향해 반복 플레이하도록 만든다.






외국에서는 이미 'Steins; Gate'와 같은 작품이 비주얼 노벨로 나와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으나, 한국에서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한국에선 이 장르가 '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 혹은 '성인용 에로 게임'으로 치부되며, 비주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구석에 인어아가씨’는 인기 순위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며, 비주류 장르라도 타겟을 확실히 잡고 게임의 완성도만 높인다면 충분히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테일즈샵의 물이 오른 게임 제작 실력을 엿볼 기회도 되었다.

만약 주인공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독백을 견딜 수 있는 플레이어라면, 기자는 5천원을 지불하고 스마트폰에 인어아가씨 한 마리 모셔가는 것을 적극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