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으로 항상 존재해왔으나, 이렇다 할 대세로는 여겨지지 않았던 MORPG. 지금 그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작품이 있다. 바로 네오위즈CRS가 제작한 '애스커'다.

사뭇 새로우면서도 기대와 함께 걱정이 밀려왔다. MORPG는 MMORPG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한번에 많은 이들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결코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편한 점이 아니다. 많아 봐야 너덧 명이 한 번에 플레이하는 게임의 성격상, 게임 플레이 자체는 MMORPG보다 훨씬 더 디테일한 퀄리티를 요구하는 것이 MORPG니까.

네오위즈CRS가 전부터 액션에 중점을 둔 게임 개발사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작품들은 전부 MMORPG였다. 세븐소울즈, 디오, 그리고 레전드오브소울즈. 사실 냉정히 말해 잘나가는 작품들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번 작품은 유저들의 기대치를 보아하니 뭔가 다르긴 한가보다 싶었다..

'프로젝트 블랙쉽'이라는 이름으로 기대를 한껏 모은 채 CBT를 시작한 애스커. 애스커가 과연 네오위즈와 기다리는 유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작품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게임에 접속했다. '애스커' CBT 리뷰. 지금부터 시작한다.

▲ 이건 확실히 좀 괜찮았다.



◈ 나보고 마녀란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게임 시작과 동시에 보이는 컷씬. 보통 온라인 게임의 프롤로그에서 짐승 같은 남캐는 죽더라도, 여캐는 보호하는 편이라고 생각했건만, 첫 장면의 임팩트가 꽤나 강하다. 시작부터 불타 죽는 여캐들을 보고 나니 내 캐릭터가 통나무에 묶인 채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횃불을 든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족속들이 "마녀는 태워야 제맛."을 외치며 불을 놓으려 한다. 이럴 수가 있나.

여차여차 탈출하고 나니 조작법을 알려준다. 익숙한 WASD 이동, 그리고 마우스를 통한 시점 변경과 공격이다. 액션 게임을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본 이들이라면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다. 하지만 앞으로 전투야 신물이 나게 겪을 테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튜토리얼을 통해 내가 살펴본 것은 '애스커'라는 게임의 스토리 텔링이었다.

▲ 조작법 설명은 기본에 충실한 편.

어찌됐건 MO'RPG'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 일단 RPG인 만큼, 방대한 스케일과 깊이는 없다 해도 납득할 만한 시나리오와 이를 전달하는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는 게임에 있어 양념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을지 모르나, 양념이 없는 음식은 그저 텁텁할 뿐 맛이 없다.

튜토리얼, 그리고 이후의 연출 등을 통해 엿본 애스커의 스토리텔링은 그냥저냥 무난한 수준. 사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성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는 그럴싸했지만, 내가 왜 마녀로 몰렸고, 왜 묶였는지도 알 수 없었고, 도대체 저 밑에서 쑥덕대는 무리가 사람인지 짐승인지는 더 알 수 없었다. 마을의 엔피씨들은 다 멀쩡한 사람인데 왜 날 태워죽이려던 무리는 괴물처럼 생겼는가. 그냥 몬스터라서 그런 거라면 할 말 없고.

▲ 마녀잡는 놈들이 이렇게 생긴걸 보고 여기선 마녀가 좋은 뜻인줄 알았다.

물론 애스커의 세계관은 아직 단 한 장의 설정만이 공개되었을 뿐이고, 아직 숨어있는 스토리는 많을 것이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엔피씨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혹은 일정 구간마다 팝업되는 책을 통해 애스커의 세계관을 알아갈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도입부부터 그 스토리에 감정을 이입해 즐기기에는 거추장스러운 것도 많고, 납득이 안가는 부분도 많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 하늘빛은 또 뭐란 말인가...

대부분 게임이 그렇지 않으냐고? 물론 그런 게임도 많다. 내가 지금 아쉽다고 말하는 애스커보다도 훨씬 조악한 연출과 컷씬만을 가진 게임도 보았고, 읽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긴 스크립트만으로 시나리오를 전달하려는 게임들도 봤다.

반면 훌륭할 정도로 시나리오를 잘 전달하고 연출한 게임들도 적지 않다. 리뷰 중 다른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일 수 있겠지만, '블레이드앤소울'을 예로 들면 수만명의 홍문파 막내들은 자기들이 왜 홍문파의 유일한 생존자인지 정도는 안다.

이왕 세상에 내놓을 작품, 조악한 비교 대상들을 보면서 만족하기 보다는 잘 만든 게임을 앞서 나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아직 CBT인만큼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으니까.

▲ 배경설명은 있는데 사실 뭔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 액션. 그래 널 보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는 교황청 산하 비밀기관 블랙쉽의 어쌔신. 사실 암살자라기보단 그냥 쌍칼 든 여전사지만, 아무렴 어떤가. 적들은 많고 굳이 암살따위 할 필요 없이 뛰어들어 다 쳐죽이면 그만이다. 자 이제 가보자. 폴짝폴짝 퍽퍽 썽둥썽둥! 그래 이 맛이구나! 시원시원한 액션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겠다.

상기했듯, MORPG는 MMORPG에 비해 내적인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통합 채널이 아닌 인스턴스 던전을 사용하는 만큼 서버에 대한 과부하는 적겠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넓은 맵에 익숙한 유저들의 허전함을 잠재우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할 만큼 매력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던전앤파이터'은 특유의 아케이드식 디자인에 커맨드 시스템을 넣어 유저들의 손을 바쁘게 만들어 해결했고, '마비노기영웅전'은 출시 당시 최고 수준의 전투 연출을 통해 공백을 메워냈다. 과연 애스커는 어떨까?

마을에서 살짝 헤멘 후 들어선 첫 번째 던전. 사실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 자체는 여타 MORPG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아 던전에 입장해 해결하고, 끝나면 보상이 오는 순서다. 중요한 건 전투를 얼마나 흥미롭게 꾸며놓았는가다.

100%는 아니었다. 하지만 애스커의 전투는 나름 액션게임 매니아라 할 수 있는 날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빠른 템포와 화려한 연출, 그리고 제법 묵직한 타격감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애스커의 전투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원하다'였다. 가이드 타겟팅도 지원하지 않는 100% 논타겟팅 액션이다. 콘솔 게임 중에서 비슷한 액션을 가진 게임을 꼽자면 코에이의 무쌍 시리즈 정도일까? 사실 강공격과 약공격이 나뉘어지고, 적절히 배합해 싸우는 방식도 크게 색다르지는 않다. 쉽게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그래도 빠른 속도감과 중량감은 잘 전달되었고, 먼지처럼 날아다니고 부서지는 오브젝트들은 바라만 보아도 시원했다.

▲ 시원시원하게 부서지는 오브젝트.

▲ 화약 가득 든 나무통도 거뜬히 던지는 사나이

눈에 띄는 장점을 꼽자면, 캐릭터의 컨셉을 액션 속에 잘 녹여내었다는 점이다. 대검을 휘두르는 검투사는 느리지만 묵직한 느낌을 잘 구현해놓았고, 어쌔신은 무게감은 부족할지언정 미칠듯한 속도감을 잘 살려냈다. 배틀메이지라는 이름으로 나온 어린이는 왜 오함마를 들려놓았나 했더니 요술봉 들고 나왔으면 엄청 심심할 뻔했다. 이 어린이. 망치 한번 시원시원하게 잘 휘두른다.

▲ 솔직히 좋아하는 컨셉은 아니지만 타격감은 시원시원해서 좋았던 망치어린이

애스커의 액션은 좋았다. 요리로 치면 고기는 좋은 걸 갖다 놓은 거다. 안심되었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고 주변 요소들을 갖춰 놓아도 주재료인 전투 시스템을 애매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게임은 미래가 암담하다. 고기가 하급이면 아무리 양념을 치고 굽고 쪄도 맛이 살지 않으니까.

전투 장면을 스크린샷으로만으로는 전달하기 힘들어 영상을 준비해 보았다.

[▲ '애스커' 검투사 플레이 장면 (첫 전투)]

[▲ '애스커' 배틀메이지 플레이 장면 (레벨 3)]

[▲ '애스커' 어쌔신 플레이 장면(레벨 8)]



◈ 만족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더 높은 곳으로.

게임의 시스템 하나하나를 설명하고, 어떤 스킬이 있고, PVP는 어떤 모드가 있는지 다 설명하는 건 낭비인 듯싶었다. '애스커'는 어디까지나 MORPG의 정석에 충실한 게임이었고, MMO가 아니라는 점을 만족스러운 전투 연출로 마감해둔 작품이니 말이다. 애스커는 원석이다. 아직 미처 모든 부분을 연마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는 길거리 잡돌은 결코 아니었다.

애스커는 아직 미흡하다. 첫 번째로 이야기했던 스토리텔링 부분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덜 다듬어진 부분이 눈에 띄었다. 뭔가 식상한 캐릭터 설정, 전속력으로 달림에도 가슴의 떨림밖에 안 보이는 여캐의 모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우스 모드 전환, 까마귀가 날아옴에도 굳이 우체통에 가서 또 확인해야 하는 우편 모드 등 중간중간 '이걸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해놨지?'하는 의문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 미션 보상만 훌렁 주는 까마귀...그냥 편지도 주면 안되겠니?

그래도 내가 애스커라는 게임을 나쁘게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이 많은 미흡한 점 중에도 근본적인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의 메인스트림인 '전투'는 나름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는 'CBT' 후기 중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보였다.

다만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베타 테스트에서 호평을 받고도 그것에 취해 그 이상의 개선을 이루지 못한 게임들을 난 많이 보아왔다. 유저들이 베타 때 호평하는 이유는 그것이 베타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감안한 평가다.

고기는 잘 구웠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먹음직스러운 향기는 난다. 이제 양념을 뿌릴 때다. 아직은 소금이랑 후추 정도만 친 느낌. 앞으로 뿌려질 마무리 양념은 이왕이면 더 멋진, 더 높은 곳을 보며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저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