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전혀 안 해보셨다고요? 바로 당신을 위한 게임입니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액토즈소프트 배성곤 부사장은 이 사람을 두고 "타고난 워커홀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알파 단계에서 약속한 모든 콘텐츠를 하나도 남김없이 실제로 구현해버린 사람답게, 일정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파이널판타지14' 한국 서비스 간담회가 끝나고, 개발을 총괄한 스퀘어에닉스 요시다 나오키 PD는 따로 기자들과의 단체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사실, 일본 개발자를 바라보는 선입견도 조금 있었다. 그런데 요시다 PD는 시원시원했다. 파판 시리즈를 처음 담당한 파판 팬으로서, 렐름 리본 리뉴얼을 시작한 마음가짐이 "뭘 어떻게 고쳐도 지금보다는 낫겠다"였다고 거침없이 풀어놓을 정도였으니.

스퀘어에닉스와 액토즈소프트, 그 파트너의 만남부터 미래까지 숨가쁘게 진행됐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게임계 분위기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자기 의견을 털어놓으면서 즐거운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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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널판타지14' 요시다 나오키 PD


Q. 파티를 연결해주는 임무 찾기 시스템은, 국내 온라인게임들에서는 힐러와 탱커를 찾기 힘든 일이 많이 발생했다. 직업에 따른 역할 분담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 다른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들 딜러를 많이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파판14는 매칭할 때 부족한 직업들이 있다. 5분이 지나면 다시 검색이 들어가서 부족한 직업에게 보너스가 주어진다. 경험치와 자금이 주로 주어질 것이고, MIP 시스템이라고 해서 잘 한 팀원을 투표하는 기능도 있다.

투표를 모아 탈것 같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탱커나 힐러는 책임이 크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보상을 제공해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배틀이나 콘텐츠 밸런스에서 어떤 게임에도 지지 않을 정도로 갖춰놓았다. 빨리 매칭하는 것보다 매칭했을 때 즐길 수 있는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Q. 추후라도 글로벌 서버에서 한국 서버로 이주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 없나?

MMORPG는 경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 서버를 처음 열었을 때는 월드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글로벌 서버에서 많은 재산을 가진 유저들이 들어오면 경제가 파탄될 것이다. 기술 문제 이전에 한국 오픈 6개월 동안은 글로벌 서버 유저의 이전은 없을 것이다.

기술 문제도 있다. 스타트 직후 글로벌과 한국 버전이 다르다. 글로벌 버전 콘텐츠에서 얻은 아이템이나 레벨이 다른데, 그 아이템이 한국 서버에 적용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글로벌 버전과 한국 버전이 당장은 1년 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 힘들지만, 나중에 따라잡게 되면 그때는 고려해볼 만하다.

북미 서버에서 플레이하는 유저는, 데이터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소중한 유저 데이터를 제대로 가져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플레이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Q. 한국형 의상이나 탈것 등 현지화 콘텐츠를 추가할 예정은?

한국 전통 의상을 예로 들자면, 파이널판타지 세계에 맞추어 디자인을 한번 바꿔서 넣는 것 정도는 검토하고 있다. 운영을 10년 단위로 보고 있어서 세계관이 깨지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피드백을 받아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검토하겠다.

베히모스라는 몬스터는 중국어 버전에 바꿔서 들어간 것이 있다. 그것을 보시면 한국 전용 콘텐츠가 들어갔을 때 이런 느낌이구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Q. 길드의 인원 제한이 512명인데, 그 인원을 정한 이유라도?

MMORPG를 20년 동안 즐겨왔다. 예전에는 유저가 적어서 커뮤니티가 끈끈한 편이었다. 길드 내 동료 의식도 강했고 길드간의 교류도 활발했다. 한국 MMORPG처럼 전세계에도 다양한 게임이 나왔는데, 여러 작품이 나오면서 유저마다 취향이 다르고 성향이 갈리게 됐다. 생산과 제작에 열중하거나, PvP, 레이드 등으로 각자 원하는 것이 달랐다.

수천 명 길드가 있어도 성향 차이로 커뮤니티가 깨지고 게임을 접는 유저도 많이 봤다. 파판14는 여러 방향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길드 리더 한 명이 관리하는 인원이 512명 정도가 최대라고 판단했다. 글로벌 버전에서도 512명을 꽉 채운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고, 적다는 의견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Q. 길드간 전투 콘텐츠 같은 것은 없나?

현재는 없다. 전세계 유저들은 파이널판타지라는 게임 자체가 큰 적에 대항하는 것이지 유저와 유저가 싸우는 것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PvP는 잘 하지 않고, 싫어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다만 내가 PvP를 좋아하기도 하고 중국이나 한국 유저들은 그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어느 정도 추가하게 됐다. 늑대우리나 최전방 전투 같은 콘텐츠를 추가하고 나서 PvP에 재미를 느끼는 유저가 늘어났다. 앞으로 길드끼리 싸우거나 길드 랭킹 등을 추가해 나갈 예정은 있다.

여담인데, 일본은 PvP나 PK가 어떤 개념인지 구분도 못하는 유저가 많다. 최전방 전투를 많은 유저들이 즐기기 때문에, 조금 더 힘을 기울여서 해나가려고 한다.


Q. 한국의 MMORPG를 즐겨본 적은 있는지?

리니지, 리니지2, 테라, 블레이드앤소울 정도 해봤다. 아키에이지는 2주 정도로 짧게 해봤다. MMORPG는 전세계 게이머들이 같이 즐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든 우리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MMORPG의 PD들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Q. 오리지널 버전에서 한번 실패했다가 리뉴얼해서 성공한 사례가 전세계에서 드물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한번 실패한 게임을 리뉴얼하고 업데이트 진행하면서 다시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14편을 맡기 전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맡은 적이 없는데, 그전까지는 열성적인 팬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무엇이 파이널판타지 답지 않은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던 것 같다.

리뉴얼하기로 결정하고 조사를 할수록 심각한 점이 많았다. 뭘 하더라도 '이거보다 나쁘진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하면 어떻게 고쳐도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어서 비관적이진 않았다. 오리지널 버전이 너무 심하다고 느껴서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유저들이 다시 파이널판타지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노력이 한국에 와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지스타에 가면 편하게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웃음).



Q. 리뉴얼하면서 담았다는 '파이널판타지 다움'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

오리지널 버전은 초코보가 없었다! 이프리트도 없었다. 27년간 파이널판타지 안에서 각자가 기억하는 형태는 다를 수 있지만,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모습은 있다고 생각했다. 소환수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훌륭한 그래픽과 스토리가 부가적으로 있어야 하고. 이펙트나 명칭에도 신경 썼다. '이런 부분은 파이널판타지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도 파판 팬들이 많다고 들었다. 꼭 한국 버전 플레이를 해보시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파이널판타지를 안 해본 유저는 "14편인데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MMORPG로서 최고의 퀄리티로 신경을 써서 만들었고, 장대한 스토리도 구성했다. 파판 시리즈를 하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게임처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시길 바란다.



Q. 한국 유저들이 적응하기 쉽도록 튜토리얼 시스템을 추가할 가능성은?

중국 서버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아시아 유저들에게 경향이 나타나는데, 퀘스트를 처음에 받는다. 목적지 맵으로 나왔다. 목적지 맵에 표시된 아이콘을 누른다. 의미도 없이 캐릭터가 막 그쪽으로 가는 거다.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퀘스트를 진행해서 끝. 동일한 NPC에게 물음표가 떠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렇게까진 아니라도 바닥에 가이드라인을 표시해서 따라가도록 하는 게임도 있다.

친절하다고 볼 수도 있겠고, 아무 생각을 안 해도 진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NPC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 퀘스트를 줬을까? 왜 이 몬스터를 쓰러뜨려야 하지? 여기는 어디지?" 이런 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퀘스트만 진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편리한 방식을 즐겨본 분들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분들에게는 파판14의 초반 부분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를 예로 들면, 초반 30분을 빨리 돌린 다음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MMORPG는 진행할수록 시스템이 복잡해지는데, 클릭만으로 진행한 분들이 얼마나 이해할지는 미지수다. 스토리도 모르고, 내가 어딨는지도 목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이 끝나는 것보다는 모험을 실제로 즐겨주는 형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셜이나 캐주얼 게임이 강세지만, 그 안에서 제대로 된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유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경향은 한국에도 반드시 올 것 같다.

글로벌 버전에서도 불편함을 느낀 유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어느 정도 개선할 여지는 있다. 클릭하면서 빨리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해하는데, 우리 게임은 문학이나 영화처럼 스토리를 신경 써서 만들었다. 특히 초반 부분은 집중해서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Q. 한국에서는 아이템 거래를 위한 작업장이 빈번하기도 하고, 오토 문제 역시 크다.

인기 있는 MMORPG는 어디든 그런 경우가 있다. 글로벌 서버도 오토와 작업장 업자 등을 계속 적발하고 있다. 게임머니의 현거래를 막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모으는 행위가 불가능하도록 막고, 그밖에도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다. 업자 역시 돈내고 게임을 하기 때문에 굳이 처벌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고 알고 있지만, 우리는 선량한 유저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조치하고 있다.

중국 버전에 맞추어 봇을 박멸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 오픈할 때쯤에는 이런 봇과 치트에 대한 방지가 더 강화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것이 게임 현거래를 근절시킬 수 있는 대책이라 생각한다. 계정을 자르고 끝나는 게 아니라 거래 이력을 조사해서 업체를 추적해 항의하는 강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Q. 파판14가 한국 다음으로 진출하는 시장은 어디였으면 좋겠나?

나라 상관없이 전세계 유저가 즐겼으면 좋겠다. 이번에 지스타에도 나가게 되고 한국 유저와도 만나는데, 서비스 일정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한국 유저와의 만남을 특히 기쁘게 생각한다. 개인적 희망사항이라면, 두바이에서 팬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그래서 석유왕을 모집하고 있다.

러시아, 중남미, 대만 쪽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넓히는 것보다는 이번 액토즈처럼 정말 열정이 있는 운영사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인이기도 하고 개발팀도 일본에 있다. 한국 시장을 조사하긴 하는데 한국 시장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다. 게임을 깊이 이해하는 파트너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