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고, 생경했고, 목말랐습니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이터널'을 처음 발표한 건 2011년 이맘때였습니다. 첫 공개에서 딱 3년 지났습니다. 게임계에서 3년이면 강산이 세 번쯤 바뀔 시간이죠. 다시 만난 이터널은 당연하게도, 새 옷을 입고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시스템도 곳곳에 보입니다.

리니지 이터널 발표를 보며 느낀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소식 없던 썸남썸녀가 갑작스레 연락이 이뤄졌을 때와 비슷할까요.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참 반가운데, 뭔지 모르게 조금씩 달라져서 생경하고 어색합니다. 시연한 다음에 더 진해진 감정도 있습니다. 잘 즐겼지만 핵심을 들여다보진 못한, 갈증입니다.

최대한 많은 인상을 전해드리려 노력했습니다. 35분이라는 시간, 리니지 이터널의 첫 시연을 다녀온 감상입니다.


[▲ 리니지 이터널, 인벤팀 시연 영상]



■ 시작하자마자 살펴본 것들 - 핵앤슬래시의 거대한 그늘 아래



시연 버전에서 캐릭터는 총 여덟 개 스킬을 사용하게 됩니다. 단축키 1부터 5까지 다섯 개, 그리고 마우스 왼쪽 클릭으로 사용하는 주 공격과 오른쪽 클릭의 보조 공격에 더해 드래그 스킬 하나가 추가됩니다. 레벨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사전에 공개된 하이라이트 영상에도 같은 숫자였으니, 꽤 '심플'한 액션 구성이라고 할 만합니다.

숨길 필요는 없겠죠. '디아블로3'와 유사점이 꽤 많습니다. 선택지는 많아졌고, 사용 자체는 간편하게요. '리니지 이터널'은 '리니지'의 유저층을 함께 고려해서인지 더욱 직관적입니다. '디아블로3'와 유사한 UI, 그리고 스킬셋 방식. 사실 여기까지는 다른 게임도 흔히 시도하던 일입니다. 쿼터뷰 시점 핵앤슬러시가 디아블로 시리즈의 그늘에서 자유롭기는 힘들죠.

좋게 말하면 핵앤슬래시 장르의 트렌드를 발빠르게 반영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다만 냉정하게 말하면, '리니지 이터널'만의 개성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가 있긴 하죠. 드래그 스킬 시스템은 분명 정체성이 뚜렷합니다. 오른쪽 클릭으로 원하는 위치에 드래그하면, 조작한 위치와 간격 그대로 스킬이 발동됩니다. 원소술사로 불의 벽을 내 마음대로 그어버리는 손맛은 꽤 괜찮습니다. 하지만 직업별로 하나의 드래그 스킬만 사용할 수 있는 상태라서, 이 정도구나만 느낄 수 있는 정도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 리니지 이터널의 능력치 구조


능력치 정보는 크게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표시됩니다. 화력, 생존, 자원, 내성. 그리고 각 카테고리 안에 여러 세부능력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비는 어떤 옵션이 주로 붙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입닌다.

'리니지 이터널'이 가진 또 하나의 잠재력은 스킬트리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쉽게도 시연 버전에서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없었지만요. 직업별로 가진 기술마다, 각기 특성 트리가 존재합니다. 이것으로 같은 기술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변화할 여지가 보입니다. '디아블로3'에서도 기술 룬을 통해 다른 성격의 스킬이 탄생했는데, '이터널'의 그것은 발전해나가는 개념이라 조금 다르겠네요.

한 가지 더. 이벤트 씬 연출은 지금까지 해본 온라인게임 중 손꼽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타성의 요새 성문으로 수많은 병력이 들이닥치며 대전투가 펼쳐지는 풍경은 플레이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막 전율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플레이 도중 기습적으로 상당한 스케일의 시네마가 펼쳐지면서 제대로 힘을 주는 기법이 매력적입니다.

▲ 스킬 트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 꽉꽉 눌러담은 35분, 완전하진 않지만 액션감은 느껴진다


▲ 시연 버전에서 발견한 세계지도


지도를 열어봤습니다. '리니지' 시리즈를 플레이한 유저라면 굉장히 익숙할 세계가 펼쳐지는데요. 이번에도 역시 '말하는 섬' 지역에서 초반 스토리가 진행되고, 덤으로 기란 분쟁 지역의 맵 구조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시연 버전에서 플레이어는 10레벨 캐릭터를 가지고, 말하는 섬 후반 스토리를 진행하게 됩니다.

시연 시작 버튼을 누르면 35분이라는 플레이 타임이 째깍째깍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사실, 조금 압박이었어요. 시간을 허투루 썼다가 뭘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시연이 끝나면 어쩌나 싶어서요. 기자라고 해서 시간 연장해주고 그런 거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성은 딱 좋았습니다. 주어진 스토리를 완료하고, 마을 위아래에 준비된 필드 보스 둘을 쓰러뜨리고 나서 남은 시간은 1분 30초. 노파심에 쉬지 않고 플레이한 것을 감안하면 정확하게 시간이 배분된 것으로 보입니다.

알파 단계에서 흔히 나오는 지적사항도 이야기할까요. 쿨타임이 돌아왔다 싶어 곧바로 기술을 사용했는데, 아직 사용할 수 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액션 바의 쿨타임 그래픽이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 듯합니다.

때리는 맛은 이미 꽤 정교한데, '맞는 맛'은 아직 조금 남은 느낌. 피격당했을 때 모션과 체력이 깎이는 시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적의 몇몇 특수공격은 플레이어가 맞는 모션이 안 보이고 조용히 체력만 떨어져서, 체력 바에서 눈을 떼고 있다가 순식간에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타격감이 유저의 만족도를 결정한다면,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바로 피격감이라고 보거든요.

결국 이번 시연에서 승부하는 포인트는 '액션'입니다. 완전히 다른 개성을 가진 수호기사와 원소술사의 액션은 어땠을까요. 인벤의 공식 상남자이자 바바리안인 박태학 기자가 수호기사 플레이 소감을 맡았고, 저는 거기에 더해 원소술사의 특징을 적었습니다.





■ '리니지 이터널' 수호기사 플레이 - 파티의 방패? 데미지도 막강하다. by 박태학 기자




- '리니지 이터널'의 수호기사는 '리니지'가 연상될 정도로 직관적인 스킬 구성을 보여줍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에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 2개, 풍차처럼 무기를 빙빙 돌려 공격하는 광역기도 갖추고 있었죠. 도약 공격 및 단일 몬스터에게 막강한 피해을 안겨주는 스킬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스킬 구성만 놓고 보면, '리니지 이터널'에서 가장 균형잡힌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스킬이 모두 직관적이기에 초보자가 다루더라도 제법 강력한 캐릭터가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기본적으로 몸이 튼튼해 쉽게 위기상황을 맞지 않아요. 따라서 스킬 사용에 따르는 고민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물론, 기자가 체험한 버전은 지스타를 위해 세팅된 버전일 뿐, 정식 버전이 아니기에 확답할 수는 없습니다.

- 근접 딜러의 필수 요소인 '타격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스킬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기본 공격의 손맛이 무척 짜릿했어요. 몬스터들은 보기만해도 시원할 정도로 화끈한 리액션을 보여줍니다. '디아블로3'와 비교해볼까요. 사망 시 살점이 팡팡 튀는 쾌감은 다소 부족합니다. 하지만, 스킬을 맞고 휙 하니 날아가는 데서 오는 상쾌함은 더 크게 느껴졌어요. '리니지 이터널'이 중간중간 평타를 섞어 자원을 회복하는 시스템을 채용한 만큼, 이 부분에 타격감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과물은 제법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다만, 핵앤슬래쉬 액션RPG가 MMO를 만나면서 발생한 단점이 여럿 있는데, 이 중에서 타격감의 희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가 20인 레이드 보스전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보스 한 마리를 20명의 캐릭터가 두들기는 거니까.

하지만, 안 그래도 이펙트가 화려한 '리니지 이터널'이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하나 보면 부족할 게 없지만, 20개 정도 겹치니 '때린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어요. 심지어 덩치가 작은 보스는 이펙트에 파뭍혀 식별이 어려울 정도니, 짐작이 가실 겁니다. '리니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킬 효과가 화려한 만큼, 이 부분은 빠른 피드백 수집 및 보완이 필요해 보입니다.

- 체험판에서는 수호기사와 마법사, 두 가지 클래스만 플레이 가능했습니다. 구체적인 포지션에 대해서는 말하기 이른 감이 있지요. 다만, 앞서 언급했듯 탱킹이 가능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를 가진 캐릭터입니다. 게다가 타격감까지 좋지요. 초보부터 중, 고수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사랑받는 클래스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리니지 이터널' 원소술사 플레이 - 치고 빠지는데, 생각보다 묵직하게 친다




- 스킬이 직관적이라는 점은 수호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소술사가 가진 개성은 하나가 더 있는데요. 적들의 상태를 컨트롤하는 스킬 구성이 꽤 많다는 겁니다.

회오리를 통해 적을 한곳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일정 지역을 얼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걸 조합하면 적을 최대한 촘촘하게 모은 다음 얼려버리고, 그 자리에 강력한 딜링을 쏟아부어서 한순간에 많은 것을 녹여버리는 콤보도 순식간에 구성이 가능합니다. 현재 이 게임에서 느낀 최대 장점은 몬스터의 모션이 타격감에 최적화되었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원소술사는 적을 태우거나 얼리는 쾌감이 특히 좋습니다.

단일과 광역 딜링이 모두 뛰어나고, 적 제어 능력까지 갖고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겠죠. 보편적인 마법사형 직업들이 그렇듯, 몸이 약합니다. 그리고 시연 버전에서 이렇다 할 탈출기는 화염 충격을 써서 뒤로 밀려나는 것뿐인데, 이것도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 쓰기가 까다롭습니다. 그만큼 사전에 위치 선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질 듯합니다.

- 20인 멀티플레이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비단 시각적 이펙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청각이 좀 예민한 편인데요. 싱글 플레이에서 시원하게 터지던 효과음은, 20명 플레이어의 액션이 섞이자 집중이 힘들 만큼 귀를 괴롭혔습니다. 타격감이라는 개념은 '이펙트 + 사운드'에 그외 미세한 기법들이 어우러져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싱글에서 듣기 좋던 사운드를 어떻게 다중 플레이로 녹여낼 수 있을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원소술사의 시점에서는, 지금 저기 깔아둔 바닥이 내 것인지 다른 원소술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시연이 끝나고 보니 20인 중 딜량 1위를 차지했는데,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사실 어떻게 그리 된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조작에서 불편한 점도 하나 있습니다. 이건 바깥으로 빠지는 무빙을 계속하는 마법사의 특징 때문에 나타나는 점인데요. 왼쪽 클릭으로 이동하고 오른쪽 드래그스킬로 화염의 벽을 시전하는 과정에서 마우스 포인트 동선이 상당히 늘어납니다. 시연 후반부에는 손목이 저리는 느낌도 살짝 받았거든요.





■ 콕 집어서, '파밍 시스템'을 욕심내봅니다



▲ 아이템 감정 화면


액션RPG의 재미는 보통 어디에서 나올까요?

시원한 타격감,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몰이사냥, 까다로운 적을 때려잡는 성취감...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런데, 공통점은 있습니다. 인간 본능을 건드리는 중심 요소를 짚고 넘어가야겠죠. '성장과 파밍' 말입니다. 모험 끝에 아이템을 얻어 강해지면서 더 멋있고 강하게 때려잡고, 그중 특수한 옵션을 발견해서 남들과 다른 방식의 강함을 추구하기도 하죠. 파밍이 다채로운 게임은 오래 갑니다.

'디아블로3'가 2.0 패치를 실시하자 중흥기를 맞이한 이유가 뭘까요. 액션 품질은 똑같은데 말이죠.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전설 아이템이 마구 떨어진 점도 있지만, 각종 옵션과 특수능력을 부여하면서 아이템 세팅에서 경우의 수를 눈부시게 늘려놨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말입니다. '파밍의 시스템' 그 자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죠.

파밍의 재미는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 이전에 '수평'으로 넓어져야 합니다. 국내에서 핵앤슬래시 액션의 왕좌를 빼앗기 위해 수많은 게임이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쓴잔을 들이켜야 했죠. 파밍의 수명이 길지 못하는 점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리니지 이터널' 개발진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능력치 카테고리 4분화도 그렇고, 취향과 필요에 맞게 파밍 선택지를 두려는 움직임이 보이거든요. 후반 레벨구간을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템 특성이 얼마나 다채로워질지 모르지만, 옵션의 다양화는 반드시 더욱 고려해봤으면 합니다.

이 벽을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아까운 게임을 너무나 많이 봤어요. 적어도 '이터널'은 파밍 면에서 가능성이 보입니다. 기본 시스템을 일단 갖춰둔 것만은 분명합니다.




■ 아직 나오지 않은 '메인 요리', 이제는 '이터널'을 보여주세요




따지고 보면, 엔씨소프트는 이미 쿼터뷰 핵앤슬래시 MMORPG로 대성공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리니지'가 그렇지요. 그래서 '이터널'은 더욱 기대됐습니다. 엔씨의 영광이 시작된 쿼터뷰 영역에서 '아이온'이 보여준 정통 MMORPG 흥행력, '블소'에서 구현한 액션 퀄리티가 어우러지면 분명 한 차원 발전한 다음 단계가 튀어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리니지 이터널'이 내세우는 고유 무기는 몇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지스타 시연에서 그런 개성을 느끼기는 어려웠거든요. 스킬 드래그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를 알려주는 정도였고, 다이나믹 던전도 그 랜덤성을 체험할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사실 이건 독창적이라 하기도 힘들고요. 가장 힘을 주고 있다는 엔드 콘텐츠 역시 살펴볼 수 없었고 말이죠.

시연 버전 구성은 알찼습니다. 액션 뼈대도 좋았고요. 하지만 그 자체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리니지 이터널'의 본질을 이 시연에서 살펴보기는 어려웠죠. 마치 코스요리 중 메인 디시 직전까지 먹고 돌아서는 느낌입니다.

전에 없었던 거대한 프로젝트인 만큼, 진짜 요리를 시식해보고 싶은 마음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3년이 지났습니다. 다음 시식까지 아주 오래 기다리진 않았으면 하는 욕심입니다. 기자 이전에 한 명의 게임 마니아로서, 액션 게이머들이 원하는 모습의 진짜 '이터널'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