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카페'가 동네마다 하나씩 생겨나던 시절이 있었다. 취미가 보드게임이라고 말하면 마치 전설 속 동물을 눈앞에서 본 듯한 표정이 돌아오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장이 다시 쑥쑥 자라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번에는 한때의 유행이 아닌 것 같다. 어느새 보드게임은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지스타 한 켠 카페에서 코리아보드게임즈 김기찬 개발본부장을 만났다. 작년부터였던가, 각종 드라마와 프로그램에 보드게임이 등장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된 것이. 미디어 노출을 통한 저변 확대의 중심에 이곳이 있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의 현재, 그리고 한국 보드게임의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했다.

▲ 코리아보드게임즈 김기찬 개발본부장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보드게임을 개발 및 유통하면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이 주업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이고 아시아에서도 대표적인 보드게임 회사 중 하나입니다. 직원은 현재 69명이고 매출억은 2013년 기준으로 235억 정도고요. 지금 대략 2200종류의 게임을 유통합니다. 해외 게임을 판권 통해 유통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다가, 현재는 오히려 우리가 만든 게임을 16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성장했죠.


지스타에서 보드게임관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인데요. 매년 올해 소감은 어떤가요?

처음 시작했을 때가 2002년도인데, 그때에 비하면 보드게임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보드게임콘 같은 행사를 열 때마다 꽉 들어차는 인파를 보면 우리나라 시장이 정말 궤도에 올라섰구나 느끼죠. 특히 여성분들이 굉장히 많아졌고요. 젠가나 할리갈리 등에 집중되던 것을 벗어나 인기 게임도 다양해졌어요. 문화가 보급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최근 한국 보드게임도 오히려 게임을 수출하는 등 커나가는 추세인데, 국내 보드게임 시장 규모를 어느 정도로 추산하나요?

정확한 집계는 없어요. 보드게임 범주가 바둑, 장기, 체스도 포함할 것인지 TCG도 포함할 것인지에 대해 다르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 매출에 보드게임 교육 규모나 소매 판매량 등을 봤을 때, TCG를 포함했을 경우 최소한 1600억 원 정도는 됩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매출만 해도 최근 5년 동안 매년 20% 이상씩 늘었어요. 다른 회사도 많이 성장했고. 미국 프랑스 동유럽도 20% 가량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해외도 마찬가지라면, 전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뉴욕타임즈에서 '보드게임의 황금기(Golden Age of Boardgame)'라는 기사가 나온 적도 있어요. 올해 들어 그런 말이 급격히 나오기 시작했죠. 특히 패밀리게임이나 전략게임 장르가 눈에 띄게 성장하는 추세입니다.

▲ 지스타2014 보드게임관


작년 코리아보드게임즈는 드라마 '상속자들',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등에 게임을 협찬하거나 자문하는 활동으로 화제가 됐는데요. 이런 협력이 이루어진 과정이 궁금하네요.

우리는 유통채널이 매우 다양합니다. 온라인 판매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점 등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밖에 여러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요. 보드게임 회사들은 전통적으로 체험 행사를 했는데, 그 가운데 티비 CF를 돌려서 효과를 보기도 했어요.

일상생활에 녹일 수 있는 마케팅이 없을까 고민하던 기회에, 우연한 기회로 '상속자들'의 PPL을 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 '더 지니어스' 제작진에게도 자문 요청이 들어왔어요. 올해도 '신의 선물'이나 '내일도 칸타빌레' 등의 드라마로 우리 게임을 보여드릴 기회가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진짜 사나이에 '딕싯' 장면이 나오고 '우리 결혼했어요'에 '할리갈리'가 나온 등의 일들은 우리 마케팅이 아니고 먼저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보드게임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보드게임 저변이 넓어진 것에 방송도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실제로 성과가 컸나요?

'상속자들'에 두 게임(쿼리도, 딕싯)이 나갔는데, 딕싯의 매출은 다섯 배가 뛰었고 쿼리도는 무려 스무 배 늘었어요.

'더 지니어스'는 매출로 주는 영향은 크지 않아요. 본래 게임명이 아니라 각색이 돼서 나가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보드게임이라는 말을 익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 보드게임이라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웹보드? 부루마불?" 이랬는데, 보드게임의 다양한 형태를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건 확실합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더 지니어스'와 같은 프로그램이 몇 개 방송국에서 더 제작이 되려고 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반향이 있을지 기대하는 중입니다.


'더 지니어스' 같은 형식은 게임 자체 말고도 여러가지 요인이 내용을 결정하는데, 질 좋은 게임이 정치싸움 등의 이유로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하면 아쉽진 않나요?

우리가 게임 자체를 만드는 건 아니에요. 각종 심리요소를 고려해 어떤 게임이 지금 프로그램에 어울릴지 제작진에게 추천해주는 정도고요. 제작진이 그걸 바탕으로 방송용으로 각색을 많이 하죠.

우리가 아쉬운 경우는, 게임을 그대로 따왔는데도 원작 게임이 잘 알려지지 않을 때죠. 제작노트에 원작 게임이 소개되긴 하는데 그것까지 보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이후에도 새로운 프로모션을 기획하고 있나요?

찾아가는 보드게임 파티 같은 느낌의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회사에서는 마케팅 방법을 고민하잖아요. 처음에는 페이스북을 강화하려 했는데 그보다 체험행사를 더 늘려야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큰 윙카를 샀어요. 날개 달린 차죠. 그걸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보드게임 파티를 열 예정입니다.

▲ 2014년 최고 화제작 중 하나인 스플렌더


여성 유저의 증가라는 게 보드게임뿐 아니라 최근 게임계 공통 현상이기도 하거든요. 여성층 타겟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나요?

여성도 그렇지만 그중 '여아' 증가세가 엄청나게 큽니다. 게임 종류는 항상 남아용 완구로 분류되다가, 얼마 전부터 세계적인 트렌드가 여아를 위한 게임으로 흐르거든요.

국내는 따로 프로모션이 필요없는 게, 원래 남자애만 게임을 좋아한다는 통설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여자애들이 학습용 게임을 하다가 게이머로 진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요. 20대 여성들 동호회도 늘어났고요. 특히 캐주얼게임이나 '딕싯'처럼 아트워크가 훌륭한 게임은 여자들이 굉장히 좋아하죠.


인벤 매체 특성상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독자가 많은데요. 이런 분들이 재미있게 입문할 만한 보드게임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게임성을 담보로 하되, 디지털과는 전혀 다른 게임성과 전략이 필요한 게임이 어울릴 것 같네요. 기본적으로 보드게임의 바이블인 '카탄의 개척자(Settlers Of Catan)'가 있고요. 올해 최고 화제작인 '스플랜더'도 적극 추천합니다. '시타델'도 언제나 추천이고요. '아브라카...왓?'과 '잘그락 왕국'도 좋아요. 이 둘은 국산 게임이고 많이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이라면 게이머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복잡한 계산이 없다는 점이에요. 전략 위주로 돼 있고 장벽이 없어서 거부감 없이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십수 년 동안 해오면서 느낀 건데, 재미없는 보드게임은 없는 것 같아요. 재미없는 사람이 있는 것뿐이지 게임이 재미없진 않아요. '누구와 하느냐'는 보드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다가올 2015년에 특별한 목표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본격적인 해외 수출이 올해부터였습니다. 내년에는 현재 3종의 수출 타이틀 숫자를 7종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재미있는 게임을 더 많이 발굴하고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