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 일단 유저가 한두 명인 것도 아니고, 그들의 취향을 정의할 수도 없다. 전작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면 진부한 답습이요, 변화를 꾀했다가 도리어 역효과를 보게 되면 '퇴보'라는 딱지를 단다. 게임 기획자의 입장에선 그저 답답한 현실이다. 앞에 놓인 길은 수십 갈래인데 이 중 성공으로 가는 길은 바늘구멍보다도 좁다. 결국, 본전을 뽑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이미 검증된 시스템에 기댈 수밖에.

사실 '파크라이4'를 처음 접했을 때 생각난 것은 3편의 확장팩이라는 느낌이었다. 기존의 시스템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이래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스타2014를 위해 아침 기차를 예약해 둔 상황에서도 새벽까지 달리게 하는 재미만큼은 여전했다.

"파크라이4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3편과 똑같으니까."라는 유저들의 평가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진짜로 파크라이4는 그만의 색깔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초반 몇 시간의 플레이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점점 진행할수록, '파크라이3'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그것도 매우 은은하고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파크라이3'이 가스불과 불판에 구운 삼겹살이라면, '파크라이4'는 석쇠 사이에 넣고 직화로 구워 불맛이 코끝을 울리는 삼겹살이다. 삼겹살은 맛있다. 둘 다 삼겹살이기도 하고. 하지만 '파크라이4'는 3편에는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딱히 말로 표현은 할 수 없는 데 없으면 뭔가 아쉬운 '불맛'처럼 말이다.



◈ '광기'와는 다른 '이중성'을 풀어내는 이야기.

▲ 3편의 주인공이었던 미국대딩

파크라이3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코드는 '광기'였다. 3편의 주인공은 사실 그냥 돈 많은 미국 대학생일 뿐이다.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 위해 동남아로 여행을 왔고, 운이 나쁘게 해적들한테 사로잡혀 인질로 잡힌다. 이후 가까스로 탈출한 우리의 미국 대딩은 수라의 길을 걸으며 전사로서 각성하고, 끝내 해적들의 대재앙으로 거듭나 상황을 종결짓게 된다.

반면 악역의 아이콘인 '바스'의 경우 단순하고 평면적인 주인공에 비해 훨씬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들린듯한 성우의 연기, 그리고 죽일 수 있는 순간에도 철학적인 이야기를 읊으며 결국 주인공에게 반격을 허용하고 마는 성격, 더불어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농담을 던지는 모습까지, '바스'의 모습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복잡 무쌍한 '광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3편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유저들이 바스의 이미지만 보고 3편의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게임 내에서는 중간급 보스에 불과한 포지션임에도 말이다.

▲ 악당 카리스마의 결정체

어찌 됐건 주인공과 악역 모두를 아우르는 면이 바로 '광기'였다. 주인공은 점점 살인에 무감각해진다. 나아가 전투를 즐기게 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점점 미쳐가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바스는 그냥 미친 녀석이 안 좋게 미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표상과 같은 존재다.

결국, 3편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냈다. 바스는 미친놈이고, 호이트는 나쁜 놈이요, 시트라와 라키아트 부족도 어느 정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그 목적과 정체성은 매우 단호한 편이다. 반면 4편의 등장인물들은 조금 더 복잡하다. 이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단어는 '이중성'이다.

▲ 나쁜놈이 되는 것도 모두 이유가 있다.

'페이건 민'은 악역이지만, 악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골든 패스의 지도자인 '세이벌'과 '아미타'는 둘 다 주인공을 돕는 역할, 즉 선역이지만, 서로를 배척하고 있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죽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악역인 '누르'는 사람들을 죽고 죽이는 투기장에 몰아넣는 잔혹함을 보여주지만, 인질로 잡힌 가족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최악의 사이코라 불리는 '플뢰르'는 잡힌 상황에서 제발 딸과 통화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애원한다.

결국,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이다. 선하면서도 악할 수 있고, 악하면서도 선한 면을 갖춘 존재. 디아블로3의 네팔렘이 그러하듯, 파크라이4의 등장인물들은 악과 선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의 결정체들이다. 물론 이 점이 호불호를 가르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게임이 끝나고 남는 것은 여운과 감동이 아닌 찝찝함과 의문이다. 나는 이것대로도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게임이 유저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했다고 느꼈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느 쪽일지, 게임을 끝내고 나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 '선과 악'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 끊이지 않는 흐름, 더욱 편해진 플레이.

▲ 동네 바보형과 함께 즐기는 파크라이

아마 4편에 이르러 가장 크게 변한 점이라면 '코옵'모드의 지원일 것이다. '허크'라는 이름의 약간 정신이 빠져 있는 조연급 인물로 다른 사람의 세션에 참여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는 친구와 함께 키라트를 돌아다닐 수 있다. 메인 미션은 함께할 수 없지만 괜찮다. 오픈월드를 지향하는 게임이니만큼, 코옵으로 즐길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 딱봐도 정상은 아닌 '허크'

불편하던 인벤토리와 제작 체계도 훨씬 간소화되었다. 풀잎 하나하나도 곱게 포장해 따로 싸두던 전작의 주인공과 달리 콩밥 좀 먹고 총좀 쏘던 4편의 '에이제이 가일'은 같은 풀 뭉치를 한방에 뭉쳐 보관하는 효율성을 보여준다. 덕분에 초반 인벤토리 부족으로 시달리던 플레이어들은 훨씬 쾌적해진 상태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주사 시스템도 개편되어 훨씬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 퀵 드로우 메뉴에서 주사 탭으로 넘어가면 원클릭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치료용 주사의 경우 아예 녹색 잎 두장을 모으면 자동으로 제작되게 바뀌었다. 전투 중 메뉴를 계속 여닫으며 주사를 놓던 전작에 비해 훨씬 빠르게 전투에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멈추는 시간이 없으니 주사 찾다가 총 맞고 눕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 자이로콥터 덕에 초반 장거리 이동도 쉬워졌다.

많은 이들을 힘 빠지게 만들었던 운전 시스템은 자동 운전의 도입으로 한결 쉬워졌다. 이제 알아서 길따라 목적지까지 쭉쭉 달려준다. 한 손 유탄발사기를 들고 뒤따라오는 적을 아무 걱정 없이 처리할 수 있다. 슈팅엔 자신 있어도 1인칭 운전은 토 나오게 힘들어하던 나와 같은 유저들의 한 줄기 희망이다.

이보다 더 많은 개선점이 4편에 담겨있다. 전작을 즐긴 유저들이 남긴 피드백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사실 이것이 처음 내가 강조했던 '불맛'일 수도 있다. 이미 3편에서, 오픈월드 FPS에 대한 솔루션은 제공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훌륭한 요리를 보기 좋고 먹기 좋고 맛있게 다뤄낸 것. 그것이 바로 4편이라고 할 수 있다.

▲ 팔뚝에 새겨넣던 스킬은 호랑이와 코끼리로 양분화



◈ 훌륭한 '속편'의 기준은 무엇인가.

▲ 일신한 게임 시스템으로 극찬을 받은 '어쌔신크리드2'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글귀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쓰인다. 그만큼 속편의 흥행은 쉽지 않다. 속편이 흥하는 경우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지는 경우인데, 대부분의 경우는 본편이 형편없거나 너무 불편했던 경우이다. 예시로 든 '어쌔신크리드2'의 경우 1편이 시놉시스는 흥미로웠지만, 게임 흐름이 다분히 직선적이고 제한되어있다는 단점이 있었던 덕분에 훌륭한 속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면 본편이 뛰어난 작품일 경우 속편의 흥행은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어쩔 수가 없다. 본편의 발매 당시 해당 작품은 참신한 시스템과 재미로 시장을 강타했을 것이다. 이러한 유저들의 인상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조금 전 언급한 '구관이 명관이다.'가 나오게 되고 '소포모어 징크스(속편이 본편의 흥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망하는 사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크라이4'는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포지션에 서 있던 작품이었다. 전작인 '파크라이3'편은 시장에 큰 임팩트를 던졌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1인칭 오픈월드를 구현해냈었다. 시작부터가 고난인 셈이다. 게이머들의 눈은 엉성한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다. 전작의 위엄을 넘어서면서, 더 흥하기 위해서는 대충 만들어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결국 '파크라이4'가 선택한 길은 시스템의 개선이 아닌, 보강에 가까웠다. 3편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더불어 4편만의 요소들을 집어넣는 방식이다. 문제는 3편의 완성도가 워낙 강력해, 상대적으로 4편만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3편의 확장판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장점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돌려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의문이 든다. 만약 4편이 3편의 시스템을 갈아엎고,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과연 유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웬만한 참신함과 재미를 갖추지 못했다면, 유저들의 평가는 혹평의 끝을 달릴 것이다. 이래서 잘난 형을 둔 아우는 괴로운 것이고, 명관의 뒤를 잇는 통치자는 욕을 먹는 거다.

유비소프트는 상업적인 면모를 강하게 띄는 게임사다. 어쌔신크리드 IP가 흥하자 사골 곰탕을 우려내듯 타이틀을 찍어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작품들이 모두 평작 이상의 퀄리티는 보여주고 있기에 크게 욕을 먹고 있지는 않지만, 유비소프트는 실험적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들어내거나, 남들이 상상도 못 하는 참신함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의 IP를 더욱 갈고닦아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유비의 1편은 언제나 망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 유비의 대표적인 망한 1편

그렇게 생각해보면 '파크라이4'는 현실적 조건에서 나온 최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3편을 답습했다는 말은 안 나올 수가 없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게임이 재미있으면 된 거다. '리뷰'라는 꼭지를 달고 쓰는 글이니만큼, 나만의 주관적인 시선을 가득 담아 적어보자면, '파크라이4'는 '명작'까지는 몰라도 수작의 반열에는 들 수 있는 작품이다.

3편의 맛을 담은 육수는 꾸준히 남아 4편이라는 요리를 만드는 데 쓰였다. 그러나 요리의 맛이 결코 떨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담아 더 맛있게 마감한 또 하나의 요리로 우리 곁에 섰다. '파크라이4'의 결제 버튼 위에 마우스를 두고 고민하는 당신께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3편을 했기 때문에 4편을 고민하는 거라면, 망설일 필요 없습니다. 그 맛 그대로니까요."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때 그 맛을 다시 보고 싶은가? 혹은 다른 맛을 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