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캐주얼 MMORPG '아우라킹덤'이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게임인데 그만 '검은사막'과 '블레스' 사이에 끼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오픈한 게임인 만큼, 주목을 받아야 살아남을 텐데 시기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눈 높은 한국 게이머에게 자신을 제대로 어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봐 조금 측은한 마음도 들었죠. 지난 주말에 파이널 테스트를, 그리고 어제 '아우라킹덤'의 정식 버전을 체험한 후 느낀 점을 편지 형식으로 적어 봅니다.




게임기자 생활을 하기 전, 여러 플랫폼을 아우르며 이것저것 게임을 참 많이 했어. 지금 보면 이게 웬 구닥다리냐 싶은 고전 게임도 뒤적뒤적, 어머니가 한심한 표정으로 "너 또 게임하냐"라고 훈계하는 대신에 "요즘 게임 그래픽이 뭐 이리 좋아"라고 감탄할 정도의 게임도 가리지 않고 즐겼지.

당시 난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전혀 하지 않았어. 대신 메모장 같은 데에 그동안 즐긴 게임들의 한 줄 평 정도 적어두고는 했지. 온라인보다는 패키지 게임을 많이 하던 때였는데, 엔딩을 보고 난 후 벅차오른 감정을 저장하고 싶었거든. 지금이야 어디에 따로 블로그 만들어서 포스팅했겠지만, 그 때는 솔직히 부끄러웠어. 누구 보여준다는 게.

그 때 느낀 것 중 하나가 뭔지 아니? 뜻밖에 너희 대만 게임 중 알짜배기가 많다는 거였어. 중국 게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대만 게임은 그런 지역색이 거의 없었거든. 정확히 몇 살 때 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했던 게임에 '용의 기사2'라고 있었어. 최근에 알고 보니 대만 게임사 '한당'에서 제작한 작품이더라고. 또, 근래 보기 드문 개념 모바일 게임이라고 칭찬받는 '사이터스'와 '디모'의 개발사인 '레이아크' 역시 너희 대만에 위치한 게임사야.

지난 주말, 그리고 오늘 좀 시간을 내서 너를 쭉 봤어. 널 만든 엑스레전드는 과거 '그랜드 판타지아', '파인딩 네버랜드 온라인'을 개발한 이력이 있는 어엿한 중견 기업이야. 두 게임 모두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준 만큼, 이번에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너 또한 특별히 모난 곳이 없이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해.

▲ 전작들 못지 않게 푸근한 첫인상을 보여준 '아우라킹덤'


선배가 너 알아보려고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었어. 이미 스팀을 통해 전 세계 15개 국가에 진출한 상태라는 거, 자국에서는 15주 간 1위에 최고 동시 접속자 8만 5천 명을 달성하며 국민 게임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는 사실도 그때 기사 보고 알았어.

늦게나마 수입되는 과거의 작품들은 요즘 게이머들의 눈높이를 따라가기가 어렵기 마련이야. 솔직히 객관적으로 네 외모를 좋다고 말하긴 어렵잖아. '테라', '블레이드 앤 소울', '아키에이지' 그리고 최근 공개서비스 시작한 '검은사막'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게 한국 유저들이야. "나 좀 봐주세요"라고 제대로 말을 걸기도 전에 네 수더분한 옷차림만 보고 휙 고개를 돌려버리지 않을까 솔직히 조금 걱정도 했어.

기술적인 면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네가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어. 내가 본 그 섬세함은 너보다 잘 생긴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들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솔직히 좀 놀랐어.

그래픽이 사실적이거나 개성이 뚜렷한 것은 아닌데, 어느 쪽으로 카메라를 돌려봐도 꽉 차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나무나 풀, 돌과 같은 오브젝트 배치를 꼼꼼하게 했다는 말인데, 이게 잘 되어 있어야만 유저들에게 제대로 된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거든. 게임이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것 중 하나가 몰입도라고 생각하는데, 분위기에서 오는 몰입도는 꽤 좋았어. 예전부터 엑스레전드가 그 부분에 신경 많이 쓰긴 했는데, 너 만들면서 특히 더 고생한 것 같아.

생동감 있는 마을 NPC도 네 장점 중 하나야. 특히, 캐주얼 MMORPG의 NPC는 거의 장식품 취급을 받는데, 너는 그러지 않았어. 네 NPC들은 대부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어. 대화를 나누고, 나무를 베고, 잡상인은 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지. 난 그게 단순히 구색만 갖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대화를 엿들으면 일종의 업적이 달성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이게 게임플레이에 무슨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구석구석 소소한 재미를 심어놓은 게 기특했어. 히든 퀘스트도 마찬가지고.

▲ 뛰어난 그래픽은 아니지만, 다채로운 오브젝트 배치로 꽉 찬 느낌을 준다.

▲ 마을에서 대화하는 NPC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초반부터 경공 비슷한 이동기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 이런 게 있으면 캐시 아이템으로 풀거나, 혹은 게임 좀 많이 했을 때 주는 게 보통인데 튜토리얼 구간에서 쥐여주니 살짝 당황했어. 물론, 좋은 의미니까 고깝게 듣지는 말고.

중화권 게임들이 먼저 써먹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한국 게임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자동 이동'은 너도 갖고 있었어. 난 솔직히 그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해는 돼. 한 번 이 시스템에 익숙해진 유저들에겐 꼭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뭐, '자동 사냥'이 아닌 게 어디야.

널 보고 든 생각이, 시스템이나 콘텐츠를 포함한 모든 요소가 '유저 편의성'에 맞춰져 있다는 거였어. 이게 양날의 검인 거 너도 알지? 접근성 낮추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지만, 불편함 감수하고 차근차근 배워가는 게임에 비해서는 금방 질리기 마련이잖아. 그 부분은 유저들이 판단할 문제이고, 네가 할 일은 한 가지야. 찾아와준 유저들에게 고마운 마음 잊지 말고, 또 다른 매력을 어필할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만 해.

▲ 빠르고 상쾌한 이동기를 극초반에 지원한다.

▲ 물론, 탈것 제공은 기본!


처음에 리뷰 쓸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 선배가 그랬어. "야, 카프야. 그거 생각보다 잘 만들었다니까. 후회할 게임은 아니야"라고. 그래서 주말에 널 알아본 건데, 특별히 시간이 아깝다거나 하진 않았어. 옷은 좀 꾀죄죄한데 나름 디테일이 있어 보는 맛도 있었고, 한국 온라인 게임보다 나아 보이는 면도 몇 군데 있었어. 게임 들려주는 기자라면, 최대한 많은 데이터베이스가 있어야만 해. 어느 면에서 봐도 새롭지 않은, 그러니까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할 구석이 없는 게임도 많았는데, 너는 제법 괜찮은 편이야.

최근 시장에 등장한 작품들이 뛰어난 면이 많아. 개성이 강한 게임도 있고, 그간 한국 온라인게임 발전의 연장선인 게임도 있어. 너한테는 어려운 싸움일 거야. 네가 적수가 아니라고 보는 시선이 더 많겠지. 그래도 기죽지는 마. 처음에 뭘 조금 해보려다가 이내 웅크리고,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은 진짜 배신이야.

서비스든 콘텐츠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 널 찾는 유저들이 언제나 뿌듯할 수 있게.



■ 아우라킹덤 플레이 영상



■ 아우라킹덤 스크린샷



▲ 플레이어 캐릭터도 리액션이 뚜렷하다.


▲ NPC들은 플레이어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논다.


▲ 독특한 구성의 패시브 시스템


▲ 전투만 시작하면 방방 뛰는 플레이어 캐릭터.

▲ 뚜렷한 고저차의 지형은 게임 전체의 밀도감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