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근성, 열혈, 사랑, 로망, 모든 것이 합쳐진 '사립 저스티스 학원']

1990년대는 2D와 3D게임이 그랜드크로스를 일으킨 바야흐로 격투게임의 전성기였다. 우리 동네 오락실만 하더라도 그랬다. 스트리트파이터나 용호의권으로 손가락을 푼 아이들은 점점 수준 높은 게임을 원했고 그 결과 2D에서는 SNK의 킹오브파이터(KOF)가 3D에서는 남코의 철권, 세가의 버추어파이터가 득세를 하며 오락실을 양분했다.

1997년 캡콤에서 개발한 '사립 저스티스 학원(해외판: 라이벌스쿨)'은 다소 투박하고 진중했던 격투게임 시장에 나타난 신예였다. 손쉬운 필살기, 호쾌한 연출, 약킥x2로 이어지는 가벼운 연계콤보 등 한층 캐주얼한 조작법과 뭔가 약을 심하게 과다복용한 듯한 필살기 연출력은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무한콤보, 각종 얍삽이 등 밸런스가 워낙 엉망이라 격투 게이머 상대로는 B급 괴작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독특한 게임성 덕분인지 은근히 아는 사람만 아는 격투게임으로 사랑받았다. 캡콤의 도전정신 높은 격투게임 '사립 저스티스 학원'을 한번 짚어봤다.



■ 격투게임의 道-"내재된 욕망을 억눌러라"



일단 들어가기 앞서...

지금이야 온라인 환경의 인프라 발달로 멀티플레이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세상이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대전이라는 것은 으레 마주보거나 나란히 않아서 1P, 2P 중 하나를 선택해서 플레이하는 것이었다. 즉, 체온을 느끼는 사람과의 경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오락실 꼬락서니가 미천할지언정 지켜야하는 '법도'가 있었다.

이를테면 어른에 대한 공경(恭敬)이 그것이다. 아무리 허접한 상대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이가 나보다 많다면 퍼펙트게임은 금물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해 필살기로 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상대에게 10판 이상 연승을 했다면 다음판은 아슬아슬하게 져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동네마다 전통이 달라 대중적이진 않았다. 다만, 이것 역시 게이머로서 1,000원짜리 지폐를 다시 동전으로 바꿀때 적잖이 쓰려오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처사였다. 또한 불시에 체어샷을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우기는 어렵되 쓰면 무조건 이긴다는 금단의 비기, 얍삽이와 무한콤보도 격투 게이머 사이에서 지켜야하는 불문율 중 하나다. 제대로 반격 한번 못해보고 공중에 떠서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해보라. 주화입마가 괜히 오는 게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90년대 후반기는 당대 걸출한 실력자들이 동전 하나로 오락실을 누볐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고수와 하수가 있었고 지켜야할 룰이 있었다. 고수들의 플레이에는 어김없이 구경꾼들이 몰렸고 승패와 상관없이 동경의 시선이 가득했다. 게임은 이겼지만 매너에서 지고 있는 현재 게임 풍토와 비교해보면 참으로 아쉽고 그리운 모습이다.



■ A급 개발사의 캡콤의 일탈-'사립 저스티스 학원'

[▲사랑과 우정의 투플라톤 어택이야 말로 이 게임의 백미]

캡콤은 초기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로 격투게임 시장을 주도하긴 했지만 9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면서 흐름이 달라졌다. 2D는 격투게임은 SNK의 '킹오브파이터즈94'가 등장하면서 주도권을 뺏겼으며 3D 시장은 세가의 '버추어파이터2', 남코의 '철권'이 이미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캡콤의 스타 글라디에이터 팀에서 개발한 '사립 저스티스 학원'은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짝퉁이 아닌 오리지널리티로 승부한 몇 안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배경부터 학원물이었다. 당연하게도 학생과 선생이 싸웠다. 심지어 보스는 원장 선생님(히든 보스는 학생회장)이었다. 이런 설정 때문에 출시 당시 '학생이 선생 때리는 게임'으로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이 리얼 격투게임은 아니었다는 것.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캐릭터가 있긴하지만 장풍쏘고 오류겐 날리고 팀원을 집어 던져서 박치기로 날리는 괴상망측한 필살기 덕분에 학원 폭력물 이슈는 오래 주목받지 못했다.

출시 당시에는 격투게임으로서 포지션이 애매하긴 했다. 버추어파이터가 정극이라면 철권은 희극이었고 사립 저스티스 학원은 투명드래곤 쯤 속하는 어디에도 없는 판타지물이었다. 족보에도 없는 필살기는 둘째치고 무한 콤보 등 격투게임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밸런스가 너무 엉망이었다. 한마디로 수준 미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인기를 끌었다. 철권이 출시 당시 버추어파이터의 약점인 대중성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성공을 거뒀듯이 사립 저스티스 학원도 당시 격투게임 중 가장 쉽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게임성으로 승부를 걸었다. 노림수도 있었다.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게임성은 연출에 다 쏟아 부었다. 특히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우정의 투 플라톤 어택'은 파트너와 함께 필살기는 쓰는데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스킬 연출이 달랐다. 또한, 특정 파트너를 골라야 볼 수 있는 연출도 있어 게임의 흥미를 자극했다.

[▲지옥의 빨래널기]

예를 들어 배구부 나츠와 야구부 쇼마를 한팀으로 묶으면 투 플라톤 어택 발동시 나츠가 상대방을 공중에서 스파이크로 때리고 지상에서는 쇼마가 야구배트로 홈런(?)을 날린다. 쇼마 대신 축구부 골키퍼 미우라를 내보내면 함께 더블슛을 날린다. 설명하고 나니 뭔가 이상한데 만화 같은 연출력 덕분인지 보는 맛이 있다. 이 시스템으로 인기를 끈 덕분에 후속작인 '불타라! 사립 저스티스 학원'에서는 아예 3명을 골라 '정의와 용기의 쓰리 플라톤 어택'을 만들기도 했다.

볼거리는 확실하게 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사립 저스티스 학원'에서는 패러디도 넘쳤다. 당대 내노라하는 작품 중 하나였던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아스카의 더블킥을 필살기로 재현했으며 기동무투전 G건담의 하이라이트인 '석파 러브러브 천경권'도 패러디했다. 이뿐만 아니라 양호 선생님 쿄코의 안마 힐링 스킬 등 다양한 기술 연출력으로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또한, 타임 릴리즈 형태로 공개되는 캐릭터와 선택 창에서 커맨드를 입력해 특정 캐릭터를 고를 수 있는 비법도 '사립 저스티스 학원'을 즐겼던 게이머들의 즐거움이었다.

[▲양호 선생님의 안마 서비스, 이래 봬도 필살기다]



■ 짧고 굵게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사립 저스티스 학원' 이젠 추억 속으로

1997년 12월 아케이트판으로 나온 '사립 저스티스 학원(부제: LEGION OF HEROES)'은 게이머들의 인기에 힘 입어 1998년 7월 30일 플레이스테이션판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팬 서비스 성격의 '사립 저스티스 학원 열혈 청춘 일기(PS)'가 1999년 6월 발매되어 인기를 끌었다. 2000년 12월 발매된 후속작 '불타라! 저스티스 학원'은 기존 방식에서 1명을 더 늘려 3명의 캐릭터를 골라 대전을 펼치는 형태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시리즈 개발은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스핀오프 개념으로 모바일게임도 나오고 캐릭터성이 강한 몇몇 캐릭터는 캡콤 대전게임에 카메오로 출전하긴 했지만 더 이상의 신작 개발은 없었다. 게임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아케이드 시장이 죽기도 했고 격투게임에 대한 관심도 자체가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짧고 굵었던 '사립 저스티스 학원'의 역사도 그렇게 끝났다.

개인적으로 이 게임을 즐겁게 했던 이유는 기존 격투게임에서 볼 수 없는 엉뚱함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만화같은 연출력 때문에 보는 재미도 있고 특히 쇼마가 휘두르는 야구방망이의 경쾌함은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추억이 됐다.



[▲폭열 갓핑거! 석파 러브러브 천경권을 패러디한 장면]


[▲에반게리온 아스카와 신지의 더블어택을 패러디]


[▲사랑과 우정의 더블 승룡권, 파동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