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더 발전할 여지를 찾은 대회, 누군가에겐 흑역사가 됐을 도타2 아시아 챔피언쉽(이하 DAC)이 끝났다. 디 인터내셔널(이하 TI) 전에 열린 모든 대회 중 가장 큰 규모의 대회였던 만큼 중간 점검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기회는 없었다. 레이브와 MVP 피닉스도 DAC에 참가하면서 성적표를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이브는 합격이다. 하드캐리들을 여럿 다룰 줄 알고 멤버들의 픽 풀도 꽤 넓다. 게다가, 세미캐리 운영까지 흡수한 레이브는 점점 더 뛰어난 팀으로 거듭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성적도 6위. 상상도 하지 못할 호성적이었다. 레이브는 세계의 여러 강팀들을 상대로 비록 지더라도 꽤 팽팽한 경기를 만들어내는 등 조금만 더 다듬으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 팀임을 입증했다.

MVP 피닉스는 정반대였다. 물론 어느 팀이든 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둘 수는 있지만 MVP 피닉스는 그 과정이 문제였다. 첫 날 뉴비와의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MVP 피닉스는 단 한 순간도 우위를 점한 적이 없었다. 꾸준히 지적받아왔던 좁은 픽 풀, 고착화된 운영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MVP 피닉스는 이오, 흑마법사 단 2개의 밴 카드만으로도 처리 가능한 수준이었음이 드러났다.




■ 터질 문제가 이제야 터졌다. 총체적 난국이었던 MVP 피닉스


DAC에서 MVP 피닉스의 성적이나 경기력에 대해선 굳이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MVP 피닉스는 뉴비와의 첫 경기를 빼면 풀리그 내내 모든 팀을 상대로 단 한 순간도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하기엔 사실 이미 문제점들은 산재해 있었다. 다만 MVP 피닉스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다른 해외 팀들이 불의의 일격을 맞아 패하는 바람에 잠시 감춰졌을 뿐. 가만히 생각해보면 MVP 피닉스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단점들은 애초부터 해결된 적이 없었다. 그 문제점들이 DAC같은 대규모 대회가 열리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1. 좁아도 너무 좁은 픽 풀
2. 일단 공격, 타워 다이브, 불리하면 연막 후 로샨... 눈 감고도 보이는 뻔한 운영
3. 경기 운명은 전부 '큐오' 손에? '마치'와 '포렙'은?

MVP 피닉스의 경기 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반응이다. 1번 문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이오, 흑마법사 2장의 밴만으로 13개 팀이 MVP 피닉스를 가볍게 처리했고 나투스 빈체레는 흑마법사를 열어주고도 승리했다. 2번 문제도 1번과 연결된다. 픽 풀이 좁아서 이오-가시멧돼지나 흑마법사 위주의 플레이만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운영이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한타를 피하면서 중후반을 바라봐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랫도타를 하거나 한타에만 온 힘을 쏟는 등 도타2에서 할 수 있는 운영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초반 난전만 즐겨 썼고, 그 결과 파훼하기 아주 쉬운 팀이 되었다. 다른 운영을 해 보려고 해도 좁은 픽 풀 때문에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 쓰던 것만 쓴 결과는 5명 전원의 KDA 꼴찌행이었다.(사진 출처 : 도타버프)

3번은 가장 심각한 단점이라고 생각된다. 1번 캐리 '마치' 박태원과 오프레이너 '포렙' 이상돈은 DAC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경기가 거의 없다. 1번 캐리인 박태원의 부족한 캐리력은 예전부터 꾸준히 지적받아온 단점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6.82 패치 이전에는 흑마법사, 레이저, 죽음의 예언자가 픽의 거의 전부였고 6.82 패치 후에도 흑마법사, 가시멧돼지, 테러블레이드 3개 영웅밖에 주력으로 쓰는 영웅이 없다.

1번 캐리가 제대로 된 캐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니 자연스레 그 역할을 미드레이너인 김선엽이 떠안게 됐다. 때문에 김선엽은 항상 퍽, 고통의 여왕, 폭풍령 같은 유틸리티나 갱킹이 좋은 영웅보다 암살 기사, 슬라크같은 난전 위주의 캐리 영웅을 해야 했다.

오프레이너 이상돈 역시 큰 문제점을 드러냈다. 오프레인이란 포지션 자체가 경험치도 제대로 먹기 힘든 고통스러운 레인이긴 하지만 이상돈은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하다. 많은 경기에서 상대방 서포터와 골드 경쟁을 하곤 했으며, 게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존재감이 0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팀이 파도사냥꾼, 어둠현자, 에니그마 등 성장을 잘 못하더라도 한타에 도움이 되는 영웅을 쓰는 반면 MVP 피닉스는 가면무사, 얼굴없는 전사같이 성장이 필요한 영웅을 오프레인에 배치하면서 자멸했다.

▲ 점멸 단검만 나와도 되는 박쥐기수와 달리 얼굴없는 전사는 한타 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100% 이상돈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타 팀의 경우 서포터가 종종 오프레인에 지원을 와서 킬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MVP 피닉스는 서포터가 캐리를 놔두고 자리를 비우는 순간 솔로킬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zai'나 'iceiceice'같은 최정상급 오프레이너는 고사하고 같은 KDL 팀인 레이브의 '크리시'나 이번 DAC에서 오프레인을 자주 맡은 '료'하고만 비교해도 두 선수가 게임에 주는 영향력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났다.

다른 세 선수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김선엽은 시야 확보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맵 중앙을 건너갔다가 상대의 연막 물약이나 점멸 단검 갱킹에 수도 없이 킬을 당했다. 레인전에서 상대를 잡으려고 무리하다가 포탈 백업에 역으로 자기가 죽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두 서포터인 '힌' 이승곤과 '레이센' 이준영도 상대보다 한 발 느린 지원을 오거나 혼자서 디와딩을 하다가 끊기곤 했다.

결과적으로 5명 전원의 문제점이 더해지고 더해지다보니 이런 형국까지 온 셈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다뤄보자.


■ 1번 캐리님? 골드의 상태가...


MVP 피닉스의 '1번 캐리'란 포지션은 늘 논란의 중심이었다. 테러블레이드를 등장시켰을 때 수입 1위를 하는 장면이 종종 나왔지만 도끼전사와 가면무사가 판을 치는 현 환경에서 테러블레이드가 설 자리는 거의 없다. MVP 피닉스가 흑마법사나 이오-가시멧돼지 조합을 쓰지 않은 경기에서 1번 캐리가 수입 1위를 하는 경기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될까?

한 마디로 파밍력의 부재란 뜻이다. 여러 정상급 팀은 물론이고 레이브 역시 1번 캐리의 캐리력만큼은 믿음직하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각 팀의 1번 캐리는 어떻게든 파밍을 할 공간을 찾고 골드를 벌면서 중장기전을 바라보고 역전을 노린다. 수세에 몰린 팀의 1번 캐리가 수입 2위, 반대편 팀의 1, 2, 3번 포지션이 수입 1, 3, 4위를 하는 일은 DAC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 EG는 뉴비에게 1:13으로 지고 있어도 1번 캐리 '피어'의 수입만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반면 MVP 피닉스는 어떨까. MVP 피닉스가 수세에 몰렸을 때 1번 캐리(대부분의 경우 박태원)는 수입 1위나 2위는 커녕 상대방 오프레이너, 심할 경우 4번 서포터와 수입 경쟁을 하고 있다. 네 명이 시간을 끌면서 1번 캐리의 파밍 공간을 창출하는 운영을 대회에서 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는 MVP 피닉스의 성향과 맞물려 역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MVP 피닉스가 1번 캐리로 기용하는 픽은 가시멧돼지와 흑마법사, 테러블레이드 정도다. 가시멧돼지와 흑마법사는 전형적인 난전형 캐릭터들이고 테러블레이드도 탈바꿈을 통한 빠른 타워철거로 초반에 골드 격차를 벌리고 시작하려는 의도가 강한 픽이다. 주력 영웅들이 대부분 비슷한 성향을 띄다보니 5명이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싸움을 거는 것을 선호하지 캐리 혼자 파밍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

5인 도타로 한타를 걸어서 이긴다면 모를까, 허송세월을 보내거나 한타에서 패배하는 경우 그 손해가 막심하다. 적 캐리는 정글과 레인 크립을 잡아먹으며 골드를 쓸어담는데 우리가 싸움을 걸어보지도 못한다면 그 시간이 전부 낭비가 되는 셈 아닌가. MVP 피닉스를 상대한 모든 팀은 이런 성향을 다 꿰고 있었고 그 결과 MVP 피닉스의 1번 캐리는 상대방 오프레이너보다도 못한 수입을 기록하기 일쑤였다.

▲ 많은 영웅들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을 꾸준히 지적받았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MVP 피닉스가 에니그마, 마그누스, 모래제왕 등 극 한타형 영웅을 쓰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프레이너나 정글러로 등장하는 에니그마, 서포터로 자주 쓰이는 모래제왕은 MVP 피닉스가 거의 쓰지 않는다. 미드로 나타나는 마그누스는 김선엽이 가끔 쓴 적이 있지만 성적이 매우 좋지 않았고 그나마도 등장한 횟수도 아주 적다. 기대치와 함께 위험도 큰 난전형 조합만을 플레이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사용하는 영웅 종류마저 적다면 남은 것은 저격밴에 당해 무너지는 일 뿐이다.

TI3 당시 얼라이언스도 랫도타 위주의 플레이로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지만, 오프레이너였던 'AdmiralBulldog'의 극단적으로 좁은 픽 풀이 많은 지적을 받았다. 그 단점을 끝끝내 고치지 못한 '불독'은 자연의 예언자와 고독한 드루이드 저격밴을 당하기 시작한 후 경기력이 대단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좁은 픽 풀을 고치지 못한 'AdmiralBulldog'과 더불어 랫도타에 대한 하향 패치가 이루어진 후에도 오로지 랫도타 스타일 하나만을 고집하던 얼라이언스는 결국 몰락했다. DAC에서 오로지 세미캐리 메타 하나만을 고집하는데다 점입가경으로 5명 전원의 픽이 거기서 거기인 MVP 피닉스를 보면 무너지기 시작하던 얼라이언스가 겹쳐 보인다.


■ 세미캐리를 제외한 다른 운영은? MVP 피닉스의 현주소


MVP 피닉스는 정말로 팀 차원에서 DAC를 위해 다른 무기를 장착할 의지가 있었는가? MVP 피닉스가 통푸와 경기를 치를 때 한국어 중계 채널에 정인호 해설이 함께 중계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간 교류가 없던 MVP 피닉스와 레이브가 DAC를 대비해 서로 스크림도 하고 많은 교류가 있었다"고.

그렇기 때문에 DAC에서 MVP 피닉스의 경기력은 더더욱 많은 비판을 부르고 있다. 두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았다. 아니, 오히려 드림리그, i-리그, 스타래더에서 수많은 해외 팀과 경기를 치른 MVP 피닉스가 경험 면에서는 더 유리했다. '경험이 부족했다'는 핑계가 먹힐 시기는 이미 지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레이브는 자신들이 원래 잘 다루던 하드캐리 메타에 추가로 MVP 피닉스 스타일의 세미캐리 메타까지 흡수해 세계 굴지의 팀들을 상대로 호각의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변화가 없었다. 탈락이 확정된 후 HGT, 이홈, CDEC와의 경기에서 퍽이나 메두사, 우르사 등을 꺼냈지만 이미 공염불이었다.

▲ 레이브는 MVP 피닉스와 유사한 픽을 하고도 VG와 호각의 경기를 펼쳤다.

이해는 간다. DAC가 총 상금만 30억 원이 넘는, TI3급 대회니 자신들이 제일 잘 하는 픽으로 승리를 따내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지난 해외 대회들에서 자신들이 거둔 승리 속에 크나큰 함정이 숨어 있었음을 알아챘어야 했다.

드림리그나 i-리그, 스타래더 등에서 MVP 피닉스에게 패배를 당한 해외 강팀들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MVP 피닉스에 대한 분석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듯한 밴픽을 했다는 것이다. 박태원의 좁은 픽 풀과 MVP 피닉스의 주력 픽에 대해 알았다면 스타래더에서 나투스 빈체레가 가시멧돼지가 나온 상황에서 흑마법사를 5밴에 넣을 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MVP 피닉스의 그간 해외 대회 승리는 자신들을 전혀 모르는 팀을 상대로 거둔, 잘 만들어진 모래성에 지나지 않았다. 대규모 대회를 준비하면서 해외 팀들은 MVP 피닉스를 철저히 분석했고, 쉽게 카운터를 칠 수 있게 되었다. DAC라는 거친 파도를 만난 모래성 MVP 피닉스는 한순간에 다시 평범한 모래로 돌아갔다.

1초의 고민도 없이 1, 2밴에 이오와 흑마법사. '이 팀에게 이것만은 줘선 안 돼'가 아니라 '이 팀은 이것만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 했다. 게다가 MVP 피닉스가 패배한 경기를 보면 흐름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하다.

1. 첫 룬 싸움을 무리하게 걸다가 사망하거나, 미드가 갱킹에 당해 죽는다.
2. 3대 3 세이프 레인이 터지거나 오프레이너가 죽는다.
3. 손해를 메꾸려고 캐리까지 포함해 3-4명이 연막 물약을 쓰고 타워 다이브를 해 하나를 잡고 셋을 내준다.
4. 레인에 복귀한 뒤 다시 킬을 당하고 게임을 놓는다.

조금 과장이 섞여있지만 실제로 이번 DAC에서 MVP 피닉스의 경기를 보면 많은 경기가 저렇게 흘러갔다. 교전을 피하면서 캐리가 파밍할 공간을 만들어주고 장기전을 바라보는 운영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통푸전에서 김선엽이 모플링을 꺼내긴 했지만 김선엽이 세이프 레인으로 가기 무섭게 미드에서 박태원이 솔로킬을 당했다.

오프레이너 이상돈은 상대 캐리에게 어떤 압박감도 주지 못한 채 상대의 프리파밍을 눈 뜨고 구경해야 했다. 김선엽의 모플링 자체는 순조롭게 성장했지만, 그 전에 이미 게임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버렸다.

상대가 고통의 여왕, 가면무사, 가시멧돼지 등 초중반에 굉장히 강력한 조합을 가지고 있는데 모플링을 운영하는 팀이 교전을 거는 것을 보고 기자는 'MVP 피닉스가 하드캐리 운영을 연습은 하고 쓰는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MVP 피닉스도 나름대로 연습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통푸전에서의 모플링은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나온 게 아니라 상대에게 밴픽이 완전히 말리자 궁여지책으로 나온 픽에 불과했다.

▲ 하드캐리를 가지고도 굳이 초반 싸움을 걸다가 손해만 더 커진 통푸전.

정말로 DAC같은 큰 대회를 준비하면서 초지일관 같은 픽에 같은 운영만으로 성적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인가. 이오-흑마법사로 그간 해외 대회에서 재미를 봤으니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준비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MVP 피닉스는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상대는 공방 유저가 아니라 세계를 호령하는 최정상급 프로들이다. 그런 프로들에게 같은 수는 두 번 통하지 않는다. 몰락하지 않을 것 같았던 얼라이언스가 랫도타만 고집하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보라.

물론 MVP 피닉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열심히 다른 메타와 운영을 연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공방 유저나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다. 프로는 모든 것을 결과로 말한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경기력이 뛰어났다면 최소한 '잘 싸웠다'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MVP 피닉스는 성적과 경기력 모두 아주 좋지 않았다.


■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이제 그만! 팀 차원에서 전체적인 관리 이뤄져야


DAC에서 MVP 피닉스가 팬들에게 가장 많은 질타를 받았던 것은 '이기려고 하는 의지도 안 보이는 경기력'이었다. 첫 날 1승 3패 후 MVP 피닉스의 경기는 대부분 30분 이내로 끝났다. 팀원 간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팀워크가 엉망인 게임이 매 경기마다 나왔다.

김선엽은 시야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맵 중앙을 넘어가다 끊겼고, 박태원은 상대가 와드로 다 보고 있는데 혼자 고대 크립을 사냥하다가 킬을 헌납하는가 하면 서포터들은 단신으로 디와딩을 하다가 끊겼다. 모든 상황이 한 경기 내에서 다 나타났다. 이런 모습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리그에서나 나오는 장면들이다. 전형적인 '멘탈 붕괴 후 아무렇게나 게임하는' 모습이었다.

둘째 날 경기를 보면서 MVP 피닉스 선수들 자체에 대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첫 날을 1승 3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마감했으면 다음 날 경기에는 다른 운영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멘탈이라도 부여잡고 게임에 임해야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경기력은 첫째 날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나빠져 있었다.

▲ 이미 대기하고 있던 상대에게 억지로 다이브를 하다가 하나를 잡고 셋을 내줬다.

조금만 킬을 당하면 우루루 미드에 몰려와서 다이브부터 하고 1킬 3데스를 기록한 뒤 게임을 30분 만에 내주는 경기의 반복이었다. 픽도 똑같았고 운영 방식도 똑같았고 지는 패턴도 똑같았다.

선수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를 데이터화하고 분석해 약점을 보완하고 필요한 지시사항을 내려주는 사람이 감독이다. 선수들의 멘탈이 깨졌다면 이를 잘 수습하고 다시 잘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어 다음 경기에 차분히 임할 수 있게 해 주는 사람이 주장이다.

몇 달 전, 레이브의 권평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권평 매니저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난전에 약하단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전부 염동력 지팡이를 사서 아군을 세이브하는 연습을 시켰고, 난전에 특화된 영웅들만을 뽑아서 게임을 수도 없이 시켰다. 선수들이 원래 잘 하는 영웅들은 따로 있었는데 그 영웅을 쓰지 못하게 했다"고. 그 이야기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브는 MSI 아시아태평양 예선 결승에서 MVP 피닉스를 꺾었다.

▲ 자신들의 단점을 파악하고 그걸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레이브

그럼 MVP 피닉스는 어떤가. 픽 풀이 좁다는 얘기는 수많은 유저들이 계속해서 꺼내던 의견이다. 너무 세미캐리 메타만 고집한다는 이야기도 몇 달 전부터 나왔었다. 혼자 놔두면 여지없이 솔로킬 당하는 캐리의 허약한 레인전도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다. MVP 피닉스는 감독을 포함한 팀 차원에서 이런 고질적인 단점을 고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선수들에게 모든 문제를 맡겨버리면 선수는 성적을 위해 자연스레 하던 것만 하게 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감독이 있는 것이다.

레이브는 이 점을 알고 있었고, 단점을 고치기 위해 매니저와 선수들이 모두 합심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경기에서 지면 선수들은 팀원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플레이에서 문제점을 찾았다. 그 결과 'KDL에 수맥이 흐른다'는 징크스도 벗어던지고 우승을 차지했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팀에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MVP 피닉스에게 묻고 싶다. 레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정말로 팀 전체적인 차원에서 단점 극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가. 프로의 세계에서 결과로 보여주지 못하는 노력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힌 MVP 피닉스, 해답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겠다. 해오던 대로 해서는 답이 없다. MVP 피닉스는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6.82 패치 후 찾아온 슬럼프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다. 앞으로 MVP 피닉스는 모든 경기에서 이오와 흑마법사를 다시는 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하고 여전히 같은 운영만 고집한다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DAC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MVP 피닉스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들만 쓰던 흑마법사 운영을 타 팀에게 전해주기만 한 꼴이 됐다. 세미캐리 메타만 기형적으로 강하게 키워온 MVP 피닉스는 앞으로 팀 리빌딩에 가까운 변화를 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리빌딩이라고 해서 포지션 변경이나 멤버 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미캐리만 쓰고 늘 똑같은 운영으로 일관하던 그 MVP 피닉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선 경기 분석이나 멘탈 관리 측면에서 팀 전체적으로 선수들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단점 뭔지 알았지? 그럼 이제 연습해" 같은 태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감독부터 필요한 영웅이 무엇인지 샘플을 골라주고, 정상급 해외 팀의 VOD를 보고 또 보면서 그들의 이동 경로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고 분석해야 한다. 허약한 레인전이 문제라면 권평 매니저가 그랬던 것처럼 레인전 단계만 수십 수백 번을 반복시켜서라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LoL이 한국에서 태동하던 시기, LoL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당시 최고였던 서양 팀과의 스크림 한 번을 위해 2-3시간씩 기다리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MVP 피닉스도 마찬가지다. 도타 올스타즈에서 자신들이 쌓아온 경력과 자존심은 모두 내다 버려야 한다. 자신들이 세상에서 도타2를 제일 못하는 선수들이란 마음가짐으로 동서양의 강팀과 스크림을 해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 다시는 쓰지 못할 무기가 될 확률이 높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은 팀원간의 믿음이다. 부실한 레인전 실력 때문에 솔로킬이 나오는 것은 둘째 문제다. 도타2 프로 팀에는 캡틴이 있고, 캡틴은 밴픽부터 시작해서 팀 내 운영에 대한 오더를 총괄한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캡틴의 오더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일단 경기 중에는 그 오더를 따라야 한다. 그 오더가 옳은 것이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건 말이다.

오더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경기가 끝난 후 리플레이 분석을 하면서 팀 내에서 의견을 교환하며 중간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경기 중에 오더에 반발해서 팀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면 그건 아마추어 팀이지 프로 팀이 아니다. DAC에서 MVP 피닉스에게 부족하다고 느낀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6.82 패치가 적용된 직후, 적응을 못해 연습도 안 된 상태에서 이리저리 포지션만 바꾸는 모습이 DAC에서 다시 나타났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서로 자기 의견이 맞다며 목소리만 높이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캡틴'이 왜 존재하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 레이브는 '제요'가 크게 말렸어도 서로를 믿고 버텼기에 역전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기본기다. MVP 피닉스는 레인전 단계부터 성립이 되지 않는 모습이 모든 경기에서 나타났다. 제아무리 팀원을 믿고, 새로운 운영을 열심히 연습해 왔더라도 여기저기서 솔로킬이 나오고 레인이 망가지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제는 경기를 망치는 무리한 다이브, 솔로킬 욕심을 버리고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할 때다. 살을 취하고 뼈와 심장까지 내주는 플레이부터 없애야 한다. 그 방법은 오로지 연습, 또 연습 뿐이다.

MVP 피닉스는 프로고, 프로는 경기력과 성적으로 모든 걸 말한다. 변화가 쉽지도 않을 것이고 금방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MVP 피닉스가 스스로 TI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힌 이상 변화가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반드시 감내해야 한다. 변화할 기회는 몇 달 전부터 있었지만 MVP 피닉스는 바뀌기를 거부했고, 그 결과가 DAC다.

이승곤은 KDL 승자 인터뷰에서 '믿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팬들은 MVP 피닉스가 매번 같은 레퍼토리로 질 때에도 그 말을 믿고 '무언가 변하겠지'하는 기대감을 갖고 기다렸다. 그러나 DAC에서 변화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언가를 할 때가 아니라 MVP 피닉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할 때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진 않았다. DAC를 통해 무언가 느낀 게 있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DAC와 같은 경기력은 누구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팬들은 팀 명인 '불사조'처럼 화려하게 부활하는 MVP 피닉스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