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측부터 킴 판, 헤더 멈, 레이철 쿠이리코

e스포츠의 발전 속도는 엄청나다. 약 15년 전까지만 해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치르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고, 총 상금이 100억 원에 가까운 대회라는 건 동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대회가 열리며 LoL 월드 챔피언십의 누적 시청자 수는 2억 8800만 명에 달한다. e스포츠는 확실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이런 성장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이런 성장세에도 e스포츠에 종사하는 여성을 찾기 힘들다. 축구나 배구 등 다양한 스포츠에는 이미 많은 여성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e스포츠는 다르다. 어떻게 보면 남녀가 가장 평등하게 겨룰 수 있는 스포츠임에도 불구하고 여자 선수를 위한 자리는 여전히 적다.

이번 강연에서는 e스포츠에 종사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스포츠라는 분야에서 각각 다른 일을 하면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세 여성. 그러나 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GDC2015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헤더 멈(Heather Mumm), - 카운터 스트라이크 프로게이머


헤더 멈은 현재 ESEA.NET의 수석 기자다. 그녀는 15년 동안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즐기며 프로게이머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헤더 멈의 프로게이머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여성 대회가 흔치 않아 일반 대회에 주로 참여했던 그녀. 팀이 이기든 지든 많은 비판을 받았다. 팀이 승리할 경우 '버스 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팀이 패배했을 때는 그녀 때문에 졌다는 내용이었다.

또, 커뮤니티에서는 여성 대회에 대한 반발도 심했다. 여성 대회를 열 돈으로 일반 대회 상금을 올리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진지하게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이 있다. 헤더 멈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면, 여성들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꼭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헤더 멈은 자신을 여자가 아닌, 한 명의 프로게이머로 봐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의 실력을 인정해 같이 연습한 동료들이 생겼다. 온라인 상이지만 그 누구보다 특별한 인연을 만든 셈이다.

헤더 멈은 무엇보다 동등한 기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유저들에게도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한다. e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동등함이다. 유일하게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게 겨를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에게 그들과 같은 대우를 해주고, 무조건 비판하지 말았으면 한다."


레이첼 쿠이리코(Rachel Quirico), - e스포츠 유명 리포터


두 번째는 유명 리포터 레이첼 쿠이리코의 이야기다. 그녀는 오랜 시간 e스포츠에 몸담아왔다.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인지도를 쌓았고, 그러다보니 부담감을 느낀 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더 점은 온라인 상에서 겪는 일이다. 그녀는 게임을 편히 즐기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레이첼의 행동 하나하나에 주시하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력적인 부분보다 무조건적으로 착해보여야한다는 점이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SNS에도 매일같이 이유 없는 욕설이 난무한다. 레이첼은 이 모든 일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레이첼 역시, 자신을 여성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다. 그동안 매체와 인터뷰할 때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보다도 '게이머로서의 레이첼'을 알리고 싶어했다. e스포츠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게임을 열심히하는 유저임을 조명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게임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에도 여성 차별이 심하다. 남성이 윗옷을 벗고 방송해도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은 다르다. 노출된 옷을 입으면 트위치TV에서 정지하는 경우가 있다. 대화창도 마찬가지다. 나는 시청자가 여성 유저의 방송을 보며 그들의 몸매가 아닌, 게임 실력에 대해 이야기하길 바란다."


킴 판(Kim Phan), - 블리자드 e스포츠 총괄 매니저


킴 판은 현재 블리자드에서 e스포츠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친오빠들과 함께 게임을 즐겼다. 또, 대학도 공대를 다녔기 때문에 게임과 남초 현상 등에 매우 익숙하다.

킴 판은 더 많은 여성들이 e스포츠에 참여하길 바란다. 선수뿐만 아니라 관계자로 이 분야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일반 유저들이 갖는 편견을 두려워하고, 이런 분위기가 그들의 e스포츠 참여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럴수록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킴 판의 말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좋은 롤 모델이 있다. 선수로서는 서지수와 같은 케이스가 있고, 리포터로서는 레이첼이 있다. 이들에게 물어본다면 e스포츠 종사자로 살아가는 길을 알려줄 것이다. 킴 판은 무엇보다, e스포츠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여성이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스포츠는 정말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하지만 더 커지고 진정한 스포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성의 참여가 필수다. 분명 e스포츠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을 기존의 관계자 혹은 몇몇 팬들이 막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조금 더 배려해주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 출처 : Balkan-Bears.com

e스포츠는 항상 '벽'을 넘어서며 성장해왔다. 어쩌면 e스포츠가 '스포츠'라는 단어를 어색함 없이 쓰게 된 것 역시 하나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이뤄진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설 순간이 왔다. 바로 '성별'의 벽이다. 그간 우리는 지금까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의 e스포츠 참여를 일종의 '마이너'로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성별의 벽을 허물고, 하나로 나아갈 e스포츠 문화를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것은 아마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