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평소에 영화 많이 보시나요?"

하나의 영화가 제작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초 기획 단계에서는 각본과 연출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며, 주요 배우들과 수많은 보조 연기자들을 섭외해서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찍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영화 제작을 각 분야별 전문가들도 아닌, 아키에이지 게임 내 유저들이 모여 수준 높은 결과물을 선보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The Avatar'. 키프로사 서버의 '사라킹'이라는 유저가 직접 각본과 연출을 맡아 무려 2년 가까이 시간을 투자했고, 그 결과 170분이라는 긴 플레이 타임의 '영화 같은 영상'이 탄생했습니다.

단순히 게임을 게임으로만 즐길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 '사라킹' 유저. 한 명의 아키에이지 플레이어이면서, 제작자이기도 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The Avatar' 홍보를 위해 직접 제작했다는 포스터



Q. 이번에 제작하신 영화 잘 봤습니다.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키프로사 서버 사라킹입니다. 취미가 게임 동영상을 만드는 거라 과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플레이할 때도 PVP 영상을 종종 제작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면, 와우는 오리지널부터 판다리아 초반까지 즐겼으니 상당히 오래 플레이 한 편인데, 이번에 아키에이지에서 제작한 것과 비슷한 형태의 4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도 했죠. 그러다가 아키에이지로 넘어오면서 꽤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고, 'The Avatar'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직업 역시 영상 제작 및 편집을 하는 외주 프로덕션에서 일하고 있어서 취미 생활에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자리에는 여주인공 역할의 Cassie, 민트찡 유저가 함께했다



Q. 영화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은데 스토리 기획, 연출, 영상 편집 등 모든 걸 혼자 진행하신 건가요?

각본과 연출의 경우 제가 혼자 맡았고, 편집 부분은 조감독을 해준 후배가 한 명 있었습니다. 아키에이지를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후반 작업 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스토리 상의 오류 등 일부 수정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외부 프로그램 없이도 게임에서 지원하는 스크린샷 모드 만으로 앵글이나 연출 등의 세부적인 표현이 가능했기 때문에, 충분히 혼자 소화해 낼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의 위치나 시점에 상관없이 촬영할 수 있어서 창작 욕구가 불타오르더군요.

사실 제가 아키에이지에서 영상 제작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스크린샷 모드 때문인데, 생각대로 상당히 멋지게 영화 같은 연출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아키에이지만큼 이런 기능이 잘 갖춰져 있지 않죠.


▲ 아키에이지 게임 내 스크린샷 모드만으로 모든 연출이 가능했다고 한다



Q. 준비기간이나 제작 비용, 동원된 인원도 상당할 거 같은데 어떤가요?

처음 기획을 시작한 건 게임 오픈 베타 시점부터였습니다.

시나리오를 그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각본 초고가 6월에 완성이 됐고, 첫 촬영은 2013년 6월에 시작했습니다. 지금이 2015년 3월이니 거의 2년 가까이 소요된 거 같네요. 제작 비용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10만 골드 가까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거 축산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시절에 비축해 두었던 비용인데, 엑스트라 수고비 지급으로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보통 한번 참여하는데 100골드씩 수고비로 줬으니까요.

하지만 다들 게임에 접속하면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이 우선이다 보니 동영상 촬영 같은 활동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연합 채팅에 광고를 해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았고, 일부는 장난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어찌되었든 민트찡이라는 친구가 후반부 촬영할 때 인원 모집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Q. 이렇게 긴 시간 투자해서 영화를 찍게 된 계기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듯 합니다.

아키에이지를 하게 되면서 제가 한국 온라인 게임에 대해 느낀 바가 많습니다. 이 게임의 경우 처음 정식 서비스 전부터도 많은 이슈가 있었고, 유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죠.

그런데 지금의 아키에이지를 보면 냉정하게 말해서 과거에 비해서는 너무도 평범해 진 거 같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방식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보거든요.

초창기 약탈이나 서리가 차별화된 콘텐츠로 신선한 즐거움을 줬고, PK도 자유로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약탈을 당하는 게 짜증나고, 마찬가지로 PK를 당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다 보니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들이 추가되었습니다.

배에 주인 각인 시스템이 생기고, 범죄 점수 초기화 퀘스트가 일일 퀘스트가 돼버리고...결국 이 게임에서 약탈 같은 요소들이 타 게임과 차별화를 둘 수 있는 좋은 콘텐츠였는데 어느샌가 하나둘 사장되어 버렸죠.


▲ 4차 CBT 시절. 호불호는 갈렸지만, 어느 정도 서리가 콘텐츠로 자리 잡았었다.


물론 생활 콘텐츠 위주로 즐기는 유저들에게 PK나 약탈은 반갑지 않은 요소인 건 분명합니다. 늘 전투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즐거움이지만, 분명 피해를 보는 유저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왜 약탈, PK 당하는 걸 싫어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탈을 당하면 자신의 재산이 뺏긴 것처럼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게임사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 아키에이지가 그걸 잘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전 사람들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만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이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 굳어진 인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을듯합니다.

단적인 예로 러스트라는 스팀 게임이 있는데, 그게 아키에이지랑 상당히 비슷합니다. 나무 베고, 돌을 캐고, 집을 짓고, 그리고 상대방을 PK하면 무려 상대방이 갖고 있던 아이템을 전부 다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죠. 하지만 그 게임이 만약 한국에 서비스되었다면, '보호 지역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시작으로 PK를 하는 사람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여러 조건을 달고 나왔겠죠.

지금 한국 온라인 게임이 획일화된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 이런 식이라면 국내에서는 틀을 벗어나는 신선한 게임은 앞으로 구경하기가 어려울거 같습니다. 그래서 "과연 여러분이 바라는 게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서 'The Avatar'라는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 영화를 통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사라킹' 유저



Q. 완성된 아키에이지 영화 'The Avatar'의 기본적인 줄거리가 궁금합니다.

The Avatar의 주인공 '사라킹'은 게임 속 세상이 현실인 줄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게임에서 약탈이나 PK 등 좋지 못한 일들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손수 교수라는 범죄 단체 두목을 만나면서,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손수 교수는 세상을 게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손수 교수와 그 제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손수 교수의 조직을 현실 세계에서 압력을 넣어 게임을 못 하게 만드는 거죠.

여기서 여주인공 캐시는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 세상에 게임이라는 게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마약' 같은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게임 세계를 소멸시키기 위해 컴퓨터 바이러스로 사람들을 감염시키려 하고, 사라킹은 친구인 캐시를 막아 게임 세계를 지키려는 것이 전반적인 줄거리입니다.


▲ 세부적인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Q. 제작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문제는 없었나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일단은 플레이 타임이 처음 기획했던 거보다 대폭 늘어났습니다.

시나리오 기획 단계에서는 길어봐야 한 시간 정도를 예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죠. 아무래도 게임 내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시간이나 동선 등이 실제 촬영 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실제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다르니까요.

그리고 손수 교수역을 맡은 유저분의 닉네임이 손수였는데, 촬영 중간에 멀리 외국에 일을 나가게 돼서 도중에 연기자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영화 중반부쯤부터는 벨틴스라는 친구가 손수 역을 맡아서 해줬는데, 아마 손수 교수 역이 가면을 쓴 의상 설정이 아니었으면 이어서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 벨틴스님이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열정을 불태우며 남은 분량을 훌륭하게 소화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군인이기 때문에 3시간 남짓 완성된 영상을 볼 순 없겠네요.

그리고 작업 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음악입니다. 저는 보통 영상을 만들 때 음악에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데,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어울릴만한 음악을 어떤 식으로 넣을지부터 생각한 후 이걸 연출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 손수 교수역이 한 번 교체되었지만, 가면을 쓰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Q. 그럼 가장 기억에 남거나 공을 들여 촬영한 장면이 있다면?

아무래도 가장 공들인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입니다.

심연의 입구를 시작으로 극 중 ABC 원정대와 사라킹의 해적 세력 간 해상전이 펼쳐지고, 이어서 무역선 추격신까지의 장면이 촬영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신경 써서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에 사용할 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거의 1년 내내 찍었을 겁니다. 2014년 말에는 일이 바빠서 게임 접속을 자주 못했는데, 시간을 쪼개 들어와도 영상에 참여할 인원 모집에만 2시간 이상 소요되다 보니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자세히 보면 1인 2역으로 찍은 부분이 뒤로 갈수록 많아졌다는....


▲ 가장 오랜 시간 촬영한 무역선 추격 장면!



Q. 제작 기간이 길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을 거 같네요.

촬영 방해를 하러 오는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어떻게 촬영하는 걸 알고 오셔서는 길 막기, 앵글 방해, 부비부비(?) 공작으로 인해, 포탈을 연속으로 열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찍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무역선 추격 장면, 그걸 찍다가 도중에 레비아탄을 만나서 배가 박살 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찍어둔 영상은 있어서 나중에 메이킹 필름 비슷하게 묶어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촬영 중반에 '민트찡'님을 포함하여 자주 참여했던 친구들이 진 서버로 이전을 했습니다. 평소 손발을 맞추던 인원이라서 촬영 마무리를 위해 저 또한 진 서버에 캐릭터를 생성했고, 50레벨까지 육성한 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Q. 완성한 영상을 보면서 보완하고 싶거나 아쉬웠던 점도 있을 거 같습니다. 어떤가요?

몇몇 분들이 더빙이 아쉽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저도 더빙되었으면 좋을 거 같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아키에이지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표현 가능한 모션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포기한 부분인데요.

입을 움직이지도 않는데 더빙을 해 놓으면 그게 더 어색해 보일듯 했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만족스러운 수준의 더빙을 도와줄 성우들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만약에 이 동영상을 리마스터 하게 될 기회가 생기고, 괜찮은 더빙 환경이 조성되면 넣어보고 싶긴 합니다.



Q. 제작 과정에서 특별히 감사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영화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이 고맙지만, 그중에서 캐시님이랑 민트찡님에게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민트찡님은 가장 어려웠던 보조 출연자 섭외에 많은 도움을 주셨고,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캐시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동영상에 참여해 주셨죠. 정말 오랜 기간 촬영을 했는데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신 게 고맙고,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Special Thanks To에 보면 martin Falch라는 이름이 있는데, 해외에서 유명한 와우 영상 제작자입니다. 특히 그분이 만든 영상은 영화 같은 연출에 더빙까지 완벽하게 돼 있어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제가 아키에이지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배울점이 참 많았죠.


[ 과거 Martin Falch가 제작한 WOW 영상 ]





Q. 공들여 아키에이지 영화를 찍은 만큼, 게임에 대한 애착이나 아쉬움도 남다를 거 같습니다. 혹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아키에이지가 앞으로 뭔가 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듯합니다.

기존 유저들의 기득권이나 편의성만 유지하려는 그런 콘텐츠보다는 좀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말이죠. 물론 이건 아키에이지뿐 아니라 다른 한국 게임들에도 제가 바라는 점입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나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제 동영상을 해외에서 영어 자막으로 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북미 버전으로 동영상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자막 작업에 도움을 주실 분이 필요한데, 혹시 관심이 있다면 페이스북(http://facebook.com/dielaking)을 통해 연락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유저들이 생각하는 게임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담아 제작한 영상인 만큼 "송재경 사장님 꼭 봐주세요~!"


▲ 인터뷰에 응해주신 사라킹 유저와 함께 자리해준 캐시, 민트찡 유저!



[ 사라킹 제작. The Avatar 풀버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