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신작 MMORPG,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2차 CBT가 26일부로 마무리됐습니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IMC게임즈의 김학규 사단이 야심 차게 제작한 MMORPG로, 지난 2013년 지스타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개발자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정보를 공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첫 CBT를 진행하기도 했지요.

이번 CBT는 지난 1월 종료된 1차 테스트 이후 약 3개월만에 진행된 테스트입니다. 4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의 테스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꽤 긴 기간이지요. 거의 일주일이니까. 정신없이 여행했던 그 느낌을 조금씩 여행기와 단상으로 풀어볼까 합니다. 조금은 징징거리는 듯한 한 수도승의 여행일지, 서론은 짧게 마치고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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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 2일차 - "돌아온 세계, 그리고 좌절"


몇 달 만인가.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세계로 돌아오기를. 기쁜 마음에 캐릭터 명과 가문 명을 거꾸로 쓰고 컨셉에 어긋나는 실수를 해버렸지만 괜찮다(나중에 알게 됐지만, 테스트 기간중에는 언제든 변경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클레릭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몽크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다고 할까. 고독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수행자라는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솔플을 좀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처음 세계에 들어가서 가장 놀랬던 건 바로 1차 테스트때와는 다르게 몬스터들이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 호구 같던 몬스터도 조심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거기에 초반에 아처나 위저드 계열 몬스터들이 쓰는 스킬 한방에 바닥에 드러눕는 위저드와 아처들을 많이 봤다. 보스전은 사실 초반이라 평가할 부분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초반은 너무 쉬운 감이 있었으니까.

몬스터가 스킬을 사용하다니?!

이 지역에서 '철포삼'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자주 접속이 끊어지기도 했다. 임시 점검도 꽤 잦은 편이었고.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안정적으로 서버가 운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레벨업에 돌입했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미리 클래스를 계획해볼 수 있어서 클레릭 이후 프리스트 2랭크, 다음에는 팔라딘에 이어 몽크가 될 목표로 여행을 시작했다.

1차 CBT와 비슷하게 몇 가지 버그는 빠르게 수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경험치 획득량이 많아졌는지, 레벨업 속도가 아주 쾌적했다. 초반 퀘스트 보상이나 몬스터 경험치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선돼서 다들 부지런히 성장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클레릭 2랭크에 13레벨에 도달했고, 55레벨이라는 꽤 마음에 드는 성적표를 받고 편안히 스크린샷을 찍으니 CBT가 종료됐다. 너무 빠르게 지나간 하루라서 얼떨떨했다. CBT인데도 이렇게 게임에 빠져본 게 얼마만 인지.

솔직히 첫 날 여행을 끝내고 나니 좀 아쉬움이 남았다. 미래의 계획을 다시 마인드맵 해보자는 마음에 홈페이지를 다시 둘러보는데 아뿔싸. 전직을 잘못했다.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그냥 키울 것인가…아니면 큰마음을 먹고 다시 키울 것인가.

컨셉으로 하던 스킬들이 전부 프리스트 계열에 몰려있지만 선택을 못 한 바람에 다 날려 먹게 생겼다. 하…첫날 전직을 잘못한 여행자들은 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냥 깔끔히 포기하고 새로 키우기로 했다. 초반 퀘스트도 이미 다 해본 거니까 더욱 빠를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은토마토'는 터져버렸다.

노력끝에 여신도 구출했지만, 토마토는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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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심히 삶은 토마토는 터졌고, 이제 새롭게 바나나를 삶기로 했다. 확실히 사냥속도도 빨랐다. 테스트 시간 특성상 업무시간에도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고, 동료들도 어제 있었던 사태의 설명을 듣고 이해해줘서 마음에 짐을 덜었다.

무엇보다도 초반에 쓸 장비를 조금 확보해놓은 점과 스킬을 활용도를 계산에 투자한 것이 전투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예상한 전투 스타일이 어느 정도 적중했기에 무난한 성장을 마쳤다. 터진 토마토를 따라잡기는 무리였지만, 2랭크의 프리스트를 달성하고 클래스 레벨 역시 상당히 많이 올렸다.


2일차에 파티플레이를 하려고 나를 기다려준 맥주매니아 기자.

지나치게 직업에 감정이입을 해서 어렵게 몬스터들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힐이나 버프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힐 스킬이 장판형에 대미지가 있어서 의도치 않게 몬스터를 스틸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이후부터는 다른 유저들을 도와주는데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일정이 있어서 여행을 여기서 마칠 수밖에 없었다. 2일차 여행에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다. 지난번 퀘스트에서 굉장히 애를 먹은 성당에서의 사냥은 괜찮은 편이었고, 전날 신고했던 퀘스트 버그는 수정이 돼서 무난히 진행할 수 있었다. 2일차쯔음 되니 테스터 게시판에 불편한 점을 적는 유저도 전날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삶은바나나는 유독 많이 죽었던 것 같다. 덕분에 프리스트의 단점도 많이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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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 "불만"


드디어 바나나가 터진 토마토를 넘어섰다. 중간중간 퀘스트대신 몬스터 사냥도 열심히 해서 클래스레벨도 많이 오른 상태. 63레벨에 이르자 드디어 3랭크의 프리스트를 달성했다. 2랭크의 프리스트는 상당히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3랭크에 오르자 조금 나아져서 몬스터 잡기가 훨씬 수월했다.

3랭크의 2서클 프리스트로서 처음 배운 스킬 '사크라멘트'는 대만족이었다. 그동안 모자랐던 평타의 대미지를 보정해주는 아주 훌륭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 클레릭 계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3랭크의 딥디르비들은 몬스터의 정수리에 칼을 푝푝(?) 꽂으며 빠른 사냥을 진행하고 있었다. 차라리 터진 토마토를 계속 하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온 길, 돌아가기는 늦었다.

제작은 꽤 흥미로웠지만, 나중에는 상당히 성가신 부분도 많았다.

꼭 클레릭 계열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레인저들과 헌터들, 궁수 클래스들은 낮은 HP와 스킬 메커니즘에 불편함을 호소했고, 차가운 마법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불타는 마법사의 길로 돌아가는 모습이 많았다. 검을 든 소드맨들은 묵묵히 스킬은 버프만 사용하고 평타 위주로 몬스터들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모든 클래스에 평타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높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보스는 초반과 다를 게 별로 없었다. 비슷한 형태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하고, 패턴이 좀 더 번잡하게 바뀌고 방해 트랩정도가 귀찮게 할 뿐,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비슷해서 전투의 양상이 바뀌진 않았다. 갑자기 탄막 슈팅 게임이 되는 형태의 보스가 있었다는 정도? 간혹 바닥이 제대로 출력되지 않아 "왜 맞는건가"하는 경우도 있었고.

사흘이 되자 다른 여행자들도 불만이 토로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장 크게 제기된 문제는 베이스 레벨보다 클래스의 레벨이 너무 오르지 않는다는 점. 나는 63레벨에 3랭크가 됐지만, 150레벨인데 여전히 3랭크 끝자락에 걸친 여행자들도 보였다.

문제는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서 사냥하기가 어려운 편인데, 그에 비해 클래스 경험치가 매우 짜다. 그렇다고 저 레벨 몬스터를 사냥하면 패널티가 적용돼 클래스 레벨과 베이스 레벨 모두 경험치가 대폭 하락한다. 오히려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오로지 사냥만 한 유저들이 클래스 레벨과 베이스 레벨이 어느 정도 조화를 맞춰 사냥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베이스 레벨에 비해 클래스 레벨이 낮은 건 개발진들도 의도했던 사항이 아닌 것 같다. 전직 퀘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3랭크로 전직하는 퀘스트에 보스를 잡으려고 하니 보스의 레벨이 무려 45. 내가 거의 20레벨 가까이 더 높았다. 개발진들도 45~50레벨 사이에 유저들이 전직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설계를 했던 것 같지만, 모든 것이 엇나갔다는 간접 증거이기도 했다. 결국 클래스 경험치 획득량이 상승하는 패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유저들은 여전히 느리다는 평이 많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다른 클래스로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기에 묵묵히 수행을 이어갔다. 그렇게 3일차의 여행이 끝났다. 4일차에는 무난히 팔라딘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은 보였다. 그리고 토마토가 터져 포기했던 꿈,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원했던 몽크를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보였다.

장판이 잘 안보여서 상당히 짜증났던 '렉시퍼'와의 전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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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 "분노"


4일차 여정의 심정을 대변하는데 이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출처 : 드라마 '대물' ]

여행도 벌써 나흘 째에 접어들었다. 상위권 유저들과 비교했을때 거의 이틀을 날려버린 셈이라 뒤늦게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분명히 팔라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 스탯 초기화 아이템이 마침내 추가돼서 많은 환영을 받았다. 아쉽게 배분한 스탯들을 정리하고 다시 여신이 남긴 단서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다가는 나에게 맞는 사냥터를 찾기 어려웠기에, 몬스터가 너무 강력하지 않으면서 알맞은 사냥터를 찾아 소위 말하는 '닥사'를 시작했다. 적당한 리젠 장소를 찾아 채널도 옮기며 사람이 없고 편안히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도 찾았고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아무 생각 없이 몬스터만 처치했다. 여신이 남긴 단서를 찾기 전에 나부터 좀 살아야겠다.

이윽고 레벨 107이 됐고, 드디어 팔라딘 마스터의 수제자가 됐다. 그리고 처음 맛본 감정은 '분노'다. 이 스킬 트리를 타면 처음으로 생기는 '스마이트.' 솔직히 기대감이 컸다. 1차 테스트 때 정말 답이 없는 스킬이라는 평이 강했던 만큼, 큰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나를 맞이한 건 45초 쿨타임의 형편없는 대미지, 그리고 몬스터들을 분산시켜 놓는 점과 선딜이 있는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다. 주력기로 쓸만한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긴급 회피용으로 활용도가 훨씬 높은 형태였다. 최악인 건 속성 공격이라 대미지가 굉장히 들쭉날쭉하다는 거다.

누적 딜량은 클레릭의 '큐어'와 '힐'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한 단계 아래 랭크인 딥디르비의 목각 찌르기에 비하면 주력기로 활용할 수 없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스킬이었다. 힘들게 버틴 고난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 이거밖에 안 되나 싶어서 화가 났다. 더 화가 나는 건 이게 팔라딘의 유일한 공격기라는 거다. 다른 스킬들은 전부 보조계다. 그것도 버프 수가 5개로 제한되서 다 유지도 못하고 효과도 아주 미미한데 쿨타임만 길다. 수련은 또 비싸다.

그래도 팔라딘이 된 기념으로 귀여운 친구와 멋진 모자도 장만했다.

컴패니언이 애교도 부릴줄 안다. 탑승은 전 클래스가 모두 자유롭다.

다른 클래스들의 말을 들어봐도 비슷한 것 같았다. 힘들게 올라온 4랭크의 신규 클래스의 스킬이 대미지도 형편없고 쿨타임이 너무 길다는 이야기가 빗발쳤다. 소드맨, 아처, 위저드, 클레릭 가릴 것 없이 결국 초반에 배운 스킬이나 평타로만 사냥을 하게 된다. 결국 캐릭터의 정체성부터가 성립되지 않은 듯했다. 1차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클래스마다 배워야 하는 '특성'도 좀, 많이 아쉬워졌다. 가격은 굉장히 비싼 편인데,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효과는 미미한 편. 스테이터스와 함께 어우러져서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필연적으로 많은 금액이 필요하다. 점점 가격이 상승하니까. 4랭크쯤 되면 10만 실버 이상을 요구하는 특성도 있다. 성스러운 여신를 따르는 전설의 추종자라더니 그냥 돈 뜯어가는 동네 아저씨였다.

이런 날강도 같으니...

이 여행에서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패치로 인해 갑자기 비싸게 팔 수 있었던 완제 아이템들이 드롭되지 않고, 제작 레시피만을 던져줬다. 가격도 500실버 밖에 안한다. 부득이하게 레시피를 이용해 아이템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모으는데 시간도 꽤 걸리는 장비가 대부분. 초반에 많은 금액을 벌어놓은 유저들이 아닌 이상은 장비 마련에도 힘이 부칠 정도였다. 사실 이 부분은 게임이 정식 오픈되고 잡아야 하는 부분이니 '아쉬운 정도'로 끝내겠다. 지금은 테스트 기간이니까.

점점 더 게임에 분노를 느낄 무렵에 4일차의 여행이 끝났다. 남은 건 2일. 유저들도 어느 정도 레벨이 올랐지만 이게 개발진이 만족할 수준인지, 아니면 데이터가 부족한지는 내일 결정이 날 것이다. 아마 경험치 상승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었다. 4일차에 가장 크게 남았던 건 분노였다. 토마토가 터져서 하루 반 정도를 날린 셈이니 아마 힘들게 달려온 유저들도 3일차 즈음부터 큰 불만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중에는 레시피만 이렇게 득시글거린다. 만들수 있는 건 몇 개 안된다.
그것도 재료 노가다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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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 "희망"


상당히 피곤한 주말이지만, 늘어지게 잘 수도 없다. 테스트의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아직 남았다. 희망이 있다. 팔라딘에서 끝나지 않고 몽크가 될 수 있다. 나도 어떤 녹색 유전자 조합체처럼 지구는 물론 태양계를 파괴할만한 힘을 가진 에네르기파를 쓸 수 있는 거다. 막아서는 금발의 남자들도 없다. 아직도 분노는 가득하다.

일찍 일어나 세계 관리자의 패치노트를 확인했다. 그리고 전날의 분노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스킬 초기화, 그리고 대대적인 스킬 대미지 상향과 쿨타임 조절. 뭐 실제로 써봐야 알겠지만, 개발진이 유저들의 제시한 의견을 수렴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날 스마이트는 정글 여행하다가 골렘하고 도마뱀을 만나서 쓰라고 만든 스킬도 아닌데 이게 뭐냐고 게시판에 툴툴거렸던 게 조금 미안해졌다.

여기저기에서 자주 보이던 드루이드 마스터.

다른 클래스의 스킬도 상향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경험치 배율도 상향됐다. 데이터건 뭐건 결국 유저들이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도록 배려해준 셈 아닌가. 이걸로 확실해졌다. 나는 에네르기파를 사용해볼 수 있다. 희망을 품고 묵묵히 여신의 단서를 추적해나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필드에 유저들도 더욱 많아졌고, 팁이나 좋은 사냥터를 공유하는 모습도 많아졌다. 파티플레이도 눈에 띄게 많아진 편. 그리고 처음으로 GM을 만났다. 웬 양파 껍데기가 돌아다니나 싶더니 GM이었다. 그녀는 유저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들어서 개발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몇 시간 뒤의 점검에서 의견이 변경점이 적용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쯤 되니 분노하기 보다는 즐겨보자는 생각을 할…리가 있나?

▲ 마을에서 활동하던 GM 'IMCGAMES' 이것저것 자주 변신하고 다니셨다.

테스트란 그런 거다. 완성되지 않은 게임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내가 화나는 점, 불편한 점을 개발진에게 어필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까지 의견을 제시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테스터다. 순수한 분노를 표출하는 "무자비한 비난"이 아닌 "이유있는 비판"이 더 게임을 좋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사소한 불편함 하나라도, 공감하는 유저들이 많다면 개선해서 더 재미있는 세계를 즐길 수 있으니까. 나는 나름 괜찮은 테스터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힐과 큐어 마법이 통하지 않는 최악의 보스도 만났고 퀘스트 버그로 진행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묵묵히 참고 인내한 덕분일까. 드디어 몽크의 길에 입문했다. 멋진 옷도 받았지만, 취향이 아니라 그대로 팔라딘의 코스튬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테스트에 지쳐서인지 사냥 템포도 많이 느려졌다. 사냥보다는 게임에서 신기한 부분이 있다면 이것저것 찾아보게 됐으니까. 스킬을 몇 개 찍어볼 새도 없이 다섯째 날의 여행이 끝났다.

▲몽크 전직 역시 베이스 레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당시 레벨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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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 "아쉬움, 그리고 의문"


대망의 마지막 여행 날. 한 번 더 획득 경험치가 상향됐다. 오후에는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여행할 시간이 모자란다. 한시가 급하다. 마침 비슷한 레벨대에 오른 유저가 있어서 함께 사냥을 진행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몽크의 스킬도 하나 둘 씩 익숙해져서 문제점을 제기하려고 했다. 애초에 메커니즘부터 잘못된 스킬들이 너무 많았다. 왜 몽크구려요 하는 분들이 있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 이건 육체를 단련한 수행자가 아니라, 정신을 수행하라고 만든 클래스같다.

밤늦게 경험치 대폭 상승 이벤트를 경험하고 나서야 결국 원하던 몽크 2랭크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하던 에네르기파를 얻었다. 조금 실망감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멋지니까 추구하던 기술이 아니던가. 쿨타임도 2분이나 돼서 자주 사용할 수 없다.

드디어 에네르기파(양광수)를 배웠다.

쿨타임이 긴 만큼 그만큼 대미지를 크게 주는 것도 아니라 불만이지만, 다른 클래스들도 비슷한 상황일 거다. 5일차에 6랭크 마스터도 등장했지만, 실질적으로 6랭크를 달성한 유저가 만 명은 있어야 데이터가 축적되고 구체적인 상향 안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경험하지 못한 유저들이 많았던 만큼 나중에야 수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퀘스트'다. 퀘스트가 주력 성장 수단으로 자리잡힌 오늘날의 게임들과 비교가 된다. "(엑스트라)우왕, 계시자님이다 도움!! - (주요인물)안녕, 나 좀 도와줄래? - 힝 속았지? - 자꾸 방해하다니, 죽어라! - 여신 : 다음 단서는…"으로 이어지는 큰 라인이 변화가 없다.

마지막 단계까지 가야 조금 다른 변화가 있다. 하지만 유저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퀘스트의 중간 지점은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퀘스트에 몰입이 되지 않고 동기 부여가 너무 부족했다. 여신을 왜 구출해야 하나 싶을 정도니까. 그리고 팔라딘 마스터 아저씨가 돈을 너무 많이 뜯어간 것도 좀 기분이 나빴다.

좀 더 세련되게 퀘스트를 짰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보상도 효율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유저들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퀘스트 라인 레벨업. 하지만 이 세계에서 퀘스트대로 따라가다간 클래스 레벨과 베이스레벨의 괴리로 사냥터에 발목을 잡히게 된다. 상당히 이율배반적인 구조다.


마치 웨이 포인트와 같은 '클리페다 여신상'의 배치와 나열에도 아쉬움이 있다. 맵 마다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사냥터로 이동이 어려운 구간도 많았고, 나중에는 여신상이 너무 많아 내가 가려던 위치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상위 레벨의 몬스터들은 다양한 스킬을 사용하고, 상태 이상 스킬도 많이 사용한다. 이 부분이 사냥을 어려워지게 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설상가상으로 내 대미지는 적게 들어가고 몬스터의 대미지는 압도적으로 강하다. 특히나 속성 대미지는 마땅히 방어할 방법이 없다. 회피도 안되니까. 중간에 장비를 교체할만한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마련되지 않는 CBT이기에 더욱 파티사냥이 점점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되는 구조다. 그래, 솔로는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외로운 법이다.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각부터는 사냥터엔 거의 유저들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채팅을 하거나, 각자의 클래스에 대한 대담을 나누며 활발한 의견 교류가 이뤄지기도 했다. 가끔 뜬금없이 마을에 필드 보스가 등장해 유저들을 몰살하기도 했고(아마 이벤트일 것 같다). 100레벨 이상의 유저들에게 주어지는 미션을 진행할 파티를 모으는 사람도 보였다.

2차 CBT의 여행 성적은 199레벨.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남은 시간동안 기념에 남을 만한 스크린샷을 찍거나 필드보스를 요리 조리 쫓아다니고, 마을에 대체 누가 있나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유저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여정에 마무리를 지었다.

여러명의 에네르기파로 뭔가 만들어보려했지만...

망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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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단상 - "정리가 좀 덜 된 고향집에 온 기분이에요."


솔직히 테스트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남아서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불만은 가득한데, 이상해요.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나지 않겠지 했는데 아니었어요. 오죽하면 꿈에서도 레벨업을 하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오늘도 트리 오브 세이비어 해야지'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습니다. 게임은 미완성이라 화가 나는데, 푹 빠져있었고 재미있었다는 거겠죠.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과거와 현재의 중간에 서 있는 게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데이터, 그리고 개선된 세련된 시스템을 가지고 추억과 과거의 재미를 함께 버무린 거죠.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가져가려는 게임입니다. 어려운 길이겠죠. 이해해요. 하지만 아직 미완성이고 고칠점이 너무나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요.

마을에 필드 보스가 소환된 마지막 날.
프레임 저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부분도 최적화가 필요해보입니다.


아마 게임에 관심을 가졌고 다양한 게임을 접해본 하드 게이머라면 이번 버전에 대해 결코 좋은 평을 할 수 없을 겁니다. 1차 CBT보다도 많은 부분이 유저들에게 선보여지고 변화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대격변'이라고 하기까지는 무리였으니까요.

동기 부여와 몰입감이 한참 부족한 퀘스트라인. 추가된 몬스터들의 스킬에 대한 밸런싱도 엉망이었고, 클래스의 스킬들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어요. 클래스가 다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평타 오브 세이비어'의 탈을 벗을 수도 없었고요. 몬스터 우선권이 적용되지 않아 유저들의 분쟁도 일어날 수 있었고, 여신상들의 배치나 리스트 정렬기능 같은 편의기능도 한참 부족했죠. 그리고 레벨업 테이블에 대한 의문은 항상 남았고요. 처음 도입된 패드 조작은 상당히 조잡한 인터페이스를 지원했고, 스킬 사용도 불편했습니다.

직관적이지 못한 스테이터스와 각종 부가 능력치에 대한 의문점, 거기에 장비 교체 구간과 맞지 않는 몬스터들의 공격력과 방어력. 상태 이상의 스킬 범위도 보기 어렵고요. 그냥 딱 터놓고 말해서 밸런스는 "엉망진창"이었어요. 솔직히 불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테스트라는 점에서는 충실했습니다. 동분서주하며 유저들의 버그를 해결하려던 GM, 그리고 마을에 남아서 꾸준히 유저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개발팀으로 전달하는 GM들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GM이 동분서주하던 CBT를 언제쯤 봤나 싶었어요. 이는 상당히 번거로운 방식이지만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고 확 느낄 수 있지요.

점검은 상당히 잦았지만,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을 수렴해 빠르게 적용되는 모습도 좋았고요. 아, 그리고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깜빡했네요.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게임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연출도 좋았던지라 너무 당연히 생각한 것 같아요. 사운드는 만점을 줘도 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의문은 '무엇이 정말 재미있었나?'는 겁니다. 재미가 있었으니 불만도 더 많았던 거겠죠. 확실히 게임에 관심을 많이 가지긴 했어요. 테스트가 끝나고 체크해보니, 스크린샷만 900여 장에 달했고 영상만 30기가쯤 촬영했더군요. 구석구석 다 살펴보겠다는 일념으로 뭔가 보이면 마구 촬영했지만 모자란 것 같습니다. 아이구, 지금 보니 월드 맵도 못 찍었네요.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본질에는 충실했습니다. 적어도 플레이했던 사람들이 "추억이 모독당했다"는 가장 끔찍한 평을 남긴 유저는 정말 드물었으니까요. 세련되고 편안한, 그리고 친절함으로 무장한 현대의 대중적인 RPG와는 확실히 달랐어요. 정말 불편했고, 번거로웠습니다. 그나마 꽤 세련되어 보이는 시스템들이 조금씩 과거와 함께 버무려졌죠. 아직 좀 덜 섞이긴 했지만.

▲ 다양한 매크로로 감정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의문에 대해 답은, '오랜만에 온 고향 집 같은 기분'을 느껴서 재미있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집이 정리가 좀 제대로 안 돼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매일 생활하던 집과는 달라서 낯설기도 했지요. 배고파서 요리를 좀 하려고 해보니 이것저것 찾기가 불편합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찾는 물건, '감성'은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감성이라는 재료는 여전히 신선했는데, 막상 음식을 해먹으려니 시스템이라는 불이 제대로 조절이 안 돼서 요리가 탔어요. 타격감과 다양한 클래스, 퀘스트라는 조미료들은 적절히 섞인 듯하면서도 음식에 제대로 녹지 못해 붕 떴고요. 뭔가 잘 안돼서 맛은 별로지만, 구수하고 포근한 느낌이 있는 기분 좋은 요리를 맛본 듯합니다. 그래서 더 게임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유저들은, 아니 시장은 냉정합니다. '트리 오브 세이비어'가 선택한 포지션은 블루오션이 맞습니다. 추억을 안고 블루오션에 뛰어든 게임을 좋아해 줄 유저들도 많겠죠. 하지만 취향에 안 맞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게임이라는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극 호평과 극 악평이 함께 나올 만한 게임이지요.

이번 CBT에 대해 소감을 밝히자면 게임에 대한 불만은 잔뜩 생겼는데, 재미있었어요. "다음 테스트도 해볼 겁니까?"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테스트에 미흡한 부분도 보이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왜 재미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뭐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재미에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2차 CBT도 마쳤고, 추억을 매개로 한층 더 재미있어진 '트리 오브 세이비어'는 기다려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