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개발자 컨퍼런스 2012년부터 게임음악 작곡의 이론과 미학에 대해 강연해 온 넥슨GT의 박지훈 작곡가가 또 다른 재미난 주제를 들고 강연장을 찾았습니다. ‘게임 테마곡 속에 보이는 게임’이라는 타이틀과, 청중들의 눈 앞에서 40분이라는 강연 시간 동안 게임 테마곡 하나를 만들어보겠다는 부제는 게임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죠,.

박지훈 작곡가는 현재 테일즈위버의 사운드 디렉터를 담당, 10년간 지속된 감성은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선율에 잘 녹여내며 멋진 명곡들을 선보인 인물입니다. 테일즈위버의 대표곡 ‘Second Run’을 더욱 풍성한 악기 베리에이션으로 재해석한 ‘Third Run’, fx 루나를 기용한 가요 풍의 ‘U+Me’ 등이 대표곡이죠. 최근 아웃사이더와의 합작 ‘바람곁에’ 도 발표하는 등, 대중음악에도 조예가 있는 작곡가입니다.

▲ 넥슨GT 사운드 디렉터 박지훈 작곡가




들어가기 앞서. 게임 테마곡의 개성은 감성에서 이끌어 낸 창의성을 바탕으로
실전에 들어가기 앞서 이번 강연의 동기와 개괄적인 내용이 먼저 설명되었습니다. 박지훈 작곡가는 지난 GDC에서 감성 게임으로 유명한 ‘Journey’의 작곡가 Austin Wintory의 강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강연이나 세션에 실제로 가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도 덧붙였고요.

"잘 정리된 기사도 좋지만, 그래도 한번 현장에 직접 가보세요. 수많은 세션 가운데 '어? 나도 저런 방식으로 작업하는데...와, 이런 사람이 또 있구나!' 라고 반가울 테니까요. 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가치 있는 깨알팁 같은 것도 종종 나오거든요. 저도 이번 GDC에서 그걸 느꼈어요. 사실 오늘 소개할 방식이 사실 일반적이진 않거든요. 이렇게 작업하는 사람은 또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 분의 강연이 딱 그런 방식이었던 거에요. 많이 반가웠고, 배울 점도 많았습니다."



Austin의 강연에서 가장 중요 포인트는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음악의 바탕은 창의성’이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성’이란 왜 이 소재가 음악에 담기게 되었는지 필연성을 깨우쳐줄 수 있을 정도의 명분이 있어야 하며, 음악인답게 오감과 이미지 등 감성적으로 접근해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그 강연의 주된 골자였습니다.

평소 이렇게 생각해 온 박지훈 작곡가 입장에서는 굉장히 공감하고 반가웠던 내용이었습니다. 게임 디렉터가 “#$!%& 같은 게 나오는 게임인데요. 이거 음악 만들어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이 분야에서, 막연하게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게임음악 기획에 ‘창의성’이란 매우 필수적인 요소라 여겨 왔으니까요.

특히 테마곡 같은 경우 플레이 내내 반복재생이 되며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다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작곡가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는 개성있는 테마곡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개성이 바로 테마곡의 포인트입니다. 디렉터가 제시한 #$!%&가 바로 그 포인트가 될 수 있죠. 작곡가는 그 소스를 파악하고 분석해 음악에 반영해야 됩니다.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방식도 천차만별입니다. 오늘 제가 40분동안 보여드릴 작곡 방법도 일반적인 방법은 절대 아니에요.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정도로만 봐주셨음 좋겠네요."



STEP #1. 게임 요소 분석을 바탕으로 테마 선정
박지훈 작곡가는 테마곡을 만들기 위해 게임 요소를 음악에 담는 자신의 공식을 설명했습니다. 먼저 게임진행방식리듬감과 반복감으로, 게임의 비주얼악기나 연주로, 게임 스토리곡의 구성과 효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실전에서 보여 줄 작곡 방식입니다.

그는 40분 동안 테마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가상의 게임을 설정했습니다.

진행방식 - ‘Journey’의 수행과 깨달음의 여행 과정과 퍼즐 방식이며,
비주얼 - 아누비스 Z.O.E’ 디자인의 캐릭터가 등장,
스토리- ‘인터스텔라’같은 광대하고 환상적인 우주연대기를 다룸

뭐...뭔가 조합이 이상한데...?


분위기가 너무 다른 소재들이지만, 박지훈 작곡가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제목은 모든 것을 말한다’고요. ‘Journey’와 ‘아누비스’, ‘인터스텔라’ 모두 서로 다른 듯 하지만, 막상 뜯어보면 이세계로의 여행, 즉 ‘Journey’의 테마가 세 요소 모두에 공통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답니다. 따라서 ‘Journey’를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잡고 큰 테마를 선정하는 걸로 시작합니다.

그가 제시한 테마는 ‘Save the World’입니다. 세계를 구원하며 느끼는 희열과 환희, 환상의 감성으로 여러 미디어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주제죠. 이번 강연에서 소재로 제시된 ‘Journey’와 ‘인터스텔라’와도 잘 맞고요.

#1 테마부터 선정하자







STEP #2. ‘Journey’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를 구현
박지훈 작곡가는 자신이 작업한 ‘바람 곁에’의 스트링을 이번 실전에 사용했습니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게임에서 주로 쓰는 선율을 얹은 곡으로, 박지훈 작곡가가 좋아하는 게임인 파이널판타지7의 엔딩장면을 여러 번 돌려보며 만들었다고 합니다. 파이널판타지7의 엔딩은 이번 테마의 ‘Save the World’의 환희, 희열감의 감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 감성을 이어받은 ‘바람 곁에’의 스트링은 실전에 쓰이기 좋은 소재일 터입니다.

전체적인 게임의 분위기를 ‘Journey’로 잡았으니, 일단 각 요소를 모두 해당 게임에 맞춰 작업합니다. ‘Journey’의 걷고 돌아다니는 퍼즐 방식의 진행방식은 느린 템포의 리듬감과 느슨한 반복감으로, 초자연적이며 비현실적인 비주얼은 전자음악 요소로 음향 효과를 준 에스닉한 연주로, 스토리는 풍부한 울림의 연출과 수행과 깨달음의 2단계 구성으로 표현했습니다.

#2. Journey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테마를 작업하자



▲ 기존 Journey의 음악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게임의 세계를 제법 표현해냈다




STEP #3. ‘Journey’의 세계 속에 고대신 아누비스를 추가
이렇게, ‘Journey’를 바탕으로 한 테마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봤습니다. 이젠 Journey의 세계 속에서 ‘아누비스 Z.O.E의 캐릭터를 등장시켜야 하죠. 따라서 비주얼에서 좀 더 변화가 필요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전면 삭제하거나, 더해지는 감성을 약간 더 덧대야 하는 거죠.

박지훈 작곡가는 ‘Journey’의 캐릭터와 ‘아누비스 Z.O.E’의 디자인은 어느 정도 고대 문명의 감성을 담았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굳이 본래 설정했던 초자연적이며 비현실적인 비주얼 감성을 전면교체하지 않고, SF가 주는 로봇과 기계의 느낌을 더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치 금속의 로봇이 ‘Journey’ 속 사막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요. 다음 영상은 그 과정입니다.

#3. Journey 속의 고대신, 아누비스를 표현해보자



▲ Journey의 세계에 고대신의 SF풍 모습을 얹어보았다




STEP #4. ‘Journey’와 고대신의 세계 속 인터스텔라의 이야기
순식간에 30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 인터스텔라의 스토리를 작업한 테마에 녹여내야 됩니다. 광활한 은하 속에서 행성을 옮겨가며 역사를 바꿔 나가는 인터스텔라의 스토리를 표현하기 위해 연출과 구성을 좀 더 바꿔야겠죠.

이를 위해 박지훈 작곡가는 우주의 큰 공간감, 웅장함을 부여하는 초월적인 공간계 연출을 위해 테마 템포를 극단적으로 바꾸기로 합니다. 불안하고 불확실한 우주의 미래를 표현하기 위해 주 트랙을 해체 후 재배열하며, 약간의 효과를 더 해 도전과 미련, 시간의 흐름이 뒤엉키거나 교착되는 순간을 표현합니다.

고대신과 수행의 장소 Journey, 그리고 인터스텔라



▲ 이로써 Journey의 세계 속, 고대신이 우주의 역사를 바꿔 나가는 여행의 과정 표현이 완성되었다




마무리. 뮤지션의 두뇌는 그래픽 카드, 사운드는 게임 표현의 수단
박지훈 작곡가는 이제까지 보여 준 과정이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어요. 하지만 음악을 이렇게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될 수 있죠. 작곡에 앞서 참고할 게임 기획서가 주어지긴 하지만, 작곡가의 두뇌 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재해석될 수 있으니까요. 어떤 방식으로 곡을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게임의 모든 요소를 어떻게 음악에 녹여냈는지 그 결과가 더 중요한 법입니다.

박지훈 작곡가는 ‘뮤지션의 두뇌는 최고의 그래픽카드이자 사운드는 그 게임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굳이 사운드 디렉팅 분야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어느 직군이라도 작업하는 당사자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방법과 결과가 도출될 수 있으니까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다소 뜬금없는 작업 과정 역시도 수많은 개발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준 박지훈 작곡가. 이 시간이 많은 분들에게 환기를 위한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지막 멘트로 짧지 않은 실기 강연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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