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조이2015 E7 홀에 마련된 소니 부스에서 가상현실(VR) 기기 ‘소니 모피어스’를 착용하고 테크 데모 ‘섬머 레슨’을 플레이하고 왔습니다. 무슨 긴말이 필요할까요? 이 데모가 언제 나왔으며, 게임 개발사(史)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언급하는 게 필요할까요?

금발의 미녀와 VR 기기가 제 눈앞에 있는데! 튀겨지는 듯한 더위와 싸우며 직접 체험한 ‘섬머 레슨’, 제가 체험한 감정 그대로 형제들에게 전달합니다.



■ 모피어스, 데이터를 현실로 - "모든 물체를 정말 만질 수 있을거 같아요."

▲ 형제들을 대신해 궁금할 것 같은 행동은 다 해보고 왔습니다.

이번에 체험한 ‘섬머 레슨’은 올해 E3에서 공개된 금발 미녀 버전입니다. 사실 작년 TGS에서 공개된 여고생 버전을 내심 기대했는데 말이죠. 어찌 됐든 개인적으로 모피어스 착용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잔뜩 기대를 품고 게임을 실행했습니다.

모피어스의 착용감은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다만 오큘러스와 같이 정수리를 지나는 고정밴드가 없다 보니 흘러내리기도 합니다. 헤드 마운트 UI를 사용하는 '섬머 레슨'의 특성상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표현을 해야 하는데 자꾸 흘러내려 조금 불편했습니다. 의외로 초점은 쉽게 맞춰지는 편입니다.

테크 데모가 구동되면 모피어스를 착용한 채로 정면을 응시해서 화면 조정 하는 과정을 몇 초간 가집니다. 속으로 '힘내라 일루전하라다 PD’를 몇 번 되뇌면 드디어 화면이 펼쳐집니다. 뭉글뭉글 흐르는 구름과 잔잔한 바다를 배경으로 기타를 치는 금발 미녀가 나타납니다. 그 뒤로 해바라기가 빼꼼 피어 있습니다.

시선을 돌려보면 빨래 건조대와 채 감기지 않은 호스가 있고 조그마한 화분도 볼 수 있습니다. 우측에는 일본 만화에서 봤던 테이블이 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돌아가는 선풍기까지 있습니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느샌가 그녀가 제 눈앞에 와있습니다. 웃을 듯 말듯한 묘한 표정도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해상도 문제로 인해 완벽히 실사와 같지는 않지만, 그녀가 내 앞에 있다는 느낌은 완벽합니다. 저도 모르게 일어서서 안을 뻔 했으니까요. 동료 기자가 저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벽에 부딪혔을지도 모릅니다. 시연장인 VIP룸이 많이 비좁았거든요. 상상 이상으로 현실감이 느껴집니다. 그녀가 악수를 청하지만 금새 손을 뺍니다. 제 손만 허공에서 허우적거립니다.

▲ 이쯤 되면 내가 데이터이고 데이터가 곧 나.

그녀와 상호 작용이 없을 때도 주위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제 왼쪽에는 기타가 있고 오른쪽에는 일본식 마루와 방이 펼쳐져 있습니다. 물체들이 제법 정밀하게 모델링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머리를 돌려봤는데도 프레임이 떨어진다거나 끊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그녀가 있고요.

게임 내 UI는 전투기 파일럿들이 사용하는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처럼 시선에 따라 재배열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제 앞의 그녀가 저에게 질문하네요. 머리를 끄덕여 긍정의 표현을 했습니다. 물론 가로 져서 부정의 표현도 할 수 있습니다만, 레이디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니죠. 매너 좋기로 소문난 한국 남자의 기상을 중국에서도 떨쳐야죠.

질문인즉슨 자신의 일본어 선생이 되어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흔쾌히 알려주고는 싶지만, 제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일본어를 가르쳐주려면 이 지면을 통해서는 불가능하겠죠. 아마 가정용 콘솔인 ‘PS4’에서는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옆에 앉아서 책을 떠듬거리며 읽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여자친구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무엇을 해도 예뻐 보이는 그런 모습이라고 할까요. 제 옆에 딱 붙어 앉습니다. 실제로 가까이 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아무 느낌이 없을 것을 뻔히 알지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봅니다. 다행입니다. 모피어스를 착용하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여서요. 다행입니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안 들려서요.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을 저도 같이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여태까지 실제감을 느끼기 했지만, 가상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던 경계가 여기서 무너집니다. 고개를 돌리면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 달의 뒷면은 볼 수 없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볼 수 있다. - "원하는 대로 힐끔 힐끔."

▲ 3D 안경이 볼륨감을 표현했다면 모피어스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뒤를 힐끔 쳐다봤습니다.

시선을 고정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녀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습니다. 당연히 인공지능이 탑재돼있지는 않겠지만, 제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기타 쪽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기타 피크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크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으면 물체가 하이라이팅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와의 시간을 더욱 느끼기 위해 마룻바닥과 마루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절대 골반을 쳐다보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놀랍게도 마루 밑 공간도 구현되어 있습니다.

‘섬머 레슨’의 절정은 그녀가 제 옷에 붙은 물체를 제거하기 위해 제 앞으로 다가오는 장면입니다. 정말 흠칫하며 뒤로 물러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흡”이라고 저도 모르게 내뱉었으니까요.

그러나 레이디가 다가오는데 몸을 빼면 남자가 아니죠, 그녀의 볼과 목선 쪽으로 시선을 돌려봅니다. 진짜 제 눈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에게 기습 키스를 할 때와 같은 느낌입니다. 솔직히 떨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저를 달궈놓고 작별인사를 합니다. 악수를 거부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털북숭이 아저씨 하라다 PD가 등장합니다. “만족하느냐”라고 묻습니다. 네를 선택하든 아니오를 선택하든 땅속 터널로 떨어지며 엔딩크레딧을 보게 됩니다.

모피어스를 벗고 정신을 차려보니 SCE상하이 관계자들은 웃고 있고 동료 기자들은 절 창피하다며 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저 하나 희생해서 이렇게 생생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니 만족합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시연을 도와준 SCE상하이의 관계자가 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역동적으로 움직였다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기술은 결국 포르노와 전쟁을 위해 사용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 ’오큘러스’를 체험할 때마다 기술의 진보로 자극 전달이 가능한 컨트롤러가 개발된다면 어쩌면 인간 역사상 최초로 매춘이라는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VR 기기들의 성능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죠.

‘모피어스’를 체험하며 가벼운 말로 ‘힘내라 일루전’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VR 기기의 놀라운 잠재력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등장할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더 풍부하고 더욱 현실감 넘치는 콘텐츠들이 정말로 기대됩니다.

체험을 마치고 한껏 고양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외쳤습니다. “모피어스 그리고 섬머 레슨, 你很漂亮(당신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