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사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시스템, 그래픽, 스토리…. 게임이라는 미디어를 이루는 요소는 매우 많으며, 그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녹아날 때 게임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플레이어를 찾아간다. 딱히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동기 부여'의 수단이다.

'동기 부여'는 말 그대로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를 뜻한다. 쉽게 말하자면, '재미'다. 이는 원론적 시점에서 게임을 바라볼 때 명료해진다.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현대인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여가 생활이니까'.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결국 이 문장들은 하나의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재미있으니까'.

GDC유럽의 마지막 날 만난 연사인 '유비소프트'의 기획자 '제이슨 밴던베르그'. 마치 한물간 레드넥을 보는 듯한 긴 턱수염. 그리고 거친 목소리와 중간마다 섞여 나오는 개그까지. '제이슨'은 GDC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개발자하곤 조금 달랐다. 그는 '재미'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유저가 게임을 하게끔 할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 것이며, 이 과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원론적 접근이었다.

▲ '유비소프트(Ubisoft)'의 기획자인 '제이슨 밴던베르그'


■ '동기 부여'를 기획하는 과정은 왜 필요한가?

제이슨의 프레젠테이션은 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게 왜 좋은가?". 사실 다른 강연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문구였다. 통상적인 강연은 대중 대부분이 인정할 수 있는 대명제를 내세운 후 시작된다. 예를 들면, "모바일에서 효율적인 UI를 만드는 방법", "라이브 서비스에서의 올바른 소통 방법" 같이, 목적이 확실하게 정해진 문장으로 강연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어째서 이 강연이 필요하고, 관객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것인지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이 문장은 다소 의외의 답을 만들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사항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유저들이 플레이할 테니까' 일 테다. 나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동기 부여'를 위한 요소들을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한 그루의 나무와 같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한 뿌리가 된다고 말했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개발자들이 숱하게 겪는 문제 중 하나는 공통된 목표의 '모호성'이다. 이는 다른 강연이나, 개발 비화에서도 자주 보이곤 하는 일이다. 게임 개발은 하나의 팀이 만드는 것이 아닌, 여러 분야의 팀이 각자의 부분을 만들어 조립하는 합작 과정이라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마음속에 생각한 목표가 달라지면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 개발사들은 꾸준한 회의를 통해 각자의 목표를 합일하려 노력한다.

제이슨이 말한 '동기 부여'의 설정 과정 역시 그 과정을 모든 이들과 함께 설정함으로써, 원활한 소통과 공통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다.

■ 개성에 따른 준비 - 16가지 기준에 맞춘 256가지 성향

게임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제이슨은 두 가지 상황에 해당하는 재미 요소. 즉 '동기 부여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만들어질 게임이 가진 개성, 그리고 장르와도 적절히 결부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게임을 만들면서 플레이어가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탐험'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인지, 혹은 한 장소를 계속해서 가꿔나가는 '건설'에 중점을 둘 것인지를 생각해보자.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은 기본적으로 탐험을 전제로 하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꾸밀 수도 있다. 탐험 쪽에 더 무게가 가지만 어느 정도 건설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반면 공포 게임인 '디 이블 위딘'의 주인공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탐험'의 요소는 갖추고 있지만 '건설'의 요소는 제로에 가까운 사례다.

▲ 개개인의 성향을 모두 포용할 수는 없다.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의 개인적 성향을 고려해 16가지 기준을 잡고, 총 256가지가 될 수 있는 변수하에서 게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 "개성 이론(Personality Theory)"에 따른 게임 디자인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사용되는 각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기본
- 게임이 얼마나 현실적인가? (Realism)
- 게임이 얼마나 초현실적인가? (Fantasy)
- 게임이 탐험을 요하는가? (Explores)
- 게임이 정적인 건설을 요하는가? (Builds)

2. 도전
- 게임이 어려운 조작을 요하는가? (Skilled)
- 게임이 쉬운 조작으로도 충분한가? (Less Skilled)
- 게임이 많은 조작을 요구하는가? (Work)
- 게임이 별도의 조작 없이도 가능한가? (Not Work)

3. 조화
- 게임이 기계적 시스템을 중시하는가? (Mechanics)
- 게임이 서사적 흐름을 중시하는가? (Context)
- 게임이 협동을 요하는가? (Cooperation)
- 게임이 경쟁을 유발하는가? (Conflict)

4. 자극
- 게임이 높은 수준의 긴장감을 유발하는가? (Thrill)
- 게임이 정적이며, 안정적인가? (Calm)
- 게임을 혼자 해야 하는가? (Solo)
- 게임을 여럿이서 할 수 있는가? (Multiplay)

제이슨은 두 가지 게임을 예로 들어 '개성 이론'에 입각한 분류표를 보여주었다.

데스티니


번지 스튜디오에서 만든 '데스티니'는 SF FPS게임으로, 높은 수준의 파티플레이를 요구하며, 장비 파밍을 위한 반복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협동 모드와 PVP모드를 모두 갖고 있으며, 높은 컨트롤 실력을 요구한다.

▲ '데스티니'의 성향 지표


더 스탠리 패러블


'더 스탠리 패러블'은 1인칭 어드벤처 게임으로, 엔딩까지 이르기 위해 끝없이 탐험해야 한다. 플레이어는 높은 컨트롤 실력을 갖출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엔딩을 보기 위해 반복적인 플레이를 요구한다. 높은 수준의 이야기전개를 가진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는 기본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며, 온전히 혼자 플레이해야 한다.

▲ '스탠리 패러블'의 성향 지표


■ '반복 플레이'를 위한 원동력 - "만족 이론"을 통한 파고들기 요소 창조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기 부여'는 게이머가 게임을 하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그 게임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대다수 게이머는 하나의 콘솔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하지 않는다. 라이브 서비스를 유지하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게임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게끔 하는가가 흥행을 가늠하는 열쇠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사후 관리를 이어가지만, 한 번 출시하면 그것으로 소스 대부분을 제공하는 콘솔 및 PC게임은 사정이 다르다.

▲ 협업은 완성! 그러나 동기 부여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의 경우 적게는 수십 시간에서, 수천 시간에 이르는 플레이타임을 보여주는 유저들도 숱하게 존재한다. '스카이림' 또한 엔딩이 있는 게임이다. '스카이림'에 어떤 힘이 있기에 그 많은 유저들이 같은 게임을 반복해서 플레이하게 될까?

제이슨은 이 과정을 '만족 이론(Satisfaction Theory)'을 통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게임을 알게 된 게이머들에겐 처음의 설렘 이상의 '만족'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만족 이론'은 게이머가 어떤 현상을 통해 지속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가에 대한 개략적인 모형화다. 기획자는 세 가지 영역에서 게이머들에게 지속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넣어 '만족 개요(Satisfaction Map)'을 만들게 되는데, 이 세 가지 영역은 다음과 같다.

1. 능력(Competence)
-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게이머 개인의 실력이다. 남들보다 높은 컨트롤 실력이나 게임에 대한 노하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영역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게임에 익숙해지긴 쉽지만, 이를 완벽하게 숙달하는 것은 어렵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게이머에게 끝없는 도전 욕구를 일으키고, 게임 자체의 생명력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 자치(Autonomy)
- 사전적 의미로는 자치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기억', 혹은 '성과'를 뜻한다. 예를 들면 자신만의 캐릭터, 그리고 첫 여정에서의 고난과 역경에 대한 추억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영역을 설정하기 위해 기획자는 게임 내에서 게이머가 남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가장 쉬운 예는 '커스터마이징'.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다른 이들과 교류하거나, 비교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높은 동기 부여 수단이 될 수 있다.

3. 연관성(Relatedness)
- 연관성은 다른 이들과의 상호 작용과 그에 따른 만족감, 나아가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다. 온라인 게임은 이 '연관성'이 극도로 드러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 영역은 게임 내에 '커뮤니티 요소'를 적절히 녹여내어 만들어낼 수 있다. 즉각적인 피드백 시스템이나, 유저 간의 소통 창구를 통해 지속적인 게임 플레이를 유도할 수 있다.



■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무엇을 얻는가?

게임을 플레이하게끔 하고,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은 이렇듯 생각보다 복잡한 모델링을 필요로 한다. 제이슨은 유저가 게임을 하는 과정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었다. 게임을 '발견'하는 단계, '검증'하는 단계, '플레이'하는 단계, 그리고 '지속'하는 단계이다.

앞서 논한 두 종류의 이론은 이 네 단계를 모두 포용하기 위해 디자인된 일종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16가지 기준에 맞춰 게임을 설계하고, 이를 공동의 목표로 삼아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은 '발견'과 '검증'의 단계에서 게이머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그리고 게이머들의 만족을 위해 연구하고, 만족 지도를 작성하는 과정은 게이머가 게임을 '플레이'하고, '지속'하는 단계에서 게이머에게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 앞서 말한 방법들이 모여 게임에 '생명'을 부여한다.


제이슨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게임의 내용과 플레이 양상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
- 개발팀 간의 협력을 더욱 고양할 수 있다.
- 게임 기획안을 성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
- 기대한 만큼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제이슨의 강연은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괴이한 성대모사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튀어나오는 비속어는 관객석에 앉은 개발자들의 공감을 끌어냈으며, 강연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게임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재미'.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쉽게 정의할 수는 없는 단어다. '재미'라는 단어는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서 일종의 신성시되고 있는 단어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생각만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슨은 강연에 앞서 "무서워하지 마세요. 이건 아주 단순한 과학일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청중들을 안심시켰고, 비교적 영어가 약한 기자도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강연을 펼쳐냈다. 끝으로 제이슨은 동기 부여 설정 단계의 이점을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이점을 덧붙였다.

"이 과정은 이렇듯 다양한 이점을 불러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당신을 더 나은 게임 개발자로 만들어준다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