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는 제품이나 산업을 흔히 현금을 짜내는 젖소에 비유해 ‘캐시카우(Cash Cow)’라 부른다. 이러한 캐시카우는 안정적인 수익원이라는 장점 탓에 기업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싶어하는 사업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긍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수익 창출은 안정적이지만 미래 발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받는가 하면, 기업의 현금 흐름세를 높이는 자금원으로 상품 가치 자체는 떨어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넷마블몬스터의 ‘몬스터 길들이기’도 3년 넘게 꾸준한 매출을 기록하며 넷마블의 든든한 캐시카우 중 하나로 불린다. 다만, 앞선 예와 같이 단순히 돈벌이 게임으로 치부하기에는 모바일 게임사에 남긴 이력을 무시할 수 없다.

‘몬스터 길들이기’는 기존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RPG로는 최초로 구글 플레이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24주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특히 퍼즐과 캐주얼 장르가 양분한 모바일 게임 시장에 미드코어 RPG라는 장르의 성공 가능성을 증명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제는 ‘몬스터 길들이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마블 퓨처파이트’라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넷마블몬스터의 김건 대표. 강단에 오른 그는 넷마블몬스터의 전신인 씨드나인 엔터테인먼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6년의 업계생활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경험과 실패, 그리고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냈다.

▲ 넷마블몬스터의 김건 대표.

어찌 보면 처음 만들고자 했던 게임의 길은 잘 알려진 ‘몬스터 길들이기’나 ‘마블 퓨처파이트’와는 달랐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기자분이 술자리에서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죠.

“대표님이 만들고 싶은 게임 언제 만들 거에요? 지금 하고 계신 건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가? 내가 하는 일은 처음과 많이 다른가?’

저도 몰랐던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진 기회가 된 사건이죠. 그리고 이번 강연을 통해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 그리고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뜻밖의 성공, 일본과의 연을 잇다 - 토막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컴퓨터를 접하고 게임 제작 동호회에서 활동한 김 대표의 꿈은 게임 개발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당시에는 적었던 프로그래머라는 희소성 덕에 김 대표는 동호회의 중심에 있었고 자연스럽게 꿈이었던 개발자로의 능력을 키워나갔다.

운 좋게 병역 특례로 군대 대신 자신의 개발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그는 내가 만들면 더 잘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안고 2000년 8월, ‘넷마블몬스터’의 전신인 ‘씨드나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

그리고 회사 설립 2개월 만에 첫 작품인 ‘토막: 지구를 지켜라’를 개발, 공개한다.

"회사를 설립했을 즈음에 흔히 스타개발자라고 불리는 손노리의 이원술 대표님, 당시 그라비티의 김학규 대표님을 부러워했어요. 회사가 유명하니까 광고를 할 필요가 없었던 거에요. 잡지 한 페이지에 광고 한편 올리기도 버거운데 여기저기서 취재니 인터뷰니 알아서 홍보를 해주던 거죠.

이에 우리도 회사의 이름을 알리는 방향의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굉장히 특이한 게임을 전시장에서 나눠주기로 했죠."


▲ 게임 케이스까지 제작, 완성된 작품을 무료로 배포해 많은 호응을 얻었던 '토막: 지구를 지켜라'.

지스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카멕스(KAMEX)에서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빠르게 완성된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3개월이라는 기간에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보유한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과 시나리오를 선택했다.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시간이 녹록지 않았어요. 저를 제외하면 신입 프로그래머가 전부였죠. 대신 훌륭한 디자이너가 있었습니다. 이 조합으로는 만들고 싶었던 판타지 RPG나 슈팅 게임을 만들 수는 없었죠. 그래서 선택한 게 육성, 연애 시뮬레이션이에요.

다음 단계는 기존 연애 시뮬레이션과의 차이점을 두는 거에요. 그 방법으로 살아 있는 듯한 다양한 인물을 그리고자 했어요. 하지만 한 명의 디자이너가 이 모두를 그릴 수는 없으니 머리만 만들자는 의견이 나온 거예요. 시나리오는 모든 콘셉트가 정해진 후에 개연성 있게 만든 거고요. 당시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도 잘 맞아떨어졌죠.

그렇게 돈 주고 살 수 없는 토막을 카멕스에서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말 그대로 대박이 난 거죠. 무료로 주는 다른 상품과 달리 완성된 게임을 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씨드나인은 ‘토막’ 개발 이후 꿈꾸던 방대한 판타지 게임을 만들고자 했지만, 뜻밖의 성공을 거둔 ‘토막’을 좀 더 확장시켜 보고자 했다. 육성 시뮬레이션에 멀티 엔딩을 추가해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확장했다. 또한, 퍼블리싱 계약을 통해 토막의 상용버전을 서비스했다.

일본 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독특한 콘셉트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본 선소프트와의 협업이 진행됐고 소니를 통해 거치 기기로 발매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플레이스테이션2 소프트’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하지만 비슷한 콘셉트의 게임이 두 번이나 통하진 않았다. 모두가 큰 기대를 걸었지만, 판매량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불법 복제도 판매량 부진에 한몫했고 말이다. 스스로는 돈 주고 살만한 물건은 아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김 대표는 큰 성공을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혼자 개발하며 놓친 육성, 연애 시뮬레이션에 대한 특징과 콘솔 게임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얻은 좋은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 온라인에서의 명암 - 알투비트, 마계촌

“토막 서비스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가지고 토막 2나 연결되는 게임을 만들었어야 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자 했죠. 제가 만들고자 한 게임 말이죠.

어릴 적부터 게임 개발자, 아니 프로그래머라는 꿈을 간직하며 살았어요. 여기에 유일하게 꾼 또 하나의 꿈이 요즘 흔히 말하는 랩퍼, 음악가였어요. 알투비트’는 그런 꿈을 이룬 게임이에요.”


알투비트는 리듬게임과 레이싱 게임을 결합한 독특한 게임성을 바탕으로 2005년 서비스 이후 작년까지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장수 온라인 리듬게임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기로 이야기하며 알투비트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알투비트가 서비스된 2005년 즈음에는 굉장히 초조했었어요. 처음 회사를 만들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온라인 게임을 즐겼고 PC 패키지가 꾸준히 팔리던 시기였어요. 저도 나중에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콘솔 판매도 저조했고 막상 온라인 게임을 만들자니 노하우는 없었죠. 시장은 작아지기 시작하는 게 보이기도 했어요.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죠. 알투비트의 성공은 운 좋게 온라인 게임 흥행의 막차를 탄 것으로 생각해요.”


알투비트의 성공으로 동아리 모임 수준에서 게임 개발사로서의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뤘다. 이에 김 대표는 초창기부터 꿈꿔왔던 대작 게임 개발을 시작하며 더 큰 무대에서 경쟁하길 바랐다.

“가지고 있었던 노하우가 일본 네트워크였어요. 이를 활용해서 다시 태어나면 하지 않았을 일을 저질렀어요.(웃음)”

▲ 캡콤과의 협업, 넷마블의 지원을 업고 야심차게 진행된 '마계촌 온라인'.

“2008년에 캡콤과 협업을 통해 마계촌 온라인 개발 보도자료를 배포했어요. 그리고 게임은 2013년 2월 14일에 오픈했습니다. 처음 게임 개발을 공개했을 때는 2008년 겨울 출시를 목표로 한다고 이야기 했죠. 게임이 5년이나 늦게 출시된 거예요.

첫 출시가 연기되고 2009년 여름에는 오픈하자. 역시 오픈은 겨울이야, 2009년 겨울에 오픈하자. 2010년 여름, 2011년, 2012년. 계속 출시가 미뤄졌죠. 왜 그제야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팀원들에게는 힘내자고 이야기하면서도 출시가 다가올수록 확신이 들었어요.

‘이건 안된다.’

마계촌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게임도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커졌죠. 하지만 ‘내가 하면 되겠지’, ‘지금 열심히 하니까 성공할 거야’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계속 개발했어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거죠.”





■ 성공할 시기를 예견한 모바일 성공작 - 다함께 퐁퐁퐁, 몬스터 길들이기

마계촌 온라인의 오픈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모기업인 CJ의 지원 없이는 직원들의 월급조차 챙겨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사내 프로젝트팀을 쪼개 새 팀을 구성한다. 이른바 ‘월급구조팀’.

급박하게 꾸려진 팀이었지만 그는 허투루 게임을 만들지는 않았다.

“한창 게임 개발에 몰두 중일 때 하나 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캐주얼 게임은 하루 얼마를 벌더라, 이건 얼마를 벌더라 하는 소식이요. 그런데 그 금액이 마계촌의 매출 최대 산정치를 훨씬 웃도는 수치였어요.

100명 이상의 인원이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 게임보다 어떻게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이때 생각한 게 2000년 즈음의 온라인 게임 시장이에요. 개발자의 입장이 아니라 게이머의 측면에서 봤을 때 그 당시가 온라인 게임의 과거 모습 같다고 느낀 거에요. 디바이스만 바뀌었을 뿐 시대의 흐름은 그대로였던 거에요.

그래서 새로운 플랫폼이 열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 월급은 물론 죽어가던 회사를 살렸다고 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


▲ 캐주얼 장르의 흥행 시기에 맞춰 발표한 '다함께 퐁퐁퐁'

'다함께 퐁퐁퐁' 출시에 이어 같은 해 8월에는 모바일 RPG ‘몬스터 길들이기’를 출시한다. ‘몬스터 길들이기’는 당시 찾아보기 어려운 미드코어 RPG로 실제 개발은 고작 4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누군가 같은 게임을 만들 것 같다는 촉박함이 빠른 게임 개발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지며 ‘몬스터 길들이기’는 긴 시간 1위를 달성하는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흥행가도를 달렸다. 특히 동종 장르 게임의 선두 주자로 유저 선점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 2013년에 출시한 3개의 게임들.

넷마블몬스터의 2013년 출시한 게임은 3개. 8년의 개발기간을 거친 마계촌 온라인은 실패를 거두지만, 중요시기를 예측하고 짧은 개발 기간 집중해서 만든 ‘다함께 퐁퐁퐁’과 ‘몬스터 길들이기’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 온전한 게임을 만드는 것 - 넷마블몬스터

김 대표는 국내 '몬스터 길들이기'의 국내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국내와는 달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둬들이지 못했다. 이에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새로운 게임을 개발, 서비스했다. 그 게임이 ‘마블 퓨처파이트’다.

“몬스터 길들이기의 글로벌 서비스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습니다. 나라마다 선호하는 캐릭터 상이 다르다 보니 캐릭터가 예쁘지 않다는 평이 많았죠. 그래서 새롭게 만든 게 가장 최근에 선보인 ‘마블 퓨처파이트’입니다.

마블에는 전 세계에 잘 알려진, 똑같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죠. 나라마다 다른 캐릭터를 준비할 필요가 없는 거죠. 해외 진출과 실패의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통해 얻은 결과물입니다. 글로벌 원빌드 서비스라는 새로운 경험도 함께 얻은 게임이기도 하고요.”



'마블 퓨처파이트'는 넷마블몬스터의 성공한 여타 게임처럼 6개월이라는 짧은 개발기간 만에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물리적인 제약이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마블 퓨처파이트'는 마블 게임이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과 함께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11월에 마블을 만나 개발을 시작한 만큼 개발 기반이 촉박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촉박한 개발 기간이 게임의 의사 결정에 고민 없이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의 개봉을 늦출 수 없으니 '마블 퓨처파이트'의 개발은 마블과 접촉한 11월부터 6개월 만에 개발을 끝낸 작품입니다. 사실 '토막', '다함께 퐁퐁퐁', '몬스터 길들이기' 모두 짧은 개발기간을 거쳐 출시됐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계촌은 8년 동안 개발하고 실패했죠.

여기에는 물리적인 제약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마블 퓨처파이트'는 영화 개봉에, 토막은 카멕스에, '다함께 퐁퐁퐁'과 '몬스터 길들이기'는 성공 가능 시기라는 저마다의 출시 목표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제약이 있어 의사 결정에 고민하지 않고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게임 개발에 온전히 집중할 수도 있었고요.”


▲ 영화 속 캐릭터를 추가하는 등 영화 팬을 위한 맞춤 전략을 선보인 '마블 퓨처파이트'.

김 대표는 의사 결정의 중요성만큼이나 처음 기획을 확실히 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이 개발하는 게임이 실패할 확률도, 개발 도중 중단되는 것도 막는 방법이라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떤 게임을 만들지를 개발 전에 미리 완벽한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간에 게임의 내용이 바뀌지 않도록 말이죠.

많은 게임이 실패를 거듭합니다. 아마 90% 정도이지 않을까요? 단계의 차이지 중간에 중단되는 타이틀도 많고요. 팀이 좋아 몇 년 동안 게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게임이 서비스되지 않으면 행복했다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시작하면 꼭 낼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것을 목표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 질문에 대한 해답도 여기서 찾았습니다. 앞으로 나올 타이틀은 회사가 어느 정도의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는 되는 게임을 만들 겁니다. 돈이 되는 걸 말하는 건 아니에요. 제품으로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앞으로도 그런 제품 공정에 힘쓸 예정입니다.”







■ 많은 사람을 즐겁게, 우리가 행복하게 - 김건

김 대표는 현재 모바일 상황에 대해 아쉬워하는 유저들에게 앞으로 예측하는 변화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남겼다. 현재 획일화되고 코어 게이머의 입맛에 맞지 않는 모바일 게임의 상황도 머지않아 개편되리라는 것이다.

"유저분들도 '몬스터 길들이기'나 '마블 퓨처파이트' 같은 게임에 대해 아쉬움을 많을 겁니다. 이는 제가 2000년대 초반 PC 온라인 게임에 느꼈던 생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벤에 저희 게임이 오픈되거나 공식 커뮤니티가 열리면 일일이 유저들의 의견을 확인하고는 합니다. 좋은 의견이 많아 참고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게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유저들의 의견을 빅 데이터로 분석했을 때 게시판에 의견을 남겨주시는 분들의 생각이 일반 게이머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아요.

많은 유저분들이 게임이 너무 쉽고 지루하다고 하지만 실제 분석 결과는 튜토리얼 단계조차도 어려워하는 유저가 많은 것처럼요.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유저들의 의견만 반영할 수는 없는 법이에요.

하지만 모바일 게임이 보편화하고 획일화되는 것도 곧 해소될 거로 생각해요. 피시 온라인이 겪어온 길 10년의 변화를 모바일은 5년, 3년이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특히 디바이스의 편리성을 무기로 PC의 다른 분야도 모바일이 전부 앞지를 거에요. 게이머들의 성향도 캐주얼에서 상향 평준화되고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이 나올 테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미래에 우리가 기대하는 게임이 모바일로 나올 겁니다."



"마지막으로 게임을 만들며 느꼈던 행복한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희 형제가 함께 게임 개발을 하고 있지만, 저희 부모님께서는 게임을 하신 적이 없으세요. 단 한 번을 제외하고요. 그게 바로 '다함께 퐁퐁퐁'입니다. 어머니가 하고 계셔서 서버를 닫을 수가 없어요.

모바일이라는 환경이 생기며 게임을 할 것 같지 않은 많은 사람이 게임을 한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이처럼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행복해지는 게 새롭게 바뀐 게임 개발 철학입니다. 그리고 그런 게임이 성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요."







아래는 강연이 끝난 후 진행된 Q&A를 정리한 것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명확한 계획하에 진행한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실제로는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명확하게 계획을 짜는 일,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킬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단은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흔히 영화를 보고자 할 때 배우나 스토리를 보는 것처럼 감독을 보고 영화를 고르는 일이 있는데 이러한 감독의 역할이 바로 PD입니다.

프로덕트 디렉터(product director), 즉 제품의 감독이죠. 개발팀의 반장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PD인 만큼 온전히 게임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게임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건 PD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의사 결정을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을 PD로 선임해야 하죠. 또한, 개발 내용을 되돌리거나 엎어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애초에 명확하게 기획할 테니까요.


Q. 게임 개발자의 중요한 소양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당연하겠지만 어느 직책이 됐는 제일 중요한 것은 분야의 전문성입니다.

두 번째는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입니다. 팀으로 운영되는 직업인만큼 일을 혼자서 잘할 수는 없죠. 특히 같이 일하는 사람이 가족이나 형제와 달리 목표를 위해 만난 사람이에요. 그렇기에 업무의 전문성만큼이나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물론 능력이 넘사벽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런 사람은 없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