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좀 수그러드는 분위기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게임 플랫폼인 '스팀'을 들여다보면 '생존'이라는 코드가 정말 많이 보였다. 순간의 판단 실수로 생과 사가 오가고, 고생하며 쌓아올린 성과들이 단 한 순간에 끝장날 수 있다는 정신적 긴장감이 아마도 느긋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색다른 자극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생존 게임들의 컨셉은 대부분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대개 비슷비슷했지만, 기존의 게임과는 전혀 다른 현실적인 진리를 게이머들의 머릿속에 심어주었다. 결국,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는 것. 그리고 이 단순한 논리는, 그 게임을 만들어 나가는 '게임업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명제이기도 하다.

뭐 자본주의 사회가 다 그렇지만, 게임업계 또한 자본, 쉽게 말해 '돈'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초에 게임 산업의 기본 시스템이 개발비를 들여 게임을 개발하고, 이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킥 스타터니, 부분 유료화니 수익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결국 게임업계의 수익구조는 개발과 판매가 기본이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게임업계를 들여다보면 소비자가 플레이하는 게임처럼 늘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개발사가 문을 닫고, 또 그만큼 많은 개발사가 새로 만들어진다. 어떤 개발사는 개발력을 갖추고 있지만, 유통 경로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고, 또 어떤 개발사는 충분한 자본을 갖추고 있지만, 개발력의 부족으로 허덕인다. 결국, 그러다 보면 자본도 바닥나겠지만.

'힘'이 '자본'으로 바뀌었을 뿐인 이 적자생존의 원칙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인수합병'이다. 압도적인 자본으로 다른 회사를 흡수해 버리는 것. 보통은 우호적이고 사업적인 관계에서 일이 벌어지곤 하지만, 결국 인수합병은 하나의 개발사가 자주권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반면 개발사들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회사를 합치는 일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망자가 밥 먹듯 나오는 이 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는 방법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모든 생존책이 모두 긍정적인 효과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변수가 가득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1+1은 2가 아닌 3, 혹은 0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임이슈 콕, 이번 주의 주제는 그 사례들과 결과를 가볍게나마 살펴보는 시간이다. 게임업계의 흐름을 바꾼 '빅 딜'들. 과연 어떤 것들이 있었으며, 그 결과는 어땠을까?



'블리자드' - '콘도르' "디아블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실리콘&시냅스'는 91년에 설립된 개발사로, 보통 비디오 게임을 콘솔용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던 소규모 개발사였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은 회사는 아니었기에 94년에 회사 이름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바꾸고 '워크래프트'를 출시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졌다.

▲ 실리콘&시냅스

1년 후, 그들에게 '콘도르'라는 작은 개발사가 게임을 들고 찾아왔다. 당시 콘도르는 '디아블로'라는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처를 찾던 중이었는데, 디아블로의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브레빅'은 이미 스물다섯 곳 이상의 투자처에서 거절을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디아블로'에 관심을 보였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콘도르를 인수 합병해 '블리자드 노스'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이후의 행보는 다들 알 테다. '디아블로'는 그 해의 게임 상을 싹쓸이하며 RPG의 전설을 만들었고, 콘도르에서 구상 중이던 ESD인 '배틀넷'은 지금도 수많은 이용자가 접속하는 블리자드의 간판 프로그램이 되었다.

▲ '디아블로'의 디렉터 '데이비드 브레빅'

사실 드문 일은 아니다. 유망한 IP를 가진 게임사를 흡수해 성공한 사례는 드물지만 없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블리자드와 블리자드 노스의 성공담은 특별해 보이지만 성공의 정도에 따른 것일 뿐, 본질적인 내용은 다른 성공담과 비교해 크게 특별하지 않다. 블리자드와 블리자드 노스의 관계가 재미있는 점은 '개발 과정'에서의 일이다.

블리자드는 본사 차원에서 개발 지원팀(데이비드 브레빅은 이들을 '스트라이크 팀'이라 칭했다.)을 보내 '디아블로'의 개발 방향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 턴제로 기획되어 있던 게임을 실시간으로 바꾼 것도 블리자드의 아이디어였으며, 게임 내 UI를 비롯한 상당 부분에서 블리자드의 '입김'이 가해졌다.

보통 모회사가 자회사의 개발 방향을 틀어버리면 좋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에 비하면 썩 대조적인 모습이다. 블리자드와 블리자드 노스는 '합병', 그리고 자회사와 모회사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나오는 멋진 순기능의 예라 할 수 있다.

▲ '디아블로'는 그 해 게임상을 모두 쓸어갔다.



'EA' - '웨스트우드' 외 다수... "덩치 불리기에 희생된 개성"





'EA(Electronic Arts)'는 북미의 비디오 게임 황금기 시절(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부터 존재해온 유서깊은 게임사다. EA는 그간의 게임 개발사들과는 사뭇 다른 자세로 게임을 만들어나갔는데, 당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아타리'가 개발자들을 일개 사원 취급하고 저질 게임을 찍어내는 것에 반해 EA는 개발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게 만들고, 그래픽 부문에서도 힘을 쓰는 등 고급화를 지향했다.

물론 북미 비디오 게임 파동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기에 꽤 큰 타격을 입었지만, EA는 당시 떠오르는 플랫폼이었던 PC로 눈을 돌렸고, 훌륭하게 성공했다. 이후 덩치를 불린 EA는 90년대에 들어 그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해 소형 개발사들을 인수 합병하며 공룡이 되어갔다. 그러나 늘어나는 EA의 덩치만큼, 부작용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A의 희생양이 된 개발사로는 일단 '웨스트우드'를 꼽을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등장하던 90년대 중-후반은 RTS의 황금기라 불러도 무방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 당시 가장 큰 팬덤을 구축했던 RTS 중 하나가 바로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였다. '타이베리안 던'의 성공 이후 EA는 웨스트우드를 1억 2,250만 달러(한화 약 1,400억 원)에 사버렸고, 이후 웨스트우드는 EA 산하에서 불후의 명작인 '녹스'와 '레드얼럿2'등을 개발한다.

문제는 2003년, '커맨드 앤 컨커 레니게이드'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EA가 웨스트우드를 그대로 해체해버리고 드림웍스 인터렉티브와 합병시켜 'EA 퍼시픽'을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수순은 웨스트우드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울티마'와 '윙커맨더'로 유명했던 '오리진'은 92년 인수된 이후 '울티마 온라인'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타이틀을 내놓지 못하다가 사라졌고, '피터 몰리뉴'의 스튜디오였던 '불프로그'도 EA 합병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웨스트우드의 유작으로 남은 C&C 레니게이드

이러한 EA의 패턴은 게이머들의 분노를 샀다. 중소 퍼블리셔나 개발사를 인수 합병한 후, 인기가 식기 시작하면 IP를 가진 채 스튜디오를 해체하는 순서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IP로 만든 게임들은 대부분은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다. 결국, 게이머들은 사랑하는 게임 시리즈를 잃고야 말았다.

물론 이 행위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다. EA가 수많은 개발사를 인수 합병한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불법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EA는 주식을 사들여 적대적 M&A를 시도하기보다는 꽉 찬 현찰가방으로 회사를 사버리곤 했다. 결국, 정당한 대가를 줬다는 뜻이다. 흡수당한 회사들이 단물 빠진 껌이 되어 뱉어지는 걸 보면서도 회사를 넘긴 사주들도 결코 피해자가 될 수는 없다.

EA는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이 업계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명작이라 불리던 시리즈들이 줄줄이 역사가 되어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EA도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서럴'과 '바이오웨어'가 공장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기존의 EA와는 다른 방향의 작품들을 내놓았고, 그 이후 등장한 작품들 또한 전에 비하면 비교적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자세를 견지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 2000년대 말부터 EA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액티비전' - '블리자드' "수평 관계의 합병, 독립 회사로 우뚝서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2008년 블리자드의 모기업이었던 비벤디 게임즈와 액티비전이 합병하면서 만들어진 회사로, 액티비전과 블리자드 모두 어느 쪽이 우위에 있지 않은 '액티비전-블리자드' 산하의 자회사이다. 다루는 게임 시리즈가 많지는 않지만, '콜오브듀티' 시리즈를 무지막지하게 팔아치우며 매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액티비전'과 탄탄히 기반을 다져온 '블리자드'의 만남. 누가 봐도 대단한 조합이었고, '액티비전-블리자드'는 결국 업계 1위던 EA를 위협할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2010년, '스타크래프트2'와 '콜오브듀티: 블랙 옵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대격변'으로 삼 연타 홈런을 친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이후 신작들이 좋지 못한 평가를 받으며 하락세를 보여주었다.

▲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었던 '블랙 옵스'

끝내 2012년엔 블리자드의 모기업인 비벤디 측에서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비벤디 그룹의 회장인 장 르노 포르투 회장이 직접 블리자드의 총 지분의 61%를 매각해 버리겠다고 말한 것. 무려 81억 달러, 한화로는 9조 2,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지만, 이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 1대 주주가 되며 사실상 '액티비전-블리자드'를 가져가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액티비전-블리자드'는 회사가 넘어갈 위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겨냈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61%의 지분을 전부 사들여 독립 회사로 발돋움했고, 그 반동으로 주가를 15%나 상승시켰다. 이후, 액티비전-블리자드는 '번지'의 '데스티니'를 비롯한 다양한 게임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네임드 모바일 개발사인 '킹닷컴'을 59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모바일 진출을 위한 기반까지 닦았다.

'액티비전-블리자드'는 매우 정석적인 '1+1=3'의 예다. 한쪽이 우위에 선 수직 관계의 합병이 아닌, 더 유연한 자금 융통이 가능한 수평적 관계의 합병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물론 다양한 라인업이 아닌, 몇몇 개임에 수익을 의존하는 현재의 '액티비전-블리자드'의 특성상 아직 '안정'의 단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아직 밝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 6월 개봉 예정인 워크래프트 영화 이후 독자적인 영화 제작을 계획중이기도 하다.



'텐센트' - '라이엇' "개발 독립성 보장, 중국식 요금제는 없었다."





'라이엇 게임즈'는 여러 가지 의미로 게이머들에게 참 친숙한 회사다. 'AOS'가 유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게임 장르에 국한되어 있을 때, 혜성처럼 등장한 독립형 AOS 사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리그오브레전드'의 개발사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게이머가 즐기는 게임인 만큼, 라이엇 게임즈의 존재감이나 인지도는 비슷한 급의 다른 개발사들에 비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어디까지나 라이엇 게임즈가 서비스하는 게임은 단 하나에 불과하니 말이다.

2011년, 중국 굴지의 대기업인 '텐센트'가 라이엇게임즈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수많은 게이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텐센트'는 98년 설립 이후 깎아지는 벼랑과도 같은 성장 그래프를 그려왔다. 최근 10년 간 주가 상승률만 해도 100배에 이를 정도다. 시가 총액만 해도 180조 원에 이를 정도. 그 유명한 '소니'가 30조에 채 미치지 못하고, 앞서 언급한 'EA'와 '액티비전-블리자드'도 20조 원이 안 된다.

텐센트의 규모에 비하면 라이엇 게임즈는 정말 작은 수준에 불과했다. 주주의 입김에 게임이 오염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캐릭터에 날개가 생길 거라든지, VIP 시스템이 생길지도 모른다든지... 게임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반쯤은 조크가 섞인 반응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텐센트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내버려뒀다. 텐센트는 라이엇 게임즈의 모회사로서만 존재할 뿐, 라이엇 게임즈의 개발 방향이나 컨셉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풍의 스킨이나 게임 내 아이콘 등이 추가되긴 했지만, 이는 몇백 만에 이르는 중국 유저를 생각해볼 때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이게 텐센트 때문은 아니라는 것

라이엇 게임즈의 개발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체 수익에 기대던 과거에 비하면 훨씬 풍요로운 환경에서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라이엇 게임즈의 '실수'도 그대로 라이엇 게임즈의 책임이 되었다. 보통 게임에서 부정적 이슈가 발생할 경우, 모회사도 비판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의 실책은 온건히 '라이엇 게임즈'의 책임일 뿐, 누구도 텐센트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텐센트가 라이엇 게임즈의 개발 과정에 따로 입김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식된 것이다. 이런 '방치형 인수합병'은 어찌 보면 업계의 발전과 선순환의 과정을 만들 수 있는 궁극적 모델일 수도 있다.

'라이엇 게임즈'는 텐센트의 자금력으로 넉넉한 환경에서 개발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텐센트의 입김은 가해지지 않으니 라이엇의 개발 철학이나, 게임성에 훼손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덕분에 게임은 더 발전하고, 수익은 늘어난다. 물론 그만큼 '텐센트'가 얻게 되는 수익도 커진다. 게이머들은 만족스러운 게임 경험을 할 수 있고, 개발사는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며, 모회사는 수익이 증대된다. 이상적인 비즈니스의 선순환 구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이 이상적 순환고리는 개발사의 역량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보니, 개발사가 신통치 않을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아놓고 게임을 말아먹은 '이온 스톰'과 '존 로메로'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 돈 퍼줬더니 망한 '이온 스톰'의 당시 모습.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인수합병 사례다. 2015년 말, 텐센트는 2차 인수를 통해 라이엇의 지분을 전량 사들였다. 그간의 성과로 보아 완전히 흡수해도 무방하다 평가했을 테지만, 이 말은 곧 라이엇의 성과가 곧 텐센트의 성과와 같아졌다는 말이다. 라이엇의 수익이 주춤하거나, 적자를 기록한다면 텐센트의 차후 방침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텐센트 또한 게임업계라는 정글에서는 '수익'을 중시하는 게임사 중 하나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습은, 확실히 좋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넥슨 - 네오플 "7년 간 투자비의 7배 이상 매출, 신의 한 수란 이런 것."





2008년, 넥슨은 네오플을 3,852억 원에 인수해 100%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명실상부 네오플이 넥슨의 품에 꼭 안긴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투자는 훗날의 이득을 바라보고 하는 일시적 출혈이다. 100의 자본을 투자해도, 연간 20의 이득을 얻을 수 있으면 5년이 지난 순간부터는 순이익이 생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순간, 이득이 되는 투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오플은 그 기대를 훌쩍 넘어섰다. 2015년 네오플의 영업이익은 5,308억 원. 순이익은 4,792억 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만 쳐도 2008년의 초기 투자 비용을 훌쩍 넘어가는 셈이다. 상업적인 면만을 봤을 때, 이만큼 성공적인 사례도 드물다. 그만큼 넥슨과 네오플의 연수는,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최적의 수였다.

넥슨은 자체 스튜디오가 있지만, 개발사로서의 성격만큼 '퍼블리셔'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퍼블리셔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의 잠재력을 가진 게임이다. 이미 성공한 게임은 쉽지 않다. 단가가 비쌀뿐더러, 더 큰 수익을 뽑아낼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게임들 사이에서도 게임을 잘 가려야 한다. 껍질만 그럴싸한 게임들도 많으니까.

'던전앤파이터'는 최적의 위치에 있는 게임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던전앤파이터'는 국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당시까지, '던전앤파이터'는 국내의 성공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넥슨에게는 세계 최고의 오픈마켓인 '중국'으로의 판로를 가진 상황이었다.

▲ '던전앤파이터'는 투자하기에 딱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

'네오플'의 가려운 곳이었다. 앞서 말했듯, 네오플은 국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흥행을 위해서는 글로벌 진출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효자손에는 넥슨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던전앤파이터'는 공전절후의 대박을 쳤다. 캐주얼한 분위기, 그리고 낮은 수준의 요구 하드웨어까지.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유저들의 광범위한 입맛을 커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결국, 2009년, 네오플의 실적은 인수 연도인 전년에 비해 영업 이익과 매출이 모두 세 배씩 껑충 뛰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 간 네오플의 누적 매출은 약 2조 8,629억 원에 달한다. 초기 투자금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수 없다.

현재에 이르러, '던전앤파이터'는 중국에서 선두를 다투는 온라인 게임이다.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던전앤파이터'를 둘러싼 부정적 이슈는 꽤 여러 차례 벌어졌으며, 게이머들의 질타도 그만큼 많이 받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게임 내적인 면을 떠나서, 상업적인 측면에서 넥슨과 네오플의 연수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어떻게 말해도 게임산업이라는 정글 속에서, 그들은 승자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