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원지간. 혹자는 프로그래머 직군과 기획 직군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곤 합니다. 기획자로서는 더 완벽한 게임을 위해서 기획을 제시해도 프로그래머들은 안된다는 말만 한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프로그래머들은 기획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의견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팀 전체와 사업팀의 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업팀으로서는 게임을 상품으로서, 이른바 잘 팔리는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의견을 제시해도 개발팀은 사업팀이 잘 모르면서 말만 하면 다 되는 줄 안다고 생각하고 서로 반목하기 일쑤입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잘 팔아서 돈을 번다는 목표는 같은데 어째서 서로 간에 이런 오해가 쌓이고 싸우게 되는 걸까요.

3년 동안 안정적인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에브리타운'의 최영근 PD가 그 질문에 답을 내놨습니다. 그가 밝힌 개발팀과 사업팀의 오해의 원인, 그리고 성공적인 라이브 서비스를 위해서 둘이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화성에서 온 사업팀, 금성에서 온 개발팀' 강연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화성에 온 개발팀, 금성에서 온 사업팀



우선 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전 플레로 게임즈의 PD를 맡고 있는 최영근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라그나로크 온라인2’의 시나리오 라이터를 맡기도 했으며, 이제 12년 차 됐습니다. 에브리타운에서는 기획을 맡기도 했습니다.

재작년에도 NDC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엄마와 누나가 게임을 즐기는 법 – 에브리타운 for kakao 서비스 포스트모텀’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에브리타운’의 흥행 비결과 라이브 서비스 노하우에 대해 말했는데요. 올해도 ‘에브리타운’을 예시로 강연을 하고자 합니다.

올해의 주제는 모바일 게임 라이브 서비스에 대해 다루고자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개발팀과 사업팀의 관계가 이번 강연의 주요 골자입니다. 사실 이번 세션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작년, KGC에서 개발팀과 사업팀의 관계를 다룬 세션이 있었는데요. 그게 기사로 소개됐는데, 속된 말로 헬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너무 사업팀 관점으로 세션을 한 게 아니었느냐는 말들이었죠.


두 번째는 ‘에브리타운’도 런칭한지 3년이 넘었는데요. 월 매출 그래프를 보면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래될수록 자연스레 지표들이 하향세를 보이는 건 당연한 거죠. 그리고 당시 개발팀과 사업팀의 관계는 여느 프로젝트와 다르지 않은, 보통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업팀이 꾸려지면서 개발팀과 사업팀의 호흡이 잘 맞게 됐습니다. 이전부터 알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서로 간의 호흡이 맞으니 협업 시너지에 대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하락하던 매출도 유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약간 상승하기까지 했죠.

그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라이브 서비스에서는 개발팀과 사업팀 모두가 힘내야 한다고, 그리고 그냥 잘하는 게 아니라 바로 협업을 해야 한다는 걸 말이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죠. 그렇다면 왜 개발팀과 사업팀에 마찰이 많은 지에 대해서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개발팀과 사업팀을 스테레오 타입에 의거해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발팀은 자존심이 세고, 과정을 중시하며 감정적이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기 쉽습니다. 사업팀의 경우 자존심을 숨기고 목적 중시형이며, 공격적 자세를 취하기 쉽죠. 덕분에 개발팀과 사업팀은 분명히 같은 업종에서 일하고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데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이게 심해지면 사업팀은 ‘개발팀은 항상 안 된다고만 하고, 매출을 올려야 하는 우리의 고민을 무시한다’라고 하고, 개발팀은 ‘사업팀은 말만하면 뭐든 되는 줄 알고 못한다고 하는 우리를 게으름뱅이로 취급한다’라는 의견들이 나옵니다. 당연히 서로 싸우는데 제대로 라이브 서비스가 될 리가 없죠.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그 게임은 단명하게 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서로를 폄하하기 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브 서비스란 그저 먼 산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개발팀과 사업팀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걸까요. 전 다른 관점에서 보고자 합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인용해서 서로의 ’차이’에 포커싱을 맞춰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개발팀과 사업팀의 협업 시너지는 왜 중요한가?



지금은 모바일 시대입니다. 게임 개발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변화했죠.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바로 빅 데이터입니다. 이 빅 데이터가 얼마나 중요한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미드가 있는데요.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2500만 명 이용자의 빅 데이터를 분석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배우, 감독, 플롯을 도출해서 제작한 미드입니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시청률과 인기를 얻기도 했죠. 즉, 빅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겁니다.

※ '하우스 오브 카드'의 빅 데이터 분석에 대한 물음에 조 힙스는 "빅 데이터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에 앞서 제작진의 직관과 재능이 있었기에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브리타운’의 경우 유저의 데이터를 집계해, 특정 조건을 만족한 유저들에게 ‘에브리타운’의 최신 업데이트 광고를 노출하는 마케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패러다임이죠. 최근에는 SDK를 통해 DAU부터 각종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보를 활용함에 따라 게임의 흥망성쇠가 갈리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개발팀이 이런 빅 데이터를 전부 관리할 수 있을까요?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데이터를 다루는 건 사업팀에서 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게임의 기본은 게임성이죠. 아무리 마케팅이 훌륭해도 게임이 재미없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게임성 말고도 그 뒤에 온갖 과제들이 존재하는 시대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즉,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개발팀의 노력만으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겁니다.

본격적으로 개발팀과 사업팀의 협업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전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을 원피스의 위대한 항로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루피와 크로커다일은 처음에는 싸우는 사이였지만, 위대한 항로에 와서는 서로 손을 잡기도 했었죠. 만약 둘이 손을 잡지 않았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겁니다. 개발팀과 사업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개발팀과 사업팀은 도대체 왜 서로 싸우는 걸까요? 우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건 당연한데, 개발팀과 사업팀은 게임을 보는 관점이 아예 다릅니다. 그런데 서로의 목적은 똑같습니다. ‘게임을 히트시키고, 돈도 벌자’는 거죠.

▲ 개발팀도 사업팀도 목적은 같다. 문제는 서로 게임을 보는 시선이 다를 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는 남녀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라고 합니다. 개발팀과 사업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팀 입장에서는 게임에 대해서 문제를 제시했을 뿐인데도 개발팀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판에는 상처를 받곤 합니다. 사업팀 입장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자신들은 상품인 게임을 더 개선하고자 하는데 개발팀은 상처를 받기만 하니까요. 결과적으로 서로 간에 이성적인 대화가 힘들어집니다.

남녀 관계에서도 남성은 여성이 자신과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여성은 남성이 자신과 같은 식으로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개발사에서도 개발팀은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당연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임을 만들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업팀도 모든 사람들이 게임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여기죠. 결국 항상 반복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개발팀과 사업팀에 필요한 건 이겁니다. 서로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존중해야 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는 저희 경우처럼 개발팀과 사업팀이 잘 해나가서 시너지를 보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운이 아주 좋은 케이스였던 거죠. 하지만 전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개발팀과 사업팀이 서로의 말에 어떻게 느끼는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개발팀과 사업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팀이 ‘XX 시스템을 고쳐야 돼요.’라는 말하게 되는데 개발팀은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개발팀의 역량이 부족해서 지표가 낮으니, 사업팀의 의견대로 개선하세요’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받아들이면 나오는 말도 차가울 뿐이죠. 그럼 나머지는 ‘뭐, 그냥 서로 싸우자!’하는 게 됩니다.

▲ 서로가 상대에 대해 이해하지 않는다면? 뭐, 싸우자는 소리죠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근본적인 건 똑같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면 됩니다.

개발팀과 사업팀간에 편견이 없다는 가정하에 반목하는 이유를 보면 그 오해는 수단에서 비롯됩니다. 사업팀은 목적을 이해시키기 위해 수단을 강조하는데, 개발팀은 그 수단에만 주목하다가 목적에 포커싱을 잃게 되는 거죠.

▲ 존중이 없다면 대화가 되지 않고, 결국 '너 죽고 나 죽자'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예를 들어서 사업팀이 과금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골드를 증정하려고 하는데(=목적), 전 서버 동시에 모든 유저들에게 주고자 한다(=수단)라고 개발팀에 요청하면, 개발팀은 전 서버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팀은 그것도 못하냐고 하면, 뭐 나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상적인 해결법으로는 사업팀은 개발팀에게 수단에 대해서 다소 일임하는 한편, 목적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개발팀으로서는 현재 수단이 무리라면 사업팀에게 새로운 수단을 제시해주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양측 불만 없이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죠.

▲ 서로를 이해하면 이렇게 편한 것을



■ 개발팀과 사업팀 사이에 시너지가 나면 어떻게 되는가?


좀 뜬금없지만 시간을 돌려 2013년, ‘에브리타운’을 막 런칭하고나서 “3년 후의 자신은 뭘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는 물음에 저는 “잘 모르겠지만 신작을 만들어서 런칭하지 않을까?”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에브리타운’만 3년째 서비스하고 있죠.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이른바 3년 넘게 꿀을 빨았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업팀과의 협업 시너지가 없었다면 3년 동안의 라이브 서비스는 불가능했었을 거란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브리타운’을 싱가폴 글로벌 런칭할 당시 ‘이미 한국이나 대만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있는데 별 일 있겠어?’하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별 일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트워크 오류가 있었는데요. 직접 가지 않고선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업PM님이 그러더라고요.

“갑시다.”
“네? 어딜요?”
“싱가폴이요. 이번주에.”


그래서 갔습니다. 1박 3일 간의 지옥의 일정 끝에 알아낸 이슈 원인은 싱가폴의 경우 관광대국인 만큼 관광지, 도심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싱가폴 와이파이를 무제한으로 제공해 준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네트워크 오류를 호소한 유저들이 있는 지역은 도심지 외곽이었다는 거였습니다.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지역이었죠. 결국 네트워크가 불안정한 원인을 찾았으니 귀국 후 어떻게든 해결했습니다. 이런 문제의 경우 사업팀, 개발팀의 영역에 각각 해당되는 애매한 이슈였는데요. 만약 개발팀과 사업팀의 협업이 없었다면 원인 파악도, 해결도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됐다면 총체적 난국이었겠죠. 문제는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 전문용어로 '개판 5분 전'인 상황



■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개발팀과 사업팀



각종 지표 관리, 돌발 사태 대응, 유저 케어 이 세 가지는 라이브 서비스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이를 위해 사업팀은 개발팀의 개발 계획과 일정에 맞춘 각종 전략을 짜고, 개발팀은 사업팀의 피드백에 맞춘 기능들을 개발해야 하죠. 물론, 여기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동반돼야 합니다. 마치, 부부처럼 말이죠.

▲ 부부 개발자와 마찬가지인 사업팀과의 투샷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도 부부가 행복하면 집에서의 생활 뿐 아니라, 각자의 사회 활동에도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하고 있습니다. 개발팀과 사업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이 책을 인용한 이유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게임의 핵심은 당연히 게임성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개발팀과 사업팀의 긴밀한 협업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인 거죠. 엄청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할 때, 서로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 더 롱런 할 수 있습니다. 개발팀과 사업팀 모두가 함께 협업을 함으로써 시너지를 발휘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