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DC의 반가운 얼굴, 이은석 디렉터가 올해도 강단에 섰다. 이번에는 창의적이고 고품질의 게임 개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돕는 조직 내부의 개방적 업무 문화에 대해 강연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직문화의 핵심 키워드는 '창잉(창의+잉여)적인 인재'였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방법과 '잉여다움'에 대한 의미 부여였다. 재작년부터 이어져 오는 창발(創發)과 창의(創意)의 구체적인 예시라고도 할 수 있었다.

[결론]
살아남으려면 혁신, 창의성, 독창성이 중요
게임 개발은 집단의 창의성이 중요하고, 불확실성도 높음
관료주의, 권위주의, 복잡한 위계구조는 혁신의 장애물
돌죽 만들기의 핵심은 비전, 자발성, 개방성, 의사소통, 관용성
여기에 잉여로움을 더하면 집단 창의성 폭발

▲ 넥슨 왓스튜디오 이은석 디렉터


"왜 자꾸 강연해요? 게임이나 만들지"

이은석 디렉터는 '게임이나 만들지.'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강연 준비할 시간에 게임이나 만들라는 뜻이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원체 강연에 많이 나서다 보니 구성원들도 같은 지적을 받곤 했다.

왓스튜디오는 NDC를 개발자의 축제이자 잉여 타임으로 생각한다. 스튜디오 구성원은 축제에 참여할 때 상급자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는다. 또한, 발표 준비할 때 업무시간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1년의 1/50을 사용해서 그보다 더 큰 성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후 결과 회고도 좋지만, 중간 과정의 공유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디렉터는 적극적으로 발표, 전시, 수강 등 축제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니면 의미 없는 발표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유용성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부검(포스트모템, 剖檢)도 좋지만 생검(生檢)도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늘 강연은 돌죽 이야기에서 시작해 나의 실패담과 집단 창의성. 그리고 잉여로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돌죽 이야기'는 어린이 동화다.

어느 마을에 배고픈 여행자가 나타났다. 여행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음식을 구걸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행자의 부탁을 거절했다. 거절당한 여행자는 갑자기 솥에다가 돌을 끓이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의아했다.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물었다. "왜 돌을 끓이는 거요?". 여행자는 답했다. "맛있는 돌죽을 끓일 건데 재료가 부족하네요. 재료가 있으면 좀 넣어주세요." 음식을 거절했던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에 야채와 그리고 각종 양념을 가지고 왔다. 종국에는 맛있는 죽을 만들어 돌을 제외하고 모두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 교훈은 이렇다. 내가 일단 뭔가 만들어 일을 시작하고, 결과가 아주 멋질 것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재료를 조금씩 던져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전'과 이어진다. 비전은 힘을 가진다. 돌죽처럼 백지상태라도 미래의 멋진 완성작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물속의 돌처럼 조금이라도 눈을 보이면 더욱 효과적이다. 만약 돌을 집어넣지 않았다면 당근, 양파, 양념 등은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재료를 집어넣으면서 창조를 해낸 것이다.

비전 말고도 자발성과 참여라는 요소도 존재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료를 스스로 내놓은 자발성과 구경꾼이던 사람들이 참여자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창조하는 집단 창작과 이어진다. 이 디렉터는 왓스튜디오의 방식은 돌죽 방식이라고 첨언했다. 그리고 돌죽 끓이기는 집단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좋은 형태라 말했다.



"창의성은 왜 필요한가"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멱함수(y=ax^n 같은 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함수(函數)의 세계다. 게임 산업은 태생적으로 글로벌 경쟁환경에 놓여있다. 세계 최고의 맛집이 뉴욕 어딘가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많은 사람은 실제로 뉴욕에 가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대부분 근처 식당에서 먹을 뿐이다. 그러나 게임은 다르다. 게임이나 영화는 다들 앉아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것들을 즐긴다. 즉 동네 식당도 뉴욕의 맛집과 경쟁하는 셈이다.

이는 물리적 연결 제약이 적은 세계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극소수의 슈퍼스타가 파이 대부분을 가져가는 매우 냉혹한 세계다.


통상적으로 게임의 평가는 정규분포를 이룬다. 평균적인 대다수 게임이 평균점수를 차지하고 소위 말하는 '응가'게임과 '갓'겜이 양 극단에 소수 포진된 형태다. 그러나 판매량은 다르다. '갓'겜은 백만 단위로 판매되지만 '응가'게임은 그렇지 못하다. 거듭제곱 형으로 소수의 게임이 독식하는 형태다.


▲ 선형스케일이 아니라 지수 스케일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장르와 플랫폼에도 수명 주기가 존재한다. 어떤 장르나 플랫폼도 성숙한 후에는 레드오션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게임의 변별력은 사라진다. 과거에는 혁신적이었던 MMORPG 같은 장르도 결국 지금은 공장에서 라디오 조립하듯 아무나 양산할 수 있게 된 것이 좋은 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게임은 흥행 산업이고 이 산업은 슈퍼스타 아니면 힘든 세계다. 소수의 슈퍼스타가 아니면 최저가 경쟁을 하며 나머지 파이를 나눠 먹는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의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혁신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레드오션에서 최저가 경쟁하며 살고 싶지 않다면 창의성과 독창성을 담아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게임 개발은 집단 작업이다."

게임 개발은 IT산업과 콘텐츠 산업의 중간에 있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창의성이 중요하지만, 인력과 속도, 물량 역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단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게임은 집단 영역의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라는 속담처럼 집단의 창의성을 어떻게 발현해 낼 것인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여러 소설가가 모여 한 문장씩 소설을 쓰면 과연 재미있을까? 아마 재미없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잘만하면 집단의 창의성이 개인의 창의성보다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더욱 큰 시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 창작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픽사나 디즈니 같은 애니메이션과 여러 감독이 하나의 작품을 연출하는 미드 시리즈를 예로 들을 수 있다.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두 가지 과정으로 나눠 작업을 진행한다. 프리프로덕션 기간과 실제 프로덕션 기간인데, 프리프로덕션이 먼저, 좀 더 오래 진행된다.

프리프로덕션은 3~4년 이상 진행되는 단계로 10여 명 남짓한 핵심 인력이 브레인트러스트를 진행해 완벽한 스토리보드를 만드는 과정이다. 완성될 영상을 끊임없이 프리뷰하며 이 과정에서 가멸차다고 할 정도로 매우 솔직한 동료 평가를 수반한다. 적은 핵심 인력으로만 진행되는 과정이기에 변경과 공유가 쉽고 창의성이 크게 발휘될 수 있다.

실제 프로덕션 과정은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1~2년 동안 진행된다.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발생하며 변경점 발생 시 공유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요소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마쳐야 한다. 이 단계는 창의성보다는 퀄리티가 중시되는 단계다.

픽사의 경우 이러한 방법으로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본질적인 차이가 크다. 게임은 집단의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구현하기 어렵다. 우선 애니메이션과 달리 게임은 플레이 시간이 길고 비선형적이며 인터랙티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 및 서비스 개발이 함께 필요하므로 불확실성이 매우 높으므로 픽사의 프리프로덕션 요소를 빌려올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게임 개발은 불확실성과 싸우는 과정이다. '뭘 만들까?', '만들 수 있을까?', '만들면 재밌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실패담."

이 디렉터는 '화이트데이(2001)'을 만들 때를 회고했다. 그는 독창적이고 창의성 높은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혼자 창의적인 디렉터로 군림했다.

1인 개발이 아닌 조직이 개발함에도 불구하고 디렉터로서 군림하며 다른 이들에 빛나는 역할을 주지 않았다. 프로세스 전체를 마이크로 컨트롤했다.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기 피곤하다는 이유로 공유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마음대로 밥상을 뒤엎었다. '끝나고 욕해도 좋으니 지금은 내 말대로 해라'라는 주의였다. 팀원들은 점점 불편해졌다.

과거 업계가 전문성이 낮았던 시대라 일일이 손대지 않으면 일정 수준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던 시기이긴 했지만, 그는 불편할 정도로 숫자 하나하나 일일이 지정해 프로젝트를 끌고 나갔다. 구성원들에게 믿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실패한 자유조차 주지 않았다. 구성원에 성장에 좋지 않은 자세였다. 이는 구성원들의 내적 동기 훼손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경험은 교훈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개 상급자의 견해가 더 뛰어나고 좋은 답을 알고 있어도 답을 제시해주면 창의력의 한계가 생겨버린다. 질문, 토론, 시도를 통해 더 좋은 답을 찾게 하는 게 몇 배는 좋은 방법이다. 실패를 통한 성장의 기회도 필요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디렉터들은 프로젝트에 오너십이 강하다. 오너십이란 주인 정신을 뜻하며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기반이다. 가끔 디렉터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니들은 왜 나만큼 오너십이 없니?'. 구성원들에게 오너십을 강요하는 말인데, 디렉터가 가장 큰 오너십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구성원들에게 디렉터만큼의 헌신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연하게도 스스로 제안한 일에 더 의욕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대하게 된다. 바래서 하는 일이 아니고 시켜서 하는 일을 참고 견딜 뿐인 크런치를 그 누가 즐거워한단 말인가? 아프리카 속담 중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게임으로 치환하면 멀리 가려면 개인의 창의성이 아니라 '집단의 창의성'을 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혁신에 유리한 조직."


비전과 인재는 선순환 구조다. 비전은 인재를 부르고 인재는 비전을 만든다. 반대로 악순환이 되기도 한다. 비전이 없으면 인재가 찾아오지 않고 인재가 없으면 비전이 안 생긴다. 이런 선순환을 위해서 뭐라도 눈에 보이는 걸 만들고 공유하는 게 시작이다. '보이는 것'에는 겉치장 이상의 큰 힘이 있다.

집단 지성은 자발성을 토대로 작용한다. '알아서' 조직이 돌아가게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보다는 동기를 제어하고 일하는 과정을 즐기게 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구성원 간 가치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왓스튜디오는 조직의 지향점을 정렬한다. 불확실성 아래에서 지향점 정렬 자체가 옳은지, 옳지 않은지는 불확실하지만, 나중에 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향점은 존재하는 편이 좋다. 다만 '틀릴 수 있다'라는 전제를 인정해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게임 개발은 불확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라인 조직'은 경직되어있다. 이 조직은 군대 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단순한 지휘계통을 가진 구조로 사고 발생을 최소화해야 하는 조직에 적합하다. 하지만 게임은 큰 인명사고를 수반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물론 DB를 유실할 수도 있고 고객 개인정보 유출 같은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인명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기적이고 복잡한 문제 해결을 수행하기에 비효율적이라는 단점이 더 크게 와 닿는다.

▲ 생각만으로도 비효율적인 프로세스.

특히 라인 조직은 프로세스가 효율적이지 못하다. 실무자끼리 직접 이야기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중간 레이어를 거치고 모든 내용을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매 단계 승인받아야 되기 때문에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고 이터레이션(반복)수는 적어서 품질은 낮아지게 된다. 이런 프로세스는 혁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위계는 단순하고 유연할수록 혁신에 어울린다. 매니저가 모든 것을 알고 지배할 필요도 없다. 특히 사람 수가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관료주의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조직의 발전보다는 자리보전에 욕심을 내게 되고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들이 일어나게 된다. 오죽하면 회의에 참석해야 할 인원을 뽑는 회의를 할까.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국어 문화는 수직적이고 서열 중심이다. 직장에서는 쓸만한 2인칭 호칭이 없어 직책+님으로 부른다. 비직책자를 부르는 '~씨'는 낮춤말로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 직책에 따른 상하관계가 고착되면 유연한 조직을 운영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게임 업계는 직책을 떼고 '님'으로 호칭을 통일하는 곳이 늘고 있다. 권위주의와 관료주의를 경계하고자 하는 일환의 하나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직장은 민주주의가 아니기에, 좋은 게임은 다수결로 만들어지지 않기에 적절한 균형점이 필요하다. 픽사도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창의력이 발휘될 변경과 공유는 하지 않는다. 대규모 인원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때는 권위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 이은석 디렉터는 팀원들이 자신의 모니터를 바라볼 수 있어 숨막힌다고 했다. 물론 농담조다.

지향점 정렬은 집단 사고의 함정으로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처럼 수많은 오판을 만들어내고 사고를 만들어내 패망의 원인이 되기도 된다.

집단사고 함정을 회피하고자 집단 내 '악마의 변호인'을 두어 사사건건 반대하는 역할을 맡기기도 하나 이는 또 과도한 피로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즉 지향점 정렬과 비판 수용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방법의 하나가 '디렉터제'의 폐지다. 이은석 디렉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디렉터 시스템은 제왕적, 권위적 리더십에 기초한다. 물론 리더의 카리스마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복잡성이 높은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데 있어 디렉터가 모든 것을 알고 올바른 결정을 하기엔 대단히 어렵다. 그러므로 프로듀서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합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비전."

비전은 미래의 모습이다. 셀레는 '끝 그림'이다. 왓스튜디오의 비전은 '우리가 만든 게임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 밋밋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양덕들이 코스프레할 정도의 게임을 만든다'로 변경했다. 코스프레로 특정하는 것보다도 그만큼 세계적으로 재미나 매력, 브랜드, 팬덤이 되게 하자는 의미였다. 물론 코스프레 횟수가 KPI로 측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비전을 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왓스튜디오는 '참여, 존중, 토론의 개방성'을 중요시했다. 왓스튜디오 내부에서 의견 표현은 언제나 자유다. 심지어 비전문 분야일지라도 개진은 자유다. 그러나 결정은 전문성 있는 담당자의 몫이다. 게임을 절대 다수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의견 수렵이 아닌 경청의 단계를 거친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한다. 책임자는 비책임자 의견을 존중하되 그대로 따를 의무는 없다. 이러한 방법은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비전문가의 건의에 대한 피로도가 있다. 특히 새 멤버가 들어올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과 건의는 귀찮음을 불러온다. 또 사람인 이상 반대 의견을 듣거나 개진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인 골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최대한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조직문화를 형성을 해야 한다.


"왓스튜디오의 의사소통."

왓스튜디오의 의사소통은 위계 레이어가 적다. 매니저가 정보 소통의 관문을 맡지 않는다. 부서장벽을 넘어 실무자들끼리 N:N으로 직접 소통한다. 주고받는 메시지는 대부분 기록에 남고 매니저는 로그를 사후 검토하고 뒤늦게 개입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는다. 이는 왓스튜디오가 일일이 지시, 보고하지 않아도 조직이 운영되는 이유다. 또한, 모두의 업무진행이 공개돼 있어 무임승차가 어려운 점도 알아서 돌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다.

하지만, 직접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정보량이 엄청나다는 문제가 생긴다. 매니저가 며칠 자리를 비우면 복귀해서 로그를 읽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간다. '듀랑고' 2차 LBT때의 로그는 소설 해리포터의 텍스트 숫자보다도 많았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즉답성과 컨텍스트 전환 비용이라는 요소를 고민해야 한다. 본인이 원하는 정보는 바로 얻고 싶지만, 정보를 줘야 할 땐 집중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왓스튜디오 역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실시간 대화는 필요악이다. 일하는 데 산만해질 수 있어 집중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언더 커뮤니케이션보다 오버 커뮤니케이션이 좋다. 절절한 분량의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면 이상적이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오버 커뮤니케이션이다."




[왓스튜디오의 커뮤니케이션 수단]

- 수신비용 낮음, 송신비용 낮음, 전달력 낮음, 보존성 나쁨.

말은 N명에게 전달하려면 한 번에 모아 이야기하든지 N번을 말해야 한다. 그래서 송신 비용은 N배가 들어간다. 게임으로 치자면 턴제 전투와 같다. 건너뛰기나 탐색이 안 되므로 간결하게 말하는 화자의 스킬이나 정보를 잘 얻어내는 청자의 스킬이 필요하다. 또한, 말은 경청과 공감을 할 수 있는 따뜻한 소통수단이기는 하지만 비언어적 정보도 많이 담긴 고맥락(High-context)수단이라 조심해야 한다.


- 수신비용 낮은 편, 송신비용 낮은 편, 전달력 나쁘지 않은 편

왓스튜디오는 이메일보다는 인하우스 툴을 주로 사용한다. 내부에서 사용하는 '왓톡'은 실시간 대화하는 데 사용하며 '왓독스'는 좀 더 정제된 문서들을 활용하는 데 사용한다. 둘 다 그림 삽입이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림 - 수신비용 낮음, 송신비용 조금 높은 편, 전달력 높은 편

그림은 수신비용이 낮고 밀도가 높은 장점이 있어 송신자 비용을 낮추는 게 핵심이다. 왓스튜디오는 이를 위해 그룹웨어에서 최대한 편하게 그림을 송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그림을 사용하는 문화는 짤방으로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퍼지게 된다. 회의 시 칠판이나 스케치는 폰카로 전송하는 문화도 형성되어 있다.



영상 - 수신비용 낮음, 송신비용 조금 높음, 전달력 조금 높음

백짤이 불여일움이다. 비용은 높지만 밀도도 매우 높다. 송신자의 비용을 낮추면 좋기 때문에 영상을 촬영하고 공유하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프리젠테이션 - 수신비용 높은 편, 송신비용 높음, 전달력 높음

프리젠테이션은 정제된 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이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왓스튜디오는 프리젠테이션을 의사소통계의 이종격투기라고 부른다. 이들은 부서별로 돌아가며 1주일에 2번씩 전체 프리젠테이션을 시행해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전체 모습을 공유한다.

▲ 쌓인 프리젠테이션은 지향점 주입에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서를 잘 꾸미는 사람만 인정을 받는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사실 의사소통과 내부 공유를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집단 창작을 위해서는 내부의 원활한 정보공유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니저들은 조직원들의 성과를 제대로 알릴 의무가 있다. 즉 내부 보고에 치장이 심해서 낭비가 발생하지 않는 가성비가 좋은 소통 방법을 찾는 것도 능력이다.



프로토타입 - 수신비용 높음, 송신비용 매우 높음, 전달력 매우 높음

인터랙티브한 게임을 프리뷰를 하는데 프로토타입만큼 전달력이 높은 요소가 없다. 불확실성을 낮추는 효과도 매우 크다. 프로토타입이 개발 공정 중에 가장 비싼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빌드보다는 싸며 오랫동안 큰 비용을 들여 실제 빌드에서 후회하는 것보다 프로토타입을 여러 번 시도해보는 게 좋다. '듀랑고'도 여러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프로토타입의 최대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리프로덕션동안 만드는 프로토타입은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특히 여러 사우를 즐겁게 한 'z5'는 개발에 큰 비전이 됐다. 그래서 왓스튜디오는 지금도 신입 게임 디자이너가 들어오면 꼭 'z5'를 플레이시키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z5'는 훌륭한 기획서라고도 볼 수 있다.








▲ 이은석 디렉터가 만들었지만,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아 버려진 생존 스탯 시뮬레이터.



"혼돈을 허용하는 업무 문화."

왓스튜디오는 혼돈을 허용한다. 그래서 이들은 T자형 인재를 선호한다. T자형 인재는 넓은 관심 범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분야에는 대단한 전문성을 가진다. 이러한 인재가 모이다 보면 조직을 작게 유지할 수 있어, 창의성이 희석되지 않는 장점을 가진다. 물론 서로 중복되는 영역을 가지기도 하지만 모자란 것보다는 중첩되는 쪽이 낫다. 왓스튜디오는 아티스트가 프레임레이트를 걱정하고 프로그래머가 룩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구성은 '동시 작업'을 가능케한다. 꼭 기획의 선 진행하에 일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 미술이 기획을 이끌거나, 기술이 기획을 이끌기도 한다. 이른바 '양 끝에서 동시에 터널 뚫기'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각각 뚫고 들어가는 터널이 만나지 않으면 곤란하지만 어떻게든 만나는 데 성공하면 품질, 자발성, 참여감,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


더불어 왓스튜디오는 블랙리스트 문화에 기반을 둔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들이 전부 허용되어있고 블랙리스트만 금지하는 문화다. 이는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허락보다 용서를 구하라'. 일단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는 게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관용성이다."

그래서 왓스튜디오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말리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게임을 권장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길게 써도 괜찮으며 디자인직군은 업무시간에 게임을 해도 괜찮다. 개발자들의 게임 감수성은 결과물에 큰 영향을 끼치기에 이들의 행동 자체를 제한하지 않는다. 행복한 개발자에게서 행복한 게임이 나온다.

"개발자여! 잉여스러워라."

▲ 일반적인 잉여로움의 뜻.

"잉여로움은 죄악이 아니다. 잉여는 창의성의 어머니다. '창잉력' 같은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버퍼(완충구간)가 없으면 공정이 비효율적이게 된다. 건설이나 생산 같이 불확실성이 낮은 업종에서도 버퍼가 중요한데 게임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라 더욱 버퍼가 중요하다."

이 디렉터는 잉여로움은 낭비가 아니라고 했다. 팀원이 놀지 않는다는 것은 개별 콘텐츠 비용의 최적화를 뜻하지만, 리드 타임의 최적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리드 타임은 콘텐츠의 구상부터 완성까지의 총시간을 이르는데 이를 최적화하는 것이 진정한 단위 시간당 처리량의 증대로 이어진다. 즉, 병목이 아닌 지점은 잉여롭게 두는 게 창의적 결과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잉여로움의 산물]

1. 토크봇

토크봇은 그룹 메신저에 상주하는 봇으로 평소 저질 개그를 즐기던 A가 개발한 봇이다. 빌드 알리미 기능 정도로 시작했다가 머신러닝을 통해 특정인 흉내 말장난까지 발전했다. 소소한 즐거움을 전달하고 있고 FGT때는 앵무새 공룡 NPC가 되기도 했다.


2. 왓톡 움짤

신입사원 B가 잉여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과제로 만들었다. 리치 텍스트 박스를 CEF로 갈아엎어 '왓톡'에 움짤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팀에서 움짤문화가 인기를 끌었다. 단지 잉여함을 말렸을 뿐인데 말이다. 다른 신입사원 하나는 이런 잉여문화를 참지 못하고 '이런 인력이 움짤이나 만들고 앉아 있다니'라고 하면서 스튜디오를 떠났다.


3. 그림표지판

UI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지친 C가 크런치후 스트레스 해소 활동으로 게임에 구현한 기능이다. 텍스트만 기입할 수 있던 표지판에 그림을 넣을 수 있게 했다.


4. 움짤표시판

표지판에 프레임 애니메이션을 넣을 수 있게 했다. 개발팀이 움짤 문화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저들에게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잉여로움을 되씹어보면 돌죽끓이기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아티스트들이 마일스톤으로 듀랑고 모습의 내부 비전영상을 만들고, 영상이 멋져서 대외용으로 공개한 적이 있는데 이게 '듀랑고 자연사 박물관'영상이다. 여기까지는 수직적인 탑다운 형식이었다.

그러나 그다음에 등장한, 영상에 등장한 표지판을 본 디자이너 D는 표지판을 구체화하고자 건의했고 이를 마음에 두고 있던 C가 FGT 때 잉여시간을 이용해 구현해 게임에 투입했다. 재미있는 요소라 바로 게임에 정식 요소로 채택됐는데 이는 바텀업 형식으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돌만 있는 솥에 양파와 당근을 넣은 것과 같은 과정이 됐다. 이게 왓스튜디오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