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강연에서 게임 개발 과정을 말할 때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서 만든다고 말한다.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뭉친 수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적게는 수 명이지만, 많게는 수백 명. 이들의 목표는 모두 하나다. 게임을 완성하는 것.

그러나 간혹, 이런 '협력'이 없이 만들어진 게임들도 있다. 한 사람이 만드는 게임. 바로 1인 개발 게임이다.

물론 1인 개발 게임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하나의 게임에 들어가는 그 모든 요소와 지식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1인 개발 게임들이 존재함에도, 게이머들은 내심 머릿속에 선을 긋는다. '1인 개발인데 얼마나 대단하겠어?' 현실적 상황과 인간의 한계에서 빚어지는 단정이다.

하지만 '1인 개발'이라는 요소는 격려와 동경의 상징이 될 뿐, 게임의 완성도를 채워주지 않는다. 시장에 내놓는 순간, 그 게임은 한 명이 만들던, 백 명이 만들던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게 된다. 유리한 점은 하나도 없다. 혼자 개발했다는 걸 알게 된 게이머들에게 놀라움은 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스튜디오 HG'의 '한대훈' 개발자가 개발한 '스매싱 더 배틀'은 확실히 다르다. '블레이드앤소울', '마비노기'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서 일해온 그가 만든 이 게임은 '1인 개발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머릿속에 긋는 '한계'의 선을 간단히 넘어버린다. 그뿐이랴. VR HMD인 '오큘러스'의 런칭 타이틀 6종 안에도 당당히 포함된, 인정받은 게임이다.

▲ '스튜디오 HG', 한대훈 개발자

NDC2016, 한대훈 개발자가 강단에 올랐다. 제작 기간 1년, 개발 인원 1인. '대단하다.'라고 말은 하지만, 아마 그의 지난 1년은 내 예상보다 더욱 험난했으리라. 1년에 걸친 곡절의 역사. 마이크를 잡은 한대훈 개발자의 첫 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할 이야기는, '로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부터 로망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 강연은 말이죠. 제가 어떻게 로망을 갖게 되었느냐에 대한 이야기에요"

▲ '주부' 개발자이기도 하다...


Chapter I. 개발의 시작



이야기는 한대훈 개발자의 '퇴사'에서 시작한다, 뭐 그는 '로망'에 대한 이야기니까 당연한 일이라 말했다. 퇴사 후 한대훈 개발자는 집에서 게임을 즐기며 정말 푹 쉬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일하면 놀고 싶고, 또 너무 놀면 뭔가 하고 싶어지듯, 그 역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퇴직금을 계산해 보았다. 얼추 3개월 정도는 무언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계획을 세웠다. 3개월간 게임을 하나 만든 후, 멋지게 무료로 뿌려버리는 것. 그게 한대훈 개발자의 초기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액션 게임을 기획했다. 액션 게임인 이유는 본인의 특기인 캐릭터 디자인이 살 수 있고, 나아가 액션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 원래의 계획은 간단했다.

문제는 그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코딩'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믿었고, 튜토리얼 책을 사 코딩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한대훈 개발자는 자신의 계획이 굉장히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튜토리얼 수준의 참고서로는 도저히 액션 게임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로 했는데,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미 게임을 만든다고 자랑을 많이 해 놔서(...)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다. "왜 혼자 개발해요? 다른 사람들하고 하지 않고" 하지만 한대훈 개발자는 몇 명의 소수 인원이 모여 취미처럼 만드는 게임이 마치 대학교의 조별과제처럼 흘러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개개인의 열정, 그리고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이 불균형하니 게임이 나올 리 없다.

▲ 취미로 모여 게임을 만들면 보통 이렇게 된단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 년 후면 40대에 진입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미지의 공포로 다가왔다. 나이 40을 채우면 왠지 아무도 자신을 부르지 않을 것 같았고, 이 공포는 혼자서 게임을 만들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할 거라는 사명감을 만들었다.

▲ 궁극의 목표


Chapter II. 게임 컨셉 결정



액션을 만들기로 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컨셉이 잡힌 것은 아니었다. 한대훈 개발자는 남들과는 다소 다른 면을 지향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는 대세인 '판타지'가 아닌 SF를, 자동 전투가 아닌 '컨트롤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또 다른 대세인 '섹시 코드'는 그냥 따르기로 했다. 어느 정도 대세에 순응할 필요는 있으니까. 하지만 똑같이 섹시할 순 없으니 더 '섹슈얼'하게 만들어 버렸다. 다른 개발사야 18금 코드를 무서워하지만, 당시의 그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았다.

코딩을 배우면서 게임 코딩의 90% 이상을 직접 구현했다. 유니티 엔진을 쓰니 어셋 스토어를 쓰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제가 짠 코드도 잘 모르겠는데 남이 짜둔 코드를 어떻게 읽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쯤 되니 그의 지인이 그에게 말했다. "프로그래머가 아트 배우는 거보다 아티스트가 프로그래밍 짜는 게 더 쉬워" 하지만 그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고, 아직도 그 주제로 지인들과 투닥거리곤 한단다.

▲ 지금 이 순간에도 불꽃이 튀고 있는 주제

하여튼 컨셉을 잡아야 하니 컨셉 아트도 만들고, 가볍게 게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프로토타입은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을 반영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막상 게임을 만들기로 하고 보니, 도대체 이 게임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액션 게임은 너무나도 많고, 잘 만든 게임들도 많다. 그 중간에 자신이 만든 게임이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겨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이고, 왜 그 게임을 좋아하는가. 그렇게 생각을 반복하다 보니 공통점을 찾아냈다. 그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을 좋아했고, 끝난 후 여운이 남는 게임을 좋아했다. 동시에 그가 처한 현실적 상황, 그리고 그가 그 근래에 본 영상까지 합쳐지며 '스매싱 더 배틀'의 컨셉을 만들었다. 그렇게 3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장되었다.

'컨트롤 게임'이니만큼 컨트롤이 필요한 쪽으로 디자인해나갔다. 계속해서 피하고, 움직이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탄막 슈팅'과 액션을 적절히 융합했다. 맵 디자인 또한 유동적인 오브젝트를 배치해 지속적으로 컨트롤이 필요하게끔 하였다.

▲ 자문 끝에 '스매싱 더 배틀'의 방향이 결정되었다.

'자석'이라는 스킬은 다소 엉뚱하게 만들어졌다. '자석'은 두 캐릭터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스킬로, 적들을 특정 위치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사실 한대훈 개발자는 적들을 호쾌하게 두들겨 패는 액션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직 초보 수준이었던 그의 코딩이 문제였는지 AI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시원하게 적을 모으는 스킬을 만들어 버렸다.

동시에 그는 개발 과정을 SNS에 게시해 모두와 공유했다. '홍보'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지만, 사실 이건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다 말해두면 실패했을 때의 놀림이 두려워 더 열심히 할 테니까. 또한, 이 과정은 게임을 만드는 데 실패해도 뭔가는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임 흥행에 실패해도 정신 승리는 챙길 수 있었다.

▲ 자신을 믿을 수 없었던 그의 선택


Chapter III. 시련



물론 이 과정 중 쉬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시련이며 동시에 도전이었다. 가장 큰 시련은 역시 '버그'였다. '스매싱 더 배틀'은 그가 처음으로 프로그래밍한 작품이었고, 그만큼 버그에 대한 공포가 클 수밖에 없었다. 3개월짜리 게임을 만들 때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개발 기간에 8개월에 이르자 포기할 수도 없었다. 인생에서 8개월은 생각보다 큰 시간이니 말이다.

자금 또한 문제가 되었다. 이미 퇴직금을 비롯한 여윳돈은 모두 증발하고 없는 상황. 게임 개발을 이어가기 위해 그는 더 열심히 집안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문제는 이 정도였지만 다가올 문제는 남아 있었다. 바로 앞으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느냐였다.

▲ 수익 창출이 불가피했던 상황

처음에는 공짜로 게임을 배포하기로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까지 와 버렸다. 그래서 유료 게임으로 노선을 변경했지만, 기존의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가기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간 영원히 출시하지 못할 판이었다. 매출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해지는 시기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욕심이 커져 버리고 만 것이다.


Chapter IV. 창업?



하지만 게임의 형태는 무사히 나왔고, 이를 본 친구가 이걸 토대로 투자를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고민을 하겠지만, 당시 한대훈 개발자는 멘탈이 조각나 있는 상황이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 고통을 남들과 나누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막상 빌드를 보내 보니, 컨트롤이 너무 어렵고, 자동 전투가 없으며, 너무 선정적인데다가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는 피드백이 날아오고 말았다. 그래서 자동 전투를 넣고, 선정적 부분을 줄여 빌드를 새로 만들었다. 세계관은 바꿀 수 없으니까. 그랬더니 이번엔 이런 피드백이 날아왔다. '게임에 특징이 없다.'


망연자실하게 빌드를 들여다보니, 웬 이상한 게임이 눈앞에 있었다. 자기가 원해서 만들던 게임은 결코 아니었다. 투자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특징을 잡아내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이 게임이, 그에게는 전부였다. 결국, 그는 투자받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는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Chapter V. 아트 디렉팅



마음을 다잡은 그는 본격적인 아트 디렉팅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부산에서 열리는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았는데, 이는 그에게 굉장히 좋은 홍보 기회이자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행사였다. 그래서 출전 전까지 개발 작업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표는 레퍼런스 스마트폰에서 50프레임 이상의 주사율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역동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장치를 다 기용했지만, 막상 이렇게 해놓고 보니 프레임이 쭉쭉 떨어져 게임이 아닌 수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포인트 라이트로 느낌을 살리고, 스페큘러와 맷캡을 이용해 화면을 만들어 나갔다.


UI는 최대한 캐릭터의 존재감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고, 타이틀 화면에도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가슴...)인 애니메이션을 넣었다. 그는 어떻게든 타이틀 화면에서부터 반응을 일으키고 싶어했다. 그것이 설령 좋지 못한 반응이라 해도 말이다.

주요 캐릭터들에게는 몽땅 안경을 씌웠다. 그에게 '혹시 안경 모에 세요?'라고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질문에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실제 사람이 안경을 쓰고 있는 것은 좋지만, 2D가 쓰고 있는 건 싫어요"라고 말하며, 캐릭터들이 쓰고 있는 안경은 그가 좋아하는 액션 게임인 '배요네타'의 오마주라고 밝혔다.

▲ 단순한 오마주라 주장했다. 일단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는 고전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너스(일종의 특전)' 요소를 넣고 싶어했지만, 딱히 넣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공개적으로 팬아트를 모집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생각해보니 아직 출시도 안 한 게임의 팬아트를 받는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네요"라고 말하며 강연을 이었다.

문제는 팬아트의 수준이 그가 생각한 이상으로 너무나도 뛰어났다는 거다. 솔직히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게임을 이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부담에 '그만 멈춰주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덕분에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보낸 37종의 작품을 받을 수 있었고, 이 작품들은 앞으로 게임 내에서 보너스 요소로 쓰일 예정이다.

▲ 생각보다 너무 놀라웠던 팬아트의 디테일


Chapter VI. 계기



'스매싱 더 배틀'의 개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시까지 그는 모바일 게임으로 '스매싱 더 배틀'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인디 게임 커넥트 페스티벌에서 그는 뜻밖의 제안을 듣게 된다. 오큘러스가 그에게 VR 게임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다.

당시 그는 '3인칭 액션 게임을 VR로 만들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개발 자체는 재미있을 것 같았고, 그는 이 제안을 승낙했다. 언제나 그에게 게임 개발은 '재미'가 우선이었다. 다른 것을 따져서 뭐하는가, 재미있어 보이면 만드는 거지. 그렇게 그는 10일에 걸쳐 '스매싱 더 배틀'을 VR로 옮겼다.

▲ 재미있어 보이면 하는 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본 후,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VR로 만들어진 '스매싱 더 배틀'은 마치 '스매싱 더 배틀'이라는 게임의 완성판을 보는 것 같았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일단 캐릭터를 코앞에 두고 볼 수 있다는 게 그에게는 참 큰 축복이었다. 두 번째로는 굳이 구태의연한 가상 패드가 아닌, 진짜 컨트롤러를 기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 때문에 그는 '스매싱 더 배틀'에 진짜 맞는 플랫폼은 무엇인가? 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VR 개발 자체가 주는 재미도 상당히 컸다. 그리고 결국, 그는 VR 버전의 출시를 준비하게 된다.



Chapter VII. VR 버전 출시 준비



이후 오큘러스 스토어가 3월 말에 열린다는 소문을 접했고, 그는 게임 반응이 좋으니 런칭 타이틀로 넣어 보자는 오큘러스 본사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그 시점까지 '스매싱 더 배틀'은 아직 덧붙일 요소가 너무나도 많은 미완성 게임이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다 넣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쉬움도 남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큘러스 스토어가 열리는 날은 그가 '스매싱 더 배틀'을 만들기 시작하고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또한, 오큘러스의 런칭 타이틀이라는, 몇 안 되는 개발자만이 달성할 수 있는 도전 과제에 대한 열망도 그를 끓어오르게 하였다.

▲ 게이머라면 안다. 도전 과제 달성의 순간을

남은 시간은 3주. 그 3주 동안 그는 새벽 4시에 피드백 메일을 받고, 수정한 후 다시 메일을 보내며 제대로 불타올랐다. 그리고 3주 만에 게임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반응은 좋았다. 런칭 타이틀이니만큼 오큘러스측에서도 도움을 줘 완벽하게 북미 실정에 맞춰 현지화를 끝냈고, 오큘러스 미디어 데이와 GDC2016에서 시연 게임으로 선보여졌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정성'에 태클이 들어와 옷을 조금 더 입혀야 했고, 대박 심각한 버그가 터지는 바람에(VR로 바라보는 버그는 짜증을 넘어선 공포를 준다고 그는 말했다.) 골머리를 앓았지만, 무사히 게임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개발 기간은 1년, 개발 인원은 1인이었다.

▲ 3주간의 지옥일정를 표현한 그의 PPT

물론 게임을 내놓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자신과의 약속을 달성했다는 것. 그리고 40대에도 게임을 만들며 먹고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Chapter Final. 1인 개발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드는 동안 즐거우셨나요?"

그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즐거웠다고 말은 했는데, 사실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로"

'스매싱 더 배틀'은 그가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코딩해 만든 게임이었고, 그는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처음 만든 작품에 대해 자신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그는 게임을 출시하는 그 순간까지도 안심할 수 없었고,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 이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게임 개발에 실패했을 때 주변에서 쏟아질 악담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라는 내용의 악담이 생각나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언제나 게임 개발을 포기할 수 있도록 혼자 개발을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는 비단 게임 개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니의 초청을 받아서 간 PS4 행사 당시, 그의 작품도 타이틀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그전부터 다른 게임들은 보도자료를 만들고, 매체에 보내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순간 한대훈 개발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제 보도자료도 내가 만들고, 기사도 내가 만들어야 하는구나.'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게임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였다. 그는 개발 과정 내내 자신의 게임이 이렇듯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부정적인 상태로 게임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 '개발'만 신경써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1년간의 과정은 그에게 그 어떤 개발자들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첫 프로그래밍 작품으로 게임을 만들었고, 이 게임을 VR 원년의 런칭 타이틀로 만들었다. 더불어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다시 자신이 '아티스트'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아티스트'들은 게임업계에서 일하며 점점 아트와는 무관한 잡다한 일을 함께하게 된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고 '테크니컬 아티스트'라는 거창한 직함까지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생각하는 '테크니컬 아티스트'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업계에서 일하는 동안, 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7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졌다. '나는 아티스트가 맞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 것이다.

코딩까지 하게 되면서 '아티스트'와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그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며 다시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고, 마침내 안심할 수 있었다. 1년간의 모험이 그에게 안겨준 것은 비단 색다른 도전, 그리고 달성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80분에 이르는 강연의 막바지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VR 게임은 돈이 안 되는데 왜 만드냐? 라고 질문하는 분들도 많으세요. 물론 맞아요. VR 게임은 아직 돈을 벌기 어려워요.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으니까요. 하지만 전 '스매싱 더 배틀'을 만들며 '로망'을 이루는 순간을 만들어냈어요. 저 자신도 돈하고는 크게 연이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집에 가면 집안일을 더 열심히 해야죠. 그냥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한대훈 개발자의 강연은 길면서 동시에 짧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같은 시간을 강연해도, 어떤 강연은 너무나도 길고 지루하지만, 이번 강연은 짧게만 느껴졌다. 그만큼 나 또한 그의 이야기에 깊게 몰입해 있었다는 뜻이었으리라.

기사 작성을 위해 열어둔 노트북에는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반사적으로 받아 적은 강연 내용이 내 예상보다 훨씬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강연을 듣게 되는 것이 내 직업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단순히 '상업성'을 염두에 둔 강연이 대다수를 이루며, 다소 노골적으로 로망과 이상을 비하하는 내용도 가끔 듣곤 한다.

물론 내용을 글로 옮기는 것이 내 일이고, 소명이기에 열심히 정리하지만, 속으로는 이 막대한 분량의 '이성적 이야기'를 글로 옮길 생각에 갑갑하고는 했다. 하지만 한대훈 개발자의 강연은 비록 막막할지언정, 다른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풀어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요리해야 더 많은 이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즐거운 고민이었다.

아마 많은 개발자, 그리고 개발자 지망생들이 1인 개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가장 초점을 둔 사안은 한대훈 개발자의 말을 최대한 고스란히 옮기는 것이었지만, 기자 스스로 모든 느낌과 내용을 옮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확실한 건, 그의 강연은 분명히 재미있었고, 동시에 개발에 종사하지 않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자신이 1인 개발의 꿈을 키우고 있다면, 나중에 게시될 NDC Replay에서 이 강연을 다시 들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