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이드 소프트웨어 ⊙장르: FPS ⊙플랫폼: PC, PS4, XBOX One ⊙발매일: 2016년 5월 13일

* 본 기사는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진득하게 묻어 있습니다.
* 본 기사에는 잔혹한 영상 및 이미지가 포함되었으니 참고 바랍니다.

런앤건 슈팅 게임을 비유하는 말 중 하나로 '포르노'가 있다. 지금이야 웃자고 하는 말로 치부되지만, 알고 보면 꽤 역사가 깊은(?) 단어다.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괴짜, 그리고 '둠'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장본인, '존 카맥'이 썼기 때문이다.

1992년, 그는 '둠'을 개발하면서 '게임에서 스토리는 포르노의 그것과 같다. 있어야 하지만 중요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존 카맥이 스토리텔링을 무시한 건 아니다.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는 지금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고, 스토리를 포함해 다른 부가 요소를 신경쓸 여건이 안 됐다. 즉, 청년 존 카맥의 저 말은 이렇게 해석하는 게 맞겠다.

"그래, 좋은 스토리 있으면 좋지! 하지만 우리 꼴을 보라고. 직원수도 적고 개발비는 한정돼 있어. 그보다는 조작감이나 그래픽 같은 1차적인 요소에 투자하는 게 더 이득이란 말이지."

당시 이드 소프트웨어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것이 기자가 저 말에 동의한다는 뚯은 아니다. 조작감은 당연히 챙겨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래픽은 예외다. 꼭 뛰어난 그래픽이 아니더라도 콘셉트에 맞춘 '센스'있는 그래픽을 더 선호한다. 그런 그래픽이 꼭 첨단의 끝을 달릴 필요는 없다. 남는 자원 갖고 존 카맥이 말한 부가적인 요소에 투자한 작품을 나는 더 사랑한다. '하프라이프' 시리즈나 '바이오쇼크' 시리즈 같은.

하지만, 그 말이 기자가 '둠'의 안티라는 뜻은 아니다. 돌아다니면서 총알 먹고, 눈에 보이는 건 다 쏴버리는 고전적인 FPS에 어떠한 편견도 없다. '듀크뉴켐' 재밌게 했다. '쉐도우 워리어'는 지금도 가끔 한다. '페인 킬러'에도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시리어스 샘'은 내가 지금까지 해본 게임 중 가장 상쾌한 FPS였다. 화려한 곁들이 안주같은 거 없어도 괜찮다. 메인 요리로 풍부한 맛을 낸다면 그 또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 어쨌든, 게임과 포르노를 동시에 언급한 것만으로도 존 카맥의 말은 화제가 됐다.
(좌 - 둠2 스크린샷, 우 - 작품을 챙겨보진 않았지만, 얼굴은 아는 아오이 소라)





지난 5월 13일 출시된 '둠 리부트' 이야기를 해보자. 고전 명작이자 FPS 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둠2'와 닮았다. 무게감있는 그래픽, 화끈한 액션, 총알과 주먹으로 대화하는 둠 가이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다. 절륜한 번역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둠 코믹스'의 느낌도 난다. 더 마음에 든다.

단순한 전투 플롯, 직관적인 스토리 역시 '둠2'의 그것이다. 이걸 문제삼아 '둠 리부트'를 비난하는 일부 평론가들이 있지만, 그건 '둠'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원래 이 게임은 총과 총알의, 피와 폭발의 합주곡이었다. 대서사시같은 고오급스런 스텝은 어울리지 않는다.

시대의 요구를 비트는 타이밍도 좋았다. '하프라이프2' 이후 FPS에서 연출과 스토리는 첨가물 수준을 넘어섰다. 트리플 A급 타이틀이라면 당연하게 넣어야 할 기본 소양이었다는 의미다. '헤일로'가 그랬고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가 그랬다. '바이오쇼크'는 이 분야의 정점을 찍었다. '기어스 오브 워'도 펄펄 끓는 마초 냄새 사이사이에 눈물 쪽 빼는 신파극 요소를 꽂아넣었다. 모두 잘 먹혔다.

스토리와 연출이 강조되는 트렌드가 지속되자, 그때 그 시절의 쌈박한 슈터를 그리워하는 유저들도 생겨났다. 몇몇 개발사가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쿨내 진동하기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울펜슈타인'이나 '쉐도우 워리어'가 리부트로 출시됐지만, 옛날만큼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시대에 타협한 게임 디자인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이들 IP는 '둠'만한 파괴력이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출시된 '둠 리부트'에 고전 FPS 게이머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둠3'처럼 옆길로 새지도 않고 우직하게 '둠2' 느낌을 그대로 냈으니까. '

여담으로 '둠 리부트'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개발 초기 명칭은 '둠4'였고, 분위기나 게임 진행 방식에서 뭔가 '콜 오브 듀티' 느낌이 났지만, 밥상을 한 번 엎으면서 지금의 분위기가 잡혔다. 개인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 '둠 4'의 초기 개발 버전 유출 영상. 개인적으로는 리부트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출처 - DTen BenZ 유튜브)





'콜오브듀티'나 '헤일로'같은 FPS에 질린 게이머나, 과거 '둠' 시리즈의 팬에게는 분명 만족스런 게임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이 단점은 장점의 뒷면에 자리잡고 있다.

맵 여기저기에 놓인 아이템 주워 먹으며 싸우는 '둠' 시리즈의 느낌을 살려낸 것까진 좋았다. 한데, 영화같은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을 설득하는 장치로는 부족하다. 쉽게 말해 '둠'을 기억하는 유저들에겐 매력적이지만, '둠'을 모르는 유저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주먹 피니쉬의 손맛은 확실하나, 연출 종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즉, 효율과는 별개로 나중엔 질릴 수 있다. 아울러, 근접전 타격감이 좋다고는 하나 '기어스 오브 워'의 랜서기관총만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역설적이게도 '둠 리부트'의 단점은, 이것이 '둠' 시리즈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에 나온다. '둠2'는 다른 요소를 잴 것도 없이 'FPS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게임'이다. 하지만, '둠 리부트'는 그런 '둠2'를 추억하는 유저들을 위한 '팬 서비스'에서 그친다. 최근 나온 FPS에 비교해 특별히 부족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몇몇 장점이 돋보이는 게임인 것은 맞다. 하지만, '둠'이라는 IP가 갖는 존재감에 비할 수준은 안 된다.






백이면 백 전부 문제점으로 거론하는 '멀티플레이'는 확실히 별로다. 심심한 맵 디자인, 휘청대는 무기 밸런스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건 아주 표면적인 단점이다.

'둠 리부트' 멀티플레이의 가장 큰 문제는, 캠페인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캠페인의 전투는 말 그대로 적을 '파괴'하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에서의 둠 가이는 적을 '쏴 죽이는' 데 포커스가 맞춰졌다. 두 표현의 느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주먹을 더 써야 했다. 멀티플레이에서도 주먹으로 언제든 상대방을 때려죽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지금도 가능은 하다. 그런데 제한적이다. 인간형일 때는 총에 비해 극도로 효율이 떨어지고, 몬스터로 변신을 해도 시간 제한이 걸린다. 한 마디로 평범하다.

애당초 멀티플레이를 넣어야 했다면,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둠2'에 대한 헌사에서 시작되었다면 캠페인이든 멀티플레이든 동일한 분위기를 제공해야만 했다. 캠페인을 엄청 잘 만들었는데 멀티플레이가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오롯이 단점이 될 수 밖에 없다. 멀티플레이가 있는 게 어디냐고 반문할수도 있지만, 넣으려면 '잘' 넣어야 한다. 게임을 평가함에 있어 1+1이 항상 2가 되는 것은 아니다.

▲ 멀티에서도 이런 게 술술 나갔어야 했다.

▲ 이런 거 말이다.

▲ 이런 거!





몇몇 크고 작은 단점을 언급했지만, 전체적으로 '둠 리부트'가 수작이라는 데는 기자도 동의한다. '둠2'의 테스토스테론을 거의 완벽히 구현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기에 충분하다.

게임플레이 면에서 언급한 단점 역시, '둠2'를 재현하는 걸 우선 과제로 두면서 나온 부산물에 가깝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둠2'의 위상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노력의 양이 얼마일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불가능할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둠 리부트'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싱글 캠페인을 7시간 정도 하니 '둠 리부트'가 내게 물었다.

"자, 누가 진짜 남자냐?"

▲ '둠 리부트' 싱글플레이 영상

▲ '둠 리부트' 룬 트라이얼 플레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