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도 잘 먹는 사람이 해야 맛있고, 옷도 잘 입는 사람이 해야 이쁘다. 뭐 모든 곳에 통용되는 논리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렇다. 즐기는 사람은 디테일을 찾을 줄 안다. 어떤 것을 넣어야 더 좋을지, 무엇이 이 상품의 가치를 끌어올려 줄 지. 즐기는 사람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상품을 볼 줄 안다. 그리고 적당한 위치에서 타협할 줄 모른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니까. '덕업일치'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걸스데이 스튜디오(Gul's Day)'의 신성걸 PD가 이 '덕업일치'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시드나인의 '토막'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로한, 마구마구, A3까지 15년간 갖가지 프로젝트에서 개발 경력을 쌓아온 그는 잠시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않는 진성 게이머다. 그뿐이랴, 게임이 아니더라도, 흔히 '덕을 쌓는다'라고 말하는 갖가지 취미활동을 모조리 섭렵하고 있다. 개발사를 처음 찾아서 기자가 본 광경이 책상 위에 거대하게 놓인 '스타 디스트로이어' 모형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오랜 시간 함께해온 팀원들과 함께 하나의 게임을 완성했다. '내가 영웅일 리 없어'. 처음 들었을 땐, 이게 무슨 게임인가 싶었지만,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해가 갔다. 아무 관계도 없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영웅이 되어버리는 이야기. 신성걸 PD는 자신도 모르게 영웅이 되어버린 이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어냈다.

선정릉 근처에 위치한 YJM게임즈. 그곳에서 신성걸 PD를 만날 수 있었다. 다른 모바일 게임과 관련된 인터뷰와는 다소 달랐다. 게임의 시스템보다 게임의 컨셉을 말했고, 과금 제도보다 게이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논했다.

▲ '걸스데이(Gul's day) 스튜디오' 신성걸 PD



Q. 걸스데이 스튜디오에 대해 먼저 묻고 싶다. 설명해줄 수 있나?

오랜 기간 같이 게임을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길게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십수년간 함께 해왔다. 걸스데이 스튜디오의 특징이라면 각각 구성원들의 취향에 공통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꼽고 싶다. 쉽게 말해 '덕질'이라고 하는 그런 것 있지 않나.(웃음) 일본, 서구권의 다양한 게임들과 피규어,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파고든다. 서로 다른 취미를 갖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는 모두가 공감한다.

한번은 신입 개발자의 질문 하나 때문에 전 개발팀이 게임 하나 가지고 5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선호하는 게임상도 비슷하게 맞춰졌다. 철학이 들어간 시나리오 중심의 게임. 그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이자, 만들고 싶어 하는 목표이다.


Q. '내가 영웅일 리 없어'를 처음 생각한 건 언제이며, 어떤 계기로 만들게 되었나?

처음 게임을 만들기로 한 건 1년을 훌쩍 넘어가는 과거였다. 처음에는 구체적인 계획 없이 'RPG'라는 코드 하나로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게임의 기본을 이루는 기조가 없이 게임을 만들다 보면 결국 양산형 게임을 만든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만들었다. 아마 그때가 1년 2개월 정도 전일 거다.

RPG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특별하지 않다.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로 하고 의견을 모은 후, 우리는 갖가지 모바일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았다. 그리고 각자의 의견을 다 모으자, 자연스럽게 결론은 RPG로 굳어졌다. 지금껏 만들어온 게임도 RPG이다 보니 태생을 벗어날 수가 없었나 보다.



Q. 캐릭터를 모으고 키우는 RPG류 게임은 이미 시중에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다. 누가 봐도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드는 격인데 부담은 없나?

없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RPG 그거 다 비슷비슷하지 않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RPG를 만들어왔고, RPG를 가장 잘 만드는 팀이다. 때문에 나름대로 개발 기조를 세웠다. "잘 되어 있는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우리가 잘하는 부분을 덧붙이자"였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 내 세계관을 유저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익숙한 시스템을 반영하면서 우리만의 색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미 모바일 게임 시대가 열린지도 몇 년의 세월이 지났고, 모바일 기반의 게임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충분히 이루어진 상황이다. 기존의 레벨업 방식이나 인터페이스와 같은 '보편적 부분'을 비틀어 우리만의 색채를 표현하는 것은 좋게 말해 도전이지만, 그만큼 큰 위험 부담을 갖고 있다. 이미 이런 코어 시스템들은 게이머들의 뇌리에 박혀 있고, 이를 바꾸는 것 자체가 위험해졌다는 말이다. 때문에 우리는 기본을 바꾸기보단, 우리만의 색채를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Q. 시간상으로 유추해볼 때, 개발을 시작했을 즈음엔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3D 액션 RPG가 대세를 이룰 때였다. 당시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부분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맞다.(웃음) 블레이드를 시작으로 나오는 액션 RPG들을 보면서 "아 이제 코어 RPG의 시대가 오는 건가..."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라졌다. 지금의 모바일 게임들은 커뮤니티성과 '실시간'을 살린 게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지 혹은 우직하게 가던 길을 가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생각을 비틀어보니 답이 나왔다. 원래부터 유행하던 '덱 세팅형 RPG'와 액션 RPG 모두 각각의 장점이 있었다. 우리는 모바일 게임의 변화 흐름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이 장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게임에 써먹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때문에 현재 우리 게임의 모습을 보면, 이 모든 요소가 조금씩 녹아 전혀 다른 게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모바일 말고도 다른 플랫폼의 게임들을 개발해온 것으로 아는데, 모바일에 전력투구한 이유가 따로 있나? 그리고 '내가 영웅일 리 없어'가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이 있나?

사실 웹게임도 만들어 보고 한때 뜰 거라던 스마트TV로도 게임을 만들어 보았는데, 전부 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뭐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경험이었다.(웃음) 때문에 이제는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처음 게임을 기획할 때 사실 좀 막막했다. 덱 세팅형 RPG들은 이미 기존의 거물들이 시장을 꽉 잡은 상황이었고, 새로 등장하는 게임들은 죄다 액션 RPG였다. 게임의 전체적인 톤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큰 영감을 준 것이 미국의 '마블 코믹스'였다. 알다시피 마블 코믹스 작품들은 평범한 히어로 만화였지만 실사 영화화되면서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지도와 인기가 동시에 높아졌다. 다가설 수 없는 만화 속 인물에서 진짜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상 속 인물이 된 것이다. 쫄쫄이 팬티보다는 그럴싸한 옷을 입는 주변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들이 히어로가 된다면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까. '내가 영웅일 리 없어'는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코드가 잡히니 자연스럽게 컨셉과 시나리오가 나왔고, 게임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앞서 말했듯, 다양한 장르에서 얻은 영감을 융합해 만든 시스템을 덧붙였다. 코어 액션 RPG의 특징인 실시간 액션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덱 세팅형 RPG의 재미인 '모으는 재미'도 살렸다. 다른 장르의 다른 특징들이 뭉쳐져 있지만, 그 어느 쪽과도 같다고 할 수 없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Q. 그럼 실질적으로 게임 내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나?

CBT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뽑아보았다. CBT에 앞서 우린 크게 6~7종의 콘텐츠를 준비했다. 시나리오, PVP, 파밍용, 무한히 이어지는 스테이지 등이었는데,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유저분들은 콘텐츠의 수에 부족을 느꼈고, 더 많은 콘텐츠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강 작업에 나섰고, 지금은 큰 카테고리로만 11가지 정도의 콘텐츠가 만들어져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게임들이 아이콘으로 화면을 수놓는 걸 보면서 처음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 같고, 사실 이제는 국산 게임도 큰 차이가 없다. 어떻게든 즐길 것이 많은 게임은 좋은 게임이니까. 게다가 요즘은 중국 게임들도 워낙 잘 만들어져서 국산 게임이라는 이름표가 주는 이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콘텐츠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Q. 모바일 게임은 개발만큼이나 라이브 서비스도 중요하다. 서비스 이후 업데이트 주기는 어느 정도 생각해 두었나?

다들 믿지 않는 분위기지만 1주마다 업데이트하는 게 목표였다. 사실상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는 게임들의 공통점이 유저들의 피드백을 굉장히 빨리 수용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주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고, 2주에 한 번 정도로 생각 중이다.



Q. 사실 2주 1회 업데이트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개발팀 고생하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은데 다른 멤버들은 다 알고 있나...?

사실 다들 아직 모르고 있다. 나중에 넌지시 말해줘야겠다.


Q. 과금 제도에 대해서도 안 물어볼 수 없다. 게임 내 비즈니스모델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많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중국식 비즈니스모델의 가장 큰 특징이 VIP 시스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돈을 달라고 하는 느낌이 크다. 단발적인 매출을 끌어올리기엔 도움이 되겠지만,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거부감도 생기는 게 사실이다.

'내가 영웅일 리 없어'의 과금 시스템은 시간을 사는 개념이다. 돈을 들이면 남들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반대로 시간을 들이면 과금을 한 유저를 넘어서는게 가능하다. 결제하면 편해지지만, 결제가 없다고 무조건 약해지는 시스템은 아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과금한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일이었다. 과금했다고 한 번에 확 강해지거나, 과금하지 않았다고 게임 내에서 허들을 느끼게 되면 실패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모든 개발팀이 미친 듯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끝장을 볼 때까지 밸런스 테이블을 수정해나갔다. 솔직히 말해 정말 힘들었지만, 올바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Q. 국내 오픈이 머지않았다. 모바일 게임의 글로벌 진출은 이제 어느 정도 공식에 가까운데, 글로벌 계획은 구상되어 있는가?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국내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괜히 처음부터 욕심을 내서 글로벌을 노리다가 국내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게임을 안정화하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글로벌을 추진할 생각이다.

일단 게임부터가 빠른 글로벌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영웅일 리 없어'만의 세계관과 가치이지만, 세계 각국의 게이머 정서는 다들 다르고 문화권에 따라 선호하거나 혐오하는 코드가 나누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글로벌 원빌드나 빠른 세계 진출을 꾀하다가는 게임의 핵심이 오히려 엎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진출하게 되더라도 그 나라의 정서와 문화에 맞춰 완벽하게 로컬라이징을 한 후 추진할 예정이다.


Q. 1년을 넘게 개발한 게임의 출시가 목전에 와있다. 하고싶은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더 하고싶은 말이 있나?

게임을 만들면서 내내 꿈을 꾸었다.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냐는 자문에 내가 플레이해도 항상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보다 더 나아가,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유저가 짚어주고,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더 좋은 방향을 잡아가는 게임. 그것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게임이다. 게이머 분들이 우리 게임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쓰고, 우리가 더 많은 금전적 이득을 얻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더 많은 분이 더 많은 시간을 즐기고, 그로 인해 충분한 재미를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