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는 다양한 포지션이 존재합니다. 각 챔피언은 자신의 특색에 맞는 포지션에서 활약합니다. 누커와 탱커, 원딜과 서포터 등 다양한 역할 군이 존재하는데요. 챔피언의 패치나 아이템, 혹은 메타의 변화로 기존에 사용하던 역할 군 이외의 다른 포지션에서 활약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지난 롤챔스 스프링 시즌부터 등장한 탱에코는 기존에 설계된 AP 누커가 아닌, 특성과 아이템의 영향으로 탱커로 사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포지션에 변화를 겪은 챔피언은 많습니다. 시즌2와 시즌3의 미드 메타를 풍미한 그라가스는 스킬 재설계로 더는 미드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Q 스킬은 즉발 사용 시 페널티를 갖게 되었고, 높던 AP 계수 또한,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준수한 탱킹력과 준수한 CC기, 그리고 강력한 진형 파괴나 배달이 가능한 궁극기의 유틸성은 변함없었습니다. 이런 장점을 충분히 발휘해, 그라가스는 정글에서 활약하게 되었는데요. '각도기'와 '술통 그 자체'라는 별명을 낳은 강력한 정글러 그라가스가 이번 롤챔프 탐구생활 25번째 주인공입니다.


▲ "네가 사는 거라면 나도 끼지!"


■ 이렇게 뚱뚱한데, 미드일리 없어! 덩치에 맞지 않는 플레이를 하던 그라가스!

그라가스는 출시 당시만 해도 근접 AP 딜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E 스킬인 몸통 박치기가 상대에게 돌진하는 스킬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커다란 몸집과 생김새 때문이었을까요? 그라가스는 출시 초반, 탑 라인에서 딜탱형 챔피언으로 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메타인 '브루저' 메타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못생긴 외모 때문에 비주류 챔피언으로 자리 잡았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시즌2 중반에 이르러 그라가스 스킬에 붙은 높은 AP 계수에 주목한 사람들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딜탱형 라이너가 아닌 미드 AP 누커로서의 연구였는데요. 그 당시 Q 스킬인 술통 굴리기에 붙은 0.9의 AP 계수와 R 스킬인 술통 폭발에 붙은 1.0의 AP 계수는 AP 누커로 활약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습니다.

시즌2부터 시즌3까지의 그라가스는 Q 스킬에 지연 시간이 없었고 W 스킬인 취중 분노는 마나 소모가 없었으며, 소량의 마나를 회복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Q 스킬은 럭스의 E 스킬처럼 견제와 포킹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패시브와 W 스킬의 활용으로 준수한 라인 유지력을 가졌던 시절입니다. 또한, E 스킬인 몸통 박치기는 짧은 재사용 대기시간으로, 낮은 레벨부터 당시 사기라고 불리던 카사딘급 기동력을 갖게 해준 스킬이었습니다. 당시 미드 라이너로서의 평가는 '완전체'에 가까운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라가스는 현재 사용되는 운용 방식과 정반대로 운용되었습니다. 현재 그라가스가 운용되는 방식인, E 스킬을 이용한 진입과 진형 파괴 or 토스 플레이가 아닌, Q와 R 스킬을 이용한 포킹과 누킹 그리고 E 스킬을 활용한 도주가 주된 플레이 방식이었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치고 빠지는 플레이를 더욱 자주 했으며, 덩치에 안 맞는 얍삽한 플레이를 일삼았었죠.


▲ 2013년 롤드컵에서 자주 등장한 미드 그라가스! 지금과는 다른 얍삽한 플레이 방식


이런 '완전체'에 가까운 그라가스가 본격적으로 대회에도 등장하며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미드의 핵심 픽으로 자리 잡은 그라가스는 모든 면에서 좋은 성능을 보였습니다. 갱킹 호응과 회피, 적절한 견제, 라인 유지력과 라인 클리어 모두 사기급 성능을 자랑했던 시기입니다.

이런 찬란한 전성기도 잠시, 과도한 성능에 대한 패치를 기존에 가지고 있는 챔피언의 콘셉트와 게임 플레이가 맞지 않는다며, 리메이크를 진행하게 됩니다. 적 딜러를 순식간에 삭제시키는 누커는 '마법사'였나봅니다. '그라가스'는 이리저리 살펴봐도 마법사와는 거리가 멀긴 합니다. "싸움꾼"의 컨셉으로 돌아온 그라가스는 더이상 미드 누커의 역할을 소화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근접 싸움꾼?' 그라가스 챔피언 콘셉트에 맞는 패치 진행


■ 크게 조정된 그라가스! '저격수'에서 '싸움꾼'으로!

4.5 패치에서 그라가스는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거대한 몸집과 달리, 얍삽(?)한 전투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던 그라가스를 근접 전투에 초점을 맞춘 밸런스 패치가 진행되었습니다. 기존에 Q와 R 스킬의 높은 주문력 계수를 활용한, 포킹과 누킹이 가능한 챔피언에서, 스킬의 효과를 바꿔 근접 전투에 강한 캐릭터로 변모시켰습니다.

기존 캐릭터 콘셉트에 맞는 방향으로 수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죠. 커다란 몸집과 달리 술통으로 일명 짤짤이를 넣던 그라가스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먼저, Q 스킬인 술통 굴리기는 둔화 효과가 추가되고 마나 소모량이 감소했지만, 슬로우 효과를 주기 위한 지연 시간이 추가되었습니다. 술통을 던져 곧바로 터트린다면, 적은 대미지와 둔화 효과를 주게 되었죠.

다음으로 W 스킬인 취중 분노에는 마나 회복 대신에, 그라가스의 다음 공격을 '체력 비례 대미지'를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W 스킬 사용 후, 강화된 평타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근접 전투에 용이한 스킬로 만들었습니다. E 스킬인 몸통 박치기에는 기존에 없던 '스턴' 효과를 추가함으로써 근접 전투에서의 이점을 대폭 강화시켰습니다.


▲ 4.5 패치에서, 큰 폭으로 하향된 술통 폭발의 주문력 계수와 피해량


이와 같은 패치로 그라가스는 미드에서의 누커보다 탑 탱커로 기용하곤 했습니다. 잠깐 정글러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당시 정글 메타에 한 획을 그은 '야생의 섬광'덕에 활약하기 힘들었습니다. 이후 그라가스는 핵심 아이템으로 영겁의 지팡이, 얼어붙은 건틀릿을 이용하는 딜탱형 챔피언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E 스킬에 추가된 '스턴' 효과와 W 스킬의 체력 비례 대미지가 그라가스 운용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탑에서 지낼 수 있던 시간도 짧았습니다. 이어 진행된 4.13 패치에서 그라가스는 라이너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라인 클리어 능력을 잃고 맙니다.


■ 탑도 안돼, 미드도 안돼! "어디로 가야 하오?"

더는 라이너로 설 수 없게 된 그라가스가 정체성 혼란에 빠집니다. "어디로 가야 하오?"라는 물음에 걸맞게, 그라가스는 자신의 살길을 찾아, 전 라인에 연구가 진행되던 도중, 정글러의 적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탑 라이너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부족한 라인 클리어 능력과 라인에서의 유지력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되었기 때문에, 정글에서 활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정글러 기용의 이유는, 하향 조정으로 더는 견제 스킬로 사용할 수 없던 Q 스킬인 술통 굴리기를 중립 몬스터에게 안전하게 최대 대미지를 줄 수 있었고, 당시 정글 아이템이던 '정령석'으로 유지력에 차질을 주었던 마나 회복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E 스킬에 추가된 '스턴' 효과는 강력한 갱킹력과 안전한 정글링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주는 스킬이 되었습니다.


▲ 그라가스에게서 라인 클리어와 유지력 모두를 가져간 4.13 패치


이렇게 정글에서 활약을 시작한 그라가스는 이후, 패치에서 등장한 '마법 부여 : 잿불 거인'의 등장으로 더욱 힘을 받게 됩니다. 강력한 CC기를 보유한 그라가스는, 팀 파이트에 도움이 되는 스킬과 탱킹력, 진영 파괴 능력까지 정글러로 활용하기 좋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셋의 장점과 W에 붙은 체력 비례 대미지 덕에, AP 아이템 대신 탱커형 아이템을 꾸릴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5.17 패치에서 W 스킬의 체력 비례 대미지의 수치가 하향 조정되었고, 자주 쓰이지 않다가 6.3 패치에서 뛰어난 유틸성을 얻게 됩니다. 먼저, Q 술통 굴리기 스킬을 즉발로 터트려도, 둔화가 100% 적용되도록 바뀌면서, 그라가스의 갱킹력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됩니다. 또한, W 스킬인 취중 분노에 범위 공격 효과가 추가되어 정글링 안정성 면에서 큰 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언제나 큰 변수로 작용하는 궁극기 '술통 폭발'은 도주기가 부족한 딜러에게 항상 큰 위협을 넣을 수 있습니다. 강력한 탱킹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주요 딜러를 순식간에 토스해 자르는 능력은 발군이고, E 스킬인 몸통 박치기와 점멸 그리고 술통 폭발까지 활용한 플레이는, 반응할 틈도 주지않는 강력한 CC 연계기입니다.


▲ 기본적으로 도주기가 부족한 '뚜벅이'에게 강한 압박을 넣을 수 있는 그라가스!
(출처 : 짜장면마시쩡님의 팬아트 '뱀술을 담그려는 그라가스')


■ 정글러로 자리 잡은 그라가스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

정글러로 기용되던 그라가스에게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수 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바로 새로운 정글 아이템인 '룬의 메아리' 추가인데요. 기존에 잿불 거인을 이용한 탱킹력과 유틸성으로 승부를 보던 그라가스에 딜적인 면을 보충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 등장했습니다. 보통 '룬의 메아리' 아이템의 등장 이후로 대부분의 AP 정글러들이 힘을 받았는데, 특정 정글러와의 궁합이 더 좋았습니다.

캐리형 정글러로 지난 시즌을 풍미한, 니달리는 룬의 메아리와의 시너지가 높았고 룬의 메아리를 제대로 활용한 정글러입니다. 뒤를 이어 시너지가 좋은 챔피언으로 엘리스와 그라가스가 있었습니다. 비록 캐리형 정글러에 떠밀려 2티어 자리에 있었지만, 집중적으로 벤 목록에 오르던 캐리형 정글러를 대체할 정글러로 자주 기용되고는 했습니다.

아프리카 프릭스의 '익수' 전익수는 지난 스프링 시즌에서 그라가스를 탑에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2티어 자리에 있던, 그라가스를 활용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kt 롤스터의 '스코어' 고동빈은 그라가스를 정글로 기용하며, 전장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부터 드문드문 등장하며, 좋은 평가와 활약을 펼쳐온 그라가스가 이번 섬머 시즌에서도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 2016 롤챔스 섬머 5주차, 그라가스 밴픽 통계


먼저 섬머 시즌에 그라가스가 등장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캐리형 정글 메타가 가고 탱킹형 정글 메타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너프로 성장력에 제동이 걸린 캐리형 정글러와 잿불 거인의 상향이 맞물려 정글 메타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또한, '양날의 검'인 캐리형 정글러보다 '안정성' 있는 탱커형 정글러의 선호도가 높아졌고, 활용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팀 단위 게임에서 탱킹형 정글러의 기용은 당연합니다. 또한, 유리한 싸움을 가져갈 수 있는 CC 기가 있다면 더욱 그렇겠죠. 탱커 역할과 CC 기의 이점을 살린 그라가스가 이번 롤챔스 섬머에서 앞으로도 자주 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그라가스의 등장으로 기대되는 선수 한 명이 있는데요. 바로 kt 롤스터의 '스코어' 고동빈 선수입니다.

그라가스를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선수인 스코어는 '술코어', '술통 그 자체' 등 그라가스에 관련된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적인 술통 폭발의 활용으로, 주요 딜러를 순식간에 잡아버리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고는 합니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의 토스나, 반응하지 못할 찰나의 순간에 이어지는 CC 연계로 전장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직은 스코어 선수가 그라가스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 숨겨두고 있는 걸까요? 날카로운 술통 폭발의 활용으로 전장을 지배하는 스코어의 그라가스 플레이가 기대됩니다. 또한, 다른 선수 역시 그라가스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섬머 시즌 그라가스의 등장은, 술통 폭발처럼 시원한 한방으로 게임의 판도를 뒤집는 멋진 경기를 기대하게 합니다.


▲ '술통 그 자체'의 플레이, 날카로운 술통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