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가 없는 업계'

아마 현재의 게임업계를 말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게임업계는 젊다. 아니, 그것을 넘어 어리다. 게임업계 1세대를 이루는 일원들이 여전히 현역이며, 이들이 정년을 맞이하려면 아직도 한참의 시간이 남아 있다. 산업의 규모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의심이 들 때도 있지만, 아직 게임 산업 자체가 어린 산업인 것은 맞는 말이다.

팔팔게임즈의 최승훈 대표는 이 어린 업계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함께해온 1세대 중 한 명이다. 꽤 큰 규모의 개발사에 입사해 십여 년간 대외 업무를 보았고, 누가 봐도 건실한 위치에 올랐다 싶을 때 돌연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팔팔게임즈'라는 이름으로 그의 업계 경력 2막을 시작했다.

궁금했다. 그가 말해준 이전의 경력이라면, 굳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살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째서 그는 중년의 나이에 새 도전에 나서려고 하는가. '차이나조이2016'의 마지막 날, 행사장 근처 호텔 로비에서 최승훈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첫인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지만, 그의 만만치 않은 경력을 들어왔기에 살짝 긴장되었다. 업계 후배로서 선배에게 느끼는 일종의 경외감이랄까. 비어 있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꺼냈고, 그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 팔팔게임즈, 최승훈 대표

■ 최승훈 대표 약력

- '트리거 소프트' 당시 '장보고전' 개발 참여
- 2001년 '엠게임' 입사 후 해외 서비스 담당, 해외 지사 지사장 역임
- '열혈강호 온라인', '나이트 온라인' 등의 해외 서비스 담당


Q. 차이나조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 것 같다. 지난해에도 상하이를 방문했었나?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 소속으로 왔지만, 매년 차이나조이를 방문했다. 무소속으로 온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동향을 살피고 시장 상황을 파악하러 온지라 변변한 부스도 차리지 않았지만, 매우 많은 약속이 잡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보람은 있는 것 같다.


Q. 오래 일하던 회사를 나와 팔팔게임즈를 창업하게 된 이유가 있나?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현재 내 동료는 틀 안에서 개발만을 해왔다. 선택의 폭이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해야만 했다. 더 많은 선택지를 얻고 싶었지만, 기회가 오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우리가 직접 기회를 만드는 것. 더 많은 수익 창출의 기회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시장에 맞춰 다양한 장르의 모바일과 웹 게임을 다루고 싶었고, 독자적으로 만든 콘텐츠를 세계로 내보내고 싶었다. 과거 발품을 팔아 해외로 보낸 게임만 해도 꽤 되는 편이다. 직접 만든 콘텐츠라면 더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겠나. 한국인의 시선이 아닌, 세계의 눈으로 개발, 서비스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Q. 팔팔게임즈라는 이름이 꽤 특이하다. 좋은 뜻이 있는건가?

아무래도 1세대이다 보니 나이가 먹어서 이런 이름밖에 생각나지 않는 것도 이유인 것 같고, 중국어 발음으로 '빠빠'가 아버지라는 뜻과 돈을 많이 번다는 뜻을 같이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계의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돈을 많이 버는 아빠. 외우기 쉽지 않나. (웃음)

▲ 처음엔 좀 의아했던 사명에도 의미가 있었다.


Q. 구체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

작년 12월부터 준비해 9월 초에 타이틀 하나를 런칭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몇몇 타이틀을 준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기반 확보와 수익원 창출에 힘쓰는 중이다. 안정적인 모바일 개발 기반을 만든 후 세계로 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컨셉이라 보면 될 것 같다.

10월에 글로벌 카지노 사이트를 오픈 예정이며, 본격적인 자체 개발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이뤄질 것 같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선택의 폭을 취하고 싶었다. 너무 오랫동안 개발만 하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적더라. 나중에라도 여유가 되면 사회 공헌도 생각 중이다. (웃음)


Q. 올해 차이나조이를 볼 때, 현재 국제 게임 시장의 흐름은 어떤 것 같나?

세계 시장의 초점이 중국으로 몰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중국 게임이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세계화의 흐름을 탈 것 같다. 무서운 것은 중국 정부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산업에 어마어마한 양의 투자를 한다. 거기에 추가로 중화사상도 빠짐없이 집어넣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마 2-3년 후에는 공룡이라 불리는 게임사들이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지스타는 차이나조이나 다른 대형 게임쇼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규모다. 게다가 B2B로 중심이 기운 느낌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성마다, 지방마다 게임쇼가 있고, 전시회가 있다. 멀리서 보면 거의 매월 중국 어딘가에서는 게임쇼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게이머의 손에 맞춰 게임을 바꾸고, 나아가 세계의 손에 맞추고 있다.

부러우면서도 두렵다. 한국 게임은 훌륭하고, 아직 중국보다 더 나은 개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순환 없는 업계가 이어진다면, 창조적인 게임이 더는 등장하지 않고 도태되지 않을까 싶다. 매년 중국에 올 때마다 무섭다. 많은 사람이 "그래봐야 중국 게임이다", "그래도 게임 자체는 한국이 더 낫다"라고 말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 언제까지 중국 게임이 한국 게임보다 밑에 있을까?


Q. 중국 모바일 시장이 국내 시장에 위협적이라는 뜻인가?

지금은 중국 회사에 우리가 당하고 있다. 중국 퍼블리셔가 게임을 사지 않으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업체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퍼블리싱이나 개발이나 중국이 점점 상대적 우위를 가져간다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좋은 게임이나 콘텐츠를 갖고 있어도, 그쪽이 우리에게 팔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가져다 바쳐야 하는 현실이다. FTA 이후 자체 서비스가 법적으로 가능해졌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현지 퍼블리셔에 기대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서비스를 하게 되면 퍼블리셔가 70에서 80퍼센트를 떼어간다. 심한 곳은 90%를 가져가는 곳도 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들은 그 돈으로 재투자하고, 시장을 키우며 정부에서는 이걸 지원한다.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Q. 그럼 앞으로 국내 게임업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끊임없이 보고, 시선을 키워야 한다. 게임업계 사람들이 게임쇼에 가는 이유는 게이머로서의 이유도 있지만, 업계의 흐름을 살피고,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가끔 게임쇼를 찾는 소규모 게임사들이 있지만, 소규모 게임사들만으로는 안된다. 기업들이 왜 게임쇼에 참전하겠나. 게임쇼에 참전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게임이 세계를 선도하는 게임 중 하나라는 뜻과 같다. 우리의 게임을 세계에 맞추고, 또 세계의 시선을 우리 게임에 맞춰나가야 한다.

책상 앞에 앉아 100시간을 개발하면 그만큼의 업무 성과가 나올 거다. 하지만 그 나흘 남짓한 시간 동안 게임쇼를 방문하고, 우리의 경쟁자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보는 것이 더 값지지 않을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걸어가면 어떻게 하나. 적어도 방향은 알고 걸어야 하지 않겠나.

▲ 게임쇼에 참전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기 마련


Q. 누군가는 모험이라고 하고, 또 도전이라 하지만, 굴레를 벗고 자유를 찾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 와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15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게임업계에서 일했다. 트리거 소프트에서 장보고전을 만들 당시부터 했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망할 것만 같았다. 북경이고 상해고 게임을 제대로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알량한 자만에 빠져 길을 잃었던 거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중국은 걱정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불평도 많았다. 부족함을 몰랐으니까. 나름대로는 업계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스스로 세계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으니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저 내가 조금 더 빨랐을 뿐, 같은 우물 안에 있던 거였다. 그때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었으니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게임 산업의 인프라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다. 게임사들은 인력이 없다고 말하고, 젊은이들은 그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게임을 만들려 한다. 잘 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스튜디오를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와서는 다 조그만 외주 업체나 치킨집을 열어 살아가고 있다. 기존 개발자들은 제자리에 안주하고, 젊은 사람들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길을 택하게 된 것 같다. 기존 회사에서 내가 뭐하겠나. 돈은 많이 받겠지. 하지만 내가 하던 일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 내가 회사에 있어봐야 짐밖에 더 되겠나. 결국, 나같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산업이 정체되는 거다. 그 즘 되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스스로 발로 뛰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야겠구나."

▲ 대화가 끝나는 순간에도, 그는 중국을 무서운 나라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