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노트 1편이 나간 직후, MVP 피닉스와 OG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MVP 피닉스의 2:1 승리로 끝났죠.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MVP 피닉스 스위트룸에 있던 코칭스태프분들과 저는 한타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목을 아끼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고, 그 결과 목이 쉬어버렸습니다.

MVP 피닉스가 OG를 꺾은 것이 해외에서도 굉장한 화제였는지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수들이 스위트룸에 채 복귀하기도 전에 ESPN을 비롯한 해외 유명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볼 일이죠.

스위트룸에 복귀한 MVP 피닉스의 선수들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가장 힘든 상대를 꺾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죠. 'MP' 표노아 선수는 3세트에서 대활약을 했던 '포렙' 이상돈 선수의 도끼전사를 떠올리면서 "게임하는 동안 옆 자리에서 계속 봤는데 경악을 하면서 봤어요. 진짜 너무 잘하더라고요"라며 극찬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상하이 메이저와 마닐라 메이저 당시 승자전 1라운드에서 이기고 2라운드에서 연속으로 미끄러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흥분을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죠.


선수들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ESPN에서 온 기자분이 MVP 피닉스 선수들을 데리고 인터뷰실로 갔습니다. 차례대로 한 명씩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가 익숙한 '큐오' 김선엽 선수와 '페비' 김용민 선수, 'MP' 선수는 통역 없이 알아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포렙' 선수는 '페비' 선수를 통역으로 붙인 채 인터뷰를 했고, 마지막으로 '두부' 김두영 선수의 차례가 됐습니다.

제가 알기로 '두부' 선수는 영어가 꽤나 능숙한 편인데 귀찮았는지 통역으로 한 명만 와 달라고 하더군요. 자리에는 마침 영어 능통자인 '페비', '큐오', 'MP' 선수 셋이 모여 앉아있었는데, '두부' 선수의 요청을 듣고는 '큐오' 선수가 "귀찮은데"라고 말했습니다. '페비' 선수도 "나도 귀찮은데"라고 말하더니 둘이 함께 'MP' 선수를 쳐다봤죠.

무슨 일이 닥칠지 직감한 'MP' 선수는 나지막하게 "아..."라며 탄식을 내뱉었고, '페비' 선수는 "그럼 제일 동생이 가야지, 뭐 방법 있어?"라며 쐐기를 박았습니다. 게임에서도 고통받는 역할인 불쌍한 'MP' 선수는 그렇게 인터뷰실로 끌려갔죠.



▲ 비밀 상점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아침에는 그렇게 날씨가 흐렸는데, 정오가 지나자 작년만은 못해도 꽤 화사한 날씨가 찾아왔습니다. 공원 가운데에 있는 큰 구덩이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맞으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죠.

계속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져서 '바깥에 다니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했던 것은 다행스럽게도 기우가 됐습니다.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모여들어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끔씩 혼자서 잔디밭에 드러누워 야외 스크린으로 경기를 감상했죠. 키 아레나 내부에서는 관객들의 함성 소리 말고는 다른 소리를 듣기 힘들었던 반면 이곳에서는 실시간 반응이 바로바로 와 닿았습니다. 특히 TNC VS OG전에서 OG가 다 이긴 경기를 역전당하자 OG 팬인듯한 한 사람은 욕을 하더군요.

TI의 꽃이기도 한 비밀 상점의 인기도 여전했습니다. 저 역시 비밀 상점에 들르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나질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오늘 말고도 다른 날 기회가 있겠죠?


▲ 한글 응원 문구를 찾아보세요! 사실 저도 방금 알았습니다

키 아레나 내부에서는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응원 문구를 적을 수 있는 낙서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깨끗한 순백색을 자랑했던 판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얼룩지고 더럽혀졌죠. 각자 좋아하는 팀과 선수들을 응원하는 문구를 당당하게 낙서로 남길 수 있는 이곳은 키 아레나의 또다른 핫플레이스가 됐습니다. 처음 낙서판이 열렸을 때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지 모릅니다. 그 외에도 초고퀄리티 미라나 피규어와 수채화로 그린 영웅들 초상화 등 팬들에게 또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죠.


게다가 '큐오' 선수의 팬 사인회 시간도 있었습니다. TI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도 특별히 인기가 많지 않으면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데, 이젠 그 대열에 '큐오' 선수도 당당히 합류할 정도로 세계적 스타가 된 것이죠. 문제는 '큐오' 선수가 자기 이름이 새겨진 카드를 가지고 나왔어야 했는데 막상 팬 사인회 장소에 도착해서 봤더니 '포렙' 선수 카드를 들고 왔다는 것이었지만요. 당황하던 밸브 직원들의 얼굴은 아마 제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OG전이 끝난 후 저녁에는 호텔 로비 바깥에서 '포렙', '큐오' 선수가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가 했더니 방금 OG의 '미라클'을 봤는데 표정이 정말 좋지 않았다나요. 선수들 말로는 원래 '미라클'이 이겨도, 져도 허허 웃는 성격이었는데 지난 마닐라 메이저 때부터 성격이 많이 까칠해지고 지면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호텔 바깥으로 용무를 보러 나오는데 같은 팀 선수들은 옆에 하나도 없고 계속 혼자 다니면서 고독을 씹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큐오' 선수는 "나 '미라클'한테 가서 인사하고 올까?"라고 했고, '포렙' 선수는 "안돼, 지금 걔 기분도 안 좋은데 너 가서 그 웃는 표정으로 '헤이 맨' 이런 거 하지 말라고"라며 뜯어말렸습니다. 물론 기분이 좋은 둘은 그런 대화를 하면서 연신 낄낄거렸습니다. 그리고 그 OG는 오늘 TNC에게...

이제 하루 뒤면 승자전 2라운드 MVP 피닉스 VS 윙즈 게이밍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굵직한 대회 때마다 승자전 1라운드에서 이기고 다음 라운드에서 미끄러졌던 MVP 피닉스는 징크스를 떨쳐낼 수 있을까요? 경기 한 판에 10억 원이 넘는 돈이 왔다갔다하는 TI6에서 MVP 피닉스는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함께 지켜볼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