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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격투 게임은 1980년부터 2000년까지 약 20년 동안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장르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아랑 전설, 용호의 권,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그 시절을 아는 이에겐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수북이 쌓아놓은 동전과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신경전.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승리하려고 일부러 상대 기를 죽이기도 했다. 심리전이라면 심리전이랄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장르인 스타크래프트의 흥행으로 대전 격투 게임은 주류 자리를 내줬다. 그리고 e스포츠가 태동했다. 오늘 인터뷰를 통해 만날 이에게는 참 안타까운 이야기다. e스포츠가 좀 더 빨리 자리 잡았다면, 대전 격투 게임이 좀 더 오래 부흥했더라면, 그는 임요환, 장재호, 이상혁과 같은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올해도 그는 EVO 2016이라는 세계최대 규모의 대전 액션 게임 대회의 스트리트 파이터 부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세 번째로 차지한 우승이다. 그는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대전 격투 게임의 프로게이머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밌으니까.

오늘 인터뷰를 통해 만날 이는 INFILTRATION '인생은 잠입' 이선우다.


해가 쏟아지는 여름, 회사 근처에서 그를 만났다. 185cm 가까이 되는 장신이 태양빛을 가로막았다. 왠지 모르게 어렸을 때 오락실서 만났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맞았던가? 점심을 함께하고 커피숍으로 향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선우는 굉장히 신사적이었고 말도 잘했다. 느낌이 좋았다.

"안녕하세요. 레이저 소속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 INFILTRATION '인생은 잠입' 이선우입니다." 첫인사를 나누자마자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대전 격투 게임 선수가 되려고 한 걸까?

"저는 85년생, 32살입니다. 이 나이대 친구들이 대부분 격투 게임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자랐어요. 스트리트 파이터2를 시작으로 아랑전설, 용호의 권, 킹 오브 파이터, 철권까지. 어렸을 적에 스트리트 파이터에 대해 환상이 있었어요. 스트리트 파이터4부터 본격적으로 빠져들면서 해외 대회를 나갔는데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이런 세상이 있구나. 여기에 인생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있네요."

동년배가 오락실 이야기를 하자 절로 공감됐다. 지금에야 오락실은 영화관 근처에 가야 마주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동네 피시방만큼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면 들리는 수십 대의 게임 BGM들. 다양한 아케이드 게임이 존재했고 그중에서도 대전 격투 게임은 당당히 오락실의 중심에 자리했다.

"국민학교 1, 2학년에 처음으로 오락실에 갔네요. 그때 스트리트 파이터는 사천왕을 모두 고를 수 있는 버전이었어요. 지금에야 리듬게임 같은 체감 게임이 많지만, 그때는 액션 게임 아니면 대전 격투 게임이 대세였죠" 이선우는 옛날이야기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스트리트 파이터2를 한 판도 못했네요. 삼촌뻘 어른들이 동전 수십 개를 쌓아놓으니 할 수가 있나. 오래 있으면 어머니가 찾아오기도 하고(웃음)."

▲ 처음부터 끝까지 장풍만 쏘다가 끝나기도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콩나물과 관련된 추억이었다. 예전엔 콩나물 오백원어치면 검은 봉지 가득 넣어줬더랬다. 심부름 값으로 오백원을 받으면 일부러 백원을 남겨 오락실에 갔다. 그럼 어머니는 귀신같이 쫓아와 등짝에 대력금강장을 남겼다. "당시는 개조 버전도 있었어요. 스트리트 파이터 레인보우 에디션이라고. 점프해서 장풍을 쏘다 보면 화면을 넘어갈 수 있었어요. 불법으로 개조된 게임이었는데 이마저도 인기가 많았네요."

'인생은 잠입' 이선우는 어렸을 때부터 대전 격투 게임에 재능이 있었을까? "재능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뭔가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2012년이었어요. 처음으로 프로 입단 제의도 왔고. 일 년 동안 선수로 활동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게임만 잘하는 것은 부족하구나. 뭔가 해낼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배워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네요.

격투 게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정말 없어요. 대부분이 취미로 할 뿐이죠. 대회에 출전하고, 우승하고, 다시 초청을 받고. 경험이 쌓이니 점점 멀리 보게 되네요. 혼자 배운 거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려웠어요. 그래도 배운 게 가치가 있네요."


대전 격투 게임 종목을 선택한 것이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대전 격투 게임 장르는 이미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EVO 2016이라는 세계 최대의 격투 게임 대회서 우승을 차지해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한국은 나를 몰라요.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격투 게임은 재미도 있고 직관성이 뛰어나 e스포츠 장르의 가치가 충분해요. 격투 게임에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다면, 많은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앞으로도 사람들은 대전 격투 게임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겁니다.

대전 격투 게임의 중흥기가 너무 빨리 왔어요. e스포츠가 태동한 것이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게 2014년 정도네요. 대전 격투 게임은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죠. 아쉽진 않나요? "격투 게임이 오락실 게임이라는 건 편견이에요. 아직도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려면 오락실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실상 콘솔로 넘어간 지 오래에요. 집에서 하는 게 당연한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있죠."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 많이 했어요. 내가 국제대회서 잘하면 되지 않을까? 2012년에는 한 해를 완벽히 쓸었어요. 2014~15년에는 단 한 번도 세계 랭킹 5위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어요. 그래도 안 돼요. 선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방송이 되어야 하고 노출이 많이 돼야 해요. 하지만 대중들은 관심이 없어요."

격투 게임을 하면 레버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키보드로 하면 조작감이 좋지 않아요. 그런데 레버를 살 생각은 잘 들지 않네요. "솔직히 PC게임보다 콘솔 게임이 더 적은 돈이 들어요. PC는 사양도 맞춰야 하고 마우스와 키보드에 점점 공을 들이게 돼요. 콘솔 게임은 스틱만 있으면 되거든요. 문제는 우리나라가 PC 위주의 게임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콘솔 게임 종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들어요."

질문을 바꿔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대전 격투 게임의 핵심은 심리전이다. 끊임없이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예측해서 공격, 방어를 선택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센스다. 이선우는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있을까? "내 것만 하면 안 돼요. 끊임없이 상대를 보고 연구해야 합니다. 왜 같은 기술을 써도 나는 맞고 상대는 맞지 않는지. 계속 영상을 보면서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뛰어넘는 순간이 와요."

"대전 격투 게임은 사람과 상성도 존재해요. 누군가 굉장히 이기기 힘든 사람도 있어요.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캐릭터라도 어떤 사람은 저돌적으로 압박하고 어떤 사람은 뒤로 빠지면서 '니가와' 플레이를 하죠."


이선우는 어떤 스타일의 플레이를 좋아할까? 거칠게 상대를 압박하는 걸까? 혹은 받아치는 것을 좋아할까? "저는 뒤로 빠지면서 공격하는 스타일을 선호해요. 상대를 압박하는 건 멋있지만, 고수들 영역에서는 잘 깨져요. 방어를 잘하면 상대방이 질려요. '이 선수는 건드릴 수 없구나, 잡을 수 없다'라는 느낌을 주는 걸 좋아해요."

▲ 우메하라 다이고와 이선우

대답을 듣고 있으니 문득 욱하고 성질이 올라왔다. 막으면 되니까 라니, 말이 쉽지. "그래서 연구를 해야 해요(웃음).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전략을 준비했는지 봐야 합니다. 완벽한 수비는 연구밖에 없어요. 저도 예전엔 못 이기겠다고 느꼈던 사람이 많았어요. 우메하라 다이고 같은.

다이고는 워낙 전설적이 선수고 수십 년간 장풍을 던져와서 패턴을 읽기 힘들어요. 장풍은 원래 원거리에서 쏘잖아요. 근데 그 친구는 코앞에서도 쏴요.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장풍 모션에 있는 회피 판정을 이용하는 거예요. 당해보고 느꼈죠. 연구밖에 없어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 게임과 AOS 게임이 e스포츠 영역에서 차례로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FPS 장르도 가능성을 비치고 있다. 대전 격투 게임은 e스포츠 분야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격투 게임은 한 번도 e스포츠에서 주류가 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현실이 그래요. 국제대회에서 그렇게 많은 성적을 거둬도 소용이 없어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도 격투 게임을 하는 이유가 뭐예요?

"재미있으니까요. 게임이 재미있으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선수로 활동할 거에요. 그리고 계속 그런 상황이었으면 좋겠어요.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보면 비행기를 타고 세계 각지를 돌면서 싸우잖아요. 저도 그러고 계속 그러고 싶어요.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격투 게임은 세계 최고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보는 맛, 하는 맛 보두 뛰어나고 직관성도 굉장해요. 저희 어머님은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를 봐도 하나도 이해가 안 된대요. 그런데 제가 하는 건 이해가 된다고 하세요. 사람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성적을 보여드릴게요. 스트리트 파이터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