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더위가 기승인 여름, 아르피엘은 새로운 테마의 스토리를 비롯해 더위에 지친 유저들이 수신학원에서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2.0 업데이트를 진행했습니다. 게다가 각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매력적인 목소리 또한 추가 녹음을 통해 완성!

만화 같은 이야기 속 개성 있는 캐릭터가 특징인 아르피엘을 플레이하면서 듣는 성우분들의 목소리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혈남아부터 미소녀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궁금해지기 마련이죠.

그 중에서 지금 게임에 접속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목소리의 주역, 바로 카일과 스마일리를 연기한 정재헌 성우를 만나봤습니다. 팬분들을 위해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정재헌 성우 덕분에 무더위도 잊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미소년에서 미친놈까지! 천의 목소리, 성우 정재헌!




성우 정재헌

MBC 공채 16기, 2002년부터 현재까지 성우 생활 15년차

주요 출연작

◎ 애니메이션

나루토 질풍전 中 데이다라
너에게 닿기를 中 카제하야 쇼타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 中 액셀러레이터
헌터x헌터 中 히소카
원펀맨 中 음속의 소닉
주토피아 中 닉 와일드

◎ 게임

디아블로3 中 임페리우스
그랜드체이스 中 로난 에루돈
사이퍼즈 中 벨져 홀든
엘소드 中 애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中 캘타스 선스트라이더, 교수 퓨트리사이드 등
회색도시 中 허건오, 조용호 등
아르피엘 中 카일, 스마일리




● 만나서 반갑습니다. 소개와 인사 부탁드릴게요.

저는 MBC 16기 성우 정재헌입니다. 아르피엘에서는 카일과 스마일리 두 역할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 역류성 식도염이 있어서 녹음 때마다 컨디션 조절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지금도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살고 있어요. 치료가 굉장히 힘든 병이라서 완치를 위해서는 끊거나 피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거의 풀만 먹고살아야 되거든요. 잠시 그렇게 살아도 봤는데, 그렇게 생활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오히려 몸을 더 해치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즐겁게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니깐 오히려 건강에 더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나름대로 몇 가지만 주의하면은 녹음을 진행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요. 제 나름대로 극복하는 방법을 가지고 녀석과 함께 잘 살고 있습니다.

목 관리를 위해 특별한 방법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저희 같은 성우들은 감기에 걸리는 등 목이 안 좋아지면 생업이 중단되는 사람들이라 그런 것들을 예방하기 위해 신경 쓰죠. 제가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다음 날 녹음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모임이 있어도 컨디션 조절을 위해 참석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감기에 걸려도 병원을 가지 않았는데, 성우 된 후로는 목이 안 좋아지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요. 많은 성우분들이 병원 가서 빨리 치료하기 위해 약을 독하게 써달라고 말하죠. 그리고 목에 좋다는 음식을 많이 챙겨 먹기는 하지만, 그 외에 특별한 관리를 하지는 않아요.


▲ 데뷔 때부터 역류성 식도염을 앓고 있다는 정재헌 성우.




●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언제부터 준비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성우가 꿈이었어요. 그러니깐 중학교 때쯤 부터인데, 학생 때는 특별한 준비를 하기가 힘들어서 막연히 소리를 따라 해보는 수준이었죠. 그러다가 대학에 입학할 때 성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연기 공부가 가장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그런 분야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깐 그런 학과는 왠지 장동건씨나 원빈씨처럼 잘 생긴 사람들이 가는 곳 같아서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됐어요.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그나마 성우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게 신문 방송학과 같았어요. 정말 큰 실수였죠. (하하) 성우가 되는데, 0.1%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혀 다른 학과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학점과 토익 점수를 올릴 때 저는 토익 시험을 한번도 치르지 않고, 계속 따로 성우 공부를 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학원에서 계속 성우 공부를 이어나갔는데, 운 좋게 1년 만에 본 시험에서 바로 합격하면서 성우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어느덧 대표작이 상당히 많아지셨는데, 그만큼 팬들 사이에서 다양한 별명이 붙여졌다고 해요.

그런 별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 쇼타'를 연기하고 붙여진 '정재하야'였던것 같아요. 그 당시 거의 80명 정도되는 성우분들이 경쟁을 한 파격적인 오디션이었는데, 그전에도 후에도 그런 오픈 오디션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고 참가를 했는데, 역할을 맡게 돼서 나름대로 일본 원판하고는 다른 느낌으로 해석해서 연기를 했죠.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그래서 붙여주신 별명이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액셀러레이터'에서 비롯된 '정젤러레이터'나 최근 '주토피아'의 '닉 와일드' 연기를 보신 분들이 '정재허닉'이라고 불러주시는 등 관심을 가져주셔서 저로서는 참 감사한 일이죠.

그리고 팬분들이 붙여주신 건 아닌데, 최근에 다른 성우분들과 함께 결성한 '동네 오빠'라는 그룹에서 '꿀오빠'라는 별명을 스스로 붙였어요. (하하) 정재헌이란 이름에서 헌이가 허니와 비슷한데, "허니가 꿀이니깐 꿀오빠라고 하면 어떨까?"라고 시작한 게 다들 좋아해 주셔서 감사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 성우 그룹 '동네 오빠'에서는 꿀오빠로 불리는 중.




● 팬들 사이에서는 미소년부터 미친놈까지 폭넓은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있으신데, 특히 악역으로 인상이 깊으신 것 같아요.

그게 아무래도 팬분들이 듣고 기억하기에 임팩트 있는 역할들이 그런 매력적인 악역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악역이라도 매력이 없으면 팬들에게 어필을 할 수 없을 텐데, 저한테 맡겨주시는 악역이 대부분 자기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고, 외모도 주인공 못지않게 매력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많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반적인 주인공들보다는 연기하는 즐거움이 있는 악역이 더 좋긴 해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많이 생기고, 연기할 때도 즐겁기 때문에 성우로써 매력적인 연기는 악역이 더 크다고 생각돼요.



● 어떤 캐릭터의 연기가 고착화되면, 그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 연습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저는 성우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연기에 대한 욕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연기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자기가 발전하기 위한 노력도 할 수 있거든요. 자기 연기에 관심을 가져야 지금 잘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벽을 깨달을 수 있고요.

저는 처음에 연기를 굉장히 못하는 성우였어요. 운 좋게 빨리 성우는 되었는데, 동기들에 중 절반이 다른 방송사에서 2년간 성우 생활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라 실력 차이가 엄청 컸죠. 그래서 "어떻게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고민을 하면서 새벽까지 연습하고, 선배님들 만날 때마다 조언도 들으면서 노력했습니다.

제가 부딪친 벽을 하나하나 깨나가다 보면 재밌는 게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다양한 소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스스로 놀라게 되더라고요. 그런 게 즐거워서 PD 님들이 역할을 주시기 전에 혼자 연습하며 미리 준비했던 것도 있었죠.

저도 처음부터 미친놈 역할을 연기한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처음에는 순둥이 같고, 예쁜 소년의 역할을 쭉 하다가, '데이다라'나 '액셀러레이터' 같은 악역의 제안이 들어오게 된 거죠. 그때 PD님들은 "저 성우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지니고 계셨을 텐데, 제 나름대로 소화를 해냈기 때문에 지금처럼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PD 님들의 입장에서도 성우에게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한 가지뿐이라면 그걸 벗어나는 캐스팅을 고려하기는 힘들 텐데, 그런 벽을 깰 수 있는 도전적인 연출자를 만나는 것도 성우에게는 큰 복이죠. 성우가 아무리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해도,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기회가 생기지 않으니깐요. 하지만 기회가 생겼을 때 놓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해요.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는데, 누구나 다 기회를 잡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는거든요.


▲ 애니메이션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액셀러레이터.




●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최근 작품들 중에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이 샘솟는 캐릭터는?

최근에는 음.. 마블의 데드풀이요. (하하) 이게 다른 성우분이 기내 상영 영화로는 더빙을 하셨는데, 캐릭터가 많이 강하잖아요. 그래서 매력이 있죠. 19금을 달고, 100% 오리지널 느낌을 살려서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배트맨 대 슈퍼맨을 보면서 렉스 루터도 연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기가 어려운 만큼 도전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매력적인 악역 연기에 끌리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성우들이 유아용 작품들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깐, 연기할 때 강하고 거친 표현에 대한 욕망이 좀 있는 것 같아요.



● 그럼 팬들이 연기를 원하는 캐릭터도 따로 있나요?

네. 예전부터 꾸준히 말씀하신 캐릭터들이 있죠.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게 '쿠로코의 농구'라는 작품에서 '키세'라는 캐릭터와 '하이큐'의 '오이카와', '진격의 거인'의 '리바이', '겁쟁이 페달'의 '미도스지' 등 늘 얘기해 주시는 캐릭터들이 몇 개 있어요. 대부분 캐릭터들의 느낌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죠.

아무래도 오랫동안 수입이 안되고 있어서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 몇몇 작품들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스포츠 장르는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히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서 굉장히 아쉬워요.


▲ 20세기 폭스사의 영화 데드풀.


▲ 애니메이션 '쿠로코의 농구'의 키세 료타.




●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전에는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로컬라이징을 하는 수입 작품인지, 아니면 게임처럼 온전하게 국내에서 만들어진 창작물이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수입 작품의 경우 원작 성우가 있으면, 그걸 참고하는 정도로만 사용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원작 느낌을 따라가기 쉽죠.

그래서 원작 성우가 있으면 최대한 기존의 느낌을 배제하고, 자기 나름대로 캐릭터를 연구하고 해석하기 위해 그걸 준비하는 과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제가 연기했었던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 쇼타 같은 경우도 본래 청렴하고 시원시원한 소년 느낌이었다면, 제가 연기할 때는 털털하고 남성다움을 좀 더 강조했어요. 저는 여자들 외에 남자들에게도 사랑받을 수 있는 매력이 숨어있다고 느꼈거든요.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제 나름대로 캐릭터의 숨겨져있는 부분들까지 같이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팬분들도 그래서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고요.

반면, 창작물은 처음부터 모든 설정을 내 나름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서 성우들이 연기할 때 굉장히 재밌어요. 처음부터 온전히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즐겁고, 그래서 국내에서 제작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녹음의 기회가 오면 반가울 수밖에 없죠.


▲ 애니메이션 '너에게 닿기를'의 카제하야 쇼타.




● 성우분들은 모두 노래를 굉장히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정재헌 성우도 씨앗 재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랩(씨앗송)이 유명하잖아요.

'씨앗송'은 굉장히 오래된 노래인데도 지금도 어린 친구들이 그걸 듣고 팬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음.. 근데 요즘에는 노래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지는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어요.

화음이 들어간다든가 작품 안에 삽입되는 노래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연출자분들도 단순히 노래를 잘 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노래를 잘 하는 성우들을 찾게 되고 있죠. 따라서 성우들이 노래를 잘 했을 때 연기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길 다닐 때도 항상 노래를 듣고, 원래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해서 새벽에 지하 주차장에서 혼자 두세 시간씩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인디밴드 '만쥬한봉지'와 같이 작업을 해서 제가 랩 메이킹을 직접 다 한 곡이 음원이 나왔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성우가 안됐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는 일인데, 성우가 되고 나서 음원 사이트에서 제 노래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참 고맙죠.



(스튜디오 호락에서 방영한 정재헌의 호락호락 中 씨앗랩 from 방가방가 햄토리)




● 웹 라디오 '정재헌의 호락호락'에서도 랩을 선보였고, 성우 그룹 '동네 오빠'를 결성해서 앨범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보이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은 딱히 거창한 걸 준비하고 있거나 하진 않지만, 이번 음악 작업이 굉장히 즐거웠어요. '동네 오빠' 앨범 때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때는 전문적으로 랩을 하시는 분이 따로 랩 메이킹을 하셨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제가 가사를 비롯해 랩 메이킹을 스스로 했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을 팬분들이 잘 듣고 있다고 전해주셔서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앞으로 제 개인적인 소망은 작은 미니 앨범이라도 좋으니깐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만든 앨범에 정재헌이라는 이름의 개인 앨범으로 나올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이건 계획이 아니라 소망이죠. (하하)


▲ 음악 작업을 함께한 만쥬한봉지와 정재헌 성우.




● 2015년에는 MBC 연기대상 성우상을 수상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처음 성우를 시작할 때와 지금 바뀐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지금 제 연기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겠죠? 그만큼 제가 연기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고요. 사실 예전에 비해서 지금 성우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장르의 일들이 많이 줄어들면서 후배 성우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무대가 축소됐어요.

물론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와 결합하려는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지만, 저는 지금에 비하면 좀 더 주어진 기회가 많았던 성우였기 때문에 행복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더 감사하고요.

저보다 더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도 많이 있으니깐, 앞으로는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PD 님들의 입장에서는 캐스팅에 모험을 하기는 힘드니깐, 안전한 캐스팅을 하려는 건데, 그러다 보면 캐스팅이 반복되는 경우들도 생기죠.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성우분들의 다양한 연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좋겠네요.



●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미디어 감상에 더빙보다는 자막을 선호하는 추세라서 성우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축소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해서는 환경이 변하면서 서브컬쳐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황금 시간대인 토요일 오후 5시에 맥가이버를 보고 저녁 9시, 10시에 주말의 명화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는 TV가 아니면 그런 것들을 접하기 힘든 시기였기에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빙을 선호하는 일부 국가와 달리 국내에는 더빙은 유치하다는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더빙된 영상을 즐기다가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빙은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아직 더빙의 매력을 잘 몰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자막이 없기 때문에 화면을 꼼꼼하게 감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높은 몰입도를 지닐 수도 있는 등 더빙이 정말 잘 된 콘텐츠를 한 번 접하면은 그 매력을 분명히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현재는 극장에서 더빙을 접할 수 있는 건 애니메이션뿐인데, 이 경우에는 심의 때문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유아스럽게 작업되는 부분이 생기고, 성인들 입장에서는 그래서 유치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콘텐츠를 성인의 초점에 맞게 제작할 수 있다면, 한국 감성을 담아서 작품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 45년만에 폐지된 KBS의 명화 극장.




● 그럼에도 국내 학교의 성우 전공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수백 명이 될 만큼 성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후배가 될지도 모를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응원이 있다면?

지금도 많은 분들이 제게 성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데요. 저 역시 성우 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성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저는 제게 문의하는 학생들에게 성우 외에 자기가 잘 하거나 즐기는 일이 있으면 진학은 굳이 성우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성우는 다른 걸 공부하면서도 얼마든지 함께 준비할 수 있거든요. 단, 자신이 좋아하는 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인지, 아니면 연기를 좋아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중요해요. 성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아니니깐요.

제게 문의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연기를 공부하면서 자신이 행복하다면 즐겁게 성우의 꿈을 꿔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전하고 있죠.

어쩔 땐 "성우가 연기도 잘 하시네요."라는 소리를 들어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성우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제일 중요한 건 성우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준비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정말 연기를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 아르피엘처럼 개성 있는 캐릭터를 지닌 게임은 새롭게 성우분들이 활약하기에 좋은 무대가 될 것 같은데, 평소에도 게임을 즐기거나 관심이 있으신가요?

어렸을 땐 삼국지 조조전부터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천사의 제국, 파이널 판타지부터 직접 녹음에 참여한 로스트 오디세이 등 게임을 굉장히 즐기는 편입니다. 그러던 중 아이가 태어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차피 이 아이도 언젠가는 스스로 게임을 즐기게 될 텐데,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아빠가 게임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많이 놀아주면서 소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덕분에 집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 360 같은 게임기들은 지금 화분 받침으로 이용중입니다. (씁쓸) 그래서 게임을 못 즐긴지 좀 됐는데, 대신 게임 녹음을 하면서 쌓인 욕구를 많이 해소를 하는 것 같아요. 게임 문화를 좋아하고, 게임 녹음도 즐기다 보니깐 게임 관련 연락이 오면 굉장히 반갑죠.

팬분들도 제가 게임을 좋아하는 걸 아시니깐, 녹음했던 캐릭터에 대해 함께 얘기하는 걸 즐기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좀 더 커서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면은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게임을 끊고 사는 동안 사이퍼즈의 벨져 홀든이라는 캐릭터를 녹음하면서 참지 못하고 한 번 해봤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게임 안에서 며칠 동안 욕만 들었고, 앞으로는 녹음만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 이제는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 (출처: 정재헌 성우 트위터)




● 아르피엘에서 카일, 스마일리 캐릭터는 기존에도 있었는데, 이번 업데이트에 어떤 부분이 새롭게 녹음됐나요?

아르피엘 오픈 후 약 8개월가량이 지났는데, 새로 추가된 부분은 던전 테마 등이지만, 사실 전체적으로 연기 디테일을 살려서 녹음을 새롭게 다 했습니다. 카일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근육 바보에 마초적 느낌을 지니고 있다 보니깐 유저분들께 큰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해요.

카일은 어렸을 때 아끼는 사람을 지키지 못 했던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앞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강해지려는 욕망을 지닌 캐릭터인데, 그런 부분이 유저분들에게도 전해져서 카일을 좀 더 사랑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르피엘 애니메이션이 제작 중이잖아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카일이 좀 바보스러운 면이 더 강조가 됐더라고요. "이왕 망가지는 거!"라는 생각으로 망가지면서 귀여운 부분도 강조하고, 딘과 꽁냥꽁냥거리는 부분도 재밌게 다뤄지면서 유저들이 카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면 더 카일을 좋아해 주실 거란 생각에 애정을 많이 쏟아서 연기를 했죠.

또 스마일리라는 캐릭터는 연기하기에 참 재밌어요. 우리 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는 의문의 캐릭터라서 나중에 스마일리가 어떤 포지션을 담당하게 될지 저도 궁금하네요. 스마일리가 과거에 자신이 엄청난 미소년이었지만, 마법에 걸려서 뚱냥이가 되었다는 발언을 하는데, 저는 실제로 그럴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스마일리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게임 내 플레이어 캐릭터로 들어오는 것도 재밌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스마일리가 매력적인 고양이 캐릭터가 추가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정재헌 성우가 애정을 담아 녹음한 카일.

▲ 과연 스마일리는 정체는?




● 이번 '아르피엘'의 신규 캐릭터인 리샤를 연기한 김채하 성우와는 많은 게임 녹음에 함께 참여하셨는데, 리샤의 연기를 들어보셨나요?

게임 녹음의 경우 성우들이 한 명씩 따로 녹음에 참여하기 때문에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 이상 다른 성우의 연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는 편인데요. 그 외에도 애니메이션이나 많은 녹음 현장에서 김채하 성우를 만났을 땐 아직 경력이 많지는 않지만 굉장히 실력이 좋다고 느꼈어요.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많은 잠재력을 품고 있는 성우고, 연기에 대한 태도나, 준비를 해오는 모습을 보면 엄청 노력하는 성우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연기를 정말 좋아하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아서 앞으로 다양한 무대가 김채하 성우에게 주어질 거라고 믿어요. 저도 앞으로 함께 연기할 작품들이 더 기대가 됩니다.


▲ 친밀해 보이는 정재헌 성우와 김채하 성우.




●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성우 덕 질하기 너무 힘들어요'라는 글을 우연히 봤습니다. 팬들과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고 계신가요?

음.. 아무래도 성우들의 정보를 찾기가 힘들기도 하고, 자주 보고 싶은데 자주 보기 힘든 면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해 미디어에서 보기는 힘들어지는 반면, 오프라인 행사 같은 건 오히려 더 많이 생기는 등 전과 다르게 지출을 감소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통장이 텅장이 되는 신비로움을 맛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여러 부분에서 힘들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트위터를 사용하는데, 원래는 그냥 제가 놀려고 시작한 거였어요. 주위에서 트위터가 재밌다고 많이들 하셔서,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트위터 먼저 해봐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과 만나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했고, 실제로 친해진 트위터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즐겼었어요. 근데 언젠가부터 제 팬들 중 나이가 어리신 분들이 팔로잉을 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조심하는 부분이 생겨났죠.

안 그래도 팬분들과 교류할 통로가 없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으로 즐기는 부분을 줄이고, 소통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중이에요. 물론 오픈된 장소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부분도 있고, 저를 좋아하시는 분들만 팔로잉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을 수 있어요.

그래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더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굉장히 오랫동안 트위터를 사용하고 있는 편이에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팬분들과 소통하려 하고 있는 셈이죠.


▲ 트위터에서 정재헌 성우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 인상 깊었던 팬이나 선물 같은 게 있다면?

인상적인 팬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통 처음 어떤 성우를 좋아하게 되면 그와 함께 연기한 다른 성우들도 좋아하게 되면서 굉장히 많은 성우의 팬이 되는 게 당연한데, 지금 오랫동안 제 팬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의 경우는 유독 저만 계속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제가 생각해도 그게 참 힘들 것 같은데, 질리지 않고 함께 해주시는 그분들이 참 고마운 분들이죠.

또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생활하시는 한 팬분은 일본에서 취업이나 혼자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어 지쳐있을 때 '너에게 닿기를'이란 작품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분이 계셨어요. 의외로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으시더라고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다른 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거 자체로 제게 성우로써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인 것 같아요.

그 외에 먹을거리부터 제가 연기한 캐릭터 굿즈나 피규어 등 선물은 굉장히 다양해요. 먹는 건 상하니깐 바로 먹는 편이지만, 그림 같은 건 앨범에 넣어서 보관하기도 하고, 피규어는 전시장에 보관하는 등 팬분들이 주신 선물들은 모두 특별하고 소중해서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어요. 실제로 제 보물 1호들이죠.



● 성우 활동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젠가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힘든 시기에 계신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순간들이 제게는 가장 보람된 순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파워레인저 매직 포스를 하던 시절 정말 말 안 듣고 밥 안 먹고 맨날 티비만 보면서 엄마를 힘들게 만들던 아이가 있었는데, 파워레이저 목소리로 통화를 하면서 나쁜 습관을 고쳐준 적이 있어요.

"안 좋은 습관들을 고치면 형처럼 너도 멋진 파워 레이저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통화한 후 아이가 180도로 변한 모습을 보고 아이의 엄마가 너무 고맙다고 했었던 적이 있죠. 아이부터 성인까지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다른 분들의 삶까지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너무 감사해요.


▲ 항상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는 정재헌 성우.



● 긴 시간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인사 부탁드릴게요.

제가 15년째 연기 중인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저도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잊히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시기가 분명히 올 텐데, 그래도 저는 가장이잖아요. 가정을 위해서 "그럼 성우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성우 말고 다른 일을 못 찾겠어요. 성우 외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저에게 성우로써 남은 마지막 꿈은 평생 성우로 늙어가다가 연기하다가 죽을 수 있으면 더 이상 행복한 게 없을 것 같아요. 그게 제 성우로 마지막 꿈이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초심을 늘 잊지 않으며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참 신기한 게 제가 그렇게 일부러 노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도 캐스팅 연락이 오면은 되게 설레요. 어떤 작품인지, 어떤 성우들과 함께 작업하게 될지 늘 궁금하고, 이렇게 항상 두근거릴 수 있는 일을 만났다는 게 제 인생에서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늘 감사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앞으로 더 매력적인 캐릭터의 좋은 연기로, 늘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여러분을 찾아뵐 테니깐 기대해주세요. 그리고 연기뿐 아니라 노래가 됐든, 랩이 됐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모습들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날씨가 정말 살인적으로 더운 것 같아요. 저는 걷는 걸 좋아해서 하루에 이만보 이상 걷는데, 요즘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여러분들도 더위 먹지 마시고, 냉방병 걸리지 않도록 건강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