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목요일 오전,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BIC를 위해 대절한 버스 안에는 BIC를 찾아가는 승객들로 붐볐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기자이고, BIC의 관계자일 거다.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BIC에 작품을 내놓기 위해 발을 뗀 개발자들일 터였다. '내가 이들의 게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품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버스가 출발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진 후배 기자의 어깨너머로, 세계 각국에서 온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사실 인디 게임과의 만남이 항상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인디 게임을 좋아하는구나!'하고 느꼈을 정도로 감명깊게 플레이한 작품이 있었는가 하면, 또 몇몇 작품들은 실망감만 안겨주곤 했다. 솔직히 말해 인디 게임은 나에게 너무나 넓은 바다였다. 실망, 감탄, 놀라움, 그리고 진부함. 그 모든 코드가 인디라는 그릇 속에 담겨 있었고, 난 그 속에서 어떤 것이 진짜 '인디'를 말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후배 기자와 함께 부산 영화의 전당을 찾아갔다. 사실 영화의 전당과 벡스코를 포함한 해운대구 일대는 서울권 토박이인 나한테도 어느 정도 익숙한 곳이다. 매년 '지스타'때문에 찾아가곤 하는 해운대. 어쩌다 보니 평소보다 2개월가량 먼저 와버렸지만,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BIC 2016은 내 생각보다 큰 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300종 가까운 작품이 출품 의사를 밝혔고, 그중 3분의 1 정도만 선발되었다고 하던가. 그럼에도 백여 종에 가까운 작품이 출품하는 자리이다 보니, 세계 3대 게임쇼 급의 메이저 게임쇼와는 빗댈 수 없지만, 중소 규모의 게임쇼라기엔 상당히 큰 규모의 행사라 할 수 있었다. 인디를 다루는 메이저 행사라.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3박 4일을 머무르는 일정 중 소재가 떨어지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참관객이 많아 복잡했지만, 그만큼 규모도 컸다.

영화의 전당 내부에 있는 프레스룸에 장비를 풀고, 바로 현장으로 나섰다. BIC까지 와서 게임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일단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본 후, 생각나는 바를 기사로 정리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호텔문을 닫고 나서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기사를 쓸 것인지, 기사의 톤은 어느 정도로, 어떤 내용으로 할 것인지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왔음에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가볍게 맛이나 보자'하고 시작한 게임이 다음 게임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한 줄을 모두 돌고 나자 기사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프레스룸으로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으니 절로 힘이 빠졌다. 조금 전까지 플레이한 게임 생각 때문에 기사를 쓸 수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솔직해져야겠다. 내심 나는 BIC가 모래 속에서 옥석을 찾는 행사가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인디 게임을 모아 놓은 전시장을 가 본 경험이 있고, 크고 작은 인디 게임쇼를 가본 경험 있다. 그 행사들이 그랬다. 게임 하나에 전력을 다한 개발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모든 작품이 다 뛰어난 경우는 없었다. 그저 수많은 게임 사이에, 가끔 보이는 보석 같은 작품들이 그 행사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BIC라고 다르리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좁아터진 소갈딱지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지금껏 겪어온 바가 그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맹세코 그 늘어선 한 줄의 부스에 전시된 게임 중, 날 실망하게 한 게임은 단 하나도 없었다. 프레스룸에 올라와 기사를 쓸 수 없었던 이유는 플레이한 게임의 여운 때문만이 아니었다. 지난 몇 년의 세월 동안 쌓여온 인디 게임에 대한 감정이 흔들렸다. 불투명하게 마치 구름처럼 떠오르던 개념들이 부정형의 무언가에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인디 게임'이라는 네 글자로 가슴에 새겨졌다.

다음 날도, 그리고 마지막 날도 다르지 않았다. VR 게임부터 '나이트게임'에 출품한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BIC 2016에 출품한 작품들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 맛있는 음식이었다. 어떤 게임은 비교할 수 없이 매운맛을 보여주었고, 또 어떤 게임은 이가 아릴 정도로 달았다. 그즈음에 이르러 생각하니, 내가 왜 이전에 플레이했던 몇몇 게임에서 큰 실망감을 느꼈고,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을 받고 있는지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 하나같이 매력을 뽐내던 작품들

과거 내가 실망했던 '인디 게임'들은 인디라는 이름을 달고 메이저를 지향했던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하나 놓지 않으려는 고집. 메이저 게임에 지기 싫다는 생각 때문인지 구색을 갖추려 이것저것 다 만들어 두었지만, 무엇하나 메이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자본과 인력의 차이를 메꿀 수는 없으니까. 결국, 내가 그때 플레이했던 인디 게임들은, 부족한 인력과 자본 속에서 메이저를 흉내 낸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BIC에 와서 만난 인디 게임들, 그리고 감명깊게 플레이했던 작품들은 애초에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스플릿 불릿'은 파괴와 그에 따른 추상적 이미지에, '반격유희'는 무술 영화 흥행기의 감성과 오마주에 집중했다. '센트리스'는 몽환적 비주얼과 음악에, '레플리카'는 내러티브와 메시지의 전달에 모든 것을 걸었다. VR은 또 어떠한가. '로스트 케이브'와 '크랭가'는 VR의 대세라는 1인칭 슈터에서 한참 벗어나, 그들만의 감성을 게이머에게 보여주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어구가 엄연히 경영 전략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이 시기에, BIC 2016의 출품작들은 훌륭한 선택, 그리고 집중을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것을 만들 수는 없으니,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모든 것을 걸겠다.' 라는 생각. 모든 개발자와 말을 나눌 수는 없었으나, 현장에서 만난 개발자들은 모두 비슷한 말을 해주었고, 그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9월 11일 늦은 저녁.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창문에 어른거리며 비치는 가로등 불빛과 맞은편 차량의 전조등에 의지해 달리는 고속도로 위 버스 속에서 '인디 게임'에 대한 생각, 그리고 며칠 전 부산행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떠돌던 '인디'에 대한 불투명한 감상들이 뒤섞였다. 이제 '인디 게임'이란 단어가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무엇이 '인디 게임', 그리고 '비 인디 게임'을 나누는 기준인가. '인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고 쳐도, 그 게임이 충분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메이저 게임으로 불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 BIC 행사 자체는 이미 '인디'를 넘어서 있었다

단순히 자본의 유무, 그리고 개발사 규모의 크기로만 게임을 나눈다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있나 싶었다. 과거 내가 인디 게임에 실망했던 그 당시. 나에게 인디라는 타이틀은 낮은 완성도에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게임을 감성으로 포장하기 위한 얇은 면죄부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에 와서 인디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는 느낌은 많이 바뀌었다. '주어진 한도 내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 BIC 현장을 나온 후, 생각 끝에 정리된 내 머릿속 '인디'다.

미래가 더 궁금해졌다. 언젠가는 인디와 메이저의 기준 또한 모호해질 것이다. 인디냐? 메이저냐? 라는 질문 없이, 게임 그 자체로 평가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굳이 인디라는 이름을 걸지 않아도, 게이머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게임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대니 말이다. 그때에 이르러, 게임 산업의 발전 방향은 또 어디로 향하게 될까? 들불처럼 번지는 지금의 '인디'가 메이저가 될 시대에서, 그때의 인디가 바라보는 곳은 어디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