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구스타 게임즈의 정진섭 대표.


사람마다 만족스러운 삶의 조건은 다릅니다.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버는 데에, 또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족하는 삶이 더 편하고 느긋한 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을 두 번이나 제 발로 나온 정진섭 대표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보장받을 수도 없고 당장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1인 개발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대기업의 안정적인 삶보다 더 힘들고 수입도 낮지만, 지금이 더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정진섭 대표.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원히 1인 개발자로 남을 것'이라고요.

IGC 강연 기사 바로가기 : ▶ [IGC2016] "프로그래밍, 아트, 사운드 혼자 다 하는 법" 메구스타 게임즈 정진섭 대표


픽셀로, '취미에서 개발자로'


▲ 우연으로 만들어진 이름, '메구스타 게임즈'


메구스타라는 회사 이름.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사실 처음에는 취미였던 프로그래밍이 좋아 시작한 거라 회사를 차릴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폰 게임을 만들려면 구청에 가서 개인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니 개발자 정진섭이 아니라 하나의 개발사가 되어야 했죠.

그런데 이름을 정해놓지 않고 간 거예요. 구청 직원이 저에게 '회사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가 되어서야 이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제가 아는 유일한 스페인어인 '메구스타'를 즉흥적으로 적어넣었어요. '메구스타'. 이게 영어로 따지면 'I like'쯤 되는 말인데 게임 개발과 어울리는 단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떠오른 게 이상한 단어였어 봐요. 지금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되네요.



프로그래밍이 일이 아니라 취미였다고 하셨는데 원래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 1인 개발자가 된 지는 3년 정도 됐을까요? 2014년 3월 즈음에 다니던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대기업에서 해외 자재 구매 관련해서 일을 했어요. 한 10개월 정도 일을 하다 자산관리 일을 2년 정도 했죠.


많은 학생이 대기업 입사를 꿈꾸잖아요. 일하던 곳 모두 알아주는 그룹인데 그런 곳을 두 번이나 제 발로 나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 저는 생각이 좀 좀 달랐던 게 대기업의 방식이 너무 싫더라고요. 회사의 시스템이라는 굴레가 주는 압박도 있고 혹여 내가 한 실수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그렇고요. 굳이 따지면 낙오해서 나온 사람이라고 할까요?(웃음) 그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나오는 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 네모로직 스타일의 게임인 '픽셀로'.


1인 개발자로의 시작도, 회사 이름도 즉흥적으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첫 게임인 '픽셀로'는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마켓 순위도 높았고요. 저도 네모로직을 워낙 좋아하는 터라 꽤 픽셀로를 오래 즐겼는데 이게 그냥 퍼즐 게임과는 다른 맛이 있잖아요.

= 맞아요. 레벨이나 골드 개념이 있죠. 장비라고 해야 하나? 배지를 장착해 능력치를 올려주는 시스템도 있죠. 지금에야 많은 퍼즐게임에 사용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참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걱정이 됐는데 잘 돼서 다행이죠.

그런데 단순히 시스템 외에도 도전할 시장이 많았던 것도 주효했던 것 같아요. 모바일은 구글 마켓이나 앱스토어 외에도 일본, 중국의 로컬 마켓도 많고요. 시장이 많으니 의견을 종합하기는 어렵지만 1인 개발자로서의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해외 반응은 특히 좋았어요.

= 원래 픽셀로는 플래시를 기반으로 해외 사이트에 공개됐던 게임인데요. 이게 워낙 반응이 좋아 모바일 시장에 도전해봄 직하다고 느꼈죠. 모바일 픽셀로의 개발은 해외의 좋은 반응 덕에 시작된 거라고 할 수 있죠. 요즘도 해외 팬들에게 메일을 받는 데요. 사소한 실수를 잡아주기도 하고 응원하는 메일이 오기도 하죠.

해외의 인기 덕분인지 최근에도 꾸준히 돈을 벌고 있어요. 그 돈은 모두 '언소울드' 제작에 필요한 유니티 에셋을 사는 데 쓰고 있죠. 지금 개발하고 있는 '언소울드'는 픽셀로를 즐겨주시는 많은 팬이 개발 자금을 대주고 있는 셈이에요.(웃음)



혹시 픽셀로의 후속작을 만들어 보실 생각은 없나요?

= 후속작까지는 아니고 픽셀로의 연장에 있는 게임을 프로토타입만 간단히 만들어보긴 했어요. 픽셀로의 컬러 버전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전작의 배지 기획은 도저히 현재 기획할 시간이 남지 않고 지금은 '언소울드'의 제작에만 집중하고 있어 제가 만족할 만한 분량이 나오질 않았어요.

사실 이런 퍼즐 게임은 최소 500 스테이지는 있어야 나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100개 정도로는 턱도 없죠. 그래서 게임이 정말 서비스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실제로 나와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일 것 같네요.


▲ 마침 정진섭 대표의 휴대전화에 관련 프로토타입의 이미지가 있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언소울드, '고전 액션의 감성을 2D로, 더 어렵게'


이번에 공개한 '언소울드'는 어떤 게임인가요?

= 제가 한창 게임을 했을 때는 귀무자나 데빌메이크라이, 닌자 가이덴 같은 명작 소리 들었던 액션 게임이 참 많았어요. 저도 그런 게임을 많이 했고요. '언소울드'는 그때의 액션 게임 감성을 2D 도트 그래픽을 이용해 살린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메구스타 게임즈의 차기작, '언소울드'


IGC에 시연 부스를 마련하기 전에 부산 인디 커넥트(BIC)에도 출품했어요. 반응이 어땠나요?

= BIC에서는 어린 게임 팬들이 많았어요. 이분들이 시연 버전 조작을 굉장히 어색해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평소 게임 패드를 거의 만져볼 일이 없어서 그랬던 거에요. 전날 스트리머의 방송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용된 기술을 현장에서 써달라는 아이들이 많아 그걸 보여주는 데 더 집중했던 기억도 있네요. 어릴 적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 동네 꼬마들이 구경하는 그런 느낌이었죠.(웃음)

패드 사용에 익숙한 유저들은 좋아했어요. 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파고들 요소가 많아 깊이 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거든요.



저도 패드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는데도 참 어렵다고 느껴졌어요. 일부러 높은 난이도로 만드신 건가요?
 
= 네. 쉬운 마음으로 도전했다간 적당히 좌절할 만큼의 난이도로 만들었어요.(웃음) 이게 요즘에는 인디 게임은 좀 어려워야 한다는 생각이 생긴 것 같아요. 많은 팬분이 인디 게임은 마니악하다고 생각을 하고 쉬우면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어려운 것을 더 좋아하는 느낌이랄까? 저도 쉬운 게임보다는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고요.

여기에 평소 격투 게임을 정말 많이 즐기는데요. 스트리트파이터5도 지금 열심히 즐기고 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대전 격투 게임의 콤보나 회피 시스템도 넣어 더 어려운 게임이 된 것 같아요.


▲ 어려운 인디 게임이 많은 것도 인식 변화에 한몫했다고. (사진은 '슈퍼 미트 보이')


영혼을 흡수하거나 방어, 경직. 그리고 버튼 하나 누르는 식이 아니라 조작으로 스킬이 나가는 등 시스템 부분은 탄탄하다고 느껴졌어요. 직접 생각하기에 게임의 완성도는 어느정도 인가요.

= 1인 개발자로서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자신의 게임을 평가하는 거더라고요. 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20% 정도라고 말씀드렸는데 막상 개발해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많이 모자란 걸 깨닫게 돼요. 그래도 시연판을 즐긴 팬들이나 지인들의 반응을 보면 이제는 당당하게 20%가량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현장에서는 하나의 스테이지만 공개됐는데요. 이것만 해도 분량이 꽤 되더라고요. 실제 출시 버전은 어느 정도 분량으로 제작할 생각인가요?

= 지금은 7개 정도의 스테이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스테이지마다 보스가 있으니까 7개의 보스가 있고요. 그리고 스토리 외에도 보스들을 상대하거나 끊임없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무한모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20시간 정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인데 스토리만으로 이 정도 볼륨을 구성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무한모드가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네요.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다가 거치형 게임을 개발하게 됐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오히려 지금이 게임을 개발하는 데에는 더 편한 것 같아요. 모바일은 기기에 따라 해상도도 신경 써야 하고 안드로이드와 iOS 버전을 따로 구분해줘야 하니 제약이 많은 편이에요. 대신 PC 버전은 어느 정도 최적화를 거치면 어떤 PC에서 즐겨도 과부화 없이 돌아가니 만드는 입장에서는 쉽죠. 다만, 콘솔 버전으로의 컨버팅은 어렵다고 느껴져 걱정이네요."


요즘에는 인디게임도 콘솔 버전도 많이 나오니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 네. 저도 엑스박스로 출시를 고려하고 있고요. PS 스토어에도 내고 싶기는 한데 그쪽은 법인이 있어야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고 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PC 버전 개발에만 집중하려고요.


그럼 일단은 PC 버전으로 즐길 수 있겠네요.

= 네. 서비스는 스팀을 통해 할 생각인데요. 대신 그린릿보다는 해외 퍼블리셔를 통해 내려고 해요. '핫라인 마이애미'나 '쉐도우 워리어'를 유통하는 '디볼버 디지털' 같은 곳이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출시 전에도 내년 1월에 열리는 타이베이 게임쇼나 일본 비트 서밋에 출품 신청을 해 게임을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 여러 가지 구동 조건을 확인해야 하는 점은 모바일 게임 개발의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




영원히 1인 개발자로 남았으면


1인 개발자는 자신의 게임을 평가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것 외에도 개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 창작물을 꾸준히 내오던 개발자라도 혼자서 개발할 때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느냐가 큰 부분인 것 같아요. 이런 점은 누가 가르쳐 줄 수도 없고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점이라 더 어렵죠. 창작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모든 걸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니 더 어렵고요. 그걸 미리 채우기 위해 2, 3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준비 기간이요?
 
= 네. 1인 개발은 개발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에요. 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하는 것은 어렵죠. 게임 개발이 아니라 혼자 하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비슷하겠지만, 필요한 부분에 외부 인력에 맡기거나 마케팅을 하고 사업을 하는 것 전부 혼자서 처리해야 해요. 그러니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2, 3년 정도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프로그래밍에 능통한 사람이 2, 3년 정도 취약한 부분을 공부하고 준비하면 최소 중저급 퀄리티를 가진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돼요. 그 수준은 돼야 팬들도,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1인 개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 1인 개발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수익이 제 것이라는 점이에요.(웃음)

그런데 이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게임 발매 전에는 기획 회의를 따로 할 필요 없이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만들면 되는 편리함을 최고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그런 건 부차적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버는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그 돈을 다음 게임 개발에 쓰든, 마케팅에 쓰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1인 개발자로 남을 생각이신가요?

= 네.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영원히 1인 개발자로 게임을 개발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이 될까요?

= 저처럼 귀무자를 즐겼던 세대의 분들이 언소울드를 해보고 만족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2년의 개발 기간 안에 게임을 출시하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더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해외의 인디 게임 시장처럼 부디 많은 개발자가 서로 의지하고 교류할 수 있는 생태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