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좋았다. 삼성과 H2K가 4강까지 순항할 수 있었던 건 강하다고 평가받는 한, 중 양국의 1,2 시드 팀들이 모두 반대편에 모였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로 삼성은 리빌딩 후 2년 만에, 롤드컵 결승 진출이라는 상상할 수 없던 환상을 눈앞에 뒀다. H2K도 마찬가지다. 2015년 LCS에 합류한 이후 단 2년 만에 이룬 쾌거다.

삼성과 H2K는 닮은 구석이 꽤 많다. 일단 양 팀은 각 지역리그 최상위팀이라는 평가는 듣지 못했다. 라이너의 기량이 리그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듣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운영방식도 비슷하다. 삼성은 원래 후반을 도모하는 안정적인 운영이 강점인 팀이었다. 다만, 너무 정석적이라 변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H2K도 정규시즌 동안 스노우볼을 빠르게 굴리는 것보다 후반을 바라보며 천천히 운영해왔다.

양 팀이 롤드컵에서 역대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삼성은 RNG, TSM 등 각 지역의 강팀이 속한 조에서 5승 1패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큐베' 이성진, '크라운' 이민호, '코어장전' 조용인 등이 특히 눈에 띄는 활약으로 팀의 상위 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H2K는 2주 차 경기에 경기력이 폭발하며 4전 전승을 기록, 조 1위를 확정했다. 모두 롤드컵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정규리그보다 훨씬 좋다.

마지막으로 H2K와 삼성 양 팀의 대결은, 롤드컵 결승 무대에 설 수 있는, 어쩌면 평생 한 번일지도 모를 절호의 기회라는 점이다. 방심할 수도 없고, 전력을 아낀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다. 객관적인 전력은 삼성의 우세지만, 3:0이 나오더라도 매 경기 치열한 장기전을 예상한다.

경기의 관전 포인트를 포지션별로 살펴보자.


◈ 탑 라인 : '짜황'의 뽀삐일까? 각성한 '오도암네'의 제이스일까?


이성진은 롤드컵에 와서 자신의 커리어 최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월드 챔피언십 8강전, Cloud 9의 '임팩트' 정언영을 상대로 솔로킬을 연거푸 기록했다. '탑 다이(Top Die)라는 밈이 생겨날 만큼 북미리그 최강 탑 라이너란 평가를 들었던 정언영이다. 누구도 이성진이 정언영을 압도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거다.

'오도암네' 역시 2주 차부터 좋은 활약을 보였다. 챔피언도 가리지 않았다. 대세로 떠오른 럼블, 제이스, 케넨을 모두 다뤘고 EDG와의 2차전 경기에는 '마우스'를 상대로 솔로킬을 내면서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무게는 이성진이 더 묵직하지만, '오도암네'도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 같다. 라인전을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과 반반 가자는 마음으로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탑 라인의 관전 포인트는 챔피언 제이스에 있다. '오도암네'는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서 제이스로 4전 전승을 기록했지만, 이성진은 제이스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성진은 지난 C9전에서 정언영의 제이스를 뽀삐로 상대해 완승을 거뒀다. 라인전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제이스의 우세를 점치지만, 뽀삐의 w스킬인 '굳건한 태세'가 제이스의 Q스킬 '하늘로'를 무효화시킨다. 제이스를 상대로 뽀삐가 할 만하다는 것. 탑 라인 최강이라는 제이스와 이를 카운터치는 뽀삐의 대결이 기대된다.


◈ 미드 라인 : 물고 물리는 상성관계, 양 팀이 생각한 타개책은?


미드 라인은 지금 춘추전국 시대다. 강하다 평가받는 챔피언은 다수 존재하지만, 챔피언을 먼저 골라줄만큼 절대적인 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인전 강함만을 보고 뽑는 신드라는 블라디미르로 대처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는 말자하에게 카운터 당한다. 최상위 티어로 평가받는 라이즈도 카시오페아를 상대론 힘든 편이다. 카시오페아는 오리아나로 상대하기 괜찮다. 즉, 미드 라인은 선수의 챔피언 풀에 꽤 많은 것이 달려있다.

대세 챔피언은 '류' 류상욱이 더 잘 다루는 듯 보인다. 류상욱은 신드라, 블라디미르, 라이즈, 카시오페아 등을 사용했다. 이민호의 챔피언 풀은 다소 올드한 느낌이 있는데, 카시오페아, 오리아나, 라이즈, 빅토르, 바루스 등을 사용했다. 선수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이민호는 새로운 챔피언을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후픽이 중요하기 때문에 역으로 먼저 믿고 꺼낼 수 있는 챔피언의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민호에겐 믿고 쓰는 안정감의 대명사 빅토르가 있다. 이민호의 빅토르 밴픽률은 89%, 9경기 중 5번 밴당하고 3번 사용했다. 빅토르가 풀렸는데도 사용하지 않은 한 판(TSM전)은 패배했다. H2K의 판단이 궁금하다. 이민호의 빅토르는 꼭 금지해야만 하는 카드일까? 아니면 류상욱이 빅토르 선픽에 대해 한 수 가르쳐줄 수 있을까? 코치진의 판단에 따라 양 선수의 대결이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다.


◈ 봇 라인 : 팀을 승리로 이끄는 캐리라인. 양 팀 모두 약점은 있다.


봇 라인전의 승패가 전체 승부와 연관되는 경우가 자주 나오고 있다. 패치로 인한 맞라인전의 강제는 다시 한 번 봇 라인을 뜨거운 전장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봇 라인전이 중요한 이유는 이미 많은 분석이 나왔다. 봇 라인전의 우세는 드래곤의 획득 뿐만 아니라 타워 파괴에 능한 원거리 딜러의 족쇄를 풀어주고 서포터의 로밍까지 가능케한다. 가히 승리로 가는 지름길이라 할만 하다.

삼성 '룰러-코어장전'과 H2K '포기븐-벤더'는 각각 약점이 하나씩 있다. 삼성의 경우, '코어장전' 조용인의 실력에는 이견이 없지만, 롤드컵에서 보여준 챔피언 폭이 다소 좁은 감이 있다. 조용인은 자이라, 탐 켄치, 카르마 총 세 가지 챔피언만을 사용했다. 자이라를 금지하고 카르마를 가져온다면, 탐 켄치만이 유일한 선택사항이다. 이 전략은 TSM이 조별리그 단계에서 삼성을 상대로 사용해 라인전에 우위를 챙기며 효과를 거둔 바 있다.

H2K는 '포기븐'에게 케이틀린을 쥐여주고 서포터를 유동적으로 골라 팀 조합을 완성해왔다. 조별리그 2주 차 경기에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조합에 따라 서포터가 라인전이 강할 경우 상대와 격차를 벌렸고 라인전이 약한 서포터에는 반반 싸움을 해줬다. 이를 눈치챈 상대팀들은 케이틀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ANX의 경우 8강 3연전 동안 케이틀린을 가져왔고, INTZ는 금지했다.

양 팀이 모두 봇 라인에 약점을 드러냈지만, 치명적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조용인은 탐 켄치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고, '포기븐'도 케이틀린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코치진도 분명 알고 있을 터. 각각 어떤 답을 들고나올지 궁금하다.


◈ 정글 포지션 : 선수(先手)와 후수(後手). 바둑과 같은 두 정글러의 머릿싸움


바둑은 흑돌과 백돌이 있어 선수(先手)와 후수(後手)가 나뉜다. 먼저 두는 사람이 유리한 것은 명백하다. 다만, 유리하다고 마음대로 돌을 놓을 순 없다. 흑돌의 실수는 곧바로 백돌의 집이 되기 때문이다. 갱킹형 정글러와 커버형 정글러의 수 싸움도 바둑과 일맥상통한다. 갱킹의 실패는 곧바로 상대 정글러의 맞대응으로 이어진다.

'얀코스'는 선수(先手)로 유럽 정글러 중 가장 갱킹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들 들어왔다. 그의 별명은 '퍼블킹'. 매우 높은 확률로 선취점을 기록한다. 그는 2015년 독일 쾰른에서 열린 IEM 대회(ESC 에버 우승)에서 조별리그 6경기 동안 모두 선취점을 기록했다.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는 10경기 중 7경기, 70%의 확률로 선취점을 기록했다. 팀이 경기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도와주는 의미있는 기록이다.

'앰비션' 강찬용은 후수(後手)로 판을 읽고 돌을 놓을 때 가장 빛난다. Cloud 9과의 1경기는 정글러의 정석이 제대로 발휘된 한 판이다. 미드 라인에서 '크라운' 이민호가 서포터를 잡아내자 곧바로 팀원들을 불러 드래곤을 사냥했다. 탑 라인에서 '큐베' 이성진이 솔로킬을 기록했을 때는 곧바로 협곡의 전령을 챙겨줬다. 싸움의 결과에 따른 즉각적인 스노우볼링. 삼성이 이전과는 다르게 빠른 승리를 거두는 데는 라이너들의 성장과 더불어 스노우볼을 굴리는 강찬용의 운영이 시너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결승 진출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H2K가 무조건 질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그리고 이 승부에는 양 팀의 밴픽 전략이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커질 대로 커진 양 팀의 기세가 맞붙는 1세트 경기에 많은 명운이 달려있다. 1세트에 승리를 거두는 팀이 연승의 기세를 탈 것이고 밴픽전략에도 그만큼 우위를 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