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공개된 '닌텐도 스위치'는 너무 갑작스러운 발표였고, 그동안 나왔던 루머가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영상이 공개된 이후, 유저들의 의견도 갈리는 상태다. 거치와 휴대를 오가는 컨셉에 대해 '역시 닌텐도!'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영상에서 추론하건데... 스펙이 낮을 것은 뻔하다!'는 의문스런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열기가 가라앉자 대두된 것은 불안감이었다. 기존 Wii U의 컨셉에서 한 단계 나아간 형태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능까지. 기대와 불안이 혼재된 반응은 닌텐도식 혁신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함께, 한편으로는 불안한 미래를 떠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닌텐도가 보여준 것은 혁신일까 아니면 Wii U의 재림이 될까? 오는 17년 3월 출시를 앞둔 '스위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 한다.



■ "거치, 휴대 모두 대응 VS 애매한 정체성" - 그래서 너 누구 후임이니?

기기의 컨셉 자체는 확실히 신선하다. 게이머들의 소망이었던 '집에서 하던 게임을 밖에서도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을 현실화 시킨 측면도 있다. 거치 상태에서 플레이하다가 독에서 분리하여 휴대기기로 이용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휴대와 거치를 모두 아우른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이도저도 아닌 기기'가 될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휴대기기에서 TV-OUT 기능을 지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휴대 기기인가 거치 기기인가. 유저마다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는 상태다.

닌텐도 스위치가 휴대 기기인가 거치 기기인가를 따지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처럼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기를 기대하는 기준'이 달라지기에,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어떤 것의 후속기인가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진다.

닌텐도 측은 홈페이지 내 소개문에서 'TV를 이용한 가정용 게임기기'라고 스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일본 언론사와의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가정용 거치형 TV 게임기'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전혀 새로운 게임기'라고 하더라도 '가정용 거치형 TV 게임기'임에는 변함이 없다."는 극도의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리기도 했다.

이는 "스위치를 기존 '거치형 게임기'의 범주로는 포함할 수 없으니, 닌텐도의 거치형 기기인 'Wii U'의 후계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거치형 게임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휴대와 거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타사와는 다른 경쟁 포지션을 구축하겠다는 닌텐도 측의 의도가 엿보인다.

▲ 닌텐도 曰, "스위치는 거치 기기가 아니지만, 거치 기기인 것은 내가 알겠다."

기기의 정체성은 곧, 스위치에 출시되는 닌텐도의 대표작과 독점작들에 대한 예상으로 이어진다. 휴대 / 거치를 분리하여 타이틀을 출시해온 닌텐도였던 만큼, 스위치를 견인할 수 있는 타이틀로 어떤 것이 나올지에 대한 기대와 불안 섞인 예상들이 나온다.

일단 Wii U로 출시될 예정인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이미 확정된 상태긴 하지만, 완벽히 거치형 기기의 타이틀 라인업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해볼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만큼, 타이틀 출시 자체도 휴대와 거치를 가리지 않으리란 예상에 더 큰 힘이 실린다.

▲ 수많은 스위치의 파트너사들. Wii 이후를 생각하면 수가 급격히 늘었다.

공개한 파트너사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 서드파티들의 새로운 독점 타이틀 또는 기존 타이틀의 이식까지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수준이다. 액티비전, 베데스다, 게임 큐브 이후 닌텐도와 인연이 없었던 프롬 소프트웨어까지. 준수한 서드 파티들이 포진되어 있다. 그동안 서드파티의 부재가 계속해서 지적되었던 닌텐도는 이번 스위치를 준비하며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참신함과 탄탄한 서드파티까지 갖춘 스위치.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기기의 성능'이다. Wii 시절부터 발목을 잡아왔던, 서드파티까지 혀를 내두르며 기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 말이다.



■ "여기 테그라 단 하나!" - 기기 성능과 그래픽에 대한 의구심

어디까지나 본체는 휴대기기를 겸하는 역할이므로, 거치 상태에서의 플레이 상황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영상에서도 거치와 휴대를 오가며 별다른 대기 없이 플레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공개된 것처럼 자연스레 전환되며 이어지는 플레이가 가능할까? 하지만 아쉽게도 '보여준 것만큼의 성능'은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닌텐도 측에서 구체적인 스펙은 추후 공개할 것이라 못을 박아둔 상태라 기기의 성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허나 스위치 개발에 참여한 엔비디아를 통해 어느 정도의 그래픽 성능으로 출시될 것인지는 짐작해볼 수 있다. 유저들이 스위치의 성능에 대해 갖는 의구심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 빠르게 전환될지. 프레임 드랍은 없을지. 그게 중요한 것.

스위치가 공개된 이후, 엔비디아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지포스(GeForce) 그래픽 카드와 동일한 GPU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된 사용자 정의 버전의 테그라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 밝혔다. 사용자 정의 버전임을 미리 공지하기는 했으나 현재 주로 사용되는 GPU의 스펙을 따져봤을 때, 경쟁사의 콘솔보다는 스펙이 모자랄 것이란 상상은 쉽게 해볼 수 있다.

"뭐, 언제 닌텐도 게임을 그래픽 보고 했나!"라는 반문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당장 2016년 말부터 2017년까지 XBOX 스콜피오와 PS4 pro 등 경쟁 콘솔 기기들이 속속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닌텐도와의 협력을 통해서 물리 엔진, 라이브러리, API 등을 개발 및 개선했다고 밝히긴 했지만, 휴대기기를 겸한다는 한계로 인해 현세대 콘솔 이하의 성능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

▲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그 테그라니까...

반대로 엔비디아의 개선 사항들을 기대하자는 의견도 있다. 주로 '혹시 볼타 아키텍처로 만들어진 GPU가 들어가지 않을까?'는 희망 섞인 예측 들이다. 테그라 X1의 성능은 PS4의 1/3 정도의 수준. 테그라 X2 (코드네임 '파커')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성능은 약 2/5 ~ 3/5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17년 출시되는 '자비에'처럼 볼타 아키텍처가 쓰인 GPU가 스위치에 들어간다면? 예상 밖의 그래픽 수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추측이다.

독에 연결했을 때 어떠한 성능을 보여줄 것인지도 이야기가 나온다. 다양한 루머들이 던져지고 있지만, 개발의 용이함을 고려한다면 '휴대 시 720p / 독 연결 시 1080p'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장비를 끄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모듈에 연결하여 성능 업을 노린다기보단, 클럭 제한이나 해상도에 걸어둔 제한이 풀릴 가능성이 크다.

스위치와 마찬가지로 독에 연결하여 성능이 향상되는 '서피스 북'을 보면 위와 같은 예상은 더욱 신빙성을 갖는다. 분리 시 별도의 버튼을 눌러서 준비해야만 하는 형태인 서피스 북에서는 자연스러운 분리와 프로그램 구동을 제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닌텐도 스위치는 독 이용 시의 장점을 제공하되, 개발 시의 애로사항과 구동 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막기 위하여 소프트웨어적으로 클럭 제한을 해제 할 것이란 예측이 합리적이다.

▲ 독에 끼워 그래픽 성능이 올라가는 서피스 북은 외장 그래픽 카드 구동 시에는 빼지 못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예측에 불과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인 정체성이 거치 기기에 있음은 기억해 둬야 한다. 그래픽 성능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휴대용 기기 기준. 경계를 무너뜨리고 분리하여 휴대용 기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곤 하나, 양측에 발을 걸쳐놓은 시점에서 기기의 성능 논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휴대 기기로는 성능이 괜찮고, 거치 기기로는 성능이 살짝 모자란 수준이 되지 않을까?



■ "이게 21세기판 쇄국정책이니?" - 국가 코드, 드디어 삭제되나?

성능 외에도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국가 코드'의 존재 여부다. SNS와 해외 언론 등을 통해 전달되는 루머에서는 '국가코드가 삭제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다. 일단 들려오는 이야기들로만 판단한다면 국가코드의 해제는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현세대 휴대/거치 기기 중에서 아직 국가코드를 고집하는 회사는 오직 닌텐도 뿐. 과거 2006년 Wii 런칭행사에서 국가코드 관련 질문에 대해 한국 닌텐도는 "지역 코드가 없는 상태에서 비지니스를 전개하게 되면 해외에서 먼저 발매된 소프트웨어가 사전에 유입되어 버리므로 국내의 정규 유통채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로컬라이즈 된 소프트웨어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로컬라이즈 작업을 거친 제품의 채산성이 맞지 않아 고객 분들이 즐기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 2006년 Wii 출시 당시의 Q&A

일부 일리 있는 이야기다. 해외에서 먼저 출시된 소프트웨어로 인해, 후에 출시되는 한국어판 소프트웨어의 판매량이 줄어드리란 우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다. 문제는 국가코드의 존재 이유가 성립되려면 '늦더라도 꾸준히 소프트웨어를 출시해야 한다.'는 전제가 선행되야 한다는 점이다.

2016년인 현재 기준에서는 발매되는 게임보다는 발매되지 못한 게임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남는다. 1개월에 1~2 타이틀 정도 꾸준히 게임들을 내놓고는 있지만, 많은 유저들을 사로잡을 만한 A급 게임의 부재가 눈에 띈다. 게임들도 이슈를 몰 만큼의 것이 없는 상황인지라, 소위 말하는 '일다수(일본판 3DS)', '북다수(북미판 3DS)'와 같이 타 국가의 닌텐도 기기들을 구입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그 중엔 미국 가서 북미판 3DS XL을 산 기자도 있었다.

이는 타사의 기기들이 가급적이면 국가코드를 걸지 않거나 폐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잡은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또한, 다운로드 구매와 로컬라이징을 완료한 동시 발매가 이루어지는 지금에서는 시대 착오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이룬다.

국가코드 미탑재는 정보 공개 당시부터 지금까지 닌텐도 스위치와 관련된 집중 관심사로 다뤄질 정도로 국내외 닌텐도 팬보이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로 다뤄졌다. 지금까지 닌텐도의 단점으로 꼽히던 사안이 스위치에 이르러 해결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희망적인 기대를 걸어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 루머를 대다수 적중시킨 에밀리 로저스는 국가코드 삭제를 단언했다.



■ "그래서, 나오면 살 거에요?" - 내년 1월을 기다려 보고요

지금까지 성능보다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을 보여준 닌텐도의 전략은 스위치에 이르러 빛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거치와 휴대 기기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두 영역의 경계를 아우르려는 본격적인 시도는 없었기에 스위치는 한층 더 의미가 있다.

배터리 성능, 내구도, 가격 등 아직 판단할 수 없는 요소들을 제외하고도 닌텐도 스위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기기라는 것은 틀림없다. 궤를 달리하는 닌텐도의 이번 전략이 제대로 적중한다면, 어쩌면 Wii를 뛰어넘는 문화 충격과 함께 닌텐도가 보여주는 새로운 게임 환경을 경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제 VR과 연계하는 추세로 넘어가는 콘솔 기기 시장에서,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다른 경쟁 포지션을 잡으려는 닌텐도의 큰 그림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Wii U가 그러했듯 괴이한 시도로만 남게 될까? 모든 것은 자세한 정보가 공개되는 2017년 1월 13일 알 수 있을 것이다.

▲ 2017년 1월 13일. 자세한 정보가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