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에 밴 카드가 증가하면 어떤 양상이 펼쳐질까?

지난 28일, 라이엇 게임즈의 수석 게임플레이 디자이너 'Meddler'가 차기 시즌 새로운 클라이언트에 10개의 밴 카드를 적용하는 것을 계획중이라고 말하면서 유저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미 챔피언의 수가 130명이 넘어가면서 6개의 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6밴 상황에서는 밴픽 고착화가 심해져서 대회에서 항상 나오는 챔피언만 나온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유저들은 새로운 10밴 가능성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현 상황에서 밴 카드가 6개에서 10개로 늘어난다면 정말로 유저들이 원하는 것처럼 다양한 챔피언들이 등장하고 밴픽 고착화가 해결될까?


■ 전략적 의미가 없는 현재의 밴?


현재의 LoL 밴픽 시스템에서 밴이 가지는 의미는 간단하다. 상대 조합을 깨뜨리는 등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게 아니라 OP 챔피언부터 자르고 보자는 것이다. 이번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도 니달리, 라이즈, 신드라는 고정밴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팀이 어떤 진영에 있건 어차피 밴을 할 챔피언은 늘 똑같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밴이 전략적 활용 가치를 잃고 OP 챔피언 틀어막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밴 카드가 6개에서 10개로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롤드컵 밴 리스트 중 니달리, 라이즈, 신드라 다음으로 자주 등장했던 것은 제이스, 케이틀린, 진, 올라프 등이었다. 현재와 똑같은 상태에서 밴 카드만 10개로 늘어난다면 2티어 밴 리스트였던 제이스 등이 똑같이 고정 밴 리스트에 올라가고 그 자리에는 제 2의 제이스같은 챔피언들만이 자리를 메울 뿐이다.

▲ 10밴이 도입된다고 한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면 상황은 똑같다

단순히 밴 카드가 늘어난다고 해서 밑바닥에 있는 챔피언들이 빛을 보지는 못한다. 현 LoL 메타에서 라인전이 약한 챔피언은 다른 장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 단점 하나만으로 모든 가치를 잃고 도태되고 있다. 과거 나서스나 베이가처럼 '초반은 힘들지만 그래도 참고 버티면 후반에 왕귀가 가능하다'는 말도 옛말이다. '초반은 힘들지만'에서 이미 그 챔피언의 가치는 끝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밴만 6개에서 10개로 늘리는 것은 딱 챔피언 4명 만큼의 고착화 해결만이 가능할 뿐이다. 우리는 과연 이것을 '해결'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 교차 드래프트와 함께 챔피언 개성 살리는 것도 병행되어야


그럼 10밴이 적용됐을 때 밴픽 방식을 선밴 후픽에서 도타2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이하 히어로즈)처럼 교차 드래프트로 바꾸면 그게 완벽한 해결책이 될까? 상황은 나아질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엔 힘들다. 여전히 챔피언 간 완벽한 상위호환, 하위호환이라는 밸런스 붕괴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LoL이 밴픽 단계에서 다양한 챔피언들을 등장시키려면 많은 챔피언들이 '쓰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

LoL에서 챔피언 간의 파워 밸런스는 절대적이다. '약한' 챔피언은 제아무리 독특한 스킬과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고 한들 '강한' 챔피언을 넘을 수 없다. 과장을 보태자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강한 챔피언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 밴 시스템만 바꾼다고 해서 신드라, 블라디미르의 자리에 하이머딩거같은 챔피언이 낄 수는 없다

불편하겠지만 도타2 얘기를 꺼내야겠다. 도타2 역시 수많은 영웅들이 있으나, 그들은 저마다 '대체 불가능한' 개성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A라는 영웅이 아무리 약하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A 영웅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제아무리 강한 B, C가 와도 대체하기 힘들다. 온갖 특이한 스킬 구성과 다양한 효과를 발휘하는 액티브 아이템이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끔씩 예외 상황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도타2의 영웅 관계는 대부분 물고 물리는 식으로 돌아간다.

반면 LoL은 극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액티브 아이템이 매우 적기 때문에 아이템 효과로 대체할 수도 있는 것들을 챔피언의 스킬에 상당 부분 집어넣었다. 문제는 이렇게 생겨난 스킬 구성이 '대미지를 주는 방식'만 다르게했을 뿐 결국 '대미지를 준다'는 결론에 똑같이 수렴한다는 것이다. 도타2의 경우 대미지가 거의 없거나 혹은 아예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능의 유틸성을 지녀 전황을 단번에 뒤바꿀 수 있는 스킬이 많이 있는 반면 LoL에서는 대미지를 주는 스킬만으로 전장의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하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AOS 게임에서 모든 캐릭터가 같은 선상에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초반에 막강한 대신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반대로 초반에 취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지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대미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유틸성으로 무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LoL은 패치를 할 때마다 '대응할 여지'를 주겠다는 이유로 암살자들의 스킬에서 침묵이 삭제당했고, 맷집을 포기하고 딜로 승부를 보던 챔피언들은 딜이 깎여나갔다. 챔피언의 개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하이리턴'보다 급한 불을 우선 끄기 위해 '로우리스크' 방식을 추구한 탓에 어느새 수많은 챔피언들은 개성을 잃고, 누군가의 하위호환이 되거나 존재 이유가 없는 캐릭터로 전락하곤 했다.

▲ 카직스, 아지르, 우르곳 등 자신들만의 강점이 깎여나가고 잊힌 챔피언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단적인 예로 과거 미드 카직스가 한참 날뛰던 시절, 가장 문제가 됐던 W진화의 지나치게 강력한 포킹 문제를 건드리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카직스의 상징과도 같은 Q스킬에 끊임없는 너프를 가한 결과 카직스는 일정 수준의 버프를 받기 전까지 완전한 '고인'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카직스의 장점이던 Q를 가급적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되, 아무렇게나 고립 각을 보지 못하게 약점이던 맷집이나 스킬 마나 소모량을 건드렸다면 카직스는 '예전만큼 쉽진 않지만, 잘하면 여전히 엄청난 딜을 자랑하는 챔피언'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직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챔피언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특징을 잃어버린 채 '고인'으로서의 나날을 보내야 했던가.

더 큰 문제는 한 번 힘을 잃고 떨어진 챔피언은 상기했던 이유와 맞물려 재발견의 기회조차 거의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A 챔피언이 할 수 있는 일 -가장 대표적으로 딜- 을 B와 C 챔피언이 더 잘 할 수 있는데 A 챔피언을 누가 쓰겠는가. 그나마 재발견이 되려면 A 챔피언의 고유의 특징이라도 그대로 남아있었어야 가능한 일인데 밸런스를 잡겠다는 이유로 그 특징마저 뭉텅이로 깎아냈으니 A 챔피언은 개성도 뭣도 남아있지 않은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게다가 특정 아이템의 추가로 오랫동안 쓰이지 않다가 갑자기 탄력을 받은 챔피언이 나타나면 아이템을 너프하는 게 아니라 그토록 오래 잊혔던 챔피언을 너프하고, 거기서 그치지 않은 채 아이템까지 너프를 하면서 아예 두 번 다시 쓸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애물단지가 된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A 챔피언은 리메이크가 되고, 예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챔피언으로 재탄생해 다시 밸런스의 중심으로 떠오르다가, 또 밸런스를 잡겠단 이유로 새로운 스킬의 특징마저 도로 깎여나간다. 이 챗바퀴가 돌고 돌다보면 결국 쓸 수 있는 챔피언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특히 프로씬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 롤드컵은 밴픽 최하위권까지 긁어모아도 등장 챔피언이 57명으로, 전체 챔피언 중 43%에 불과했다


■ 최근 3년 간 디 인터내셔널과 롤드컵 밴픽 비율 현황(글로벌 밴 제외)


- 디 인터내셔널4 : 107명 중 106명 등장 (99.06%)
- 디 인터내셔널5 : 108명 중 104명 등장 (96.29%)
- 디 인터내셔널6 : 110명 중 105명 등장 (95.45%)


- 롤드컵 시즌4 : 120명 중 61명 등장 (50.83%)
- 롤드컵 시즌5 : 126명 중 74명 등장 (58.73%)
- 롤드컵 시즌6 : 131명 중 57명 등장 (43.51%)


약 2주 가량 진행된 도타2 디 인터내셔널6에서 글로벌 밴을 제외하고 총 110명의 영웅 중 105명의 영웅이 밴픽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반면(95.45%) 1개월이나 진행된 롤드컵에서는 글로벌 밴 제외 131명의 챔피언 중 밴픽 화면에 얼굴을 내민 챔피언은 절반도 되지 않는 57명이었다(43.51%). 메타가 바뀔 때마다 기용되는 챔피언은 바뀌겠지만 선택받지 못하는 챔피언들의 비율은 늘 비슷했다.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는 챔피언들이 얼마나 넘치는지, 현 LoL 밸런스가 개성은 없이 얼마나 챔피언들의 절대적인 '힘'만으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밸런스 명목으로 챔피언 고유의 특징 자체를 대패질하는 현 패치 방향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밴 카드가 10장으로 늘어나고 심지어 교차 드래프트 방식이 도입되더라도 대회 환경에 주는 영향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강점은 더 강하게, 약점은 더 크게'라는 방향이 밸런스 패치의 정답은 아니지만 명백한 오답은 있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다가 기껏 유저들의 힘으로 재발견되어 대회에 등장했더니 칼같이 계수를 삭제하거나 너프를 먹여 도로 '고인'으로 만드는 것, 또는 강하다는 이유로 너프에 너프를 거듭하다가 결국 '고인'으로 만들더니 전면 리메이크로 다시 부상시킨 후 또 같은 이유로 너프를 시키는 그런 패치 말이다.

지금처럼 모든 챔피언들의 가치가 라인전, 정글링 능력만으로 평가받는다면 10밴도, 교차 드래프트도 모두 딱 챔피언 4명 분량만큼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게 된다. 밴픽 시스템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밸런스 패치의 방향이다. 많은 챔피언들의 개성을 살려서 변화된 밴픽 시스템 내에서 다양한 챔피언이 등장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패치가 필요하다.

교차 드래프트는 각 캐릭터들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때 수많은 조합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A가 하는 일을 B와 C가 대체하지 못하고, 팀의 전체적인 조합에 따라 '약캐' 취급을 받는 A가 충분히 힘을 쓸 수 있는 그런 환경이 필요하다.



10밴 도입 가능성에 대해 라이엇 게임즈가 입을 열자 수많은 유저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밴 카드가 2장씩 더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밴 시스템이 바뀜으로써 밴픽 고착화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7 암살자 리메이크와 함께 10밴이 도입된다면 LoL 프로씬 전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변화가 일순간의 미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LoL 생태계에 청신호를 켜는 변화의 시발점이 될지는 라이엇 게임즈가 진행할 앞으로의 패치 방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