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질문을 해보겠다. 당장 알고 있는 게임계의 저명인사를 몇 명까지 세어볼 수 있는지 말이다. 간단한 질문 같지만, 의외로 쉽게 답하지 못할거다. 일단 저명 인사라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거니와, 반백년도 안된 게임계의 역사상 널리 그 '이름'이 알려져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는 대신, 여러분이 앞으로 맞닥뜨릴 이 질문의 답에 어울리는 이 한명을 소개하겠다. 성공한 게임 개발자이자, 저술가이며, 강연자이기도 한 사람. 기자가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2016년 GDC 에서 였지만, 그 이름을 들어 본 것은 그보다 훨씬 이전,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Art of Game design)'의 저자로서 였다. 바로 셀 게임즈의 제시 셀(Jesse schell)'이다. 현재 그는 VR/AR 게이밍의 선구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미 게임 관계자와 개발자들, 미디어에 그 이름이 익히 알려져 있는 말그대로의 '저명인사'다.

지금에야 모두가 VR에 열광하며 게임으로서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이미 20세기 말 부터 VR 게이밍을 예견하고 연구해왔던 제시 셀은 누구보다 현명하고, 또 위트있는 강연으로 굵은 족적을 남겨왔다. 좋은 기회를 얻어, 인벤 글로벌은 그를 직접 만나고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 셀 게임즈(schell games) CEO 제시 셀(Jesse schell)

제시 셀 대표 주요 약력
  • 디즈니랜드 '캐리비안의 해적' 어트렉션 제작
  • 디즈니랜드 '토이스토리' 어트렉션 제작
  • MMORPG '캐리비안의 해적 온라인' 개발
  •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Art of Game Design)' 저술
  • 셀 게임즈 대표




  • Q. 정보통신과 관련을 전공했다고 들었다. 어째서 비디오 게임이라는 산업에 종사하겠다 결심하였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난 언제나 비디오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정보 통신학 학위 과정을 이수하면서,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VR 게임의 서버를 어떻게 구축하는지에 대한 석사 논문을 썼다. 그게 1993년이니, 당시에는 굉장히 미래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내가 진행했던 당시 VR에 관련된 연구들을 바탕으로 1995년에 디즈니 VR 스튜디오에 입사하게 되었고, 그게 이 업계에 입문하게 된 첫 발걸음이었다.

    ▲ 같은 내용의 보드 게임으로도 제공되는 그의 저서

    Q. 당신의 책,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은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저서 중 하나다. 이 책을 내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어떤 계기로 이런 책을 쓰고자 했는가? 또 저서의 컨셉인 렌즈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그 책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것 중 하나였는데, 학생들에게 게임 디자인 과정을 가르치게 되면서, 이를 책으로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내가 이 책을 쓰는데에 많은 우려를 표했는데, 수많은 경험을 가진 게임 디자이너들은 내게 “게임 디자인에 대해 좋은 책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어떤 조언이든 특정 게임에서는 옳을 수 있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무용지물일 테니까.” 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떠오른 생각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언제나 옳고, 문제는 답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왜 이 책이 ‘렌즈’들로 이루어진 것인가에 대한 이유다. 113개 각각의 렌즈들은 모두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서로 다른 질문들을 가지고 있다. 개발자가 그들 자신의 게임에 대해서 꼭 의구심을 가져야만 하는 질문들 말이다. 이는 개발 과정에 대한 것에서부터 게임 메카닉, 스토리, 인터페이스, 심지어 팀 관리와 영감을 자극하는 것에 까지 다양한 범위의 질문을 모두 포함한다. 궁극적으로, 좋은 게임 디자인은 가능한한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의 게임을 고민하는 것에서 나온다.


    Q. 누군가는 당신의 저서를 사전처럼 필요한 렌즈를 빼어보는 식으로 보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이 어떤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읽혔으면 하는가?

    내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굉장히 공을 들인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책이 쉽게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상적으로는 이 책이 새로이 시작하는 게임 디자이너와 숙련된 디자이너 모두에게 유효하길 원했다. 결과적으로, 두 부류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여졌고, 어떤 방식으로 읽든, 도움이 된다면 환영이다.


    Q. 셀 게임즈는 보통의 게임 개발사와는 좀 다른 것 같다. 회사의 소개를 부탁한다.

    셀 게임즈는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백여명 정도의 개발자들이 모여 설립된 게임 개발사다. 게임 개발사 중에서도 우리는 상당히 독특한 케이스일텐데, 그동안 굉장히 많은 종류의 게임을 개발해왔다. 웹, 모바일 게임에서부터 인터렉티브 테마파크, 박물관 전시시설, 인터렉티브 토이와 VR까지. 지금 우리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역시 VR과 AR이다. 현재 작업중인 프로젝트 중 80% 이상이 VR 과 AR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Q. 셀 게임즈에서 대표로 있으면서 진행중인 프로젝트들이 어떤게 있는지 궁금하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나의 주요 업무는 게임을 직접 개발하기 보다는 이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는 훌륭한 개발자, 디렉터, 디자이너를 키워내는 일이 되었다. 때문에 내가 주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태지만, 계속해서 컨셉과 계획을 발전시켜 나가고는 있다. VR과 소셜의 조화, 이를테면 VR MMORPG 의 컨셉을 잡는데 집중하고 있다.



    Q. 올해 중으로 만나볼 수 있는 셀 게임즈의 프로젝트가 있는가?

    물론이다. 2017년 내로 런칭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몇가지가 준비되어 있다. ‘해피 아톰(Happy Atoms)’은 AR 인터렉티브 토이이며, ‘도미노 월드(Domino World)’는 구글 탱고 폰을 위한 AR 게임이다. 이외에도 구글 데이드림 VR로 개발중인 ‘프로스트바운드(Frostbound)’, 오큘러스 리프트로 이번 12월 6일 출시될 ‘아이 익스펙트 유 투 다이(I Expect You To Die)’가 있다. 이외에도 다른 플랫폼으로 더 많은 작품이 개발 중에 있다.


    Q. 주목하고 있는 다른 게임 스튜디오나 주목하는 개발중인 게임 프로젝트가 있는지? 그 이유는?

    ‘니트 코퍼레이션’에서 제작한 ‘버짓 컷(Budget Cuts)’을 정말 좋아한다. 그들이 그 다음으로 무엇을 할지 기대된다. ‘터보 버튼’은 내게 많은 영향을 주는 스튜디오 중 하나인데, 그들의 ‘어드벤처 타임’ VR 게임은 시대를 앞선 게임이었다.


    Q. VR, AR이 우리 삶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본격적인 VR, AR 게이밍은 언제쯤 우리가 체험할 수 있게 되고, 어떤 형태의 게임과 게임 문화가 새롭게 가능해질까?

    VR은 마치 폭풍처럼 게임계를 휩쓸고 있다. 그 경험은 무척이나 강렬하고, 굉장한 몰입감을 주며, 또한 굉장히 사회적이다. 이런 강력한 게임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들이 분명 생겨날 것이다. 이번 연말에 오큘러스 터치, PS VR, HTC 바이브, 구글 데이드림 등이 실제로 시장에 출시되면 그 안에 들어있을 놀라운 콘텐츠들을 기대해도 좋다. AR은 아직 조금 더 멀리에 있지만, 몇 년 안에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Q. 지난 GDC2016 에서 강연을 들었다. VR에 대한 40가지 예측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그런 예측을 즐겨하는 입장에서 VR 을 대비하기 위해 게이머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알려달라.

    기존의 게이머들은 먼저 VR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또 필요하다면 어떤 종류의 VR을 원하는지 확실히 해야 한다. 몸 전체를 활용해 즐기는 게임을 좋아하는가? 다른 플레이어와 아바타를 통해 아이컨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밀접한 교감을 나누고 싶은가? 정말로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모험을 즐기는 듯한 RPG를 원하는가? 몸으로 느껴가며 몇시간 동안 퍼즐을 푸는걸 즐기는가? VR은 게임 개발자, 기기 제작자들 모두 현재 실험단계에 있는 물건이고, 플레이어들도 실험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과연 VR 게임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도 그 안에 포함된다.

    ▲ 제시 셀 대표가 유명세를 얻게 해준 2010년 강연 영상

    Q. 당신이 2010년 DICE 2010에서 한 TED 강연이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현실 사회에 녹아들고 반영되는 게임 그리고 게임 속 요소에 대해 굉장히 많은 통찰을 보여주었는데, 당시에 그러한 강연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이 게임 디자인이란 단순한 놀이와 관련된 수준의 일이 아니라는걸 이해했으면 한다. 이는 그보다는 사람의 자연적인 영감, 자극과 밀접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저 이러한 작용, 게임의 영향력이 어떻게 새로운 게임에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드는지를 찾아내려 한다. 나는 그들이 더욱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며, 훌륭하게 만들어진 게임플레이 구조가 어떻게 플레이어를 자극하고 그들의 삶을 향상시키는지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Q. 현실의 게임화, 혹은 게임의 현실화를 예견하는 입장에서 몇가지 더 재미있는 것들을 들려줄 수 있나?

    2010년의 발표 이후로 쭈욱, 내가 곧 벌어질 것이라고 말해왔던 많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건강 팔찌 등 운동 추적기는 이제 백만 개 이상 사용되고 있고, 블루투스 칫솔도 진짜가 되었으며, 중국도 세서미 크레딧(sesame credit) 이라는 신용 게임을 만들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게임의 구조를 지녔거나 그 영향을 받은 시스템과 물건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우리의 행동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게 좋던 나쁘던 간에 말이다.


    Q. 최근 한국의 한 개발자가 말하기를, "책이 취미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지적 허영심'이다. 사람들은 지식을 얻고자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지적 허영심을 자랑하기 위해 책을 구입하고 자랑하고 고급 문화라고 한다. 하지만 게임은 아직 그런 면이 부족하다." 라고 했다. 여기에 동의하는지? 과연 게임이 사람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역할에 부족한 매체라 생각하는가? 또 게임이 대중적으로 Share 하거나 자랑할 수 있는 문화가 아직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비디오 게임은 언제나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무척이나 노력해왔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린 게임을 어떤 고상한 취미로 삼는게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게임에 있어서 그런 지적 허영심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는, 모두에게 너무나 어려운 게임을 정복하고 이를 자랑하는 것이 있겠다. 책에 대한 지적 허영심은 ‘오직 천재적이고 똑똑한 이들만 그 책을 이해할 수 있다’ 라는 심리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를 게임에 대입해 본다면, 오직 그런 천재적인 이들만 플레이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록 지금 모든 게임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게임에서도 그런 종류의 우월감을 수많이 보게 될 것이다.


    Q. 비디오 게임은 사회적으로 가장 큰 반감을 사고 있는 문화 중 하나다.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배후에 비디오 게임이 있다는 주장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그런 일이 왜 벌어지고, 또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미디어가 비디오게임을 그런 방식으로 묘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도하게 넘쳐 흐르는 폭력적 콘텐츠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 오직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게 만들 만큼 많은 이들을 쏴죽이는 것 뿐인 게임, 경험이 넘쳐나고, 이를 일종의 문화적 표준으로 삼는다면, 이는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도덕성에 큰 의문을 품게 만들 것이다. 게임에 대한 그런 편견을 바꾸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날 싫어하는 놈들은 모두 죽인다” 에서 그치지 않는, 다양하고 폭 넓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Q. 게임업계의 일원으로서 후대에 어떤 인물로서 기록되고 싶나?

    나는 비디오 게임을 현명하게 잘 이용한다면 사람과 사람의 삶을 발전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일을 실제로 가능하게 한 일원으로서 기억되고 싶다.


    Q. 한국의 개발자들과 게임 팬들에게 마지막 한말씀 부탁한다.

    현재, 비디오 게임 역사상 아주 의미있고 신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전례 없이 새로운 발명과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누구든 VR 혹은 AR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게 누구든 지금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 속에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다. 그저 당신이 수십년 간 플레이 해왔던, 기존에 있던 게임의 미약한 각색에 지나지 않는 게임들을 만들려 하지 말고, 지금까지 있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새로운 것들에 대한 수없이 많은 기회들에 주목하길 바란다. 다만 언제나 열린 마인드를 유지하면서,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