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적으로 리더에 대한 말들이 많습니다.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이끄는 것이 리더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집단이 힘들 때, 끝까지 남아 책임지는 것 역시 리더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죠.

'명가'로 불렸던 CJ 엔투스의 몰락. 작년까지 CJ 엔투스를 롤챔스 무대에서 못 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 선수와 코치진이 대부분 떠난 CJ 엔투스는 신생팀과 다름없었고, 새로운 감독과 신인들이 오랫동안 CJ 엔투스가 쌓아왔던 무게를 견디지 못했죠. 리더인 박정석 감독에게 부담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답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죠.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은 박정석 감독은 '강등'이라는 성적을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2부 리그로 떨어지고 팀원마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팀.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였지만, 박정석 감독을 믿고 전 나진 e엠파이어 출신의 코치진이 다시 뭉쳤습니다.

두 코치는 어떤 점을 보고 CJ 엔투스의 코치진에 합류하게 됐을까요. 전 코치들이 믿는, 위기의 팀을 포기하지 않은 박정석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Q. 인터뷰를 통해 오랜만에 만났어요.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에 대해 알려주세요.

롤챔스 승강전이 끝난 후에 생각이 많았어요. 나진 시절부터 여러 팀을 이끌었지만, 역대 통틀어서 최악의 성적을 냈죠. 처음에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더라고요. 한동안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이제는 정신 차리고 다시 감독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Q. '명가'로 불리던 CJ 엔투스의 기존 선수와 코치진이 모두 나가고, 거의 새로운 팀을 작년부터 맡은 것과 다름없어요. 갑자기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게 대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처음 CJ 엔투스에 올 당시 주변 관계자들이 말했죠. 오랫동안 활동해서 두터운 팬층이 있기에 그만큼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자리라고. 그래도 현 CJ 엔투스 사무국에서 믿어줘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스프링 시즌만 하더라도 새롭게 꾸린 팀치고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이후에 무너지게 되면서 저 역시 할 말이 없어지더라고요. 너무 안 좋은 성적을 냈기에 변명할 수조차 없었죠. 팀을 잘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기도 하니까요. 대화를 안 한 건 아닌데, 팀원들과 더 많이 대화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모든 걸 다 쏟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Q. 그렇다면 스프링 시즌과 달리 섬머 시즌부터 갑자기 아쉬운 경기력이 많이 나왔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 이유를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입장이죠. 제 발언으로 인해서 특정 선수나 회사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럴수록 저도 점점 움츠러들게 됐고, 내가 이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떨 때는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Q. CJ 엔투스가 롤챔스 승강전에서 떨어졌지만, 계속 구단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어요. 강등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을텐데, 어떻게 다시 팀을 다잡을 수 있었죠?

아직 다잡았다기 보다 선수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해야하는 단계에요. 강등했을 당시 저도 힘들었지만, 팀원들과 장누리 코치가 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새롭게 선수를 모집하면서 기존 팀원들 역시 복잡한 상황이죠.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제가 더 기운내서 행동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작년에는 저도 새롭게 CJ 엔투스에 합류하게 된 입장이라 새로운 팀원들과 조화롭게 잘 맞춰나가야 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중심을 잡고 기존의 제 스타일로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을 맞는 게 두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 제 소신 껏 팀을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작년에는 선수들이 CJ 엔투스라는 무게감에 눌려서 힘들어 했어요. 다른 팀에서 실수하면 한 마디를 듣는다고 하면, 여기에서 잘못하면 몇 배에 해당하는 원성을 들어야 했죠. '다른 팀이었으면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가진 팀원들이 생기더라고요. 프로니까 견뎌내야지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지만, 막상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에요. 저도 성과가 안 나오니까 비난을 당연히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느끼지만, 조금 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팀원들도 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고요. 저도 스타1 프로게이머 시절 연패를 경험했을 때 출전하는 게 두렵기도 했거든요. 프로게이머로서 패배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이미 50% 이상 승리하기 힘들어진 상황이에요. 제가 아무리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격려해주더라도 막상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부담을 떨쳐버리기 힘들거든요.

이런 말을 하는 것 조차 조심스러웠죠. 다른 팀 역시 부담감을 느끼니까요. 이전 CJ 엔투스에 인기있는 선수들이 있었고, 그만큼 팬층이 두텁기 때문이라고 좋게 볼 수도 있죠. 그렇지만 CJ 엔투스에 막 들어온 신인 프로게이머들은 그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Q. CJ 엔투스에 들어오자마자 롤챔스 무대 경험이 없는 신인들을 뽑아서 급하게 준비해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나진 시절부터 매 시즌 리빌딩을 거쳐왔어요. 단 한 시즌만이라도 리빌딩 없이 쭉 가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선수를 선발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더라고요. 어떤 경우에는 짧은 기간 안에 새롭게 선발하고 변화해야 했죠. 특히, 나진 시절에는 '쉴드'와 '소드'를 동시에 운영하다 보니 서로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두 팀 모두 만족하는 팀을 구성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죠. 팀워크라는 게 팀원들 간에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성향까지도 맞아야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평소 성격적으로 서로 안 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게임 속에서 맞춰나가야 하거든요. 사소한 곳에서 불신이 생기니까 팀워크가 깨져버릴 수 있죠.

이번 2016 시즌에는 마음이 약해져서 팀워크를 잘 관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실, 욕을 듣는 건 누구나 다 싫어하잖아요. 저도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때 쓴소리는 잘 안 들어봤는데, 감독 되면서 많이 듣다 보니 점점 위축이 되더라고요. 저도 위축됐는데, 팀원들은 오죽할까... 그러다보니 강수를 둬야 할 때도 움츠러들게 됐죠.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리고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Q. 삼성 갤럭시와 CJ 엔투스가 대다수 신예와 오래된 경력을 가진 선수로 팀을 구성했다는 점이 비슷해요. 지난까지 최하위권이었다가 이번 해에 최상위권으로 올라온 삼성 갤럭시의 롤드컵 선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최우범 감독의 능력이죠. 삼성 갤럭시가 '신구' 조화가 잘 이뤄졌다면, 우리는 반대의 상황이었으니까요. 제가 잘 컨트롤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더 절실하게 노력해야 하죠.

한편으로는 정말 부럽기도 해요. 저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할 때부터 오르막-내리막의 굴곡이 정말 심했어요. 연승도 많이 했지만, 연패할 때는 성적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죠. 감독이 돼서도 롤드컵 진출과 승강전 탈락까지 경험했어요.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저 혼자만의 책임을 지면 됐지만, 감독의 자리에 오게 되니까 팀 전체를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게 됐죠. 티모 사건에 이어 승강전에서 떨어지다 보니 정말 버티기 힘들었어요. 그 시기에 정말 마음이 약해졌지만, 감독이 중심을 잡지 않으면 전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났죠. 나만 힘든 것 같은 말들은 비겁한 변명 같고, 이제는 강하게 마음을 다잡으려고요.




Q. 전 나진 출신이었던 '고릴라' 강범현이 감독님에게 프로게이머의 마인드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팀원들에게 어떤 마인드를 가지라고 말하나요?

프로게이머 시절에 경험해보고 배웠던 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어요. 지금 프로씬과 제가 활동하던 시기를 비교하면 차이가 있지만, 당시 프로게이머들이 가졌던 '절실함'에 대해 말해줬죠. 나진에 있을 때도 팀원들에게 하나를 제대로 하려면 자기만의 다른 취미나 생활을 포기하면서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게이머들이 프로게임단에 입문하는 게 가장 큰 꿈이었죠. PC 방에서 한 끼만 먹고 연습하던 시기였기에 프로팀에 들어가서 안정적인 환경에서 연습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해외에 많은 팀들이 좋은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당시에는 프로구단과 자국 리그가 활성화된 곳이 한국밖에 없었어요. 프로팀에 들어가지 못하면 프로리그에 참여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한 팀에 있으면 규율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정말 자유분방한 선수들이 많지만, 그런 규칙을 잘 버텨내고 따르려고 했던 결과적으로 잘 된 것 같아요. 뭐든지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처음부터 풀어져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던 (이)영호와 범현이 모두 실력이 뛰어났지만, 끝까지 바른길을 가길 바라는 마음에 처음부터 힘들게 했던 것 같아요.

특히, LoL은 팀 게임이잖아요. 스타크래프트처럼 개인전이라면, 다른 팀원을 출전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LoL은 한 선수가 무너졌을 시 팀 전체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되죠. 팀원들 간에 신뢰가 어떻게 쌓였는지가 경기에 영향이 클 수밖에 없어요. 다수의 팀원이 한 명을 포용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절대 이해해주지 못하겠다고 반발하는 일 역시 빈번하게 발생하더라고요.


Q. '모쿠자' 김대웅 코치가 옵저버 시절에 박정석 감독을 존경한다는 말을 하고 채우철 코치와 자주 연락한다고 말할 정도로 셋이서 각별한 사이었나봐요. 나진 e엠파이어 시절 코치진이 어떻게 다시 뭉치게 된 건가요?

두 코치 모두 처음 나진에 합류하게 됐을 때, 지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대했어요. 저도 같이 일하면서 일을 시키는 까다로운 상사였죠. 그런 시간을 지내고 함께 하다 보니 어느새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해요. 이후, 채우철 코치가 사직서를 냈다고 해서 만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후배이자 동생으로서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래도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잘 맞아서 함께 하기로 했죠. 제가 앞서 말했던 프로와 팀에 대한 소신을 새롭게 합류한 코치가 빨리 받아들이기 힘들거든요. 저에게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이고 팀을 다시 롤챔스로 올려보내야 하는 급한 입장이기 때문에 함께 마음이 맞는 코치가 필요했죠. 김대웅 코치도 옵저버를 그만두고 나서 연락을 계속 해왔는데, 고민 끝에 다시 합류하기로 했어요.


Q. '모쿠자' 김대웅 코치가 나진 시절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선수-코치진이 힘들어하는 점을 먼저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짜 감독의 역할이 무엇인지 느꼈다고 해요. 박정석 감독이 생각하는 감독의 역할이란?

많은 분들이 감독이라는 자리가 높은 자리에 서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다른 감독님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상황에 따라 가족 일원의 역할을 한다고 느꼈어요. 어떨 때는 아빠 같기도, 엄마처럼 챙겨주고 잔소리할 때도 있죠. 때로는 큰 형, 삼촌처럼 친근하기도 하고요. 김대웅 코치가 저런 말을 한 것은 제가 선수들만 챙겨서 그런 것 같아요. 코치들이 투정하듯이 왜 자신들은 안 챙겨주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선수 시절에 똑같이 챙겨줬다고 말해줬던 게 생각나요. 팀원들에게 겨울에 가습기 습도 조절부터 먹고 싶은 것까지 사소한 것부터 챙겨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쓴소리를 하는 것 역시 제 역할이기도 하죠.

감독의 역할이 코치보다 겉으로 눈에 띄지는 않아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있으니까요. 우리팀의 경우 코치가 분명 감독보다 게임에 대해 더 잘 알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정확하게 분담을 해서 코치의 영역에는 간섭하지 않았어요. 서로의 영역을 더 존중해주기에 잘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경우에는 부탁해서 같이하기도 하죠.




Q. 이번 KeSPA 컵 로스터에 큰 변화가 있었어요. 기존 선수인 '운타라-비디디-크레이머'가 제외됐고, 새롭게 전 스베누 출신의 탑 라이너 '소울' 서현석, 신예 원거리 딜러 '모모' 박민식-정글러 '리치' 이주원이 합류했어요.

아직 내년 시즌까지 확정된 로스터가 아니에요. 기존 팀원들이 남아있을 수 있고, 새로운 팀원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작년과 달리 이번 KeSPA 컵에서는 아직 계약하지 않은 선수들도 출전할 수 있게 됐죠. 보통 온라인으로 게임을 하는 모습만 보고 입단을 결정하는데, 효율적으로 테스트 해보려면 실전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지켜봐야 하죠. 선수들에게 실전 테스트가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롭게 들어온 신인 선수들에 대해서는 계약이 확정되면 그때 자세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팀과 같이 못 가게 됐을 때,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기에 언급을 자제하려고 해요. 우선, 온라인 기량으로는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들이에요. 직접 테스트를 요청한 선수도 있고, 테스트를 보러 온 선수들도 있어요. 확실히 롤챔스 팀이 아니기에 새롭게 선수를 구하기 힘든 면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괜찮다고 판단한 선수들이죠.


Q. '기회의 장'으로 불리는 KeSPA 컵을 앞두고 있어요. 이번 대회에서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이번 대회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무래도 정규 시즌에서 우리 팀이 너무 무기력하게 무너져서 실망한 팬들이 많았죠. 지금 당장 KeSPA 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 테스트를 보는 선수들은 모두 잘하고 싶을 텐데, 지금 당장 꼭 이겨야한다는 부담감을 주고 싶지는 않아요. KeSPA 컵도 열심히 임할 것이지만, 어쨌든 내년 챌린저스 코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단계에요. 너무 급하게 해서 '소탐대실'하지 않으려고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감독으로서 성과가 있었다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우울한 이야기만 해서 아쉬워요. 하지만 다음 시즌에는 흔들리지 않고 코치진과 팀의 중심을 잡아서 내년에 반드시 롤챔스에 올라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게요.



사진 = 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