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로스에 불타는 군단이 침공했다. 과거에도 몇 번씩이나 쳐들어왔다가 혼쭐이 나고도 다시 온 것을 보면 역사를 모르는 종족이 분명하다.

아제로스 공략이 더 쉬워진 것도 아니다. 먼 옛날에 야생 신과 불멸자들이 아제로스를 수호했다면, 지금은 수많은 우두머리를 격퇴한 백전노장이자 죽어도 죽지 않는(?) 모험가들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모험가가 어떤 자들인가? 불과 바람의 정령왕, 고대신 크툰과 요그사론, 검은용군단과 푸른용군단의 수장,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평가를 받고 있는 천둥 왕 등··· 그야말로 아제로스에서 한 가닥 하는 것들을 수없이 때려잡으며 성장한 불세출의 용사다. 이쯤 되면 메디브의 뒤를 이은 아제로스의 수호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이 모험가들은 최근에 직업을 대표하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10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아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지위가 급상승한 것에 비해서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다. 과연 모험가는 어떤 처우를 받고 있길래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걸까?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간단하게 되짚어 보도록 하자.





■ 일개 모험가, 10년 만에 사령관이 되다

약 10년 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등장한 수많은 모험가는 화산 심장부의 라그나로스를 상대하고 아웃랜드로 건너가 일리단을 때려잡으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자신이 속한 진영을 위해, 때로는 아제로스의 평화를 위해서 싸우는 모험가들은 점차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인력이 되었고 머지않아 아제로스의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한다.

이들의 활약은 리치 왕 아서스를 상대할 때 정점을 찍었다. 비록 티리온 폴드링에게 최후의 일격, 소위 말하는 막타를 내어주긴 했지만 얼라이언스와 호드가 힘을 합쳐 아제로스를 파괴로 뒤덮은 스컬지들에게 맞서 싸운 일은 세기의 전설로 남았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아제로스의 평화를 지킨 모험가에게 남은 것은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아제로스 뿐이었다. 간혹 시민에게 "용사님"이나 "영웅"으로 불리곤 했지만,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하고 황천매듭 가방을 팔아가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삶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강철 호드의 침략을 사전에 뿌리 뽑기 위해 드레노어로 넘어간 원정대에게는 구심점이 필요했고, 당시 선봉대를 지휘하던 구원자 마라아드와 스랄(주둔지 1레벨 기준)은 모험가를 사령관의 자리에 앉혔다.

이름뿐인 영웅이 아닌, '사령관'이라는 어엿한 직책을 가지게 된 모험가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적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주둔지를 세워 약초와 광석, 요리 재료를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주키코모리'('주둔지'와 '히키코모리'의 합성어)라고 불리던, 주둔지에만 틀어박힌 모험가가 속출했다는 부작용이 들려올 정도였으니 그 강력함은 더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듯 하다.


▲ 수많은 주키코모리를 양성한 주둔지의 모습


드레노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령관은 검은바위 용광로와 지옥불 성채에 쳐들어가서 강철 호드를 뿌리 뽑고 아키몬드를 뒤틀린 황천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지지 기반을 잃은 그롬 헬스크림은 태세 전환에 성공해서 드레노어의 자유를 외치고, 사령관은 드레노어의 유일무이한 권력자로 떠오르게 된다.

강철 호드에 맞서 아제로스의 평화를 지켜 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일과는 변하지 않았다. 드레노어의 정복을 끝내고 그 뒤처리까지 함께 떠맡아서 직접 광산에 내려가 광맥을 캐고, 밭에서 약초를 거두며, 드레노어 주민의 다양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두 발로 뛰어야 했기 때문이다. 간혹 주둔지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임무를 내리기도 했지만, 사령관의 일과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해 보이는 것이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 사령관인긴 한데, 채광도 하고 약초도 스스로 캐야 한다


심지어 드레노어 원정부터 지옥불 성채 공략까지 모험가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카드가는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를 꼬투리 잡아 군대식 갈굼을 시전한다. 얼라이언스나 호드를 대표하는 사령관도 고귀한 대마법사이신 카드가에게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전설 반지를 만들어줄 때도 생색은 제대로 부린다. 반지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에펙시스 수정을 4,986개 모아오라고 한다. 4,500개도, 5,000개도 아니다. 정확히 4,986개다. 고속 승진한 모험가를 시샘한 걸까? 이쯤 되면 감정이 섞였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이 정도면 거의 부하 직원 다루는 수준
출처: 인벤닉 합장비둘기 게시글

▲ 당시 유행처럼 퍼졌던 카드가 합성 이미지
출처: Tumblr



■ 직업의 대표가 된 사령관,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어쨌든,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한 사령관이 잠시 찾아온 평화에 안도하는 사이에 아제로스로 도망친 굴단이 불타는 군단을 소환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얼라이언스와 호드 연합군은 강철 호드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경험을 바탕으로 기세등등하게 부서진 섬으로 향하지만, 불타는 군단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양 진영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바리안 린과 볼진, 그리고 각 직업의 지도자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권력 공백 현상이 일어나자 이번에도 모험가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된다. 일개 모험가에서 사령관으로 승진하고, 이번에는 각 직업의 대표자가 된 것이다.


▲ 자신 있게 부서진 섬으로 향한 용사들은 결국···.


직업 별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모험가는 파멸의 인도자를 휘두르는 은빛 성기사단의 수장, 1만 년 이상 살아온 말퓨리온에 버금가는 대드루이드, 4대 정령 왕의 연합을 이루어 낸 대지 고리회의 대표, 그리고 전문사냥꾼(?)이 되었다.

물론, 예상했던 것처럼 하는 일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제로스 주민의 잡일 처리에서 부서진 섬 주민의 잡일 처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달라란에서는 노미가 허구한 날 음식을 태워 먹기 일수고, 수라마르에서는 샬아란으로 피신한 나이트폴른의 마나를 일일이 공급해줘야 한다. 그냥 밖으로 나가서 주워 먹으면 되는 데 말이다.

심지어 수라마르 성에서는 나이트본으로 위장하고 숨어 돌아다니면서 "환영이군! 뭘 숨기고 있느냐?"라는 말이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모험가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악마사냥꾼은 아제로스의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낸 모험가에게 "그대는 뭘 희생했습니까?"라고 묻더라. 눈이 없어서 사리 분간을 못 하는 직업이니 이해해줘야 할까.


▲ 블리자드에서도 인정한(?) 노미의 진정한 모습

▲ 스스로 고대 마나를 찾으러 다닐 노력을 하지 않았던 탈리스라


지금까지 모험가의 지위가 오르는 만큼 번듯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지도자가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니 오히려 바람직하다고도 할 수 있다. 리더쉽 상실의 시대에 얼마나 멋있는 지도자상인가? 탁자에 앉아 말로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닌, 직접 두 발로 뛰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불타는 군단이라는 일생일대의 적을 상대하는 만큼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 하찮은 퀘스트라고 마다할 여유가 없다. 유물 무기를 얻기 위해 두 발로 뛰어야 하는 것도, 샬아란으로 피신한 나이트폴른의 보모 역할을 하는 것도, 별의 궁정에서 열린 나이트본의 만찬에서 불타는 군단의 첩자를 색출하는 것도 모두 아제로스의 평화를 위한 길이다. 지옥사냥개의 최종 분비물을 뒤적거리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최근에는 샬아란을 중심으로 수라마르 성을 공략하기 위한 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이트폴른의 뒷바라지를 마무리하는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앞으로 모험가는 더욱 위대한 일들을 행할 것이다. 그와 함께 아제로스에서의 사회적 위치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불타는 군단까지 마무리하면 얼라이언스와 호드 양 진영의 수장 자리도 노려볼만하지 않을까? 블리자드와의 인터뷰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했지만, 모험가의 행적을 따지고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