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요? 경기 끝나고 하는 승자 인터뷰 말고는 해본 적 없어요."

일산 한 커피숍에 마주 앉은 SKT T1의 서포터 '울프' 이재완이 말했다. 그 친구의 경력을 하나씩 말하자면 입 아픈 일이다. 경력을 따지지 않더라도, 5년 이상 활동한 e스포츠 선수라면 통과의례처럼 하는 게 인터뷰다. 월드 챔피언십을 2회 연속으로 우승하고서야 자리가 마련됐다니.

"슬프죠. 경기준비 때문에 팀에서 커트한 것도 있지만, SKT T1에 와서 따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네요. 팀을 옮기기 전에 한 것도 단체 인터뷰였어요. 슬프긴 하지만, 아무래도 저보다 좀 더 화제거리가 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같아요. 이런 일은 저보다 조금 더 화제성 있는 친구가 나가야 하니까(웃음). 섭섭하긴 하네요."

이재완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많은 e스포츠 관계자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면서 올해부터 허용된 SNS로 팬들과 대화하고, 팬미팅하는 게 즐겁단다. 이제야 그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인터뷰 자리를 가져봤지만, 선수가 먼저 말을 건내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팬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기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자리다. 선수가 긴장을 풀기까진 시간이 필요한데, 이재완은 오히려 인터뷰어를 배려했다. 인터뷰 전 나눈 사담 속에서 이재완이 보였다. 이재완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받는 걸 원하는 아이처럼 보였다. 뒤에서 기회가 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좋아하지 않아요. 실제로 솔로랭크를 할 때도 서포터는 거의 하지 않았어요. 어느 게임을 하든지 딜러 포지션을 하는 편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서포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언제나 눈에 띄고 싶어요."


서포터가 본인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어째서 서포터를 가게 되었을까?

"약간 민감한 문제일 수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솔로랭크 1등을 찍었거든요. 그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는데, 가만 보니 아마추어 중에 잘하는 서포터가 없었어요. 당시에 '비닐캣' (채)우철이형(현 CJ 코치)이랑 친했는데 서포터가 어떤지 물어봤는데 뭐든지 하나만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나진 e엠파이어에 (채)우철이형 서브로 입단했어요."

솔로랭크 1등이라면 누구와 라인전을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텐데, 미드 라이너로 데뷔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 이재완은 당시에 미드 라인에 쟁쟁한 사람이 많았다며 당시 고전파 '페이커' 이상혁과 '플라이' 송용준을 예로 들었다. 그의 대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그가 말해준 17살 이재완은 평범하지 않은 학생이었다.

"중학교부터 롤을 해서 점수가 높아지다 보니 프로게이머를 자주 만났거든요. 자연스럽게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어요. 한 번은 국어 시간에 수행평가를 했는데 자신의 꿈을 PPT로 만들어오는 과제가 있었어요. 저는 프로게이머를 조사해서 발표했거든요. '모쿠자' (김)대웅이형을 내 롤모델로 밝히고 내 랭킹 점수를 보여주면서 저는 현실적으로 프로게이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저를 수업해주시는 선생님 열 분을 전부 찾아가 부탁했어요. 밤에는 연습해야 되니까 수업시간에 자도 될까요?'라고(웃음)."

"진실성 있게 이야기를 했더니 열 분 중에 여섯 분은 자도 된다고 허락해주셨어요. 영어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수업 오시면 '프로게이머 왔어~? 어여 자~!' 라고 해주셨거든요. 제가 자는 걸 허락해주시지 않는 분도 계셔서 벌점이 쌓였어요. 버티는 대로 버텨 봤는데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상벌 위원회가 열리고 부모님이 학교에 오셔야 했어요. 당시에는 정말 죄송했죠."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가는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란다. 그의 부모도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재완은 어머니께서 특히 반대하셨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정말 반대하셨어요. 저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도,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해서 직업을 가지길 원하셨거든요. 눈물도 많이 흘리셨어요. 반면, 아버지는 굉장히 개방적이셔서 아버지와 약속을 했죠. 1년만 해보겠다고. 박정석 감독님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셔서 설득도 해주셨어요. 재완이는 이런 가능성이 있다, 이제 열리는 롤드컵은 상금이 얼마다, 우리 팀은 어떤 게임단이다. 등등 이야기를 잘해주셔서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어요."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던가. 어머니의 눈시울을 붉히면서까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큰 성공을 거뒀다. 이재완은 이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좋아하신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버는 액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재완을 자랑하시면서 싸인도 대신 받아주신단다.

"결승전 때마다 어머니랑 고모나 이모를 초대했어요. 예전에는 관심도 없으셨는데, 제가 요즘은 위치가 있다 보니 와서 치어풀도 들어주시고, 제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와주시기도 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번 롤드컵에서 상금이 많이 올라 부모님이 좋아하셨을 것 같았다.

"상금이 올랐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어떻게 먼저 알고 계셨어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고 계셔요. 각종 루머들 있잖아요. 페이커 연봉이 얼마더라. 마타가 중국에서 어떻더라. 제가 모르는 사실까지 엄마가 이야기하실 때가 있는데 참 신기하죠(웃음)."

"어머니께 제 카드도 드렸어요.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요. 심장병이 있으셔서 맛있는 거도 사드시고 병원비도 내시고 하셨으면 좋겠는데, 제 카드는 잘 안 쓰세요. 그게 좀 마음이 아파요. 집 근방에 맛있는 음식점이 많거든요. 드시면서 건강 챙기셨으면 좋겠는데, 저에게 미안해하시는 것 같아요.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쓰냐고 하시길래, 아들 돈 힘들게 안 번다. 앉아서 손가락 까딱해서 번 돈이라고 말했어요"


한동안 웃으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어렵사리 다시 인터뷰로 돌아올 수 있었다. SKT T1의 롤드컵 2회 연속 우승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보통 한 번 우승하면 목표의식을 상실하는 경우도 많다. SKT T1은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이재완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도 그런 기간이 있어서 찾아봤어요.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걸 극복하고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건, 제 개인적으로 솔직히 통장에 찍힌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은 내려오고 싶지 않은 마음. 오랫동안 좋은 기량으로 팬분들을 만나고 싶어요. 생각을 해봤는데, 일단 성적이 나와야 제가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더라고요. 사람들을 좀 더 가까이 친숙하게 만나고 싶어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이재완의 이야기는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그래서 걱정도 됐다.

"저는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게 선수 생활에 도움이 되는진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그래요.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이재완이라는 사람을 좀 더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올해는 그래도 작년보다 더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아직 '고릴라' 형이나 '코어장전' 형이 있어서 더 노력해야 하지만. 사실 언제나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이번에 열리는 e스포츠 대상에서 포지션마다 한 명씩 뽑히는 것에 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요. "

"맘 속으로는 '올해 내가 그래도 잘했는데, 나 말고 누구를 뽑겠어?' 라고 생각하다가도 마음 한켠으론 (강)범현이형이 더 괜찮을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고. 올스타전에도 처참했어요. 그래도 작년보단 올랐어요. 다행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항상 불안한 마음은 지울 수 없네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을지 궁금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남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는데, 제가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나 싶기도 해요. 당시 생각을 해보면 딱히 기억이 나는 장면도 없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닐까요? 첫 우승, 롤드컵 우승, e스포츠 대상에서 뽑혔을 때, 이번에 우승했을 때도 기뻤는데, 정말 진심으로 행복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재완이 되고 싶은데, '울프'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느낌. 저는 게이머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프로게이머를 그만둔다면 다른 것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능력이 된다면 해설이나 캐스터도 해보고 싶고. 기자님처럼 선수를 만나는 직업도 해보고 싶어요. e스포츠가 아니라면 심리상담도 좋고, 원래 꿈이었던 국어교사도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능력이 안 되는 몇 개는 접어야 하겠죠."

생각이 많아 보였다. 프로게이머로서 많은 것을 이뤘기에 새로운 동기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제1막 고등학생 이재완에서, 제2막 성공한 프로게이머 '울프' 이재완, 그리고 이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시기. 이재완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원하던 삶이 프로게이머가 맞는지, 아니라면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되묻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도 오랜 시간 그와 고민을 나눴다. 그리고 조금은 인생을 더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답을 찾은 건 아닌 듯 보였지만, 이재완은 인터뷰 자리가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쉬움을 끝으로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어요. 음…. 게임적으로 들어가면 저는 우리 SKT T1이 지구라는 느낌이라면 저는 달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낮에는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달이 안 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잘 보이진 않더라도 지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니까.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태양들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지만 저도 이 중요한 톱니 중에 하나니까."



사진 : 박채림(tti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