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발매된 공허의 유산의 정식 리그가 1월에 개막하면서 스타크래프트2 팬들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올랐다. 그러나 시작부터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엄청난 커리어를 쌓으며 수많은 팬을 보유했던 저그의 희망 이승현이 승부조작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스타크래프트2 팬들과 e스포츠 관계자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팬들의 신뢰를 한 번에 무너뜨리고 산업의 존립을 흔드는 행위인 승부조작을 가장 어리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행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기자 또한 스타크래프트2를 좋아한 한 사람의 팬으로서 당시 형언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졌다. 그만큼 스타크래프트2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평가받았던 97라인의 수장 이승현의 승부조작은 스타크래프트2에 엄청난 손실이었다.




아픔을 뒤로하고 공허의 유산으로 진행되는 개인리그와 프로리그가 시작됐다. 브루드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시지옥(럴커) 등 개성 있는 유닛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스타크래프트2 대회는 다양한 볼거리로 풍성해졌다. 비록 WCS 체제가 개편되면서 정규 개인리그의 수는 줄었지만, 양대 개인리그의 우승자와 준우승자들의 대결을 지켜볼 수 있는 크로스 파이널이 생겨나며 적어진 개인리그의 수를 보충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2의 영원한 고질병인 불안정한 밸런스가 발목을 잡았다. 공허의 유산에서 새롭게 추가된 유닛 사도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다. 견제, 정찰, 힘 싸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사도는 프로토스 선수들조차 밸런스를 파괴하는 주범이라며 하향을 요구할 정도였다. 블리자드는 뒤늦게 사도의 공격력을 너프했지만 사도의 강력함은 여전했다. 약 10개월이 지나서야 블리자드는 사도의 그림자 시야 감소라는 강수를 두면서 사도를 정상 유닛의 범주까지 맞췄다.




여러 가지 악재 속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는 경기력은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저그의 수장으로 떠오른 박령우는 '저그 그 자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매번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테란 진영에서도 걸출한 인재가 등장했다. 폐관수련하며 기량을 갈고닦은 '야인' 변현우가 2년의 공백을 깨고 돌연히 나타났다.

돌아온 변현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유리 멘탈'이었던 과거와 달리 변현우의 멘탈은 강철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그의 컨트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결국,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준 변현우는 무소속 최초로 GSL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e스포츠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변현우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11월에 펼쳐진 블리즈컨에서 최후의 1인으로 남으며 2억 원 상금의 주인공이 됐다.




GSL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10월 18일, 한국 e스포츠협회는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의 폐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브루드워를 시작으로 약 14년간 진행된 프로리그는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대기업 후원사가 e스포츠판에 뛰어들도록 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프로리그는 대한민국 e스포츠의 르네상스를 열었으며, e스포츠 산업 구조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 상징성이 있는 대회였다.

프로리그가 폐지됨에 따라 대부분 게임단이 운영 포기를 선언했다. 2016 프로리그 우승팀 진에어 그린윙스만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진에어가 팀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2016년 진에어가 보여준 압도적인 성적에 있다. 진에어는 돌아가면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kt 롤스터와 SKT T1을 제치고 당당하게 우승하며 팀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진에어 관계자는 "프로리그가 없어지더라도 선수들에게 동일 혹은 그 이상의 대우를 이어갈 것"이라며 진에어 그린윙스 팀에 대한 아낌없는 신뢰감을 표현했다.

구단의 보호를 받던 선수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야생으로 나오게 됐다. 비록 대부분의 선수가 무소속으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게 됐지만 각자 미래를 준비하며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어윤수, 김도우, 이신형은 개인 방송 활동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며 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강민수, 김대엽은 외국팀으로 이적하며 제2의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비록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줄었지만, 스타크래프트2를 향한 팬들과 선수들의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스타크래프트2 선수들의 꿈의 무대 GSL과 블리즈컨이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많은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IEM 경기에서 우승한 이신형은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프로리그가 사라져서 아쉽지만, 개인리그가 여전히 남아있다. 많은 게이머들이 은퇴하지 않고 남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팬들이 그렇게 생각할수록 게이머들의 자존감은 떨어진다. 단지 프로리그 하나가 없어졌을 뿐이다"고 말했다.

2016년은 스타크래프트2 팬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아픔의 한해였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만 더 강해질 수 있는 법이다. 여전히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고 이를 지켜보고 환호하는 팬들이 있다. 공식적으로 스타크래프트2 대회 규모 확대를 공언한 방송국도 있다. 스타크래프트2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2017년에는 스타크래프트2가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