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그렇지만, 올해 CES 또한 범상치 않았다. 한 해 전자산업을 점치는 자리라고 했던가. 실제 삶에 적용되기까지는 약간 거리가 있는 IT 업계의 패션쇼라 할 수 있는 행사지만, 새로운 기술을 먼저 보고 느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너무나 신기한 곳...

VR의 출전은 기정사실이었다. 요 몇 년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기술 중 하나로 VR이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주인공'이라 불리기엔 다소 미묘한 정도였지만, CES 2017에선 지금껏 공개된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양의 VR 관련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CES 2017에서 공개된 VR 관련 정보들. 다양한 소식들 중 흥미롭게 다가온 굵직한 소식들을 모아 정리해 보았다.


'프로젝트 알로이' 큰형님 인텔이 나섰다
VR과 AR, 그냥 둘 다 잡았다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IT 업계에서 인텔은 마치 어머니 나무와 같았다. 괜히 PC시장의 얼굴이 '윈텔(MS+인텔)'이던가. 엄청나게 쿨한 장치라던가, 입이 떡 벌어지는 디자인의 제품들은 보여준 바가 없지만, 인텔의 CPU는 언제나 우리 컴퓨터 속 심장에 존재해왔다. 사실상 윈도우를 만드는 MS와 함께 개인용 PC 시장의 기반과도 같은 기업이라 봐도 무방할 거다.(또 하나의 세계수인 IBM도 있지만 이쪽은 개인용이 아니니...)

▲ 요 녀석이 '프로젝트 알로이'

그런 인텔이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하드웨어를 발표했다. '프로젝트 알로이' VR과 AR 모두 구동이 가능한 HMD다. 뭘 좋아할지 모르니 그냥 전부 다 되게 만들어 버렸다. 작년 8월 첫선을 보인 이 장비의 특징은 VR과 AR 기능을 합친 'MR(Mixed Reality: 융합 현실, 인텔에서는 '프로젝트 알로이'에 한해 Merged Reality라고 표기한다)' 기능이다. VR은 현실의 주변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AR은 현실이 깊이 관여하게 되므로 몰입에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MR의 경우 현실의 사물을 스캔해 가상 공간에 그대로 구현해버려 이 두 한계를 동시에 극복해냈다. 쉽게 말하면, VR 장비를 쓰고도 어디 부딪히거나 할 일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 말로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심지어 거리의 제약도 없다. 현재 대부분의 HMD가 유선으로 가동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한창인 상황에 애초에 무선 기능을 탑재하고 나왔다. MS와의 오랜 동맹 관계를 과시하듯 'MS VR' 플랫폼과 호환되는 것은 당연지사. 아직 개발 단계인 만큼 실제 생활에서 어느 정도 성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이지만, 발표된 그대로만 되어도 웬만한 HMD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VIVE 액세서리' 빳다질, 라켓질, 모두 가능
VR 게임 플레이의 새로운 메타


현재 국내에서 가장 쉽게 구매할 수 있는 VR HMD인 'HTC VIVE'도 새 소식을 발표했다. 액세서리인 '오디오 스트랩'과 '트래커'가 그 주인공. '바이브 디럭스 오디오 스트랩'은 바이브 HMD에 맞춘 별도의 음성 재생 장치다.

'오큘러스'는 헤드셋 자체에 스피커가 장착되어 있어 별도의 오디오 시스템이 필요 없었지만, VIVE는 아니었다. 자체 음향 재생 장치가 없어 헤드셋을 추가로 착용해야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결국 이는 중량 부담으로 이어졌다. 귀찮은 선 처리도 당연히 따라왔다. 하지만 오디오 스트랩과 함께라면 이제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머리 크기에 맞춰 자유롭게 크기 조절이 가능하므로 불편함도 없다.

'VIVE 트래커'는 컨트롤러와 별도로 사용되는 센서 장치로, 현실의 사물에 부착해 이를 VR 장비처럼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야구 배트에 트래커를 부착해 야구 VR 게임에서 쓴다거나, 테니스 라켓에 부착하는 식으로 말이다.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 이제 좀비 게임만 나오면 된다. 현실 사물을 부수지 않게 조심하자

한 가지 문제라면 만만치 않을 '가격'이다. 현재 VIVE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기기 가격은 1,250,000원에 이른다. 액세서리 없이 기본 제품만 사도 웬만한 컴퓨터 한 대 가격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그뿐이랴. VIVE를 무리 없이 가동하려면 최소 그 가격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PC가 요구된다. 여기에 액세서리까지 추가된다면?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가정할 때 최소 250에서 300만 원은 있어야 VIVE 좀 갖고 놀 수 있다는 뜻이다.


'레노버 VR HMD' 가격, 무게 모두 내렸다
노트북 명가의 참전 선포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알아주는 PC제조 전문기업인 '레노버'도 VR 참전 의사를 밝혔다. 작년 6월, MS는 홀로그래픽 API를 개방한 이후, 델, 에이서, 에이수스 등 다양한 하드웨어 업체와 파트너쉽을 체결했었다. 그중 레노버가 가장 먼저 완제품을 들고 온 셈이다.

레노버 HMD(아직 정확한 기기명은 발표되지 않았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심플한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 딱 봐도 이미 출시된 VR HMD보다 가벼워 보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목표로 하는 무게는 350g. 현재 출시된 VR HMD의 무게가 대부분 500g을 넘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약 70% 선에 걸린다.

▲ 딱 봐도 가벼워 보인다 헤어 스타일을 지켜주는 것은 덤

그렇다고 성능을 버린 것도 아니다. 디스플레이로는 양안에 각각 1440x1440 해상도의 OLED 패널이 장착되는데, 현재 기성 VR HMD로 불릴 만 한 오큘러스와 VIVE보다 높은 수준이다.(둘 다 1080x1200 해상도) MS와 동반관계를 맺은 만큼 '인사이드 아웃 식스 디그리' 기술이 적용된 것도 주목할만한 부분. 이 기술은 별도의 모션 트래킹 장치나 외부 카메라 없이도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앞서 '인텔'의 '프로젝트 알로이'처럼 외부 카메라를 통한 융합 현실(MR)도 지원한다.

한가지 문제는 아직까지 이 모든 것이 '발표'에 불과하다는 거다. VR HMD의 디스플레이는 해상도가 높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기성 장비들이 레노버 HMD보다 저해상도로 제품을 출시한 이유는 PC에 가해지는 연산 부담과 같은 환경적인 요인들 때문이다. 발표된 것만으로는 멋지지만, 그대로 나올 거라 믿기엔 비슷한 사례에 데인 적이 너무 많다.


'조택 VR 백팩' 언제 어디서나 VR을 느낀다
아직은 실험적 단계지만...

'조택'은 조금 재미있는 장치를 들고 왔다. 예전에 MSI도 한번 선보였던 백팩형 VR 컴퓨터 'VR GO'다. 이 컴퓨터에는 i7 프로세서와 지포스 GTX 1070(미니 버전이 아닐까 싶다)이 장착되며, 휴대 시 VR 체험에서 거리의 제약이 사라진다. 무선으로 변환이 힘들다 보니 아예 컴퓨터를 들고 다니라는 의도에서 나온 물건이긴 한데, 사실 실용성은 조금 의심스럽다.

▲ 이 녀석이 VR GO

앞이 안 보인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융합 현실(MR)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완벽한 방법인데다 요즘 대다수의 HMD는 전면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어 충돌을 방지한다. 문제는 저 부담스러운 외관과 딱 봐도 무거운 무게다.

착용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무게를 줄였다고 쳐도 PC 한 대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거다. 실제 비슷한 장비를 착용해본 기자(매우 건장하다)의 말로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라고 말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짐'으로서 무게를 느낀 결과다. 저걸 등에 짊어진 채로 액션 게임이라도 하고 나면 틀림없이 옆구리가 쑤실 거다. 아무리 가볍다고 해도 맨몸보다는 무거우니까. HMD조차도 무게를 줄이는 것이 개발자들의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상황에 무게를 더한다는 건 부담될 수밖에 없다.

▲ P999K가 생각난다. 유령도 잘 잡을 것 같다

게다가 발열은 또 어떤가. 등에 닿는 표면에 단열재를 발라놨다고 해도 쿨러를 통해 빠지는 뜨듯한 공기는 어쩔 수가 없다. 30분 정도 플레이하고 나면 아마 등이 촉촉이 젖어올 거다. VR이 또 컴퓨터를 오죽 혹사하는 게 아닐 테니….

하지만 의미 없는 제품은 아니다. 조텍의 '대니 윙' 이사는 '초소형 컴퓨터로 성능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밝혔다. 말인즉, 앞으로 조텍의 개발 방향은 성능을 최대한 간직하면서 크기와 무게를 줄여가는 방향이라는 뜻이다. '중간 단계'로서 VR GO는 분명히 큰 의미가 있다. 아직 부화하기 전의 알 같은 존재랄까? 나중엔 더 작고, 더 편하면서 성능을 간직한 모델이 출시될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의 단점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세레보 타클림' 눈만으로는 부족해
촉각까지 완벽 재연

하드웨어 개발업체인 '세레보'의 '타클림'은 CES 2017에 등장한 장비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이색적인 장비다. 장갑과 신발로 이뤄진 이 두 쌍의 장치는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하는데, 생긴 것대로 손과 발에 착용하면 된다.

▲ Cerevo의 '타클림'

가장 놀라운 것은 '촉각'의 재현이다. 예를 들어 VR 공간 안에서 사막을 가게 되면 신발 장치가 모래의 촉감을 구현하고, 초원이나 물가에 있을 때도 그에 따른 촉각을 구현한다. 이 촉감은 데이터로 저장되는데, 개발자에 따라 자신만의 촉감 데이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개발자가 원한다면, 어떤 질감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는 뜻.

'타클림'에는 가속, 각속, 지자기 등 9축의 센서가 탑재되며,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무선 연결이 가능하다. 충전 시간은 3시간 정도이며, 한 번 충전 시 약 2시간 연속 사용이 가능하다. 게이머로서 고무적인 건 '격투 게임'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 물론 실제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친구하고 다칠 필요 없이 누가 더 센지 겨루는 건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다.

▲ 얄미운 친구와 함께하면 재미가 2배

물론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타클림'은 멋진 장비이지만, 그만큼 가격도 멋지다. 일본 가격으로 12만 엔에서 15만 엔 사이가 될 거라고 하니, 컴퓨터 한 대 가격의 지출이 추가로 발생한다. 게다가 체중을 싣게 되는 장비 구조상 모든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닐 수도 있다. 체중 제한이 있다던가 말이다. 그럼에도 '타클림'은 너무나 멋지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진짜 VR'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