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블루홀 ⊙장르: 서바이벌 ⊙플랫폼: PC, 콘솔(개발예정) ⊙서비스 현황: 2월 중 CBT 예정

생각해보니 '생존 게임'은 그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아마 긴장감이 싫어서 그랬을 거다. 사회로 나오기 전에야 이 게임 저 게임 가리지 않고 했지만, 직장을 갖고 나니 사는 것 자체가 생존이었다. 굳이 일상에서 뻔질나게 느끼는 긴장감을 게임에까지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존 게임은 피하게 되었고, 시원하게 적들을 펑펑 날릴 수 있는 게임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블루홀에서 진행 중인 새 프로젝트 '배틀그라운드'. 'DayZ'와 'ARMA3'의 모드로 이름을 알렸고 'H1Z1'의 개발자이기도 한 '브랜든 그린'이 직접 참여했다. 만화 '배틀로얄'과 같은 구도다. 생존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생존자들은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내몰린다. 30명이 참여하든, 100명이 참여하든 승자는 단 한 명뿐이다. 우연히 기회를 얻어 동료 기자와 함께 방문한 블루홀. 이미 전장은 마련되어 있었다.

생존 게임을 잘 안 해봤다지만, 게임 자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옆 기자한테 말했다.

"먼저 죽는 사람이 밥 사기 하자", "오키 맛있는 거로 갑시다"

의외로 쿨하게 받아준다. 이미 30줄로 접어든 본인 육체에 대한 자각은 쥐뿔만큼도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우리와 비슷한 나잇대다.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첫 게임 시작 3분 만에 식사권을 내줬다. '배틀그라운드'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펴고 떨어지면서 시작하게 되는데, 참 멋지게도 40명이 넘는 인원 중 정확히 나만 물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가까스로 헤엄쳐서 뭍으로 나오자마자 산탄총에 두들겨 맞고 구멍이 나버렸다. (한 10분쯤 후에 게임 설명하시는 분이 말하더라 "물에 들어가시는 건 게임 포기하시는 거예요"라고...)

▲ 악! 악!! 잘못했어요!!

두어 번 연습 게임을 진행하면서 감을 잡고,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갔다. 게임이 끝난 지금에 와서 체험기를 적으려다 보니 마치 생존 소설과 같은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각색은 없다. 어디까지나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 이 게임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정도만 알아주셔도 감사한 마음이다.

'배틀그라운드'에 대해 궁금하다면?
- 관련기사: [인터뷰] DayZ, H1Z1을 지나... 블루홀의 원조 배틀로얄, '배틀그라운드'




명심하게. 이 게임은... 밥이 걸린 승부야...


동료 기자와의 스코어는 1:0. 적어도 이번엔 이 친구보다 오래 살아야 내 밥이 살아난다. 비행기에서 낙하 사인이 나자마자 뛰어내려 최대한 멀리 이동했다. 목표는 도심 밖 변두리의 작은 마을. 그래봐야 건물 두, 셋으로 이뤄진 마을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곳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전략을 써먹을 때가 됐다. 건물이 많은 도심에는 그만큼 많은 장비가 있지만, 사람도 붐빈다. 옷 갈아입다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총알에 점수판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초반에는 최대한 사람을 피해야 했다. 운에 따라 주먹으로 총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밥이 걸린 상황에서 운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 일부러 사람 없어보이는쪽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올 때 본 낙하산들로 생각해볼 때 약 반 정도의 인원은 주변의 도시로 낙하한듯싶었다. 아마 남은 반은 나와 같이 외곽부터 시작할 생각이었을 거다. 일단 주변 민가를 모두 수색해 쓸만한 장비들을 건졌다.

옷가지와 오토바이 헬멧, 두 번째로 수색한 집에서는 기관단총도 얻을 수 있었다. UMP의 9mm 모델. 현실에서야 9mm건 .45 ACP건 제대로 맞으면 한 방에 죽지만, 게임에선 아니다. 화력이 살짝 아쉽지만 일단 이 정도 무장을 갖췄다는 건 적어도 반항은 해볼 수 있다는 거다.

아쉽게도 가방은 찾을 수 없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가방은 다른 아이템들을 들 수 있게 해주는 엄청나게 소중한 장비다. 가방이 없는 상태에서는 탄약 휴대량도, 응급 처치 도구 휴대량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없는 걸 만들 순 없으니 길을 나섰다.

▲ 세기말 패왕처럼 입어도 가방이 없으면 허당이다

처음 내가 떨어진 곳은 맵 중앙에서 상당히 북쪽으로 치우쳤기에, 일단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맵 중앙부에는 완만하면서도 꽤 큰 규모의 야산이 있다. 아마 이 야산의 정상 부근이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전장이 될 거다. 밀밭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이동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인기척이 없었다. '배틀그라운드'에서는 적의 위치를 알려주는 어떤 지표가 없으므로 오로지 육안과 소리, 감으로만 적을 살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 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있었다.


우연한 만남, 위기는 기회가 된다


작은 소도시로 진입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도시 진입 후 첫 건물인 주유소에서 응급 처치 도구와 기관단총용 소음기, 수류탄 한 발을 얻고, 주변 건물 수색에 나섰다. 두 채쯤 수색을 마쳤을까, 옆 건물이 살짝 수상했다. 배틀그라운드의 모든 건물은 기본적으로 문이 닫혀 있게 마련인데, 이 건물만큼은 문이 열려 있었다. 권총을 꺼낸 상태로 자세를 낮추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누군가가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날 본 상태라면 아마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 처음엔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위층에서 울리는 발소리에 숨을 죽이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헤드셋을 통해 발소리가 들린다. 직감적으로 상대가 1층에 내려왔음을 느꼈다. 문을 열고 한 발 있는 수류탄을 까 넣고 문을 닫았다. 3초 후,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렸다.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소리라 던진 나도 놀랐다. 하지만 킬 메시지가 안 뜨는걸 보니 실질적으로 효과는 없었다. 다시 열고 들어가야 하나?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상대가 나왔다. 아마 내가 건물 안에 있을 거로 생각하고 건물 밖으로 벗어나려 했었나 보다.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어깨 부근에서 피가 튀었다. 그리고 상대가 뒤로 돌아 날 보았다. 아뿔싸.아직 안 죽었구나. 빠르게 두어 발을 더 쐈다. 시체를 뒤져 보니 5발들이 탄창을 쓰는 'Saiga-12' 자동샷건과 12게이지 탄환들이 무더기로 나온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늦게 쏴서 저걸 한 방이라도 맞았으면 그대로 끝이었을 거다.

▲ 제발 좀 누워 계세요!!

운이 좋게 레벨 2짜리 배낭도 얻었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2분 후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었다. 더 남쪽으로 움직여야 했다. 필요한 만큼의 짐만 챙긴 후 시체를 버려둔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차량이 있으면 좋겠지만, 보이지 않으니 달릴 수밖에 없다. 이쯤 돼서 옆자리 동료 기자가 죽었다. 유언은 "팬티만 입은 여케한테 맞아죽었어!"였다.

이쯤에서 행동 방식을 바꾸었다. 전에는 직선으로 목표를 향해 이동했지만, 길을 따라 걷되 길에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기로 했다. 그렇게 5분쯤 걸었을까. 난데없이 들리는 엔진음에 급히 자세를 낮추었다. 길 주변에는 사람 키보다 약간 낮은 정도의 밀밭이 깔려 있었기에 웅크린 상태로 안전하게 숨을 수 있었다. 곧 차가 다가왔다. 마치 군용 레토나를 닮은 모양새. 싸워서 이기는 거보단 살아남는 것을 중시하기로 했기 때문에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렸다.

▲ 차가 보이면 총을 겨누지 말고 숨는 것이 낫다. 총알은 많지만 목숨은 하나다


야산 돌입, 본격 총격전의 시작


소리가 잠잠해진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어느새 야산의 초입에 들어왔다. 조금 걷다 보니 민가가 보인다.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안심했지만, 나 역시 내가 수색했던 모든 집의 문을 모두 닫고 나왔다. 상대가 나보다 못할 리 없으니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어느새 40명을 넘기던 생존자 중 살아남은 이는 15명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이 내 차례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운이 좋게도 정문 바로 옆 방에 내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무기가 있었다. 아말라이트 AR-15 자동소총. 자동샷건으로는 근거리밖에 커버할 수 없지만, 이 무기라면 원거리 전에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5.56mm 탄환이 15발밖에 없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탄환은 아껴 쓰면 그만이다. 그간 나름 활약한 UMP를 버리고 무기를 바꿔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총탄이 날아들었다.

▲ 산지 돌입과 동시에 총격전이 시작됐다

불시에 한발을 얻어맞고 비틀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엄연히 산지 한가운데인지라 숲이 우거져 있다. 나무 뒤에 숨어 적의 위치를 찾았다. 그 와중에 상대는 몇 발 더 발사했지만, 제대로 맞는 건 없었다. 아마 총의 명중률이 높지 않거나 상대의 사격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리라. 잽싸게 포복 자세를 취해 옆으로 두어 바퀴 굴러 방금 얻은 따끈따끈한 소총으로 응사했다. 남은 체력은 3분의 1 정도. 한 발만 잘못 맞아도 게임 오버다.

맹세컨대, 이 5초간의 총격전은 내가 그간 해본 그 어떤 슈팅 게임보다도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운은 내 편이었고, 먼저 두 발을 맞춰 적을 눕힐 수 있었다. 짐을 뒤져 보니 붕대와 응급치료킷, 그리고 아무런 튜닝도 하지 않은 AK-47 소총이 나온다. 총알이 빗나간 이유가 대충 설명되었다. 어차피 탄약이야 호환이 안되는 데다 몇 발 있지도 않았기에 소총은 버려둔 채 약만 챙겼다. 혹시 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붕대를 감고 있는데, 아까 들었던 엔진음이 또 들려왔다.

곧, '쾅'하는 소리가 들렸고, 창문 밖을 보니 100미터쯤 떨어진 나무에 차가 들이받은 상태로 멈춘 것이 보였다. 운전 미숙인지 아니면 총격을 받았던지, 차는 더 이상 움직일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운전자는 다소 멀쩡한 모습이었다. 집 밖 풀숲에 엎드린 채 차 주변을 주시하자 곧 사람 하나가 보였다. 먼저 쏠까 말까 고민했지만, 먼저 얻어맞는 거보다는 쏘는 게 낫다 싶었다.

▲ 교전 거리가 길다 보니 서로 헛방만 연신 날렸다

몇 발을 발사했지만, 상대를 처치하진 못했다. 100미터라는 교전 거리에서 광학식 조준기 없이 적을 똑바로 조준하는 건 생각외로 힘들었다. 사람이 점처럼 보이는 수준이었다. 상대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로 몇 발의 무의미한 사격을 하고 나서, 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산 위로 내달렸다. 어차피 저 거리에서 이동하는 표적을 맞추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


등 뒤를 조심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아찔한 화면 떨림과 함께 머릿속에 의문 부호가 떠올랐다. '뭐지?'. 죽지는 않았지만, 체력은 반 이하로 내려갔다. 본능적으로 뒤로 돌아 소총을 연사했다. 조금 전까지 교전을 벌이던 상대가 아니다. 숨어서 우리 싸움이 끝나길 기다렸던 다른 이였다. 하지만 원체 부족했던 탄약이 발목을 잡았다. 고작 15발밖에 없던 5.56mm 탄환은 세 번째 교전을 시작할 당시 이미 네 발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탄창은 금세 비어버렸다.

멈추지 않고 미리 장전해둔 샷건을 꺼냈다. 상대는 큼지막한 돌 뒤에 엄폐 중인 상황. 도주를 위해 뒤로 돌면 등에 총을 맞을 것이 뻔하고, 이대로 조준하고 있자니 엄폐물 없이 노출된 상황이다. 내 운이 여기서 다했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견제 사격을 하며 뒤로 물러서 응급 치료를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의치 않다. 그 순간 적이 나섰고, 난 다섯 발의 샷건을 조준 없이 퍼부으며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 딱 이런 상황이었다. 스크린샷과는 다르지만...

하지만 이번만큼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소총과 산탄총의 장전된 탄약을 모두 퍼부었음에도 상대는 살아있었고, 배틀그라운드의 재장전은 무지막지하게 기므로 다시 장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내 탄약이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한 적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난 끝까지 쓸 일 없길 바라던 9mm 자동권총을 꺼냈다.

가방을 아끼느라 여분의 탄약도 없다. 말 그대로 최후의 보험. 하지만 낮아진 체력을 다시 채울 수는 없었다. 장전된 8발 중 다섯 발을 채 쏘기 전에 상대의 총알이 내 몸을 뚫었고, 화면에는 나뒹구는 내 캐릭터와 함께 점수판이 나타났다. 최종 순위 11위. 아직도 날 죽인 적을 비롯해 10명의 사람이 전장에 남아있었다.

40분 간의 몰입, 이 게임은 '진짜'다


순간 쌓였던 긴장이 탁 풀렸다. 시작 전에 신호가 와서 고민했던 화장실이 40분이 지난 후 다시 생각났다. 이걸 즐거웠냐고 물어보면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화면에 뜰 때마다(누가 누굴 죽였다고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아직 난 살아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찾아오는 카타르시스는 확실히 대단했다.

▲ 배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게임들 대부분은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잊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위력. 적어도 '몰입도' 면에서 배틀그라운드는 진짜배기다. 물론 아직 아쉬운 점도 있다. 더 다듬어야 할 캐릭터 움직임이라든지, 다소 불편한 조작감 등,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몇 번에 걸쳐 검증된 디자인은 살아있었다.

결과적으로,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생존 게임에서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내 마음을 깰 정도로. 집에 오는 길에 H1Z1의 판매가를 검색해 봤다. 한 판 한 판이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게임. 이 정도면 충분히 플레이할만한 게임 아니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