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도 벌써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곧 날이 따뜻해지고 꽃이 만발하는 3월이 다가온다. 말인 즉슨 포켓몬GO를 플레이하기가 더 좋아진다는 뜻이다. 날이 풀리면 사람 마음도 풀리기 마련. 주변에 포켓몬GO를 즐기는 선남선녀에게 “같이 포켓몬 잡으러 가자”며 수작(!)을 부리기에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 온다. 혹시 아나. 함께 포켓몬을 잡다가 정분 날지도. 희망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하지만 모든 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한 법. 포켓몬을 잡으러 가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만족하나? 정말 포켓몬’만’ 잡을 건가? 포켓몬을 잡겠다고 10km 알을 두 개 깔 정도의 거리를 죽자고 걷기만 한다면? 상대가 트레이너 모자에 몬스터볼이 가득한 가방, 트래킹화를 신고 나올 정도로 열혈 트레이너가 아니라면, 그 다음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적당히 걷고, 적당히 쉬고, 적당히 먹고 마셔 ‘즐거운 시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에 동선을 짜는 것이 필수이다.

때문에 오늘은 꽃피는 3월 좋은 사람과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을 위해 ‘이태원’을 중심으로 (데이트)포켓몬 포획 코스를 잡아보았다. 100%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보이니 믿어도 된다. 적당히 참고해 포켓몬도 잡고, 핑크빛 가득한 3월도 만들어보시길.

▲ 붉은 번호가 오늘 이동한 경로이다. 다해서 20km쯤 걸었더라.


시작은 한강진역(붉은 1번). 왜 이태원역 출발이 아니냐고 말하는 당신, 일단 끝까지 읽어보라. 물론 이태원역은 각종 식당이나 가게들이 몰려 있어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명분은 ‘포켓몬을 잡는 것’이 아닌가. 포켓몬을 잡자 해놓고 대뜸 정신 없는 이태원으로 가는 것보다는, 비교적 유동인구가 적어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걸을 수 있는 한강진역 쪽이 시작점으로 더 좋다. 게다가 여기는 예로부터 각종 조형물과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밀집한 곳이기도 하다. 즉, 안에서 포켓스톱을 돌릴 수 있는 카페가 있다는 말이다. 결정적으로 한강진-이태원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따라 다수의 포켓스톱이 있어 포켓몬을 잡기도 쉽다.

한강진역에서 이태원역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약 20분 가량. 적당한 대화로 분위기를 풀어가기 좋은 시간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도로 주변의 특이하게 생긴 건물을 보며 운을 띄워보라. 그런 곳 주변에는 대부분 포켓몬이 등장한다. 10분만에 다리가 아프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래도 걱정은 없다. 어디든 들어가서, 차를 주문하고, 포켓스톱을 돌려라.

▲ 특이한 건물은 좋은 대화 소재


▲ 길 이름에 이유없이 빵 터진게 억울해 찍어왔다.


▲ 한강진-이태원 이동 중. 스톱이 많다.


포켓몬을 잡아가며 이태원역에 도착했다면 적당히 쉴 곳을 찾아보라. 20분이라고 말하면 언뜻 짧아 보이지만, 그건 직선거리일 뿐 포켓몬을 잡는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더 걷게 된다. 평소에 많이 걷는 사람이 아니라면 살짝 피로감을 느낄 만한 거리이다. 게다가 주말의 이태원역은 생각보다 훨씬 붐빈다. 시간에 따라 무언가를 먹어도 좋고, 차를 마셔도 좋다. 참고로 이곳의 포인트는 이태원역 해밀턴 호텔을 살짝 지나 작은 가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길을 따라 좁은 간격으로 거의 항상 루어가 돌아가는 포켓스톱이 있다.

독특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큰길을 벗어나 살짝 골목으로 들어가보라. 찻길 기준 왼쪽 오른쪽 모두 상관없다. 세계 각국의 매력적인 메뉴를 제공하는 가게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다보면, 어딘가는 마음에 드는 곳이 한 군데쯤 있을 것이다. (성인이라면 이쯤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낮술’도 좋다. 이 근처는 맛있는 안주와 맥주를 파는 가게가 많다.)

▲ 그냥도 걸을 맛이 나는 거리이다.


▲ 유럽 느낌이 나는 건물


이태원역에서 가볍게 휴식을 취했다면, 혹은 이태원역까지 갔는데 둘 다 체력이 넘쳐 20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면 녹사평역 경리단길(붉은 4번)까지 걸어가보자. 이태원에서 길을 따라 걷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경리단길 방향으로 들어갈 수 있다. 경리단길은 포켓스톱이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길이 좁고 차들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이태원만큼이나 괜찮은 곳이 많은 거리다. 경리단길을 끝까지 걸으면 남산 야외 식물원(흰색 5번)으로 갈 수 있다. 포켓스톱은 많지 않지만 도심 속에서 숲을 경험할 수 있어 예전부터 많은 매체에서 데이트코스로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 이태원-녹사평 이동 중. 리아코가 나왔지만 놓쳤다.


▲ 이태원-경리단길 포켓스톱 위치


이태원에서 적당히 휴식을 취한 후 포켓몬 사냥보다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녹사평역을 지나 삼각지역 전쟁기념관(흰색 4번) 쪽으로 걸어가보라. 거리는 한강진-이태원역과 비슷하지만 느긋하게 가기 좋은 길이다. 다만 전쟁기념관이 있는 삼각지역 주변은 이태원에 비해 식당이나 카페가 적으니 참고할 것. 전쟁기념관은 시민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장소임과 동시에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중앙 전시실 양측 회랑 국군, UN군 전사자명비를 한 번씩 보고 오는 것은 어떨까.

▲ 전사자명비. 사진출처 전쟁기념관 공식 홈페이지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 방향이 아니라 남쪽으로 걸어 용산공원과 국립중앙박물관 쪽으로 가는 것도 좋다(붉은 5번). 다만 이 쪽은 도보로 약 35~40분 정도 걸리는데 반해 딱히 볼 것도 없고 언덕이 많아 걷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택시는 기본요금으로도 간다.) 게다가 다시 이태원으로 돌아오는 것도 힘들다. 여러모로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다. (직접 경험한 결과이다.)

하지만 용산공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은 포켓스톱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내부도 상당히 잘 되어있어 구경하기 좋다. 용산공원은 좁은 지역에 포켓스톱이 몰려 있어 산책 겸 공원을 돌며 계속해서 스톱을 돌릴 수 있다.

게다가 조금만 걸으면 이촌 한강공원에 갈 수 있다. 해가 적당히 진 어두운 강가, 길을 걷는 두 남녀. 생각만 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집에 갈 때는 용산역으로 가자)

▲ 녹사평-용산공원 이동 중. 조금만 더 가면 파라다이스가 펼쳐진다.


▲ 용산공원. 추운 날씨에 비까지 와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나름대로 분위기는 좋았다.


▲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 용산공원에서 이상해씨 추적. 볼 15개 먹고 도망갔다.


위에서 제시된 길 중 어느 쪽으로 가도 4~5시간은 후딱 지날 것이다. 빤하게 영화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데이트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어떤 가게가 좋나요”가 궁금해 검색 사이트에 이태원 맛집을 치는 당신, 당장 그 창 끄고 일단 나가 보시라. 어디든 상관없다. 끌리는 곳으로 가라. 마음에 안 들면 다음에 다시 오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 사람과 한 번만 만날 것도 아닌데 뭐.

▲ 오늘만 세 번째 5km 알 부화. 처음으로 에레키드 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