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EA는 지난 15일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과거보다 더 강력한 개선안을 들고 나왔지만 실효성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차라리 '법제화'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옳은 길일까요? 인벤에서 두 가지의 시선으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바라봤습니다.
[찬성] 그럼에도 '자율규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반대] 신뢰 깨진 '자율규제' 이제는 '법제화'해야


설왕설래다. 지난 15일 발표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개선안에 관한 이야기다. 각각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고 각각의 가치가 날을 세우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의 낮은 실효성 때문에 법적 규제가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자율규제 개선안은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뭐라도 해야 한다'라는 위기의식이 불러온 전시(展示)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사실 자율규제는 2000년대 초반 인터넷에 대한 직접규제의 낮은 효율성 탓에 대두한 방안이다.

물론, 지금까지 자율규제는 황망할 정도로 실효성이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이 자율규제 대신 법제화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율규제는 세계적 흐름과 기업의 경쟁력확보를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선택이다. '자율'이란 풍토가 정착되지 않는 국내 실정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에너지를 더 쏟을 시간이다.



■ 자율규제 묵살사(史), 그리고 이번 규제안의 변경점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처음 추진했다. 당시 '캡슐형 유료 아이템의 결과 값에 현금, 현물, 유가증권 등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상설모니터링기구를 설치한다' 등의 자율규제안이 있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이 의지도 없고 내용도 없는 자율 규제안은 2011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 등에게 질타당한다.

이후 K-IEDA는 모니터링 강화와 결과값 아이템 폭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자율규제안을 지루한 협의끝에 2014년 10월에나 발표한다. 그러나 사후 모니터링 등은 2008년에 포함되어 도태된 내용과 별 차이 없었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은 내용을 이제와서 지키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한 셈이다.

지지부진한 진행에는 '자율규제'라는 한계도 존재하지만, 업계의 불성실한 태도도 한몫했다. 2011년 국정감사 이후 당시 10개 개발사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했으나 모두 불참하고 자체 현황 조사 결과 역시 영업비밀이라고 제출을 거부했다. 개발사들은 수익을 담당하는 확률형 수익 모델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K-IDEA는 제수단을 강구할 수도 그렇다고 강제성을 가지지도 못한 단체다. 회원사에 국내 대기업들이 있다고는 하나 전체 개발사를 대표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고도 그 숫자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회원사에도 비회원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지금 2017년도 마찬가지다.

이번 개선안은 2016년 실태조사 결과와 협의체의 논의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개선 자율규제 강령은 ▲확률정보 공개 방식 개선 및 희귀 아이템 관련 추가조치 도입 ▲확률형 아이템 결과 제공 등에 관한 준수 사항 신설 ▲ 자율규제 평가위원회를 통한 사후관리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개선안은 '명확한 수치에 근거한 확률 공개 방식'으로 확률형 아이템 결과물의 등급별 구성 비율을 공개함으로써 '합산확률 공개 방식'과 '최대-최소확률 공개 방식' 중 한 가지를 택하고 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등급별 확률을 공개하는 경우 희귀아이템의 개별 확률 또는 출현 현황을 공개하는 추가조치가 의무화됐다. 일정 기준에 도달한 이용자에게 희귀 아이템을 보상으로 제공하는 추가조치도 포함됐다.



■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의 현재와 시행 이후 긍정적 영향


2015년 자율규제가 시행된 이후 확률형 아이템은 주로 30, 40대가 평균적으로 월 5천 원~ 7천 원을 결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들은 5회 구매 시 1회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응답했으며, 자율규제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기준 환산 시 40점 미만으로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답변자들은 '통일된 방식으로 공개' 할 것과 '결과물 아이템의 개별 확률 공개'를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데이터는 한국갤럽이 16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수행한 조사로 표본은 전국 만 10세~65세 인구 상주 추계인구를 지역, 연령별로 배분한 3천 명이다. 표본오차는 ± 1.8%P, 신뢰 수준은 95%다.

주의있게 볼 것은 소비자상담센터에 '확률형 아이템 피해'가 접수된 것이 자율규제 시행 이후라는 점이다. 2015년 접수된 4건(1.1%)이 최초의 '확률형 아이템 피해'민원이다.

즉 그전까지는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사용자 인식이 희박했지만, 자율규제로 인해 인식의 변화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자율 규제를 통해 권리 인식, 피해 구제라는 개념이 게임 사용자들에게 생겼다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확률형 아이템' 관련 피해는 피해구제 사건 전부가 '정보제공/상담기타' 등 미합의 건으로 종결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개봉 시 환불불가라고 공지하고 있으며 이는 표준 약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기에 좀 더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공개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확률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소비자 불만이 다발하고 있다.

▲ 자율규제가 시행된 이후에나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변화했다.


▲ 게임사 확률형 아이템 민원현황 분석 中 정책협의체 참여사 서비스 게임 60종 대상



■ 허울뿐인 자율? 그럼에도 '자율규제'가 필요한 이유

자율규제는 정부규제에서 피규제자였던 개인, 기업, 업계 등이 규제의 주체가 되는 경우인데, 정부규제의 부적당성을 극복하고 효율성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정부가 정한 기준에 대하여 기업이나 업계, 또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자율 규제는 업계가 협회(K-IDEA)의 결성을 통하여 스스로 준수해야 할 행동강령(2017년 2월 15일)을 제정하고 위반행위를 스스로 점검하는 행위(사후 모니터링, 평가)로 이뤄진다. 즉 '민간영역이 규제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자발적으로 규제하는 경우'부터 '정부가 민간에 규제의 권한을 형식적으로 위임하는 경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오히려 자율규제는 어떤 규제의 틀을 해체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규제의 틀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행위자를 바꾸는 데 목적이 있으며, 오히려 이 자율규제를 구현하는 장치들은 정부규제와 완전히 독립해 있기보다는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정부영역의 후견 주의적 간섭 전통이 강하고 '자유와 책임의 조화'에 보다 방점이 찍혀있는 한국에서 그리고 자율규제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지배적인 국내 환경에서는 2008년 이후 인제야 첫발을 내딛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자율규제 모니터링 2016년 7월 보고서 中,
자율규제가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임이라는 융합콘텐츠의 발전속성과 국제적 속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직접규제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지역적으로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자율규제는 역동적인 정보 환경에 더욱 유연하게 적응하는 방법이다. 또한,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을 막론하고 게임 콘텐츠가 국제적 속성인 패킷 기반의 통신 장치라는 속성이 있으므로 기술적인 규제가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즉 효율성 측면에서 자율규제는 직접규제보다 규제비용이 낮다. 고도의 전문 기술적인 지식과 융복합콘텐츠 특성상 여러 분야가 걸쳐있는 게임 업계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율규제 방식이 규칙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직접 규제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은 과거 인터넷 여명 시절부터 확인된 바 있다.

또한, 입법기관 및 사법기관의 부담을 감소할 수 있는 동시에 해당 집행기관들에 국내 담당 분야의 자율성 및 자정 작용에 대한 의지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즉 자율규제에 대해 벌써 실효성 문제를 제기하며 무조건 법적 규제를 강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1. 국가 경쟁력 및 비용 최소화를 위해 필요하다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IT 산업 부문에서 정부의 직접 규제는 과거와 달리 더는 효율적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개방성과 국제성을 가진 인터넷상의 콘텐츠를 기존 오프라인 통신 규제로는 도저히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온라인, 게임 산업 육성/진흥/규제 정책들이 급변하는 정보환경에서 유연하게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규제 정책은 산업과 소비자뿐만 아니라 정부 자신에게도 제한적이고 큰 비용을 유발하고 있다. 또한, 업계 자체도 경쟁을 위한 당위성은 정부의 직접 규제나 입법보다는 다른 대안의 선택과 국제적 추세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우리는 게임 심의 및 등급분류 관련 규제에서 비용의 문제를 접한 적 있다. 사실상 준정부기관인 '게임물 등급 위원회'는 사전 검열 논란뿐만 아니라 게임 등급 분류 행정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인데다가 심의 행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2011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게임 자율규제에 대한 초석이 세워졌다.

선진국들은 시장, 특히 창의성이 중요한 융복합콘텐츠에서 경쟁력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자율규제 모델을 2000년 초부터 촉진해왔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의존 정도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일지언정 민간부문의 선도역할, 규제의 최소화와 같은 원칙에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문화 콘텐츠 및 융복합 콘텐츠에서 규제 및 진흥을 민간부문에 위임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 민간부문에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선진 흐름이다


2. 규제는 결국 더 큰 규제로 이어진다

통칭 '셧다운 제도'이후 기업은 '규제'에 대한 공포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번 생긴 규제, 법은 강화되면 강화되지 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법학자들의 통설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BM은 기업의 노하우다. 즉 영업 비밀이다. 그 영업 비밀을 국가가 임의로 무조건 공개하라고 강제하라고 할 수 없다. 기본적인 자유 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동이다.

확률을 기획하는 것은 오랜 시행착오와 연구의 결과다. 엄청나게 유명한 맛집의 소스나 육수를 국가가 나서 공개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옳은 행동은 아니지 않은가.

확률공개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직업 수행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 게임 콘텐츠 소비자인 사용자에게 게임 이용과 관련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떠한 방식을 통해서 제공하고, 게임 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대가로 얼마를 받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게임 사업자의 직접 수행 자유 보호 영역에 해당한다.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과잉금지 원칙', '명확성 원칙',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원칙' 등 기본권 제한의 한계 원리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알권리 보장'과 영업의 자유가 상충하는 부분은 균형의 조정이 필요하지만, '알권리'를 위해 사업자의 영업 비밀을 공개하라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공익 법인도 정당한 기본권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이 보편적인 판례인데, 하물며 사기업인 게임 사업자를 강제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부족해 보인다.

개별 확률 공개가 공익을 위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가 직접 규제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만약 법제화가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기업들이 행정소송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는 게 괜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국외 게임사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자율규제도 협회사의 역차별 문제와 외산 게임 적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법이 이를 강제할 수 있는가도 생각해볼 문제다. 국내 회사가 쌓아온 노하우를 어쩔 수 없이 공개했을 때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약화는 명약관화하며 진보하고 세련된 BM 개발 연구 투자에 비용을 굳이 지출할 필요가 없다.

▲ 게임사 확률형 아이템 민원현황 분석 中


3. 문화콘텐츠는 민간영역에 이양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므로 필요하다

국내 게임 규제는 정부 주도하에 이뤄져 왔다. 게임 주무기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표적인 규제기구로서 자리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물등급위원회가 각각 게임 관련 진흥 · 규제업무와 심의업무를 담당했다. 이 밖에도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이 직/간접적으로 게임 규제에 관여하고 있다.

한편 민간영역에서는 K-IDEA를 제외하고 규제 관련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준 사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이와 같은 국내의 규제 체계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정부의 제도적 개입 수준이 매우 높은 법률 중심의 규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정부 주도적인 측면에 가까워 민간기구의 자율적 규제는 보조적 수단에 그쳤다. 국외의 경우 민간영역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정부가 개입해 끌고 갔다. 어느 나라보다 정부의 제도적 개입수준이 높았다.

이는 유럽, 미국, 일본 등에 비해 과도하게 정부기구에 의존적인 형태다. 이에 따라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문화 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더불어 게임 업계의 사회적 책무와 연관된 논란 역시 반복적으로 일곤 하는 주된 이슈다. 어느 하나의 발전 없이 이어져 왔다.

준 행정 기능을 갖춘 정부 중심의 기관이 자율규제 기능 전반을 전담함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부과하는 데 필요한 미디어적 권한을 제한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정부영역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영역과 시장영역은 합리적·과학적 분석과 근거에 기반을 둬서 각각 자신의 역할을 적절하게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특히 게임 분야에서는 시장영역에 맡겨야 할 부분까지 정부영역이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이와 같은 현상은 강화된 법제수단으로만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려 드는 것은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음을 짐작게 한다. 그러므로 국내 상황에 보다 들어맞는 그리고 타율이 아닌 자율적 규제 방식에 의한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다. 정부영역이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서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규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러면 규제의 정당성까지 의심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더욱 효율적이면서도 온전한 의미의 자율규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민간과 업계가 함께하는, 관련 주체들이 상호이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자율규제 체계의 도입, 정착이 필요하다.

▲ 유연성 및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도 언뜻 봐도 많다.



■ 자율규제가 선결해야할, 나가야할 길

우선 자율규제기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 전통이 보편화하지 않은 국내 실정에서 객관성, 공정성에 대한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율규제 기구의 객관성과 공정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협의체 구성에 있어 지적됐던 구색맞추기식 인선이 아니라 업계와 함께 서있는 게이머 목소리를 더 대변할 필요도 있다.

▲ 공청회 한 번 없이, 비공개 간담회만 진행했다

아울러 자율규제 기구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기구가 1개가 될 것인지 혹은 복수가 될 것인지, 초기운영자금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등등에 관한 결정이 필요하다. 특히 자율규제에 대한 재정 지원은 정부의 개입수준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외에도 게임물등급위원회와의 업무 한계 문제 또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운영자금은 정부 개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금을 어떻게 마련해야할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게임과 비슷한 흥행산업이자 융복합 콘텐츠인 영화는 '영화산업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매출의 일정 부분을 거둬들여 영화 진흥정책에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국산 영화는 나름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실망 때문에 마냥 허튼소리로 치부하기 힘들다. 이렇게 모인 기금을 인프라 확대나 자율규제 유인책으로 제공한다면, 그 또한 훌륭한 재원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에게는 원활히 작용하고 있는 자율규제를 목도한 바 있다. 바로 방송 콘텐츠다. 방송은 방송국 내부에서 자율 심의 후 방송한다. 사후 방심위에서 이를 검토하고 사후 행동을 하는 형태다. 지금의 게임 자율규제 방향과 가장 비슷한 노선이다. 물론 콘텐츠 자체와 BM을 동일 선상에 두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방송사가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의무화해서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점을 보면 게임도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 방송사는 방심위 사후 심의뿐만 아니라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율적으로 검열 및 규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실정에 맞는 실천적 자율규제 방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협의체, 이를테면 협회에 다양한 구성체들의 참여가 이뤄지도록 활성화해야 한다. 또한, 공적 규제기관과 협의, 재정 지원을 넘어 민간 자율기구의 결정이 사실상 공적 규제에 버금가는 권한을 일부 이양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협의체가 힘을 갖는 것은 법적 규제에 버금가는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자율기구의 결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통해 시장의 변화에 더욱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민간 자율기구의 장점 또한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공적기구 운용에 따른 비용절감 및 운영 효율성도 자연히 따라온다.

자율규제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국가들은 강력한 자율규제안, 엄격한 행동강령과 책임의식, 자율규제 기구 독립성 확보 등을 성공적인 자율규제 성립 요건으로 꼽고 있다. 이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이 지원은 결코 직접 개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독립성과 재정적 안정성이 확보된 민간 자율기구가 될 수 있었고 스스로 더욱 엄격해질 수 있었다.

즉 정부는 무조건적인 법적규제보다는 자율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조정자 구실을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자율규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설계 및 집행과, 관련 지원 및 감독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 영광도 명예도 이득도 없는 인증마크가 거의 유일한 '당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실질적 수혜를 받는다는 것을 체감하도록 지원방식을 구체화하여야 한다.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윤리적 기업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증제도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나, 이미 국내에서는 한 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안이 도출되어야 한다. 또한, 자율규제 기구에 참여함으로서 회사 조직 구성에 낭비적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자율규제는 2008년부터 언급됐지만, 아직 걸음마도 못하고 있다. 그런 자율규제가 인제야 발을 딛으려고 하는데 뛰지 못한다고 혼을 내고 있다. 맞다.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기에 불신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은 맞다. 소비자들의 불만족이나 자율 규제 체제에 대한 불만은 엄연한 사실이므로, 이 때문에 빚어진 불신을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자율규제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째서 법적 규제 대신 자율규제를 성공적으로 정착, 시행해가야 하는지'. '그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무엇인지' 업계와 소비자가 스스로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가치와 기업의 가치를 올곧게 정립하고 나아가 게임 산업과 문화 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