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그림쟁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그래픽 타블렛(이하 타블렛)은 밥먹는 숟가락 못지않은 필수품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명필쯤이나 되는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비싼 타블렛은 대부분 비싼 값을 한다.

그런데 기자는 무려 10년도 더 된 모델의 구형 타블렛을 여전히 현역으로 쓰고 있다. 명작을 쑥쑥 뽑아내는 장인급 실력이어서 그런거라면 참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냥 단순히 마음에 드는 모델이 별로 없었다. 신형으로 바꿔볼까 하는 마음에 검색해 보거나 체험 매장도 수 차례 다녔지만 성능은 비슷하고 가격만 올라간다는 느낌을 받기 일쑤였다.

휴이온의 타블렛 제품을 처음 만났을 때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래픽 타블렛 시장에서 W사 브랜드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도 하고, 또 가격이 저렴한 모델이라고 미리 들었기 때문에 성능에 대한 의구심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미리 기대하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니까.

그런데 막상 포장을 뜯어 슥슥 몇번 그림을 그려보고 나니 편견은 역시 믿으면 안된다는 점을 먼저 느꼈다. 처음 가보는 골목에서 우연찮게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아낸 느낌이랄까? 보급형 모델인 것을 감안하면, 가성비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치부해 넘기기에는 아까운 성능이다.

전문가가 쓰기에는 물론 아쉬운 점이 있지만, 타블렛을 처음 쓰거나 혹은 연습이 필요한 아마추어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구매를 고려해볼만 한 성능이다. 비슷한 스펙의 타블렛들과 비교해 볼 때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된 휴이온의 680TF와 NEW 1060PLUS. 이 두 가지 모델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 두 제품의 크기를 비교해보자


휴이온 사의 타블렛은 전체 크기는 약간 작지만 테두리, 흔히 베젤이라고 부르는 범위를 최소화해서 작업이 가능한 영역을 늘린 것이 특징이다. 680TF의 경우 작은 크기 덕분에 책상에 비치하기 좋고, 산뜻한 색상의 테두리로 포인트를 주었다. 1060PLUS는 크기에 비해 상당히 얇은 데다 무게도 가벼워서 부담 없이 사용하거나 휴대하기에 최적화된 모델이다.

▲난잡한 기자의 책상 위에도 무사히 들어간다


▲ 25cm X 16cm 크기인 1060PLUS 모델


타블렛은 본체 못지않게 펜도 중요하다. 타블렛이 캔버스라면 펜은 붓이니, 당연히 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휴이온 사의 모든 타블렛에는 교체용 펜 심이 4개씩 동봉되어 있어서, 펜 심이 마모되면 별도로 심을 구매해야 하는 모델들에 비해 경제적인 부담이 훨씬 덜하다. 상위 모델의 경우 펜 거치대 속에 예비용 심들이 들어 있다.

▲ 심이 다섯개~! (1060PLUS 모델로 손풀기를 해 보았다)


휴대를 위해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하다 보니 680TF 모델에는 익스프레스키 및 보조 버튼이 없는데 기자처럼 타블렛 버튼을 잘 안 쓰는 경우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단축 버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다만 펜을 보관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고, 타블렛의 옆면에 천으로 된 고리에 걸어야 한다. 최근 출시되는 타블렛들이 대부분 이런 디자인이긴 하지만, 휴대를 강점으로 둔 제품이기 때문에 펜의 수납이 불편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드라이버 설치: 타블렛 세팅의 첫 걸음

처음 타블렛을 컴퓨터에 연결했을 때 잠깐 당황했는데, 휴이온 타블렛은 드라이버를 설치하지 않으면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즉 드라이버 설치 후 시스템 트레이에 항상 Graphic Tablet 프로그램이 실행되어 있어야 한다. 컴퓨터에 꽂는 즉시 사용이 가능한 타블렛에 익숙하다면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 특징. 다행히 프로그램의 상주 메모리는 컴퓨터의 성능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드라이버 파일은 내장 메모리를 지원하는 모델의 경우 이동식디스크 내에 설치파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단 처음 설치 파일을 실행하면 중국어로 된 팝업이 나타나는데, 21세기 글로벌 시민답게 두려워하지 말고 침착하게 ‘예(Y)’ 버튼을 누르자. 최초의 팝업만 제외하면 나머지 설치부터 이용까지 모두 한글이 지원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소프트웨어 설치 시 처음에만 중국어로 쓰여진 팝업이 뜬다


-타블렛 설정: 나에게 맞는 필압을 찾아라!

드라이버 설치를 끝내면 각자의 손에 맞게끔 타블렛을 조율해야 한다. 일반적인 설명서와는 달리 윈도우와 Mac 전용 매뉴얼이 함께 동봉되어 있어 맥 유저를 위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설명서에 다른 모델에 대한 설명도 함께 기재되어 있으니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하지만 그림쟁이라면 설명서보다는 내 두 손과 눈을 믿는 법! 손가는대로 이리저리 선을 긋고 그림을 그려보면서 몇번 설정을 바꾸다보면 금방 내게 맞는 최적의 설정을 찾아낼 수 있다.

▲ 드라이버 내에서 필압설정 기능을 지원한다



프로그램의 감도는 실제 그래픽 툴에서의 표현보다 약간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필압을 최대로 낮추면 두껍다/얇다 2가지로만 표현되고 최고로 높이면 선이 너무 얇아져 안 보일 수준까지 설정되니, 본인이 사용하는 그래픽툴을 이용해 설정하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평소 사용하는 수준보다 약간 높게 감도를 설정해 보니 적당했다.

▲ 드라이버 설정 내의 필압테스트 기능,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니 설정 시 참고하자


▲ 포토샵에서의 필압 테스트 결과



-그림 작업 과정: 제가 직접 써 보겠습니다

휴이온 타블렛의 펜은 액정 타블렛 및 G10T모델을 제외한 전 기종이 동일한 펜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모델의 타블렛에서도 호환해 사용할 수 있으며, 기종을 바꿔도 펜마우스에 새로 적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휴이온 타블렛의 펜은 올 블랙 컬러와 일자로 뻗은 모양이 특징으로 형광펜과 모양이나 그립감이 비슷하다. 두께감이 있고 무게가 펜촉이 있는 헤드에 몰려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다. 손잡이는 단단한 고무 재질로, 만질 때는 부드러워도 쥐고 쓸 때에는 미끄러짐이 거의 없다. 때문에 손에 땀이 많은 체질이라면 꽤 큰 장점이다.

▲ 타블렛 전용 펜 모델 PEN80, 왼손잡이 설정도 가능하다


▲ 그릴... 시간이다...


▲ 두툼한 그립감이 마치 형광펜을 연상케 한다


테스트 중에는 두 제품을 모두 평균 필압으로 설정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680TF 펜의 경우 펜촉이 위아래로 들썩거리는 느낌을 받아서 잠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실제 촉을 만져보면 움직임이 거의 없는 W사 펜과 달리, 휴이온의 펜은 심 자체가 조금 탄력있는 방식이다.

이 느낌에 익숙해지면 마치 실제의 연필이나 붓을 쓰는 것처럼 살짝 탄력이 생기기 때문에, 힘을 덜 들이며 그릴 수 있고 종이에 꾹꾹 누르는 느낌으로도 드로잉이 가능하다. 익숙해질 경우 꽤 괜찮은 느낌으로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다만 처음 이 제품을 접한다면 안정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 포토샵으로 간단히 그림 테스트! 머리카락을 긋는 맛이 쏠쏠하다


1060PLUS의 경우 680TF에 비해 필압이 극단적이지 않아 훨씬 부드럽게 그려지는 기분이다. 때문에 평소 타블렛을 사용하던 느낌을 금방 되찾을 수 있었고, 타블렛 판도 매끄러워 더욱 빠른 속도의 작업이 가능했다.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10만원 대 모델의 성능으로는 충분하다. 자연스러운 필압과 표현을 위해서라면 680TF보다 1060PLUS를 추천하고 싶다. 다만 취미나 휴대용으로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보조 타블렛이라면 가장 저렴한 680TF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일말의 아쉬움, 소프트웨어

다만 개선해야할 점도 있다. 준수한 제품의 성능과 스펙, 즉 만족스러운 하드웨어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아쉬운 점이 남아 있다. 제품 자체의 안전성은 좋은 편이지만, 처음 제품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프로그램과 충돌하거나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약간 있었다. 드라이버 완전삭제 후 재설치를 통해 모두 해결되었지만,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타사의 동급 제품보다 평균 3~40%는 저렴한 가격대, 타블렛을 좀 써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가성비는 휴이온 타블렛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다만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쉽고 빠른 설치와 꾸준한 안전성도 중요한 부분이니, 가벼운 오류라도 지나치지 않는 세심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환상의 콤비! SD카드와 타블렛이 만난다면?

▲ 작은 홈은 전원연결부, 넓은 홈은 카드 삽입부이다


NEW 1060PLUS를 포함한 몇몇 상위 라인업 제품은 타블렛 기기 내에 메모리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이는 타블렛을 휴대하며 여러 장소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능으로, 별도의 저장장치가 없어도 작업물을 타블렛 자체에 저장할 수 있다. 즉 ‘USB기능이 합쳐진 타블렛’인 셈. 때문에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로 작업을 해도 문제없고, 저장장치를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어 대단히 편리하다.

제품 옆면에 마이크로 SD카드를 넣는 홈이 있는데, 카드와 홈이 워낙 작다 보니 손톱이 없으면 빼고 넣기가 약간 불편하다. 별도 표기는 없으나 타블렛 앞면을 기준으로 카드를 뒷면으로 짤깍 소리가 날 때까지 넣으면 된다. 카드를 장착하는 홈은 항상 뚫려 있는 디자인이지만 일단 제대로 넣으면 빠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카드 분실 걱정은 뚝!

- 680TF 모델 제품사진

▲ 조화의 기운이 느껴지는 센스 있는 배색


▲ 펜을 인식할 때마다 삼각형이 푸르게 빛난다


▲ 눈에 띄는 단색으로 처리한 이 부분이 680TF의 포인트!


▲ 이런 방법으로 펜을 보관할 수 있다


- NEW 1060PLUS 모델 제품사진

▲ 제품 전체 사진


▲ 뒤집은 모습이 보고 싶었다


▲ 뒷면에는 미끄럼방지 고무판이 마련되어 있다


▲ 곡선 테두리 덕분에 더욱 편안한 작업이 가능!


▲ 제품 인증 마크들, 인정합니다



-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휴이온 타블렛

▲ HUION 680TF (8X6inch) 모델, 무려 68900원이라는 게 믿겨지는가?


W사 타블렛 외길 인생을 걸었던 필자가 처음으로 만난 휴이온 타블렛. 사용하기 전에는 약간 미심쩍었지만 실제 써보니 깔끔했던 디자인과 가벼운 무게에 놀랐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테스트해본 모델은 보급형 라인업이지만, 이 정도의 성능이라면 프로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그래픽타블렛 역시 충분히 기대할만 하다.

휴이온이 업계에서 2위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W사를 뒤쫓고 있다는데, 가성비 이상의 성능을 꾸준히 보여주는 제품들이 그 비결이 아닐까 싶다. 작년 11월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마쳤으니, 한국에서도 좀 더 다양한 가격과 성능의 타블렛을 각자의 취향대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