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폐인 제조 게임, '문명' 시리즈는 시뮬레이션 플레이어들에게 폭넓게 사랑받는 최고의 게임이다. 최신작인 '문명6'에 이르기까지 30년 가까이 이어진 이 시리즈는 꾸준히 개선을 해오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였고, 골수 팬과 신규 팬 모두에게 골고루 애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게 문명6 역시 그동안의 전작들처럼 새로운 요소들, 시스템을 탑재하여 진일보한 시리즈 최신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궁금한 부분은, 과연 어떻게 이 유구한 시리즈의 신작에 새로운 시도들을 마음 껏 넣을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불타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골수 팬들과, 또 가끔가다 턱 막혀버리는 창의력의 샘은 이런 개선의 노력이 무색하게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문명6는 어떻게 성공적인 개선을 담아냈을까? 문명6의 리드 디자이너 에드 비치(Ed Beach)가 문명6를 진화시킨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 파이락시스 에드 비치 리드 디자이너



문명5 는 출시 된지 6년이 지난 2016년에도 스팀 플레이 차트 탑3 에 들어가는 게임이었다. 후속작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압박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시리즈라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여러 곳에서 문명 시리즈의 차기작에 대한 눈에 띄는 압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례로 우리는 지난해 다양한 게임쇼를 통해 문명6의 정보를 공개하고 홍보해왔다. 특히 지난해 E3 에서는 숀 빈이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고, 무수히 많은 인터뷰에 참여하기도 했다. 심지어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명6를 기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절정은 WBC 였는데, 이 행사에는 수많은 문명 시리즈의 팬들이 참석해 질의응답을 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압박을 느끼지 말라고 하기는 했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압박 받지는 마. 물론 내가 문명 시리즈를 엄청나게 사랑하니까 만약 네가 문명6를 망치면... 알지?'


문제는 그것이었다. 어떻게 이 엄청난 인기의 시리즈를 이어가는 다음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 수 있을까? 여기에 맞는 수많은 질문과 해답을 구하고자 노력했다.

하나 기억할만한 것은 내가 지속적으로 언론들에게 들어온 질문이다. 바로 '6편에 추가할 새로운 것들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았는가?' 하는 질문인데, 여기에 대한 답은 바로 그동안 이 시리즈가 쌓아 온 기존의 과정이었다.


문명5의 확장팩인 신과 왕을 살펴보자. 우리는 이 확장팩을 통해 이전에 있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문명6의 개선점들도 이와 같은 '연장선'이었다. 전투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HP를 재설정하고, 종교 시스템을 부활시키고, 스파이 시스템을 넣고, 해양 유닛을 다양화해 근접 해양 유닛을 추가했다.


멋진 신세계 확장팩에서 이어진 것들도 마찬가지다. 문화 승리를 좀더 개선하고, 엔드 게임 요소를 좀더 일찍이 맛볼 수 있도록 템포를 당기고, 외교 승리를 다듬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정책들과 게임 후반의 '텐션'을 끌어올렸다. 이런 모든 개선 목표들을 위해 '관광 시스템'과 '교역로'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추가됐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완벽한 게임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하나씩 개선해나갈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이를 하나씩 따라나가면 완벽한 게임에 다가갈 수 있다.


우리는 적극적인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다. 팬들은 매우 적극적이고 활기차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이들은 우리에게 과거 시리즈의 어떤 시스템이 좋았고, 이번 시리즈에선 뭐가 나빴는지 등을 말해준다. 이 포럼은 그저께의 문명5 포럼인데, 아직도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략을 공유하기도 한다. 절대로 리버티 테크는 선택하지 말고, 특정 건물을 먼저 지으라고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최적화된 빌드를 만들고 공유하는걸 즐긴다. 이는 일종의 플레이 레퍼런스가 되는데, 가끔은 이것이 독이 되기도 한다.


'문명5'에서는 유저들이 초반의 필승 전략을 짜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네 개의 도시를 빠르게 확보하고, 대학을 짓고, 과학을 최우선시 하라. 도서관은 지어선 안된다! 이런식으로 정형화된 플레이 방식이 굳어져 있었고, 그들은 매번 새로운 맵을 할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했다. 이는 절대로 긍정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를 묻고 싶다. 플레이를 반복할 때마다 바뀌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지도'다. 사람들은 항상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마다 자신이 대면한 주변 상황을 보고 모든 것을 결정하기 마련이다.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만큼 지도를 좋아하고, 우리는 유저들에게 매번 다른 환경과 새로운 주변 요소들을 제공한다. 플레이어는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지도'가 바로 이런 플레이 메이킹의 열쇠다. 문명 시리즈의 마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지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문명6'의 발전을 위한 해답이 될 수 있었다.

지도는 타일로 구성된다. '타일'의 문제는 게임을 할 때마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다. 문명5에서 각각의 타일은 너무 당연하게 주어진 목적대로 쓰였다. 평야에는 논이, 산에는 광산이... 이런식으로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주요시설들은 도시 타일 한 칸 안에 모두 겹쳐서 들어갔다.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했다.


이제 문명6의 타일을 보자. 도시 주변에는 플레이어가 선택해 지은 특수 지구가 놓여있다. 강가 주변에 상업 지구를 두고, 산을 끼고 종교 지구와 교육 지구를 놓는다. 타일 자체의 종류보다 주변 환경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자신의 선택대로 도시를 성장시켜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도시가 더이상 겹쳐 쌓일 수 없도록 한 변화의 이유다.

문명5에서 전투 병력을 겹칠 수 없게 하여 변화를 주었듯이, 우리는 도시에 그런 해법을 적용했다. 플레이어는 이제 언제나 새로운 도시를 지을 때마다 어디에 무엇을 놓을지, 상업을 번성시킬지 교육을 증진시킬지 등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선택이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를 좀 더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다음 문제는 테크트리다. 테크트리는 문명 시리즈에서 엄청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그저 문명5와 동일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문명 시리즈에서 테크트리는 언제나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사람들은 테크트리의 흐름을 보고 자신의 성장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한가지 문제는 그만큼 이후에 무엇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며, 당장 테크트리를 선택하기에 근거가 부족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플레이어에게 당장 어떤 테크가 가장 필요하며 좋은 방향인지 알려주는 도구가 필요했다.


그렇게 추가된 것이 '부스트'(발견) 시스템이다. 바닷가에 도시를 지어 범선 테크를 부스트 시키거나, 게임 곳곳에 놓여진 자연 불가사의를 발견함으로서 특정 테크가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런 테크 부스트가 플레이어가 지금 어떤 환경에 있고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가 된다. 다만 이런 부스트가 발동되는 이유는 매우 타당하며 밸런스가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에, 아홉 달의 시간이 걸려 모든 테크의 부스트를 설정할 수 있었다.


다음의 문제는 사회 제도 시스템이었다. 문명5에 들어간 구형의 사회 제도 시스템은 무척 밸런스에 관련해 말이 많았다. 플레이 팁 중 하나가 절대 자유주의를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었을 정도다. 우리는 이런 사회 제도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이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의 형태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명4의 사회 제도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4편에서는 정부의 종류와 거기에 맞는 정책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첫번째 사회 제도 시스템을 만들었다. 각 정책을 해금해서 원하는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 정책들을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해금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각 사람들마다 느끼는 트리거 부스트의 정도나 감도가 달랐다. 너무 많은 것을 해금하고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복잡하고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래서 두번째 기획에서, 각 정부 제도를 티어에 따라 구분했다. 또 정부들은 서로 다른 수의 정책 슬롯을 가진다. 각자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방식의 문제는 정부 제도가 발전하는 느낌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두제에서 상인공화제, 상인공화제에서 공산주의 등으로 발전한다고 해서 유저가 원하는 '발전하는 느낌'을 꼭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치 않은 정부 형태로 성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세번째 버전의 기획이 나왔다. 이게 바로 게임에 적용된 버전이다. 각 티어별로 정부의 갯수를 맞추되, 각각의 정부 제도들이 특별한 보너스를 준다. 그래서 하위 티어를 좀 더 길게 유지해도 절대 나쁘지 않다. 또 각 정부 체제가 주는 보너스가 늘어난 대신 그걸 위해서는 문화를 소비해야 하는 방식으로 밸런스를 잡았다.

그래서 최종적인 사회 제도 시스템은 이렇게 자리 잡았다. 게임속에 '좋은 복잡도'가 추가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은 유닛의 개선이었다. 문명5로 오면서 더이상 유닛이 겹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되려 비현실적인 문제가 될 때도 있다. 여기 포대도 있고, 미사일도 있고, 대포도 있는데, 보병이 이를 통과하지를 못한다. 이 구조는 결국, 전체적인 전투력 저해로 이어진다.


그래서 병종을 명확히 구분해서 무리하지 않게 들고, 지원과 전투 병력으로 나누어 이를 개별적으로 손보거나 들을 수 있다. 또 3개 까지는 겹쳐놓을 수 있는 스택 시스템을 제한적으로 부활시켜서 편의성을 높이되, 성장선에는 제한을 뒀다.


그리고 유닛의 이동 횟수를 조정하는 부분이다. 어떤 유닛의 현재 이동력이 부족하더라도, 이동력이 1이라도 남아있으면 그들은 불리한 지형으로 들어가버린다. 일종의 배수진이라고 할까. 그래서 좀더 엄격한 이동에 관련된 룰을 게임에 추가했다. 아무리 이동력이 남아있더라도 지금 가야하는 지형에 못미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다. 이는 보다 공정한 전투와 전략을 낳는다.


최종적인 결론은 그렇다. 핵심은 '맵 드리븐 플레이'(Map-Driven Play)이며, 겹쳐지지 않는 도시, 새로운 이동 법칙 등 정말 많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적용했다. 결국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플레이어들이 좀더 자신의 경험을 개인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고, 게임마다 자신의 전략을 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맵에 생기는 변화를 반기고 이를 이용하는 것, 그것이 플레이어의 경험을 좌우한다. 그만큼 '맵'은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여러분도 이런 부분에 집중해서 플레이를 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