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E3, 완전히 다른 모양의 게임으로 발표된 '바이오하자드7'을 만난 첫인상은 낯설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1인칭 시점에, 리얼함을 추구한 그래픽 때문에 오히려 다른 호러 게임을 연상시킬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게임이 출시된 이후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에 대한 걱정을 하던 팬들의 목소리는 많이 줄어들었다. 생김새는 엄연히 다른 게임인데, 이상하게도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과거 '바이오하자드'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이날 GDC 연단에 오른 것은 캡콤의 시니어 매니저인 피터 파비아노(Peter Fabiano). 그는 20주년을 맞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게 된 계기와 함께 공포를 극대화하면서 예전의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었던 게임의 개발 비화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피터 파비아노(Peter Fabiano) 캡콤 시니어 매니저





2014년 오사카, 캡콤 제1연구개발부의 타케우치 준과 코시 나카니시가 함께 새로운 바이오하자드의 콘셉트를 만들기 위해 뭉쳤다. 당시 타케우치는 새로운 바이오하자드를 위해 대략적인 키 콘셉트를 정했는데, 그것은 바로 ‘호러’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었다. 세부적인 콘셉트로는 영화 ‘이블 데드’의 느낌을 살린 포토리얼리즘 그래픽과 1인칭 시점, 그리고 코옵 요소를 없애고 완벽히 싱글 플레이 경험만 살리는 것이었다. 끝으로, 타케우치 준은 기존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와의 연관성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다.

영화 ‘이블 데드’의 느낌을 살리다는 것은 대략적으로 이런 의미였다. 게임 전체에 5명이 넘는 등장인물을 추가하지 말 것이며, 버려진 저택을 중심으로 폐쇄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넓은 장소가 아닌 좁은 세트를 차용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는 방향으로 개발을 하고자 한 것이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 사실이지만, 시리즈는 1편부터 3편까지 고정 카메라를 사용해 공포 부위기를 조성했고, 4편부터 6편에 오면서는 3인칭 시점을 차용, 액션성을 강조한 바 있다. 7편에 와서 ‘포토리얼리즘’과 ‘1인칭 시점’을 차용하는 것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또 한 번의 도전과 같았다.

공포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멀티플레이 요소를 철저히 제한하고 오로지 싱글 플레이만을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레온이나 크리스 등 기존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을 배제해, 게임이 극중 주인공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을 위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기획했다.

▲ 사실, 오래전부터 시리즈에 대한 변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바이오하자드7을 새롭게 개발하자는 결정은 갑자기 내려진 것이 아니었다. 캡콤은 ‘바이오하자드6’ 출시 이후부터 해당 프랜차이즈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게속해왔다. 코시 나카니시 디렉터 또한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바이오하자드를 바이오하자드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게 됐다. '좀비를 총으로 쏘는 재밌는 게임’라고 하기엔 게임업계는 현재 이런 게임들로 과포화 상태다. 따라서 후속작인 바이오하자드7의 경우는 ‘공포를 일으키는 재밌는 게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2014년 2월부터는 완전히 새로운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획하고자 했던 목표는 게이머들이 최초로 ‘바이오하자드’를 플레이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는 것. 이를 위해서는 낯선 저택에 갇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했고, 흥미로운 적을 추가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도 필요했다. (사람들이 처음 바이오하자드를 플레이할 당시에는 크리스와 질이 누구인지 몰랐다) 다시 말하면, 미지의 등장인물과 환경을 통해 긴장감과 공포를 조성하고자 했다.

이렇게 기본적인 개발 방향을 잡은 뒤에는, 흥미로운 적을 구상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바이오하자드7’에 등장하는 적들이 갖춰야 할 특징으로는 포토리얼리즘을 통한 생생한 표정 묘사와 기괴한 움직임을 꼽았고, 플레이어가 이들의 정체가 누구인지 계속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레벨 디자인은 미지의 저택을 채용,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선형적인 맵이 아니라 약간은 메트로배니아 스타일의 맵 구성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길을 찾고, 퍼즐을 풀어가며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의 느낌은 살아날 수 있도록 기획했다.

앞서 ‘이블 데드’와 같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인물은 다섯 명 정도 수준에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특징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게 이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구성했다.


호러라는 장르가 가지는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언제나 공포를 극복하는 데 있어 적을 처치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데, 미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나는 순간부터 공포감이 크게 감소하는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를 조금이나마 보완하기 위해 각각 적들에게 다양한 하위 호러 장르를 혼합시켜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가장인 잭에게는 슬래셔 필름의 영상 요소를 가미하고, 그의 부인인 마가렛에게는 뒤틀린 신체에서 오는 공포감이나 바퀴벌레, 지네 등 자연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요소를 추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극한의 공포감을 표현하기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최종 과제는 바로 플레이어를 해당 공간에 몰입시킬 방법을 찾는 것으로, 기존 콘셉트였던 포토리얼리즘 그래픽과 1인칭 시점, 그리고 등장인물의 성격을 최대한 배제한 것에 더해 VR이라는 기술을 시리즈 상 처음으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극한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것들도 있지만, 그만큼 버려야 할 것들도 많았다.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캐릭터들이 그중 하나였고, 다양한 액션 요소와 멀티플레이 요소,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영상 장면도 모두 배제했다. 물론, 이제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좀비 또한 배제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새로운 ‘바이오하자드7’를 위한 목표가 생기고, 디자인과 콘셉트가 정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때로 기존 팬들에게 외면을 받기 마련이다. 과연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이러한 변화를 팬들이 좋아할 것인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년 동안 바이오하자드 프랜차이즈가 이어오면서 받았던 유저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유저들이 기대하는 바이오하자드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팬들이 좋아했던 바이오하자드의 특징은 기존 캐릭터와 스토리, 공포 분위기와 퍼즐 요소, 친구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코옵 모드, 고정된 카메라 등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새로운 바이오하자드를 위해 희생시킨 것들 중 상당 부분이 팬들이 좋아하는 요소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기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것을 만들면 결국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기획해온 것들을 강행하기로 결심한다.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개발팀은 공포 게임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공포영화를 함께 보거나, 폐가 탐험을 하는 등 연구를 시작했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답사를 다녀온 것 또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다.

개발 초기에는 자체 개발 엔진인 ‘RE엔진’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일단은 유니티 엔진을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를 조합해 샘플을 만들어봤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어떻게 해야 공포를 배가시킬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프로토타입을 만들 당시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흥미롭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넣어보고,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전통적인 팀 장벽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고, 게임을 더 흥미롭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신의 직함에 관계없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뿐 아니라 애자일 개발 방식을 도입하고, 기존 팀을 다시 소그룹으로 나누는 작업 또한 진행했는데, 그렇게 하면서 마치 인디 개발자들이 팀을 이뤄 작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개발 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 유니티 엔진으로 제작한 샘플 버전

그렇게 소규모 그룹으로 나눠진 팀들은 자신이 개발을 담당한 부분에 따라 각각 ‘아버지 팀’, ‘어머니 팀’, ‘오빠 팀’, 그리고 ‘할머니 (그외)’ 팀 등으로 나눠졌다. 예를 들면 아빠 팀은 게임 내에 등장하는 적인 ‘잭’을 담당하는 팀이고, ‘할머니(그외)’팀의 경우는 말 그대로 그 밖의 것들을 모두 담당하는 팀이었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팀을 재구성했더니,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인 팀원들에게 전보다 유대감을 느끼게 하고, 일종의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일부 존재했는데, 몇몇 팀원들이 새롭게 바뀐 구성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각각 따로 게임의 부분을 담당하다 보니 한 데 뭉쳐놨을 때는 따로 노는 느낌마저 드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 4월, 드디어 독자 개발 엔진인 RE엔진이 완성됨과 동시에 최종 게임 개발에 전념을 다하게 된 개발팀에게 타케우치 준은 지금보다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주문을 하게 된다. 결국 데드라인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던 개발팀은 이러한 '높은 기준'에 부합시키기 위해 게임에 몇가지 변화를 주기로 결정한다.

먼저, 엔딩을 나눌 수 있는 분기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엔딩을 추가할 수 없었던 개발팀은 후반부에 미아와 조이 중 누구를 살릴지에 대한 결정권을 줌으로써 플레이어가 실제로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다.

또 러닝 커브에 대한 일반적인 가설을 버린 시도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러닝 커브란 플레이어들에게 먼저 게임의 요소를 가르쳐 주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배운 것을 이용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이들은 이런 일반적인 러닝 커브 대신 플레이어가 미지의 보스를 물리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 주차장에서 잭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 바로 그 예다. 플레이어는 잭을 맞닥뜨리게 되면 총과 나이프로는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된다. 그렇게 잭을 피해 주차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선반에 자동차 열쇠가 올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제 이것을 이용해 자동차를 조작해 잭을 공격할 것인지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전에 기본적인 힌트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 의문을 갖게 하거나,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끝으로는, 출시 전 데모 버전을 배포해 유저 테스팅을 진행했다. 특히 '바이오하자드7'의 유저 테스팅은 중요했는데,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게임 내에서 긴장을 하는 구간과 안정을 찾는 구간의 페이스를 조절하고, 스트레를 유발하는 구간에 대한 밸런스를 조절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템을 소비하는 구간과 다시 보충하는 구간은 언제인지에 대한 조사 또한 가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7번째 타이틀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현재 '바이오하자드7'을 개발한 팀원들은 보다 다양한 호러 분위기와 게임 플레이를 추가하기 위해 DLC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기존 시리즈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아 실망했던 팬들을 위한 무료 DLC인 'Not A Hero'가 오는 봄 중으로 출시될 전망이다.